Chaotic Blue Hole

참으로 지루하면서도, 이렇게 막 나가는 스토리를 대체 어떻게 수습할 건지 사람 궁금하게 했던 작품에 하자가 많았다는 의미의 문제작 SEED DESTINY가 지난 토요일 50화를 끝으로 종영되었습니다.

어찌 된 것이 발표당시 주인공으로 내세워졌던 신은 결국 최종화에서도 제정신 못차리고 대들다 개박살나서 격추당하지를 않나,
키라 놈은 레이를 인정해주는 척 하면서 헛점을 보이게 만들고는 냅다 걸레짝을 만들어버리지를 않나,
아스란은 또 방해한다고 미네르바 엔진을 분리형 백팩으로 관통시켜서 떨어트리질 않나...
(MS 격투 기술로 전함 격추... --;;)

본래 저는 안티 SEED 팬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닙니다만.
안티 DESTINY 만큼은 확실하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적 관점에서 DESTINY는 리얼 로봇 애니로도, 건담 애니로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성공한 분야라면 퓨전 로봇 애니, BL 분위기 정도겠군요.

리얼 로봇으로서의 최대 특징은 사실적인 세계관과 체계적인 메카닉 설정입니다.
물론 '기동전사 건담'(통칭 퍼스트 건담) 역시 처음부터 리얼 로봇은 아니었죠. 자쿠의 머신 건 공격을 아무런 방어 없이 맨몸으로 맞고도 멀쩡했으니까요.
(이 당시에는 페이즈 시프트 따위도 없었...)
하지만 점점 감독과 스탭, 거기다 팬들이 가세하며 설정이 보강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설정의 헛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납득이 가는 수준까지는 만들어졌죠.

하지만 SEED나 DESTINY의 경우에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전개는 물론이고, 스스로 만들어낸 설정을 스스로 무너트리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하니, 이것은 이미 리얼 로봇임을 포기했다는 의미로 봐야겠죠.

실탄 공격에만 효과가 있었다고 했으나 SEED 최후반부에서 빔 공격마저 무효화시켰던 페이즈 시프트 (SEED)
격렬한 전투 중 메인 카메라가 탑재된 머리부분이 파괴되었음에도 모니터 출력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프리덤 (SEED)
심각한 부상을 입은 키라가 셔틀에 태워져, 신원 조회조차 무시하고 라크스의 곁으로 보내진 일 (SEED)
이지스 자폭 후 불과 20일 만에 MS에 탈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키라 (SEED)
방열 장비는 커녕 실체형 실드도 없이, 방어 자세도 없이 맨몸으로 대기권을 강하하고 바로 전투에 돌입한 스트라이크 프리덤과 인피니트 저스티스 (DESTINY)
빔의 입사각과 반사각을 무시하며 정확히 발사한 상대에게로 빔을 반사해내는 아카츠키의 대 빔 반사막 (DESTINY)
부축받지 않고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는데도 신 아스카와 동등한 전투를 벌인 아스란 (DESTINY)
보조 부스터 없이, 매스 드라이버도 안 쓰고 대기권을 돌파해 우주로 올라간 아크 엔젤(DESTINY)
(바로 같은 화에서 미네르바는 대형 보조 부스터를 장착하고 우주로 올라감)

...이 외에도 꼽자면 정말 한도 끝도 없습니다. 쓰다보면 왠지 더더욱 열이 치밀어 오르니 여기서 멈추죠.


건담 애니로서 성공하지 못했다는 의미는...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건담 애니의 최대 특징은 절대적 정의라는 게 없다는 겁니다.
물론 그런 점에서는 SEED나 DESTINY도 인정할 수 있지만, 문제는 후반부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사상의 차이.
심지어 적이든 아군이든, 최소한 저로서는 어느 쪽에도 공감할 수 없는 사상이라는 겁니다.
굳이 공감할 수 있는 사상이라면 오히려 크루제의 사상이겠군요.
키라와 라크스의 사상은 너무나도 초현실적인 이상론이고, 길버트 듀랜달의 사상은 인간을 사실상 사회의 부속품으로만 보는 것.
블루 코스모스와 패트릭 자라, 라우 르 크루제의 사상이 오히려 더 이해가 잘 됩니다. 그들이 어째서 그런 사상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지 상황이 잘 설명되니까요.
매력적인 사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공감할 수 있는 캐릭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된 인간 관계의 얽힘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 관계라고 해봤자 결국은 내용 전개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연애질 뿐.)


...그러고보니 SEED 카페에서 이런 글을 발견을 했습니다.
DESTINY의 메카닉 감독인 椛島洋介 씨가 자기 블로그에 올린 글이라는데요...

지쳤다. 분위기가 살지않는 전개, 되풀이되는 뱅크(만들어놓은 필름을 다시 쓰는것)의 폭풍우.
자신의 액션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결과는 감독님 일행은 라디오 관람입니까.

아니, 나는 결코 감독이 하는 연출은 싫지 않아.
랄까 오히려 좋아하는 부류다. 존경도 하고 있어. 하지만 부인은 별개.

시나리오 미루지 말고 일 좀 해라. 라기보다 쓸 수 없으면 더 이상 쓰지마.
하지만 적어도 공기는 읽을 수 있을 거 아냐. 어른이니까.
거기다 단기간에 그 수의 러프원화 수정은 무리라고.
정직 할 기운도 안 나왔다. 그러니까 그런 결과물이 됬겠지. 나는 더 이상 무리야.

정말로 다른 감독님이 굉장하다고 생각했다.
몇회나 빙빙 돌아서 빔을 쏘면 되는 건가. 몇번이나 같은 그림을 사용하면 좋은 건가.

어쨌든 더 이상 안 해-!! 또 다시 푸념해서 미안.
이 오명은 마이히메2에서 반환할께


...참고로 이 글이 카페에 올라온 것은 최종화 방영 이틀쯤 전이었습니다.
새삼스레 각본가 모로사와 치아키의 악명을 실감할 수 있었죠.

혹시나 해서 사이버 포뮬러 관련 자료도 찾아봤습니다.
SAGA와 SIN에서 각본 메인 담당 : 모로사와 치아키

......오호라, ZERO에서 구닥다리 아스라다를 몰면서 최신형 엑스페리온을 능가하던 실력의 하야토가 SAGA에서 그렇게 머신 성능에 집착하게 된 것이 그런 이유였나. (...)
SAGA 마지막화에서 '단지 달리는 게 좋아, 그래서 달리는 것 뿐이야'라고 했던 카가가 SIN에서 그렇게 승리에 집착하게 된 것이 그런 이유였나. (...)
SAGA에서 앙리가 하야토에게 노골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그런 이유였나. (...)
리프팅 턴이니, 미라쥬 턴이니 하는 사기 기술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도 그런 이유였나. (...)
(제로의 영역은 실제로 F-1 드라이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한다고 합니다.)

가능하면 모로사와 씨는 이제 제발 메카닉은 손 떼고 그냥 본격 BL 애니나 손 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사포 SAGA와 SIN, 기어전사 덴도, SEED와 SEED DESTINY. 무엇 하나 BL 요소 없는 게 없지요. (...)
더불어 메카닉 적인 요소에 있어서는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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