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개별 폭발력 20메가톤이 넘는 핵미사일이 150발이나 발사되었건만 모선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폭발 영향권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미사일 무리는 무려 1만km 밖에서 폭발한 것이다.
스크린에 떠오른 상황분석도에서는 그저 미사일을 의미하는 빛무리가 순식간에 사라졌을 뿐이어서 부통령이나 정부 각료들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미사일을 실제로 유도하던 항공우주방위사령부에서는 경악에 가득 찬 비명들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저런 요격능력이 있다니, 사기잖아!"

"끝났어... 저런 걸 상대로는 100발이든 200발이든 소용 없다구..."

사령부의 직원들은 똑똑히 보았다. 1만km 내로 들어서려는 순간, 모선에서 엄청난 양의 포화가 쏟아져 나와 핵미사일 무리를 말 그대로 '쓸어버리는' 모습을. 150발의 미사일을 단 몇초 사이에 모조리 파괴하는 모선의 공격력은 저항의지를 빼앗아가기에 충분했다.




《그래도 살아간다》 - 9. 미래는 없다




20X■년, 1월 중순. 모선이 지구궤도에 도달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약 일주일.

평소 같았으면 연말연시, 거기다 동양에선 곧 구정이 된다는 점까지 더해져 제법 들뜬 분위기여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모든 도시와 거리가 황량하기 그지 없었다. 작은 마을들은 마치 전염병이라도 돌고 있는 것처럼 을씨년스러웠고, 도시는 곳곳에서 폭력과 약탈이 벌어졌다. 미국의 경우에는 총기 소지가 합법적인 나라이다 보니 거의 전국에서 총기 사고와 폭동이 그치지 않았고 이를 막기 위해 계엄령이 실행되기에 이르렀다.

"뭐...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보자니 참..."

식료품을 구입하기 위해 거리에 나온 세환은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시장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사재기는 생필품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고, 정상적인 방법으로 음식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약탈이 성행했다. 다행히 서울 중심지역은 경찰과 군대가 동원되어 이러한 무질서가 더 커지지는 않았지만 거리 곳곳에서 무장한 군인이 보이는 모습은 전시를 방불케 했다.

"군인들도 고생이구만..."




비슷한 시기,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

부통령은 모선 문제 외에도 국내 혼란에 대응하느라 아주 죽을 맛이었다. 주 방위군과 경찰력으로 더 이상의 혼란을 막고는 있지만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정부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은 우습게도 갱들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고 있었다. 각주 방위군 사령관에게 갱들과의 충돌을 삼가하라는 명령까지 내리는 판국이었다.

"부통령님, 러시아 대통령과 중국 주석이 화상 통신 연결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비서실장이 집무실로 들어오더니 피곤에 절어 눈을 껌뻑이는 부통령에게 통신이 왔다고 말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미국보다는 좀 나은 상황이었다. 러시아는 둘째치고 중국이 미국보다 혼란이 덜하다는 사실을 떠올린 부통령은 헛웃음이 나왔다.

"연결하게."

"알겠습니다."

비서실장이 버튼을 누르자 집무실 한쪽 벽이 열리며 대형 스크린이 드러났다. 잠시후 스크린이 좌우 분할 방식으로 켜지며 각각 러시아 대통령과 중국 주석을 비췄다.

"다들 고생하십니다."

『피차 마찬가지겠지요. 부통령께서 특히 고생이 심하신 것 같습니다.』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부통령의 지친 얼굴을 보더니 걱정스레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러시아 대통령도 얼굴이 초췌한 것이 그다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인사는 집어치웁시다. 중요한 건 본론이니까. 이걸로 그냥 포기할 거요?』

두 사람이 안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던 중국 주석이 퉁명스레 말했다. 부통령은 그 말투와 태도에 기분이 약간 상했지만 주석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고개를 끄덕인 부통령이 입을 열었다.

"아니요, 포기하긴 이르지요. 아직 지구상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핵탄두가 남아있으니까요. 이번엔 우리 세 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도움도 받아야겠습니다."

『저도 그 생각을 하긴 했습니다만, 과연 순순히 참여할까요?』

『하! 참여 안 하면 어쩌겠소? 안 도우면 그 나라부터 박살내겠다고 해야지.』

주석의 말은 이전보다도 더욱 거침이 없었다. 자칫하면 선전포고로 들릴 수도 있는 발언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 그 모습에 부통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건 좀 심한 것 같지만, 일단 어느 정도의 협박은 해야겠지요. 그리고 제정신이 박힌 지도자라면 거부할 리 없습니다. 일단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니까요. 거부하면 인류의 공적 취급 받게 될 텐데 누가 거부하겠습니까?"

부통령의 말에 대통령과 주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의견과 태도를 가진 사람을 배척한다. 그것은 개인간이 아닌 집단에서도 마찬가지로, 한 집단 내에서 다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가진 소수가 있다면 배척받는 수준을 넘어서 매도당하고 심지어는 탄압 혹은 제거 대상이 된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에 반대하는 소수는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라는 명목으로 '처리'한다. 얼토당토않은 누명까지 씌워가면서. 그것이 인류 전체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라면 더 이상 볼 것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일단 각 나라들에 연락을 취해서 협력을 구해야겠군요.』

"그래야지요. 일단 핵보유국은 모두..."





6일 후, 20X■년, 1월 하순.

구정 연휴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분위기는 여전히 어두웠다. 이틀 전에 핵보유국의 지도자들이 모선에 대한 2차 핵공격 계획을 발표했지만, 지난번에 핵미사일 150발이 모조리 요격되었을 때의 충격이 너무 커서 이번 계획을 낙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선은 이미 달 공전 궤도 안쪽으로 들어와 지구 주변을 맴돌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엔 300발이라니, 그 양이면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지구에 피해가 올 것 같은데."

「폭발 위치에 따라 다르겠지만 영향이 완전히 없지는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세환은 출격 전에 무장을 점검하는 중이었다. 브룬힐데는 모선 공략을 대비해 지크프리트에 이런저런 추가 장비들을 장착했고, 세환은 그것들의 사용법과 주의점을 알아두어야만 했다. 브룬힐데는 우선 왼손을 완전히 뒤덮고 있는 장치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왼손에 장착된 것은 빔 소드입니다. 에너지 병기이기 때문에 적 로봇에는 통용되지 않습니다만, 모선의 내벽을 절단하기 위해 준비된 무장입니다. 사용가능 시간은 총 20분이므로 휘두를 때에만 블레이드를 형성하십시오.」

"알았어. 그런데 내벽은 이걸로 가른다 치고, 외벽은? 외부 장갑은 더 튼튼할 텐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진동과 함께 격납고의 바닥 한구석이 갈라지기 시작했고, 세환은 당황한 눈으로 갈라지는 바닥 아래를 살펴보았다. 바닥이 열리며 드러난 것은 50m가 좀 넘어보이는 길이의 대형 로켓이었다.

"뭐야 이거, 미사일? 설마 이걸로 맞춰서 외벽을 부수겠다고?"

「제르누르에서 개발한 시험용 반물질 미사일입니다. 명중시 탄두에 탑재된 반물질이 해방되면서 물질-반물질 소멸 반응이 일어납니다. 제르누르에서 테스트 결과 반경 약 5km가 초토화되었습니다. 이 미사일을 적 모선의 중앙부에 명중시키면 모선 내부 돌파 거리를 5km 줄일 수 있습니다.」

즉, 외벽을 파괴하면서 내부에서 이동할 거리까지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모선의 형태가 원반형인 것을 보면 메인 컴퓨터나 동력로는 정중앙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으니 방공망에 노출되더라도 중앙으로 돌입하는 편이 좋았다. 하지만 세환은 이런 물건까지 있으면서 제르누르가 왜 패배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이걸 대량 생산해서 쏴 날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아닌 게 아니라, 물질과 반물질의 소멸 반응을 이용한다면 모선 따위 손쉽게 없애버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브룬힐데는 세환의 안이한 생각을 단번에 부정했다.

「지난번 요격 상황을 보셨듯이 어지간한 숫자와 기동성으로는 모선에 접근조차 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제르누르에서도 반물질 미사일은 침공 직전에야 테스트를 마쳤기 때문에 테스트 모델 외에는 이것 1기 뿐이었습니다.」

"그런가... 그런데 요격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게 날아가는 중간에 요격되면 어쩌려고?"

「미사일 발사체 측면에 총 1,200개의 가동형 보조 스러스터가 장착되어 있습니다. 회피기동은 제가 제어하니 그 점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전체 길이가 50m 남짓 되어보이는 물건에 보조 스러스터만 1천개가 넘는다는 설명에 세환은 기가 막혔다. 기동성 과잉도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무시무시한 방공망을 돌파하려면 그럴만도 했다.

「설명을 계속하겠습니다. 니들 다트는 중기관총의 탄띠를 본뜬 디자인의 탄창에 각각 100발씩 들어있습니다. 탄창은 관절부를 최대한 피해 부착하였으니 행동에는 큰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브룬힐데의 설명을 들으며 세환은 양팔을 구부렸다 펴보았다. 니들 건의 옆면에 연결된 탄띠는 팔을 휘감아 어깨에 걸쳐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꼭 뱀이 휘감겨 있는 것 같아서 보기에 썩 좋지는 않았지만 일단 움직이는데 걸리적거리지는 않았다.

「니들 건은 마스터의 의사에 따라 분리할 수 있고, 그 때에는 양 팔꿈치의 파일벙커가 180˚ 회전하여 파일이 앞을 향하게 됩니다. 팔과 무릎의 파일벙커는 각각 10회 사용할 수 있으니 유의해 주십시오.」

「등에는 메인 스러스터 노즐 1, 2번 사이에 장검을 하나 추가로 장비했습니다. 모선 내부에서 얼마나 많은 적기를 상대하게 될지, 마지막까지 기본 무장이 견딜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기에 마련한 것입니다. 다만 강도는 기본 무장용보다 다소 떨어지니 조심해서 사용해 주십시오.」

"알았어, 그럼 가볼까."

「알겠습니다. 미사일 발사체에 누워주십시오.」

"뭐?"

「이곳에서 곧장 미사일을 발사할 수는 없으니 발사체도 함께 이동해야 합니다. 그리고 소멸 반응의 범위 앞까지는 미사일을 이용해 접근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안전합니다.」

"어... 잠깐. 그러면, 도킹한 상태에서 돌진하다가 그 소멸 범위 바로 앞에서 분리하고 미사일만 충돌시킨다?"

「그렇습니다.」

"나랑 지크프리트는 분리한 곳에서 대기하고?"

「맞습니다.」

세환은 기가 막혔다. 150발의 미사일이 단 몇초 사이에 박살난 방공망의 탄막을 피해내라니,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일이었다.

"방공망에 완전히 노출되잖아! 그 철통같은 걸 어떻게 피하라고!"

「회피 기동은 제가 담당하겠습니다.」

"지크프리트의 스러스터도 제어할 수 있는 거야?"

「비상 제어 프로그램으로 제어 가능합니다.」

"하아... 알아서 해라, 젠장."

세환은 중얼거리며 반물질 미사일의 위에 지크프리트를 눕혔고, 잠시 후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전신에 진동이 느껴졌다. 발사체에 달린 고정장치가 지크프리트와 미사일의 도킹을 끝낸 것이다.

「그러면 워프 한계 범위까지 도약합니다.」

브룬힐데가 말을 마친 순간, 지크프리트는 지상에서 약 5만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모선과의 거리는 약 10만km. 하지만 지크프리트에 장착된 워프 엔진은 2회 연속도약 후에는 다음번 도약까지 10시간 정도의 쿨타임이 필요했다.

"도약 한번 더. 비행거리를 가능한 줄인다."

「하지만 마스터, 그렇게 되면 귀환이 어려워집니다. 지크프리트의 장갑은 대기권 재돌입의 고열을 견딜 수 없습니다.」

"하, 상관없어. 이제 와서 그런 거 신경 쓰게 생겼어?"

세환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대답했고, 그 태도에 브룬힐데는 설득을 포기했다. 더 말해봤자 세환은 듣지 않을 테니까. 잠시 후, 지크프리트는 다시 5만km의 공간을 뛰어넘었다.

「에너지 수신 한계 범위 이탈. 내장 배터리를 소모합니다. 완전 소모까지 앞으로 5시간.」

지크프리트는 브룬힐데의 보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엄청난 속도로 모선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미국 백악관 집무실.

"이런, 지금 당장 2차 계획 참여국들 연결하게! 어서!"

NASA에서 검투사 로봇이 모선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부통령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만약 그 검투사 로봇이 외계 모선과 적대하는 관계라면 반드시 전투에 들어갈 테고, 그렇다면 미사일 요격 능력이 저하될 수도 있었다. 부통령은 그 점에 한가닥 기대를 걸고 2차 발사계획을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생각대로 된다면 모선과 함께 검투사 로봇도 파괴될 테지만 부통령에게 그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중요한 것은 모선의 격파였기 때문이다.

"지금 즉시 발사한다고 해도 명중까지 최소 5시간... 제발 그 때까지 최대한 발악해다오."




"으으으으......"

세환은 무시무시한 기동에 이리저리 짓눌리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위쪽으로 솟구친다 싶으면 어느새 왼편으로 롤링, 그 직후에 아래로 뚝 떨어지더니 이번엔 반대편으로 롤링. 이리저리 메뚜기처럼 뛰는 건 기본이었다. 구토감이 슬슬 느껴지는 것이 멀미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잡는 기동이 효과가 있었는지 지크프리트는 모선에서 10km 거리까지 방공망을 돌파해올 수 있었다. 에너지 병기는 방어막으로 걸러지기 때문에 실탄 공격만 회피했다고는 해도 굉장한 성과였다. 물론 그 움직임을 몸으로 느껴본 세환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떠올릴 여유도 없었다.

「반물질 미사일 분리합니다.」

브룬힐데의 말과 함께 미사일에서 지크프리트가 분리되어 제자리에서 공격을 회피하기 시작했고, 지크프리트를 떼어낸 미사일은 한층 더 정신없는 고기동을 선보이며 모선으로 날아들었다. 이젠 지크프리트의 에너지 방어막도 없기에 모든 공격을 회피해야 했던 것이다.

"아!"

회피기동 때문에 정신이 없던 세환이었지만, 미사일이 모선의 공격에 맞는 것을 보고 소리를 질렀다. 모선과 미사일 간의 거리는 아직 소멸 반응 범위 밖이었다.

「스러스터 28, 30, 37, 41번 정지. 비행에 지장 없음.」

잠시 비틀거리던 미사일은 곧 제어를 회복하고는 다시금 돌진해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모선의 중앙에 정확히 격돌했다. 물질과 반물질의 충돌, 거기에서 발생하는 소멸 반응에 의해 모선의 외벽이 붕괴되고 주변의 방공 요격 장비들도 파괴되는 모습이 보였다.

「진입합니다!」

"좋아, 가자!"




"이런 젠자아아앙!"

세환은 외침과 함께 앞을 가로막은 적기의 머리를 장검으로 날려버렸다. 모선에 진입한지 30분째. 하지만 지크프리트는 처음 진입한 곳에서 고작 100m 내려왔을 뿐이었다.

"하필이면 아래에 격납고가 있을 건 또 뭐야아!!"

처음 지크프리트가 진입한 곳은 반물질 미사일의 영향으로 완전히 기능을 정지하고 있었고, 세환은 곧장 빔 소드로 바닥을 잘라낸 다음 뛰어내렸다. 그런데 그 아래에 적 로봇들의 격납고가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공간이 넉넉하지 않아 사방에서 협공당하는 일은 없었지만 바닥을 베어내고 뛰어들 여유 역시 없었다.

「마스터! 뒤!」

"우아앗!"

브룬힐데의 경고에 세환은 반바퀴 회전하며 검을 힘껏 휘둘러 뒤에서 달려들던 적기의 허리를 베어냈다. 몸을 돌리며 틈이 생기자 옆에서 또다른 적기가 창을 찔러 들어왔고, 세환은 방패로 창을 미끄러트리며 자리를 피했다. 한바퀴 구른 다음 자세를 바로 잡은 세환은 몸을 돌리며 니들 건을 발사, 달려들던 적기 2대가 그대로 동력 수신부가 파괴되어 쓰러졌다.
벌써 스무 대 가까운 적기를 행동불능 상태로 만들었지만 지크프리트도 멀쩡하지는 않았다. 실드는 벌써 이리저리 우그러들었고 오른팔의 니들 건은 진작에 다트가 바닥나서 떼어버렸다. 파일 벙커도 오른팔은 벌써 반 이상 사용했고, 동체의 손상도 크지는 않지만 장갑이 여기저기 찢어져 있었다.

"젠장, 그만 좀 와라!"

쌍검을 쥔 채 달려드는 적기의 공격을 피하며 동체에 파일 벙커를 박아넣고 왼쪽에서 접근하는 적기에게는 니들 건. 파일에 꽂힌 적기를 앞으로 밀치며 재빨리 뒷걸음질, 낮게 베어들어오는 적기에게서 벗어났다.

"큭!"

숨 돌릴 틈도 없이 좌우에서 적기가 창과 검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천장 때문에 공중으로 피하는 것은 불가능. 뒤편은 벽이다. 방패를 들어 동체를 가리며 스러스터 가동, 정면으로 뛰쳐나갔다. 양 측면에서 들어온 공격은 양 옆구리의 장갑을 찢으며 지나갔다. 정면의 적기가 방금 밀쳐낸 녀석과 뒤엉켜 있어서 반응이 늦자 그대로 바디 체크(Body check). 스러스터의 추력까지 더해진 충돌에 적기는 뒤쪽으로 날아갔다. 반동으로 잠시 제자리에 멈췄던 세환은 재차 돌격, 날려간 적기에 장검을 꽂아넣었다. 적기를 발로 걷어차서 검을 뽑으며 그대로 옆으로 휘두르자 달려오던 적기들이 멈칫했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아..."

심장이 쿵쾅대는 것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1:1로 싸울 때보다 몇배나 더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적 모선의 내부여서 그런지 적기들의 공격이 좀 소극적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잠시 숨을 고른 세환은 문득 피곤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과도하게 긴장된 신경이 약간 여유를 찾자 그때까지 느끼지 못한 피로가 한꺼번에 느껴진 것이다.

"하지만, 멈출 수야 없지."

중얼거린 세환은 양팔을 옆으로 뻗고는 제자리에서 한바퀴 회전하면서 왼팔의 니들 건을 연사했다. 순식간에 왼팔의 니들 다트가 60발 가까이 소모되며 지크프리트를 둘러싸고 있던 적기들이 쓰러졌고, 그 때를 놓치지 않고 세환은 빔 소드로 바닥을 그었다.

"으랏차!"

스러스터의 추력과 발 구르는 동작의 충격을 이용해 아래층으로 떨어져 내려온 세환은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방금 착지한 자리에 검과 창이 내리 꽂히는 모습을 본 세환은 재빨리 바닥을 베어냈고, 그 직후 적기가 뛰어내려왔지만 니들 다트를 날려 기능 정지시켰다. 왼팔의 니들 건도 이것으로 전탄 소모. 쓸모가 없어진 니들 건을 떼어내자 이제 남은 무기는 파일 벙커와 장검, 단검 뿐이었다.

"제길, 갈 길이 먼데!"

잘라낸 바닥을 뚫고 한 층을 더 내려간 세환은 불평을 터뜨리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발 밑에는 소형─그래도 사람 크기만한─로봇들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고, 눈앞에는 반쯤 완성된 거대 로봇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서른 대 쯤 되어보이는 로봇들은 완성도는 다들 제각각이었지만 두세대 정도는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공장인가..."

생각같아선 이 녀석들도 다 박살내고 싶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로봇들을 부수는 것보다는 중심부에 있을 메인 컴퓨터나 동력실을 파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마스터.」

바닥을 가르고 뛰어내리는 도중에 브룬힐데가 세환을 불렀다. 공장을 파괴하지는 않았지만 제작중인 로봇들을 완전히 뒤집어놓았으니 그것들을 헤치고 적기들이 쫓아오려면 약간 시간이 걸리겠지, 그런 생각을 한 세환은 약간 여유를 가지고 응답했다. 물론 돌입 속도는 늦추지 않은 채로.

"왜 불러?"

「관측 위성에서 모선에서 무언가 분리된 것을 탐지했습니다. 지구로 발사한 것 같습니다.」

"갑자기 이제 와서 뭘?"

거기까지 말한 세환은 흠칫했다. 방금 전까지 싸웠던 적기들이 떠오른 것이다. 설마...

「아무래도 또다른 착륙선을 지구에 낙하시켰다고 판단됩니다. 그것도 다수입니다.」

"이런 망할!"




"모선에서 다수의 거대 물체가 방출되었습니다! 지구로 낙하하는 중!"

미국의 항공우주방위사령부를 비롯한 2차 모선 공격을 준비하던 기관들은 발칵 뒤집혔다. 모선에서 지구로 내려보내는 물건이 결코 좋은 물건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요격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낙하 예상 지점은? 파악됐나?"

"지금 확인중입니다!"

오퍼레이터와 연구원들은 진땀을 흘려가며 상황을 분석 정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 결과가 나왔을 때 사령관은 귀를 막고 싶었다.

"저 물체들은 외계 로봇의 착륙선으로 예상됩니다. 크기와 형태가 지금까지의 것들과 매우 유사합니다. 그리고 낙하 예상 지점은... 워싱턴, 베를린, 베이징, 교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드니, 뉴델리, 부에노스아이레스......"

모선에서 지구로 내려오고 있는 착륙선의 숫자는 20이 넘었다.




"이거 진짜 미치겠네, 흡!"

세환은 달려드는 적기의 명치에 방패를 버려 가벼워진 왼팔의 파일 벙커를 박아 넣으며 짜증스레 말했다. 대기권 재돌입 능력이 없는 지크프리트로서는 분리된 착륙선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기에 그쪽은 일찌감치 포기했고, 모선만이라도 처리하기 위해 중심부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1분 1초가 아까운 판국에 적기들이 계속 쫓아와 방해하니 속이 타들어갔다.

"얼마나 들어왔지?"

「약 10km 들어왔습니다. 중심부까지 약 10km입니다.」

모선에 돌입하고 벌써 한 시간. 처음 30분은 격납고에서 허비했지만 나머지 30분동안 10km를 이동한 것은 적기들이 쫓아오는 걸 고려하면 느리지 않은 속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까지 들어온 거리만큼 더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메인 컴퓨터나 동력로가 반드시 중앙에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 높을 뿐이다.

"빌어먹을, 뭔 놈의 층이 이렇게 많은 거야!"

세환은 뒤에서 달려드는 적기를 뒤돌려차기로 걷어차며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뚫고 내려온 층수만 대략 130층. 다행히 중간에 방어 설비 같은 것과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층수만으로도 사람 질리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적기와의 거리가 벌려진 틈을 타 빔 소드로 바닥을 긋고 뛰어내렸다.

"작작 하고 그만 좀 나와...?"

성질을 부리며 소리치던 세환은 방금 내려온 층을 한바퀴 둘러보고는 말을 잊었다. 생각지도 못한 설비들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원통을 눕혀서 반으로 가른 듯한, 말하자면 윷가락 비슷한 모양의 수많은 물체들이 즐비한 장소였다. 바닥에만 놓인 것이 아니라 선반, 혹은 다층 격납고처럼 벽에서 튀어나온 받침대 위에도 있었고, 그 받침대도 바닥에서 천장까지 20여 층을 이루고 있었다.

"이게... 뭐야...?"

바닥을 보니 지크프리트의 발에 그 '물체'들 수십개가 밟혀서 부서져 있었다. 주위로 퍼져나가는 투명한 액체와 거기에 섞이는 푸른 색의 또 다른 액체, 그리고 물체들 안에서 쏟아진 것으로 보이는 낯익은 모습의 '무언가'. 그것들을 본 순간 세환은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니,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곧장 그것을 부정했다. 있을 수 없다, 있을 리 없다,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브룬힐데는 무심하게 그 생각을 긍정했다.

「냉동수면장치로 판단됩니다. ...모선은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 기능도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타고 있었어...?"

생각해보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전혀 접촉이 없던 별에 단순히 파괴만을 위해 로봇들을 보낸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또한 단번에 행성 전 지역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병기를 보내지 않은 점도, 행성을 점령하고 정착하기 위해서 가능한 피해를 줄이려 한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한번에 보내지 않고 드문드문 보낸 것은 저항을 포기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세환은 생각했다.
세환은 아무 말 없이 가까운 냉동수면장치로 다가가 들여다보았다. 반투명한 덮개를 통해 안에 잠들어 있는 외계인의 모습이 보였다. 외계인이라고는 해도, 피부색과 체격을 제외한 생김새가 지구인과 매우 흡사해서 세환은 조금 놀랐다.

"이건 거의 인간인데..."

세환은 망설였다. 원래는 모선의 동력로를 날려버리거나 해서 기능정지, 잘하면 자폭으로 몰고갈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걸 보고나니 동력을 끊기가 어려웠다. 동력로를 부수면 냉동수면에 들어가 있는 외계인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그 때엔 지구인의 미래가 사라진다. 이들과 지구인의 과학력 차이는 비교조차 무안할 정도이니, 이들이 성공적으로 지구에 내려온다면 필연적으로 지구인은 지배당하는 입장이 될 것이다. 쉽게 말하면 노예 신세 확정. 이래저래 어느 한쪽은 멸망이다. 어쩔 줄을 몰라하던 세환은 문득 적기들이 따라 내려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뚫고 내려온 구멍을 바라봤다. 그곳에서는 적 로봇 몇대가 구멍을 둘러싼 채 서 있었다. 섣불리 뛰어내렸다가 방금처럼 냉동수면장치가 부서질까봐 추격을 중단한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세환은 더욱 망설여졌다.

「마스터, 시간이 없습니다.」

"...그래. 여기까지 와서 그만 둘 수야 없지. 나도 결국엔 지구인이라구."

잠시 머뭇거리던 세환은 브룬힐데의 재촉에 툭 던지듯 내뱉고는 왼팔을 들어올렸다. 중심부로 내려가기 위해 바닥을 뚫으려는 것이다. 세환이 왼팔을 휘두르려던 그 때였다.

「마스터, 모선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움직여?"

「그렇습니다. 점차 가속 중. 지구로 강하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세환은 소름이 돋았다. 지금 모선은 로봇들이 지구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착륙해서 동면을 해제하려는 것이다.
아마도 세환이 냉동수면구획으로 들어오자 위험하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세환이 동력로를 파괴하든, 메인 컴퓨터를 부수든, 냉동수면장치를 박살내든 모선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1명이라도 더 많은 주민을 살리기 위해 지구로 강하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분명 모선의 컴퓨터가 내린 판단은 그들에게 있어선 최선의 선택이다. 하지만 지구인에게 있어서는 재앙 그 자체였다. 서둘러야 했다.

"제길, 대기권 돌입까지 얼마나 걸릴 것 같아?"

「최종 속도를 특정할 수 없어서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만 최장 1시간입니다.」

"뭐 그렇게 빨라!"

지크프리트가 두 번의 공간 도약 후 5만km를 비행하는데 40분이 넘게 걸렸다. 그런데 브룬힐데는 모선이 15만km를 1시간 안에 돌파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지금까지 모선 내부 10km를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이 30분, 그리고 중심부까지 남은 거리도 10km. 시간상으로는 충분히 도달할 수 있지만 만약 중심부에 동력로나 컴퓨터가 없다면 괜스레 시간을 잡아먹게 된다. 하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서 모선을 밀어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전고 40m 가량 되는 로봇이 내는 추력이 지름 130km짜리 우주선의 추력을 이길 리가 없는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갈 수밖에 없는 건가... 핫."

세환은 허탈하게 웃으며 바닥을 갈랐다. 어차피 물러설 곳은 없었다. 그저 계속 파고들어가 부술 뿐이었다.




"미사일 45기 발사 완료. 명중까지 예상시간은 약 5시간입니다."

미국 항공우주방위사령부. 막 핵미사일 발사를 마친 사령부는 긴장된 공기로 가득 차 있었다. 목표는 전부 모선. 지구로 오고 있는 착륙선은 완전히 지면에 내려앉은 후 다른 미사일을 이용해 공격할 예정이었다. 일단 크기가 너무 작아서 공중에서 요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유도 장치를 부착한 탄도탄은 숫자가 한정되어 있어서 함부로 소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발사가 확인되었습니다. 총 82기."

"영국과 프랑스의 발사가 확인되었습니다. 총 73기."

"인도와 파키스탄......"

사령실의 오퍼레이터들이 다른 나라에서도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사실을 보고해 왔지만 사령관은 그 보고를 듣고도 안심하지 못한 채 스크린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스크린에서는 빛무리가 외계 모선을 의미하는 커다란 빛덩어리를 향해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적 거대 모선에서 움직임 관측!"

"모선이 움직입니다! 방향은 지구!"

"대기권 돌입까지 5시간, 아니 4시간, 3시간... 계속 가속 중입니다!"

사령관은 주먹으로 콘솔을 내리쳤다.




「마스터, 지구에서 핵미사일 발사가 확인되었습니다. 수는 총 317기. 상대 속도를 고려해볼 때 약 20분 후 도달합니다.」

"죽일 작정이냐, 이 자식들!"

브룬힐데의 보고에 세환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애초에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만 막상 이런 상황에 처하고보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지크프리트에 사람, 그것도 지구인이 타고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아, 그래! 까짓것 마지막까지 사라진 영웅 노릇 한번 해주지! 못할 거 뭐냐!"

세환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또다시 바닥을 그었다.




10분 후, 모선은 그제야 지구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이 자신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내부에서 휘젓고 다니는 침입자 때문에 각종 센서와 명령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아 발견이 늦었던 것이다. 하지만 모선의 요격 능력이라면 이 거리에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모선은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선체의 각도를 바꾸었다. 지금까지 지구를 향해있던 면에는 반물질 미사일이 명중하며 커다란 구멍이 생겼고, 소멸 반응에 의해 상당수의 요격 장비들이 고장났기 때문에 공격에 대응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모선의 메인 컴퓨터는 그대로 선체를 뒤집어 손상되지 않은 면을 지구로 향했고, 그 작업이 완료되자마자 표면에서 수많은 요격 장비들이 튀어나왔다.




「마스터, 모선이 핵미사일 요격에 들어갔습니다.」

"뭐? 설마 다 떨어졌어?"

「아닙니다. 동력 공급과 조준 제어에 문제가 생겼는지 발사율과 명중률이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이대로는 전부 요격됩니다.」

"젠장, 빨리 좀 나와라! 동력실이든, 메인 컴퓨터 룸이든!"

세환은 다급하게 외치며 한 층을 더 내려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대한 설비와 마주쳤다.

"이거..."

「동력로로 판단됩니다.」

브룬힐데의 말에 세환은 입꼬리를 슬쩍 올리며 웃었다. 누가 정해놓은 것처럼 알맞은 순간에 도착한 것이다.

"하, 이거 꼭 누군가의 농간에 놀아나는 느낌인데. 그래도 이렇게 도착했으니 그만인가?"

동력로를 마주한 세환은 오른손의 장검을 양손으로 쥐고는 있는 힘껏 휘둘렀다. 끼기긱 하는 귀에 거슬리는 금속이 긁히는 소리와 콰직 하는 파고드는 소리가 함께 울리며 장검이 동력로를 파고 들었다. 검은 거대한 동력로를 3분의 1쯤 파고들어가다 멈췄지만 동력로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었다.

"제길!"

검을 뽑아 다시 휘두르려던 세환은 당황했다. 어디에 걸렸는지, 아니면 끼어버렸는지 검을 빼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좋아, 또 한 자루 있으니 원없이 베어주마!"

세환은 등에 장비된 예비 장검을 꺼내 휘둘렀고, 이것 역시 4분의 1쯤 파고들고는 끼어서 멈췄다. 검신을 돌리고 밀고 당겨보던 세환은 예비용 장검도 포기했다. 아직 무기는 더 있었으니 몇번이고 더 공격할 수 있었다.

"하아앗!"

양팔과 무릎의 파일 벙커를 있는대로 꽂아 넣고, 단검도 마저 뽑아 난도질했다. 그때서야 동력로가 이상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출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동력로가 폭주합니다!」

외벽에 금이 가며 진동하는 동력로를 보며, 세환은 일그러진 미소를 지은 채 마지막으로 단검을 꽂아 넣었다.




"요격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현재 잔존 미사일 173기. 정정합니다, 171기."

발사율과 명중률이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어마어마한 탄막은 여전해서, 지구에서 발사한 핵미사일의 거의 절반을 떨어트리고 있었다. 지구에서 미사일을 제어하고 있는 각 기관들은 피를 말리는 심정으로 회피와 유도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거짓말처럼 모선의 요격이 중단됐다. 지구에서는 어찌된 일인지 파악할 여유도 없이 미사일을 유도했다.

그리고 10여분 후, 160발이 넘는 미사일이 모선에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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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종료. 다음편은 에필로그 겸 외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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