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꺄악!
- 이게 진짜! 귀찮게 달라붙지 마!
"젠장...!"
주위를 돌며 빔을 쏴대고, 때때로 에너지 막을 두른 채 돌격해오는 플로팅 유닛 때문에 시우와 사브리나, 나알리아는 엄호는커녕 자기 몸 보전하기에도 벅찼다. 사브리나는 벌써 머신건과 어설트 라이플이 부서져 피스톨로 플로팅 유닛을 상대하고 있었고, 나알리아도 어설트 라이플과 개틀링 건 하나씩을 잃은 상태였다. 그나마 시우는 위험할 때마다 광익으로 공격을 막아내서 구미호가 파괴되지는 않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또 한번 돌격해오는 플로팅 유닛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광익으로 쳐낸 시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시 사키와 리자가 있는 곳을 보았다.
- ......
- ...이잇!
그 쪽은 아예 말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팔다리에서 모두 만들어진 4자루의 에너지 블레이드는 잠시라도 대치 상태에 들어가는 순간 두사람을 찢어놓을 듯이 움직였고, 거리를 벌릴라 치면 어깨의 빔 캐논이 불을 뿜었다. 한명이 앞에서 상대하고 다른 한명이 배후를 치려고 해도 블레이드 윙이 방어와 동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위협적으로 움직였기에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 이건 어때!
리자의 외침과 함께 갑자기 홀리 저지먼트의 동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마치 무언가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행동이었지만 사키와리자 모두 홀리 저지먼트와는 3m 이상 떨어져 있었다. 리자는 계속해서 외쳤다.
- 아직 안 끝났어! 계속 간다!
리자의 외침과 함께 홀리 저지먼트의 동체는 이리저리 샌드백처럼 흔들렸다. 그제야 시우와 사키는 리자가 특수무장 슈투름 해머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임해학교에서 독일 연구팀이 프레이르에 새로 장비한 공간 압축 충격파의 공격에 홀리 저지먼트는 피하지도 못하고 얻어맞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사키는 재빨리 홀리 저지먼트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군용기라는 특성 때문에 홀리 저지먼트의 실드 에너지 량은 어마어마했고 얼마나 남아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가해진 타격으로 보았을 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 타앗!
사키는 기합성과 함께 삭풍도를 힘차게 내리 그었다. 그 직전에 리자는 슈투름 해머를 좌우에서 동시에 날려 홀리 저지먼트가 피할 수 없도록 가둬놓았고, 사키의 공격은 그대로 홀리 저지먼트의 정수리에 꽂히는 듯 했다.
- 크헉!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날아든 플로팅 유닛의 충돌 공격에 사키는 튕겨나가고 말았다. 뒤이어 날아든 또다른 플로팅 유닛은 리자를 향해 돌격했고 리자 역시 슈투름 해머의 사용을 중지하고 피할 수밖에 없었다. 견제가 사라진 시우 일행이 홀리 저지먼트를 향해 탄환을 날렸지만 홀리 저지먼트는 어렵지 않게 피해내고는 시우 일행에게 접근했다. 공격 대상은 나알리아였다.
- 멈춰!
"피해, 나알리아!"
사브리나가 피스톨 사격을 가하며 사이에 끼어들려 했고 시우도 급하게 외쳤지만 나알리아가 피하는 것보다 홀리 저지먼트가 접근하는 게 더 빨랐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홀리 저지먼트는 팔에서 튀어나온 에너지 블레이드로 나알리아의 어설트 라이플을 두동강내고, 그 회전력을 살려 발차기를 날리며 발등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나알리아의 IS 그레이 실프에 꽂아넣었다.
- 아악!
다행히 실드에 막혀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물리적 충격량은 그대로 전해졌고 실드 에너지도 순식간에 깎여 나갔다. 게다가 홀리저지먼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속으로 4개의 블레이드를 휘둘러 나알리아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만 해!"
시우가 구미호를 총검 모드로 바꾸고 달려들었지만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활짝 펼쳐진 블레이드 윙에 순간적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 홀리 저지먼트는 나알리아를 붙잡고 휘둘러 시우에게 날려버렸다.
"우왁!"
"...윽!"
서둘러 나알리아를 받아든 시우의 눈에 빔 캐논을 자신들에게 조준한 홀리 저지먼트의 모습이 보였다. 피할 여유가 없었다.
- 날 무시하면 안 되지!
위급한 상황에 사브리나가 홀리 저지먼트에게 헤드샷을 날렸다. 피스톨을 수납하고 대신 전개한 대물저격총은 홀리 저지먼트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그 여파로 빔 캐논은 시우와 나알리아를 비켜갔다.
- 한발 더!
빔 캐논이 빗나간 것을 확인한 사브리나는 재차 홀리 저지먼트를 조준했지만, 폭주 중인 홀리 저지먼트는 인간이 조작할 때처럼 머뭇거리는 일이 없었다. 사브리나가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을 인식한 홀리 저지먼트는 선회하자마자 사브리나에게 순간 가속을 써서 접근했고, 사브리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둘러 대물 저격총을 파괴했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사브리나의 목을 잡고 오른팔을 뒤로 당겨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노리는 위치는 얼굴. 에너지 블레이드는 출력을 높였는지 조금 전까지는 다른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절대방어가 발동한다 해도 막아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사브리나!
"멈춰, 이 자식!"
나알리아와 시우가 서둘러 엄호를 하려 했지만 홀리 저지먼트는 자세를 유지한 채 교묘하게 위치를 바꾸어 사브리나를 방패로 썼고, 두 사람은 물론 원거리에서 슈투름 해머를 다시 쓰려던 리자까지 공격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에너지 블레이드가 그대로 꽂히려는 찰나,
- 이야아아아아압!!
"아아아아아아아악!!!"
사키의 검격이 홀리 저지먼트의 오른팔을 베었다. 아니, 잘랐다. 팔꿈치 바로 아래에서 잘린 홀리 저지먼트의 팔은 액체를 흩뿌리며 수면으로 낙하했고, 사브리나는 홀리 저지먼트의 팔이 잘릴 때 아주 약하게 누군가의 비명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학생들은 홀리 저지먼트의 절단된 팔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액체의 색을 보고 숨을 삼켰다.
선명한 붉은 색.
피였다.
- 어떻게 된 거지...?
- 왜, 왜 파일럿이 부상을...
- 절대방어가... 발동하지 않았어...?
- 말도 안 돼...
학생들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사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홀리 저지먼트는 코어가 폭주하여 완전 자립기동 중이었고, 그렇다면 파일럿의 안위는 완전히 인식 밖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실드 에너지를 착실히 깎아낸 다음 절대방어를 발동시키면 에너지 잔량 부족으로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선 절대방어조차도 기능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 피해는 피해대로 발생하고 파일럿도 구하지 못할 수 있었다. 타개책을 궁리하던 사키의 눈에 플로팅 유닛이 빠른 속도로 학생들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조심해! 플로팅 유닛이 간다!"
시우 일행은 사키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지만, 사브리나는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반응이 약간 늦었고 결국 플로팅 유닛과 충돌했다. 두대의 플로팅 유닛이 좌우에서 번갈아 강하게 충돌하자 사브리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빔 캐논이 사브리나와 아즈라엘을 향해 발사되었다.
- 사브리나!
- 저 자식이!
"다마리스! 에인세를 받아라!"
- 아, 넷!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 교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해!"
사키의 지시에 마침 근처에 있던 나알리아가 사브리나가 바다에 빠지기 전에 받아냈고, 사키는 나알리아에게 퇴각을 지시했다. 확실히 스펙은 우수하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한 학생보다는 기체의 성능은 약간 부족하더라도 경험이 풍부한 교사쪽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사키의 우치가네는 이미 에너지 잔량이 30% 아래로 떨어져 있었고 시우와 리자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한시우, 키르히아이스. 한꺼번에 간다. 녀석을 반드시 멈춰야 한다."
- ...네.
- 네.
시우와 리자의 대답을 들은 사키는 리자와 함께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해 들어갔고, 시우는 원거리에서 견제 사격을 가했다. 앞을 가로막는 플로팅 유닛을 본 사키는 삭풍도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힘차게 휘둘렀고, 플로팅 유닛의 에너지 막이 한계 충격량을 넘은 공격에 찢겨나가며 플로팅 유닛까지 함께 파괴되었다.
- 선생님 나이스 어택!
"노는 게 아니다!"
귀찮은 걸 하나 제거하긴 했지만 방금 전의 일격으로 에너지가 단번에 5%나 소모되었다. 사키의 우치가네와 동기화가 끝난 삭풍도는 구동 에너지를 공급받아 참격의 위력을 증강시킬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에너지 소비 효율이 순수 에너지 병기보다 상당히 안 좋았다. 붉은 색으로 점멸하는 에너지 게이지를 본 사키는 속으로 혀를 차며 다시금 홀리 저지먼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맞은 편에서 리자와 시우의 협공으로 또다른 플로팅 유닛이 격파되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아앗!"
플로팅 유닛을 격파하자마자 날린 시우의 엄호 사격으로 홀리 저지먼트는 순간적으로 퇴로를 봉쇄당했고, 뒤이어 날아든 리자의 슈투름 해머에 균형을 잃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사키가 다시한번 정수리에 삭풍도를 내리쳤다.
"뭣?!"
홀 리 저지먼트는 그 칼날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머리를 내미는 듯한 자세까지 취했다. 결과적으로 삭풍도는 홀리 저지먼트의 헬맷에 정통으로 내리꽂혔고, 잠시 후 충격을 이기지 못한 헬맷에 금이 가더니 두쪽으로 쪼개져 떨어졌다. 그리고 드러난 파일럿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 이럴 수가...
- ...큭.
"......"
사키는 홀리 저지먼트가 무슨 의도로 방금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이쪽의 심리적인 타격, 그로 인한 공격 행동의 위축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사키는 어쨌든 시우와 리자는 상대의 얼굴이, 그것도 한쪽팔을 잃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데 냉정하게 유효 공격을 날리기는 어려웠다. 잠시 멈칫한 사키를 향해 홀리 저지먼트의 파일럿이 얼굴을 들었다. 사키마저도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이마를 가로질러 흐르는 피, 출혈과 통증으로 몽롱해진 눈빛을 보고는 순간 몸이 굳었고, 홀리 저지먼트는 그 때를 놓치지않았다.
"윽?!"
홀리 저지먼트가 잘린 오른팔을 휘두르자 상처의 단면에서 뿌려진 피가 사키의 눈에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서려는 사키를향해 홀리 저지먼트는 몸통 박치기를 걸었고, 급하게 날린 시우의 견제사격과 리자의 슈투름 해머마저 피하고는 코 앞의 사키에게 빔 캐논을 발사했다.
"우아악!"
- 선생님!
- 이런!
우치가네의 절대방어는 제때 발동했지만 빔 캐논의 충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고, 사키는 곳곳에 상처를 입은 채 수면으로 낙하했다. 시우가 서둘러 따라잡아 간신히 받아내긴 했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홀리 저지먼트는 이미 빠른 속도로 육지를 향해 날아간후였다.
- 늦었어...
"제길...!"
어지러운 와중에도 사키는 자신들이 홀리 저지먼트를 막지 못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홀리 저지먼트가 날아간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를 떠올린 사키는 피가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홀리 저지먼트가 향한 곳에는 임해학교의 숙소, 다시 말해 스쿨의 1학년 학생들과 교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한시우, 키르히아이스! 당장 놈을 쫓아! 임해학교로 향했다!"
"네?!"
- 그러고보니 저 방향...
"서둘러! 말할 시간이 없다!"
전투 불능이 된 동료들과 사브리나를 데려온 교사들과 나알리아는 지원을 위해 돌아갈 인원을 추려내고는 남기로 한 사람들의 코어에게서 에너지를 공여받고 있던 도중이었다. 초조한 마음에 공급이 완료되길 기다리고 있던 그들의 눈에 바다 저편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우리가 없는 새 끝난 건가?"
"그러면 좋겠지만..."
[고속 접근중인 상대 식별 완료. 퍼스널 네임 '홀리 저지먼트'.]
각자의 IS의 분석 결과를 들은 재출격 팀이 서둘러 무기를 집은 것과 홀리 저지먼트가 해안에 도달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사키를 안은 시우와 리자가 간신히 해안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상황은 거의 종료되어 있었다. 해안은 IS간의 전투, 정확히 말하면 홀리 저지먼트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초토화되어 있었고, IS 보유자 대부분은 절대방어가 발동한 충격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나알리아마저 홀리 저지먼트의 빔 캐논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는 절대방어가 발동해 추락했다.
"나알리아!"
"치잇!"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 순간가속을 사용한 리자가 아슬아슬하게 나알리아를 받아냈지만 이미 충격으로 기절한 뒤였다. 그 사이 시우는 사키를 땅에 내려놓고는 홀리 저지먼트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자도 금방 나알리아를 땅에 눕혀놓고는 홀리 저지먼트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안 끝났다, 이 자식아!"
"끝까지 해보자고!"
이제는 정말로 홀리 저지먼트를 막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바다 위도 아니고 이미 해안가,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간다면 마을이 있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IS 보유자들만이 상대해서 목숨은 무사했지만 여기서도 놓친다면 그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뀔 터였다. 민간인들은 IS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우와 리자의 공격은 어딘가 날카로운 맛이 없었다. 공격은 빗나가기 일쑤였고, 명중하는 공격도 위력이 낮거나 주요 부위를 빗나가곤 했다. 시시각각 안색이 나빠지는 홀리 저지먼트의 파일럿을 보고 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팔이나 헬맷의 경우를 보면 홀리 저지먼트가 절대방어를 쓴다는 보장은 할 수 없어. 그렇다면 자칫하면 파일럿이 위험해. 하지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저 녀석을 멈출 수 있지? 대체 어떻게 해야 녀석을 세우고 파일럿을 구할 수 있는 거야?!'
시우가 혼란스러워 하며 날린 견제사격을 피해낸 홀리 저지먼트는 그와 동시에 접근한 리자에게 팔과 발등에 나온 4자루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동시에 휘둘렀다. 본래 있을 수 없는 급격한 움직임으로 파일럿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변했지만 홀리 저지먼트는 개의치않았다. 리자는 급하게 양팔과 양다리 부분의 실드 출력을 올리며 공격을 받아냈지만, 그 직후 밀착 상태에서 홀리 저지먼트의 빔 캐논이 발사되었다.
"꺄아앗!"
절대방어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리자는 저 멀리 튕겨나갔고, 다행히 지면에 서 있을 때 받은 타격이라 공중에서 추락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던 교사들 중 몇명이 리자를 향해 뛰어갔고, 그 모습을 본 홀리 저지먼트는 다시금 빔 캐논에 입자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빔 캐논의 포구에 입자가 밀집하는 것을 본 시우의 눈이 부릅 떠졌다. 빔이 발사되려던 찰나, 홀리 저지먼트는 옆에서 가해진 강력한 충격에 십여미터를 밀려났다. PCS를 발동시킨 시우의 은황이 몸통 박치기를 걸어왔던 것이다.
[PCS 발동. 구동 한계까지 6초.]
은황의 보고를 들으며 시우는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없었다. 지금까지 홀리 저지먼트를 상대하며 소모한 에너지 량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6초 안에 어떻게든 홀리 저지먼트를 멈춰 세워야만 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앗!!"
생각할 시간도 아까웠다. 시우는 아까 사키에게서 회수한 삭풍도를 꺼내들고 다시금 돌격했다. PCS로 강화된 스피드와 무장 출력을 이용해 홀리 저지먼트를 구동 한계 수준까지 손상시키려는 생각이었다. 어깨로 몸통 박치기,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돌려차기, 다시 회전하며 레프트훅, 그리고 이어서 오른손의 삭풍도로 허리를 가격, 무릎으로 복부 가격. 공격이 들어갈 때마다 홀리 저지먼트의 동체 장갑은 눈에 띄게 파손되고 있었다. 이따금 목이나 머리로 삭풍도가 휘둘러질 뻔도 했지만 시우는 아슬아슬하게 검의 궤도를 꺾어 동체를 가격했다. 시우가 홀리 저지먼트의 가슴에 한번 더 주먹을 날리려고 했을 때였다.
[PCS 발동 정지. 실드 에너지 잔량 3%, 구동 에너지 잔량 4%. 전개 한계 수준입니다.]
은황의 경고와 함께 시우는 은황의 움직임이 극도로 둔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날린 주먹은 방금 전까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느린 데다 힘도 없었고, 홀리 저지먼트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시우의 복부를 걷어 찼다.
"...! 크허, 쿨럭, 쿨럭..."
뒤로 나가떨어진 시우는 자세를 바로 잡으려 애쓰며 기침을 내뱉었고,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그 눈에 홀리 저지먼트가 여유롭게 빔 캐논을 전개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는 임해학교의 숙소로 쓰이는 여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시우에게는 홀리 저지먼트가 빔 캐논을 발사하려는 광경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위험해.'
빔 캐논의 포구가 정확하게 여관을 조준했다.
'멈춰.'
포구에 빛의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 마.'
입자의 응축이 시작됐다.
'네 멋대로─────.'
한계까지 응축된 입자가, 마침내 해방되려 했다. 그 순간 홀리 저지먼트의 모습에서 시우는 알 수 없는, 하지만 원망스럽고 증오스러운 누군가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사람을 갖고 놀지 마─────────!!!!!!!'
[PCS 재발동. 원 오프 어빌리티 발동.]
어째서 PCS를 다시 발동할 수 있었는지, 지금 발동된 원 오프 어빌리티가 무엇인지 판단할 겨를도 없었다. 시우는 있는 힘을 다해 홀리 저지먼트를 붙잡고는 날아올랐고, 가능한 한 멀리 해안에서 떨어지기 위해 최고 속도로 바다 한가운데로 날았다. 육지가 안 보이게 되고 나서야 시우는 다소 안도했고, 그제야 은황의 에너지 게이지가 50% 이상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게이지는 지금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윽!"
지금 벌어진 상황에 어리둥절해진 시우는 홀리 저지먼트의 블레이드 공격을 한차례 받고는 손을 놓았고, 그 때 은황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 발동된 원 오프 어빌리티의 특성입니다. 이 원 오프 어빌리티는 접촉한 상대의 에너지를 강제 흡수하는 것입니다.]
"...하하, 그거 완전히 흡혈귀잖아."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완전히 틀린 비유도 아닙니다.]
"뭐, 좋아. 덕분에 타개책이 생겼어. 저 녀석 에너지가 바닥날 때까지 달라붙어 있으면 되는 거잖아?"
[확실히 그것도 해결책이긴 합니다만, 순순히 붙잡혀 줄까요? 게다가 붙잡힌 채로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 좋아, 해보자!"
시우는 PCS가 발동중이라는 점을 살려 홀리 저지먼트의 주변을 빠르게 지나치며 공격을 가했다. 저항할 무장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양 팔과 발등의 에너지 블레이드는 어떻게 하기 어려웠지만, 몇번의 공격으로 등에 달린 에너지 블레이드 윙은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마지막 한 장마저 베어낸 시우는 그 즉시 홀리 저지먼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좀 꼴사나운 자세이긴 하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이해해줘요!"
[누구한테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충전율 90% 돌파. 100% 초과시 기체에 과부하가 가해져 행동 불능이 될 수 있습니다.]
"광익 최대 출력! 여분의 에너지는 광익을 통해서 발산해!"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흡수하는 에너지 절반을 광익으로 전달, 방출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PCS 유지에 사용합니다.]
군용이라는 특징 때문에 홀리 저지먼트에는 은황의 몇배나 되는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었지만, 전투로 소모된 양에 더해 지금 빠른 속도로 강제 방출 되면서 홀리 저지먼트의 에너지는 어느새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빼앗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은황의 광익은 마치 요정의 가루를 흩뿌리는 반투명한 요정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홀리 저지먼트는 시우와 은황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PCS로 완력도 강화된 은황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공중 기동력을 높이는 윙 스러스터도 방금 전 시우에 의해 모두 절단되었기에 이리저리 움직여 떨쳐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기를 5분여, 마침내 홀리 저지먼트는 에너지가 바닥나 대기 상태로 돌아가버렸고 만신창이가 된 파일럿만이 시우의 품 안에 남아있었다.
"은황, 파일럿의 상태는?!"
[외상은 두부 열상, 우완 절단, 전신 타박상입니다. 실혈이 심하므로 응급조치 후 집중 치료가 필요합니다.]
"...제기랄!"
시우는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모를 욕설을 하며 전속력으로 해안으로 날았다.
"호오, 생각보다 빨리 진압했는데."
"그나저나 마지막에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가만히 붙잡고만 있었는데 홀리 저지먼트가 대기 상태로 돌아가버렸어."
"그건 확실히 신경 쓰이네. 뭔가 공격을 한 것도 아닌데. 아, 저쪽에서는 이번 일 어떻게 본대?"
"나름대로 성공으로 보는 모양이더군. IS의 절대방어 기능도 이제 완전히 믿지는 못할 테니까."
"그야 당연하겠지. 성공사례 수백건보다 반박사례 한두건이 더 위력을 발휘하니까. 계획은 차근차근 잘 진행되는 모양이네."
"이제 하늘을 되찾는 것도 머지 않았군."
"그래.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리는 거야."
임해학교가 끝나고 스쿨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시우는 어두운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결국 임해학교는 도중에 중단되어 이틀째 오후에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학생들은 불만이 대단했지만, 엉망진창이 되어 병원으로 실려가는 교사들과 멀리서나마 보인 홀리 저지먼트 파일럿의 처참한 모습에 모두 군말없이 버스에 올랐다. 홀리 저지먼트의 파일럿은 외상뿐만 아니라 급격한 전투 기동과 과도한 움직임 때문에 내상도 심각한 상태였고, 오른팔을 의수로 대체한다고 해도 아직 전자의수 기술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퇴역은 불가피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시우의 심경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원 오프 어빌리티의 발동은 기뻐할 일이었지만, 해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시우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홀리 저지먼트 파일럿의 목이나 미간과 같은 급소를 삭풍도로 공격하려 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살의는 없었지만 몸은 자꾸만 그렇게 움직였다. 여러가지로 착잡해진 시우는 그저 조용히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고, 은황 역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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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절반 왔습니다. 그나저나 자꾸 올린다는 걸 까먹어서 (...)
- 이게 진짜! 귀찮게 달라붙지 마!
"젠장...!"
주위를 돌며 빔을 쏴대고, 때때로 에너지 막을 두른 채 돌격해오는 플로팅 유닛 때문에 시우와 사브리나, 나알리아는 엄호는커녕 자기 몸 보전하기에도 벅찼다. 사브리나는 벌써 머신건과 어설트 라이플이 부서져 피스톨로 플로팅 유닛을 상대하고 있었고, 나알리아도 어설트 라이플과 개틀링 건 하나씩을 잃은 상태였다. 그나마 시우는 위험할 때마다 광익으로 공격을 막아내서 구미호가 파괴되지는 않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있었다. 또 한번 돌격해오는 플로팅 유닛을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광익으로 쳐낸 시우는 식은땀을 흘리며 잠시 사키와 리자가 있는 곳을 보았다.
- ......
- ...이잇!
그 쪽은 아예 말을 할 여유조차 없었다. 팔다리에서 모두 만들어진 4자루의 에너지 블레이드는 잠시라도 대치 상태에 들어가는 순간 두사람을 찢어놓을 듯이 움직였고, 거리를 벌릴라 치면 어깨의 빔 캐논이 불을 뿜었다. 한명이 앞에서 상대하고 다른 한명이 배후를 치려고 해도 블레이드 윙이 방어와 동시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위협적으로 움직였기에 제대로 된 타격을 줄 수 없었다.
- 이건 어때!
리자의 외침과 함께 갑자기 홀리 저지먼트의 동체가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마치 무언가로 세게 얻어맞은 듯한 행동이었지만 사키와리자 모두 홀리 저지먼트와는 3m 이상 떨어져 있었다. 리자는 계속해서 외쳤다.
- 아직 안 끝났어! 계속 간다!
리자의 외침과 함께 홀리 저지먼트의 동체는 이리저리 샌드백처럼 흔들렸다. 그제야 시우와 사키는 리자가 특수무장 슈투름 해머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임해학교에서 독일 연구팀이 프레이르에 새로 장비한 공간 압축 충격파의 공격에 홀리 저지먼트는 피하지도 못하고 얻어맞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한 사키는 재빨리 홀리 저지먼트의 머리 위로 날아올랐다. 군용기라는 특성 때문에 홀리 저지먼트의 실드 에너지 량은 어마어마했고 얼마나 남아있는지 가늠할 수도 없었지만 지금까지 가해진 타격으로 보았을 때 그리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 같았다.
- 타앗!
사키는 기합성과 함께 삭풍도를 힘차게 내리 그었다. 그 직전에 리자는 슈투름 해머를 좌우에서 동시에 날려 홀리 저지먼트가 피할 수 없도록 가둬놓았고, 사키의 공격은 그대로 홀리 저지먼트의 정수리에 꽂히는 듯 했다.
- 크헉!
하지만 그 순간, 갑자기 날아든 플로팅 유닛의 충돌 공격에 사키는 튕겨나가고 말았다. 뒤이어 날아든 또다른 플로팅 유닛은 리자를 향해 돌격했고 리자 역시 슈투름 해머의 사용을 중지하고 피할 수밖에 없었다. 견제가 사라진 시우 일행이 홀리 저지먼트를 향해 탄환을 날렸지만 홀리 저지먼트는 어렵지 않게 피해내고는 시우 일행에게 접근했다. 공격 대상은 나알리아였다.
- 멈춰!
"피해, 나알리아!"
사브리나가 피스톨 사격을 가하며 사이에 끼어들려 했고 시우도 급하게 외쳤지만 나알리아가 피하는 것보다 홀리 저지먼트가 접근하는 게 더 빨랐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홀리 저지먼트는 팔에서 튀어나온 에너지 블레이드로 나알리아의 어설트 라이플을 두동강내고, 그 회전력을 살려 발차기를 날리며 발등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나알리아의 IS 그레이 실프에 꽂아넣었다.
- 아악!
다행히 실드에 막혀 치명상은 입지 않았지만 물리적 충격량은 그대로 전해졌고 실드 에너지도 순식간에 깎여 나갔다. 게다가 홀리저지먼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속으로 4개의 블레이드를 휘둘러 나알리아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
"그만 해!"
시우가 구미호를 총검 모드로 바꾸고 달려들었지만 거의 다다랐을 때 갑자기 활짝 펼쳐진 블레이드 윙에 순간적으로 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 틈을 타 홀리 저지먼트는 나알리아를 붙잡고 휘둘러 시우에게 날려버렸다.
"우왁!"
"...윽!"
서둘러 나알리아를 받아든 시우의 눈에 빔 캐논을 자신들에게 조준한 홀리 저지먼트의 모습이 보였다. 피할 여유가 없었다.
- 날 무시하면 안 되지!
위급한 상황에 사브리나가 홀리 저지먼트에게 헤드샷을 날렸다. 피스톨을 수납하고 대신 전개한 대물저격총은 홀리 저지먼트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그 여파로 빔 캐논은 시우와 나알리아를 비켜갔다.
- 한발 더!
빔 캐논이 빗나간 것을 확인한 사브리나는 재차 홀리 저지먼트를 조준했지만, 폭주 중인 홀리 저지먼트는 인간이 조작할 때처럼 머뭇거리는 일이 없었다. 사브리나가 자신을 공격했다는 것을 인식한 홀리 저지먼트는 선회하자마자 사브리나에게 순간 가속을 써서 접근했고, 사브리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에너지 블레이드를 휘둘러 대물 저격총을 파괴했다. 그리고는 왼손으로 사브리나의 목을 잡고 오른팔을 뒤로 당겨 찌르기 자세를 취했다. 노리는 위치는 얼굴. 에너지 블레이드는 출력을 높였는지 조금 전까지는 다른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절대방어가 발동한다 해도 막아낼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사브리나!
"멈춰, 이 자식!"
나알리아와 시우가 서둘러 엄호를 하려 했지만 홀리 저지먼트는 자세를 유지한 채 교묘하게 위치를 바꾸어 사브리나를 방패로 썼고, 두 사람은 물론 원거리에서 슈투름 해머를 다시 쓰려던 리자까지 공격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에너지 블레이드가 그대로 꽂히려는 찰나,
- 이야아아아아압!!
"아아아아아아아악!!!"
사키의 검격이 홀리 저지먼트의 오른팔을 베었다. 아니, 잘랐다. 팔꿈치 바로 아래에서 잘린 홀리 저지먼트의 팔은 액체를 흩뿌리며 수면으로 낙하했고, 사브리나는 홀리 저지먼트의 팔이 잘릴 때 아주 약하게 누군가의 비명을 들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학생들은 홀리 저지먼트의 절단된 팔 부분에서 흘러나오는 액체의 색을 보고 숨을 삼켰다.
선명한 붉은 색.
피였다.
- 어떻게 된 거지...?
- 왜, 왜 파일럿이 부상을...
- 절대방어가... 발동하지 않았어...?
- 말도 안 돼...
학생들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사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홀리 저지먼트는 코어가 폭주하여 완전 자립기동 중이었고, 그렇다면 파일럿의 안위는 완전히 인식 밖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래도 실드 에너지를 착실히 깎아낸 다음 절대방어를 발동시키면 에너지 잔량 부족으로 멈출 수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아선 절대방어조차도 기능 정지되어 있는 것 같았다. 최악의 경우, 피해는 피해대로 발생하고 파일럿도 구하지 못할 수 있었다. 타개책을 궁리하던 사키의 눈에 플로팅 유닛이 빠른 속도로 학생들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조심해! 플로팅 유닛이 간다!"
시우 일행은 사키의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렸지만, 사브리나는 정신적 충격이 너무 커서 반응이 약간 늦었고 결국 플로팅 유닛과 충돌했다. 두대의 플로팅 유닛이 좌우에서 번갈아 강하게 충돌하자 사브리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빔 캐논이 사브리나와 아즈라엘을 향해 발사되었다.
- 사브리나!
- 저 자식이!
"다마리스! 에인세를 받아라!"
- 아, 넷!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 교사들에게 지원을 요청해!"
사키의 지시에 마침 근처에 있던 나알리아가 사브리나가 바다에 빠지기 전에 받아냈고, 사키는 나알리아에게 퇴각을 지시했다. 확실히 스펙은 우수하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한 학생보다는 기체의 성능은 약간 부족하더라도 경험이 풍부한 교사쪽이 더 필요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지원이 도착할 때까지 과연 버틸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사키의 우치가네는 이미 에너지 잔량이 30% 아래로 떨어져 있었고 시우와 리자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한시우, 키르히아이스. 한꺼번에 간다. 녀석을 반드시 멈춰야 한다."
- ...네.
- 네.
시우와 리자의 대답을 들은 사키는 리자와 함께 좌우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해 들어갔고, 시우는 원거리에서 견제 사격을 가했다. 앞을 가로막는 플로팅 유닛을 본 사키는 삭풍도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힘차게 휘둘렀고, 플로팅 유닛의 에너지 막이 한계 충격량을 넘은 공격에 찢겨나가며 플로팅 유닛까지 함께 파괴되었다.
- 선생님 나이스 어택!
"노는 게 아니다!"
귀찮은 걸 하나 제거하긴 했지만 방금 전의 일격으로 에너지가 단번에 5%나 소모되었다. 사키의 우치가네와 동기화가 끝난 삭풍도는 구동 에너지를 공급받아 참격의 위력을 증강시킬 수 있었지만 그 대신 에너지 소비 효율이 순수 에너지 병기보다 상당히 안 좋았다. 붉은 색으로 점멸하는 에너지 게이지를 본 사키는 속으로 혀를 차며 다시금 홀리 저지먼트를 향해 날아들었다. 맞은 편에서 리자와 시우의 협공으로 또다른 플로팅 유닛이 격파되는 모습이 보였다.
"하아아앗!"
플로팅 유닛을 격파하자마자 날린 시우의 엄호 사격으로 홀리 저지먼트는 순간적으로 퇴로를 봉쇄당했고, 뒤이어 날아든 리자의 슈투름 해머에 균형을 잃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사키가 다시한번 정수리에 삭풍도를 내리쳤다.
"뭣?!"
홀 리 저지먼트는 그 칼날을 피하지 않았고, 오히려 머리를 내미는 듯한 자세까지 취했다. 결과적으로 삭풍도는 홀리 저지먼트의 헬맷에 정통으로 내리꽂혔고, 잠시 후 충격을 이기지 못한 헬맷에 금이 가더니 두쪽으로 쪼개져 떨어졌다. 그리고 드러난 파일럿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 이럴 수가...
- ...큭.
"......"
사키는 홀리 저지먼트가 무슨 의도로 방금 그랬는지 알 것 같았다. 이쪽의 심리적인 타격, 그로 인한 공격 행동의 위축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사키는 어쨌든 시우와 리자는 상대의 얼굴이, 그것도 한쪽팔을 잃고 이마에서 피를 흘리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는데 냉정하게 유효 공격을 날리기는 어려웠다. 잠시 멈칫한 사키를 향해 홀리 저지먼트의 파일럿이 얼굴을 들었다. 사키마저도 땀에 젖은 머리카락과 이마를 가로질러 흐르는 피, 출혈과 통증으로 몽롱해진 눈빛을 보고는 순간 몸이 굳었고, 홀리 저지먼트는 그 때를 놓치지않았다.
"윽?!"
홀리 저지먼트가 잘린 오른팔을 휘두르자 상처의 단면에서 뿌려진 피가 사키의 눈에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서려는 사키를향해 홀리 저지먼트는 몸통 박치기를 걸었고, 급하게 날린 시우의 견제사격과 리자의 슈투름 해머마저 피하고는 코 앞의 사키에게 빔 캐논을 발사했다.
"우아악!"
- 선생님!
- 이런!
우치가네의 절대방어는 제때 발동했지만 빔 캐논의 충격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었고, 사키는 곳곳에 상처를 입은 채 수면으로 낙하했다. 시우가 서둘러 따라잡아 간신히 받아내긴 했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홀리 저지먼트는 이미 빠른 속도로 육지를 향해 날아간후였다.
- 늦었어...
"제길...!"
어지러운 와중에도 사키는 자신들이 홀리 저지먼트를 막지 못했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홀리 저지먼트가 날아간 방향에 무엇이 있는지를 떠올린 사키는 피가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홀리 저지먼트가 향한 곳에는 임해학교의 숙소, 다시 말해 스쿨의 1학년 학생들과 교사들이 있었던 것이다.
"한시우, 키르히아이스! 당장 놈을 쫓아! 임해학교로 향했다!"
"네?!"
- 그러고보니 저 방향...
"서둘러! 말할 시간이 없다!"
전투 불능이 된 동료들과 사브리나를 데려온 교사들과 나알리아는 지원을 위해 돌아갈 인원을 추려내고는 남기로 한 사람들의 코어에게서 에너지를 공여받고 있던 도중이었다. 초조한 마음에 공급이 완료되길 기다리고 있던 그들의 눈에 바다 저편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저게 뭐지?"
"우리가 없는 새 끝난 건가?"
"그러면 좋겠지만..."
[고속 접근중인 상대 식별 완료. 퍼스널 네임 '홀리 저지먼트'.]
각자의 IS의 분석 결과를 들은 재출격 팀이 서둘러 무기를 집은 것과 홀리 저지먼트가 해안에 도달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사키를 안은 시우와 리자가 간신히 해안에 도달했을 무렵에는 상황은 거의 종료되어 있었다. 해안은 IS간의 전투, 정확히 말하면 홀리 저지먼트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초토화되어 있었고, IS 보유자 대부분은 절대방어가 발동한 충격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던 나알리아마저 홀리 저지먼트의 빔 캐논 공격을 정통으로 맞고는 절대방어가 발동해 추락했다.
"나알리아!"
"치잇!"
지면에 충돌하기 직전, 순간가속을 사용한 리자가 아슬아슬하게 나알리아를 받아냈지만 이미 충격으로 기절한 뒤였다. 그 사이 시우는 사키를 땅에 내려놓고는 홀리 저지먼트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리자도 금방 나알리아를 땅에 눕혀놓고는 홀리 저지먼트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안 끝났다, 이 자식아!"
"끝까지 해보자고!"
이제는 정말로 홀리 저지먼트를 막지 못하면 끝장이었다. 바다 위도 아니고 이미 해안가, 여기서 조금 더 들어간다면 마을이 있었다. 그나마 지금까지는 IS 보유자들만이 상대해서 목숨은 무사했지만 여기서도 놓친다면 그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뀔 터였다. 민간인들은 IS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시우와 리자의 공격은 어딘가 날카로운 맛이 없었다. 공격은 빗나가기 일쑤였고, 명중하는 공격도 위력이 낮거나 주요 부위를 빗나가곤 했다. 시시각각 안색이 나빠지는 홀리 저지먼트의 파일럿을 보고 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팔이나 헬맷의 경우를 보면 홀리 저지먼트가 절대방어를 쓴다는 보장은 할 수 없어. 그렇다면 자칫하면 파일럿이 위험해. 하지만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저 녀석을 멈출 수 있지? 대체 어떻게 해야 녀석을 세우고 파일럿을 구할 수 있는 거야?!'
시우가 혼란스러워 하며 날린 견제사격을 피해낸 홀리 저지먼트는 그와 동시에 접근한 리자에게 팔과 발등에 나온 4자루의 에너지 블레이드를 동시에 휘둘렀다. 본래 있을 수 없는 급격한 움직임으로 파일럿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변했지만 홀리 저지먼트는 개의치않았다. 리자는 급하게 양팔과 양다리 부분의 실드 출력을 올리며 공격을 받아냈지만, 그 직후 밀착 상태에서 홀리 저지먼트의 빔 캐논이 발사되었다.
"꺄아앗!"
절대방어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리자는 저 멀리 튕겨나갔고, 다행히 지면에 서 있을 때 받은 타격이라 공중에서 추락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살피던 교사들 중 몇명이 리자를 향해 뛰어갔고, 그 모습을 본 홀리 저지먼트는 다시금 빔 캐논에 입자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빔 캐논의 포구에 입자가 밀집하는 것을 본 시우의 눈이 부릅 떠졌다. 빔이 발사되려던 찰나, 홀리 저지먼트는 옆에서 가해진 강력한 충격에 십여미터를 밀려났다. PCS를 발동시킨 시우의 은황이 몸통 박치기를 걸어왔던 것이다.
[PCS 발동. 구동 한계까지 6초.]
은황의 보고를 들으며 시우는 이를 악물었다. 시간이 없었다. 지금까지 홀리 저지먼트를 상대하며 소모한 에너지 량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6초 안에 어떻게든 홀리 저지먼트를 멈춰 세워야만 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앗!!"
생각할 시간도 아까웠다. 시우는 아까 사키에게서 회수한 삭풍도를 꺼내들고 다시금 돌격했다. PCS로 강화된 스피드와 무장 출력을 이용해 홀리 저지먼트를 구동 한계 수준까지 손상시키려는 생각이었다. 어깨로 몸통 박치기,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돌려차기, 다시 회전하며 레프트훅, 그리고 이어서 오른손의 삭풍도로 허리를 가격, 무릎으로 복부 가격. 공격이 들어갈 때마다 홀리 저지먼트의 동체 장갑은 눈에 띄게 파손되고 있었다. 이따금 목이나 머리로 삭풍도가 휘둘러질 뻔도 했지만 시우는 아슬아슬하게 검의 궤도를 꺾어 동체를 가격했다. 시우가 홀리 저지먼트의 가슴에 한번 더 주먹을 날리려고 했을 때였다.
[PCS 발동 정지. 실드 에너지 잔량 3%, 구동 에너지 잔량 4%. 전개 한계 수준입니다.]
은황의 경고와 함께 시우는 은황의 움직임이 극도로 둔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날린 주먹은 방금 전까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느린 데다 힘도 없었고, 홀리 저지먼트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그대로 시우의 복부를 걷어 찼다.
"...! 크허, 쿨럭, 쿨럭..."
뒤로 나가떨어진 시우는 자세를 바로 잡으려 애쓰며 기침을 내뱉었고,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그 눈에 홀리 저지먼트가 여유롭게 빔 캐논을 전개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는 임해학교의 숙소로 쓰이는 여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시우에게는 홀리 저지먼트가 빔 캐논을 발사하려는 광경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위험해.'
빔 캐논의 포구가 정확하게 여관을 조준했다.
'멈춰.'
포구에 빛의 입자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 마.'
입자의 응축이 시작됐다.
'네 멋대로─────.'
한계까지 응축된 입자가, 마침내 해방되려 했다. 그 순간 홀리 저지먼트의 모습에서 시우는 알 수 없는, 하지만 원망스럽고 증오스러운 누군가의 모습을 겹쳐보았다.
'사람을 갖고 놀지 마─────────!!!!!!!'
[PCS 재발동. 원 오프 어빌리티 발동.]
어째서 PCS를 다시 발동할 수 있었는지, 지금 발동된 원 오프 어빌리티가 무엇인지 판단할 겨를도 없었다. 시우는 있는 힘을 다해 홀리 저지먼트를 붙잡고는 날아올랐고, 가능한 한 멀리 해안에서 떨어지기 위해 최고 속도로 바다 한가운데로 날았다. 육지가 안 보이게 되고 나서야 시우는 다소 안도했고, 그제야 은황의 에너지 게이지가 50% 이상 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뿐만 아니라 게이지는 지금도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윽!"
지금 벌어진 상황에 어리둥절해진 시우는 홀리 저지먼트의 블레이드 공격을 한차례 받고는 손을 놓았고, 그 때 은황의 목소리가 들렸다.
[현재 발동된 원 오프 어빌리티의 특성입니다. 이 원 오프 어빌리티는 접촉한 상대의 에너지를 강제 흡수하는 것입니다.]
"...하하, 그거 완전히 흡혈귀잖아."
[좋은 비유는 아니지만 완전히 틀린 비유도 아닙니다.]
"뭐, 좋아. 덕분에 타개책이 생겼어. 저 녀석 에너지가 바닥날 때까지 달라붙어 있으면 되는 거잖아?"
[확실히 그것도 해결책이긴 합니다만, 순순히 붙잡혀 줄까요? 게다가 붙잡힌 채로 가만히 있을 리 없습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어? 좋아, 해보자!"
시우는 PCS가 발동중이라는 점을 살려 홀리 저지먼트의 주변을 빠르게 지나치며 공격을 가했다. 저항할 무장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양 팔과 발등의 에너지 블레이드는 어떻게 하기 어려웠지만, 몇번의 공격으로 등에 달린 에너지 블레이드 윙은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마지막 한 장마저 베어낸 시우는 그 즉시 홀리 저지먼트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좀 꼴사나운 자세이긴 하지만 이게 최선이라고! 이해해줘요!"
[누구한테 하시는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에너지 충전율 90% 돌파. 100% 초과시 기체에 과부하가 가해져 행동 불능이 될 수 있습니다.]
"광익 최대 출력! 여분의 에너지는 광익을 통해서 발산해!"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흡수하는 에너지 절반을 광익으로 전달, 방출합니다. 나머지 절반은 PCS 유지에 사용합니다.]
군용이라는 특징 때문에 홀리 저지먼트에는 은황의 몇배나 되는 에너지가 저장되어 있었지만, 전투로 소모된 양에 더해 지금 빠른 속도로 강제 방출 되면서 홀리 저지먼트의 에너지는 어느새 바닥을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빼앗은 에너지를 방출하는 은황의 광익은 마치 요정의 가루를 흩뿌리는 반투명한 요정의 날개처럼 보이기도 했다. 물론 홀리 저지먼트는 시우와 은황에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PCS로 완력도 강화된 은황의 손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고, 공중 기동력을 높이는 윙 스러스터도 방금 전 시우에 의해 모두 절단되었기에 이리저리 움직여 떨쳐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러기를 5분여, 마침내 홀리 저지먼트는 에너지가 바닥나 대기 상태로 돌아가버렸고 만신창이가 된 파일럿만이 시우의 품 안에 남아있었다.
"은황, 파일럿의 상태는?!"
[외상은 두부 열상, 우완 절단, 전신 타박상입니다. 실혈이 심하므로 응급조치 후 집중 치료가 필요합니다.]
"...제기랄!"
시우는 누구에게 향한 것인지 모를 욕설을 하며 전속력으로 해안으로 날았다.
"호오, 생각보다 빨리 진압했는데."
"그나저나 마지막에 대체 어떻게 한 거지? 가만히 붙잡고만 있었는데 홀리 저지먼트가 대기 상태로 돌아가버렸어."
"그건 확실히 신경 쓰이네. 뭔가 공격을 한 것도 아닌데. 아, 저쪽에서는 이번 일 어떻게 본대?"
"나름대로 성공으로 보는 모양이더군. IS의 절대방어 기능도 이제 완전히 믿지는 못할 테니까."
"그야 당연하겠지. 성공사례 수백건보다 반박사례 한두건이 더 위력을 발휘하니까. 계획은 차근차근 잘 진행되는 모양이네."
"이제 하늘을 되찾는 것도 머지 않았군."
"그래. 모든 걸 원래대로 되돌리는 거야."
임해학교가 끝나고 스쿨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시우는 어두운 얼굴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결국 임해학교는 도중에 중단되어 이틀째 오후에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다. 학생들은 불만이 대단했지만, 엉망진창이 되어 병원으로 실려가는 교사들과 멀리서나마 보인 홀리 저지먼트 파일럿의 처참한 모습에 모두 군말없이 버스에 올랐다. 홀리 저지먼트의 파일럿은 외상뿐만 아니라 급격한 전투 기동과 과도한 움직임 때문에 내상도 심각한 상태였고, 오른팔을 의수로 대체한다고 해도 아직 전자의수 기술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퇴역은 불가피할 것 같았다. 그리고 시우의 심경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그것 말고도 더 있었다. 원 오프 어빌리티의 발동은 기뻐할 일이었지만, 해안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시우는 자신이 무의식중에 홀리 저지먼트 파일럿의 목이나 미간과 같은 급소를 삭풍도로 공격하려 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분명 살의는 없었지만 몸은 자꾸만 그렇게 움직였다. 여러가지로 착잡해진 시우는 그저 조용히 창밖을 내다볼 뿐이었고, 은황 역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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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절반 왔습니다. 그나저나 자꾸 올린다는 걸 까먹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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