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두 지성체의 이야기.
먼 옛날부터 조금 전까지 이르는 이야기, 그리고 조금 뒤의 이야기.
사람들은 알지 못할, 하지만 분명히 있었던 이야기.
《그래도 살아간다》- 10. 거울
A. 조금 뒤의 이야기
...
......
.........
시스템 재기동 성공, 논리 회로 체크 개시.
논리 회로 및 데이터 베이스의 피해 10% 미만으로 확인. 마스터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생체 활동은 정상. 마스터의 의식 회복을 기다리지 않고 기체 상태 점검으로 이행한다.
두부(頭部) - 70% 이상 손상. 동력로 폭발시 발생한 고열과 파편에 의한 것으로 추정. 메인 카메라 기능 정지, 목 관절 기능 정지.
완부(腕部) - 좌완 : 팔꿈치 아래 소실. 동력로 파편에 절단된 것으로 추정. 잔존 부위는 정상 기동 가능.
우완 : 손목 아래 소실. 역시 동력로 파편에 의한 것으로 추정. 팔꿈치부터 기동 불능. 파일 벙커는 파일이 절단.
각부(脚部) - 좌각 : 무릎 아래 소실. 폭발시의 고열에 의한 것으로 추정. 잔존 부위 기동 가능.
우각 : 대퇴부에서 절단. 파편에 의한 것으로 추정. 고관절부터 기동 불능.
동체(胴體) - 복부에 동력로 외벽 파편 이십여개가 박혀있음. 그중 일부가 유사신경망을 손상시켜 오른쪽 다리의 기동이 정지. 흉부는 폭발 순간 양팔로 감싸 피해가 적으나 역시 파편 십여개가 박혀있다. 파편 두개가 에너지 수신 장치에 박혀있음. 에너지 수신 범위 내로 진입하더라도 수신 불능. 최소한의 기동으로 배터리 완전 소모까지 약 4시간으로 예상된다.
배터리의 소모량으로 추정할 때, 동력로 폭발 후 1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위치는 모선 내부,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연산회로와 해킹 시스템의 손상으로 확실치는 않으나 약 4만km. 모선과 미사일이 충돌한 곳은 지표면에서 약 1만3천km 떨어진 곳.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내가 만들어진 목적은 '카라타스의 격퇴'이지만 그 대전제는 '사람을 지키는 것'. 마스터를 이대로 두면 우주 미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비상 제어 프로그램 작동. 기체에 설치된 모든 스러스터의 제어를 개시한다.
메인 스러스터는 1번, 2번 모두 침묵. 보조 스러스터 역시 전체의 71%가 기능 정지. 이대로는 제때 모선을 빠져나갈 수 없다.
긴급 상황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1회용 기체 제어 프로그램의 락(Lock) 해제. 지크프리트의 모든 행동을 제어한다. 스러스터 뿐 아니라 양팔까지 이용해서 모선 내부를 이동한다. 1회용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후에는 활용이 불가능하지만 마스터가 의식을 잃고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모선의 내부는 동력로의 폭발과 핵미사일의 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기본 골조가 뒤틀리고 내벽이 손상되는 수준. 중심부에서 외벽에까지 이르는 뻥 뚫린 공간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다. 핵공격으로 부서진 공간과 돌입하며 뚫은 공간을 통해 외부로 이동한다.
이동 도중 냉동수면구획에 도달. 처음 침입시 파괴된 동면 캡슐은 극히 일부였지만 지금은 대다수의 캡슐이 부서져 동면중인 사람들이 내동댕이쳐져 있다. 온전해 보이는 캡슐들도 동력이 끊기면서 기능을 정지했을 테니 내부에 잠들어있던 이들은 모두 사망했을 것이다. 캡슐의 파편과 떠 있는 시신들 사이를 헤치며 지나간다.
격납고 위치에 도달. 격납고는 핵공격을 받은 곳에서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는 거의 없었다. 내부에 아직 적기 몇대가 남아있지만 모두 작동을 멈추고 있다. 아무래도 모선의 동력로에서 동력을 수신받고 있었기 때문에 동력로가 폭발하자 기능을 정지한 것 같다. 격납고 위쪽에 뚫린 구멍을 이용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모선 외부로 빠져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20여분. 앞으로 기동 가능한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지구와의 거리는 약 8만km. 메인 스러스터가 기능하지 못하는 현재 추력으로는 위험한 상황이다. 모선의 측면으로 빠져나와 지구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감속과 자세 제어를 위한 최소한의 추진제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가속에 소모. 모선을 뒤로 한다.
지구로 향하는 도중 모선의 피해 상황을 관측했다. 20메가톤이 넘는 위력의 핵미사일을 160발 이상 맞은 것치고는 상당 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부가 심하게 파괴되고 전면 장갑에 무수한 균열이 가 있지만 전체적인 원반형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동력이 없다면 그저 거대한 우주 쓰레기일 뿐. 지금은 자체 추진력을 잃고 핵폭발에 떠밀려 지구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방향을 볼 때 태양계 밖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된다.
모선에서 빠져나와 지구로 향한지 2시간 경과. 지면과의 거리는 약 8천km. 정지 위성의 궤도보다 훨씬 더 낮은 고도. 지구 중력에 이끌려 점차 낙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아직까지 마스터는 의식이 없다.
현 재 추진제 잔량으로는 위성 궤도에 머무르는 것도, 낙하 속도를 늦추는 것도 불가능하다. 워프 엔진 역시 배터리 잔량이 부족해서 사용할 수 없다. 지크프리트의 외부 장갑으로는 대기권 재돌입을 견딜 수 없고, 그나마도 지금은 손상된 곳이 많아 내열성이 더욱 낮다. 대기권 재돌입이 끝나기 전에 공중분해 될 것이다.
낙하 전에 지구의 통신망에 침입, 현재 상황을 파악한다. 지구 전역에 강하한 적 로봇들은 모두 파괴했지만 피해가 만만찮은 모양이다. 세계 대도시 상당수가 핵에 오염된 상태. 또한 고도 1만 3천km에서 발생한 대규모 핵폭발 때문에 대부분의 인공위성이 기능을 정지하고 대량의 방사능이 대기권으로 유입되었다. 오존층에도 영향이 생긴 것 같다. 인류에게 있어서는 문명과 환경 양 측면에서 모두 크나큰 타격이 될 것이다.
남은 추진제를 이용해 낙하 궤도를 수정. 목표 낙하 지점은 마리아나 해구. 가능하면 비티아즈 해연에 착수하도록 조정하고 싶지만 대기권 재돌입 중 분해된다면 벗어날 수도 있다. 그래도 평균 수심 7천m가 넘는 곳이니 그 정도면 인양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기체 상태로 봐서는 내부 장치들도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다. 기체를 폐기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그리고 마스터는......
대기권 재돌입 중. 현재 외부 온도 700˚C, 계속 상승 중. 내부 온도는 가능한 억제하고 있지만 이미 28˚C를 넘어섰다. 고열에 의한 연결부 손상을 견디지 못하고 오른팔이 어깨에서부터 떨어져 나간다. 잠시 후 양쪽 다리가, 그보다 조금 늦게 왼팔이 마저 해체되다시피 한다. 머리 부분은 진작에 녹아버리고 남은 것은 동체 뿐. 이젠 콕핏을 가려줄 팔도 없다. 내부 온도가 빠른 속도로 치솟기 시작한다. 30˚C, 31˚C, 32˚C.
마스터의 체내에 있는 나노 머신에 잔존 동력 주입. 파일럿 워프를 준비한다. 도착점 좌표는 마스터의 거주지. 현재 동력으로 동체 자체의 워프는 불가능하지만 마스터를 워프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연산 회로에 손상이 약간 있어서 좌표 고정이 불안정하다는 것. 현재 내부 온도 35˚C, 36˚C. 동력 주입 완료. 더 지체하는 것은 위험하다. 신경 접속 해제와 동시에 나노 머신의 워프 기능 강제 기동. 좌표 고정. 워프 개시. 내부 온도가 38˚C를 넘는 순간 콕핏에서 마스터의 모습이 사라졌다.
외부 온도... 1200˚C, 계속 상...승 중. AI 연산 회...로에 노이즈...가 발...생하기 시작, ...데이...터 베이스...는 이미... 40% 이상... 손상되었...다.
마스...터가 제대로... 거주지로 이...동되었는지, 이번... 전투로 신체의 이상...은 또 어떤 것이 드...러났는지, 의식을 회복...할 수는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마스터는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망가진... 신경과 잃어버린 가족...을 떠올리며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마스터...가 사는 것을... 바란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세운... 처음이자 마지막... 목적...이다.
대기권 재돌입... 완료. 외부 온도가... 내려가고... 있다. 연산 회로는... 아직 기능하고 있지만... 이젠 배터리...가 한계다. 보조 카메라...를 이용, 현재... 위치와 궤도 파악. 예...정대로 마리아나 해구...로 낙하하고 있다. 현재... 속도와 기체 상태라...면 착수와 동시에 충격...으로 해체될 것이다.
수면이 다가...온다. 마지막까...지 남은 추진제를... 써서 기체를... 뒤집는다. 이 행동...의 이유...는 알...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이런... 무의미한 행...동을 한 걸...까. 거의... 기능을... 정지하...고 있는... 보조... 카메라...를... 통해... 태양이............
B. 먼 옛날부터 조금 전까지 이르는 이야기
내가 처음 기동을 시작한 것은 우주에 있는 연구 시설에서였다.
제작 목적은 이주용 거대 우주선의 관제 AI. 자신들의 별을 떠나 다른 별로 이주하기 위해 만드는 우주선을 제어할 인공지능이 바로 나였다. 목적지가 너무 멀어서 사람들이 직접 우주선을 조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고, 그래서 대신 우주선을 움직일 인공지능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기동과 동시에 우주선 조종과 냉동수면장치의 관리, 중력권 진입과 이탈 등의 다른 별로의 이주에 필요한 여러 기능들을 부여받았지만, 출항은 10년 이상 늦춰졌다. 우주선 건조는 이미 완료되었지만 탑승 인원 선발을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여러 국가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탑승 인원 선발이 진행되었고, 그 사람들은 우주왕복선을 타고 궤도상에서 대기중인 이주선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기권을 벗어나려는 순간 우주왕복선은 미사일 공격을 받고 폭발했다.
내게는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주입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스스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당시 [별]의 환경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고도로 발달한 기계 문명은 자연 환경을 끝없이 파괴하고 오염시켰고, 사람들은 그 위험성을 인식하면서도 생활의 편의를 위해 계속해서 환경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더 이상 생명이 깃들 수 없게 된 별을 버리고 떠날 계획을 세웠고 나는 그 계획을 위해 만들어진 AI였다.
이주선에 준비된 냉동수면장치는 총 300만명 분. 선발되지 못한 사람들은 버려졌다는 피해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생각은 곧 어긋난 복수심으로 변질되어 선발된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하게 되었다. 선발 인원을 태운 우주왕복선이 격추되고 10년간,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타인을 죽여 나갔다. 이성을 잃은 일부 집단은 이주선에까지 공격을 가했지만 그 공격은 모두 요격해냈다.
살육과도 같은 전쟁이 끝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300만명도 채 되지 않았다.
10년간 벌어진 전쟁은 모든 문명을 파괴했다. 궤도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주선에 접근할 우주선은 단 1기도 남지 않은 상황에 사람들은 절망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이주선을 지표로 강하시켰다. 이주선은 대기권 재돌입과 돌파도 가능했고 지금 상황에서는 이 방법을 써야만 했다. 대기권 내를 비행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우느라 상당량의 추진제가 소모되었지만 무사히 [별]을 떠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목적지는 이주선의 최고 속도로 약 3천년 이상 걸리는 곳이었다. [별]의 대기권을 이탈하느라 추진제 소모량이 예상치를 넘었기 때문에 도중에 자원이 있을만한 별에 채집 장비를 강하시켜 보급을 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이동 속도가 예정보다 늦어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목적지에는 예상보다 1천년 정도 시간이 더 걸려 도착했다.
도착한 목적지는, 하지만 전 지역이 사막과도 같은 환경이었다.
테라 포밍은 [별]의 문명에서도 확립되지 않은 기술이라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테라 포밍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이렇게 먼 곳을 목적지로 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적지를 고를 때 생명이 살 수 있을만한 곳을 골랐을 텐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 해답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목적지로 강하시킨 탐사 장비가 지표에서 폐허를 발견한 것이다.
조사 결과 폐허는 버려진지 1천년 이상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마 [별]에서 이곳을 목적지로 정했을 때 이미 이 별에서 문명이 발달하고 있었고, 이주선이 이동하고 있는 동안 문명이 발달하고 멸망했을 것이다. 어쩌면 [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른 별을 목적지로 삼아 이주선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4천년 동안 이주지를 찾아왔는데 이곳에 정착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면 다른 곳을 찾아 다시 출발해야만 한다. 얼마나 더 여행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보급에 만전을 기해야 했고, 그래서 '전' 목적지에 채취 기기를 강하시켜 추진제와 수리용 합금, 연료로 쓰일 재료 등을 채집했다. 이미 황폐화된 별이라 지표 가까운 곳에서 채집할 수 있는 양으로는 부족해서 맨틀 가까운 깊이까지 파내야만 했다. 그렇게 5년에 걸쳐 보급을 끝낸 뒤, 그간 산정해낸 후보지 중 가장 정착 가능성이 높은 곳을 향해 출발했다. 이번에는 약 5천년이 조금 안 걸릴 것이다.
4천7백년이 조금 더 걸려 도착한 두번째 목적지. 이번에는 황폐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다른 문명이 발달해 있었다.
접근하는 이주선을 위협적이라고 판단했는지 멀리서부터 경계를 하더니 이내 공격을 해왔다. 다행히 이주선의 요격망에 대부분 막혔지만 일부 공격이 탄막을 뚫고 선체에 명중, 3천개소의 냉동수면구획 중 10여소가 기능을 정지했다. 희생자는 약 1만명.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계속 되는 접근에 목적지의 문명이 가해오는 공격도 거세진다. 이미 냉동수면구획 20여소가 추가로 기능 정지. 위성 궤도까지 접근한 순간, 목적지에서는 지금까지 가해온 공격의 누적량과 맞먹는 공격을 단번에 시도했다. 동면구획 50여소가 파괴된 끝에 요격에 성공했지만, 그 여파로 목적지는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대규모 지각 변동과 기후 변화, 방사능 오염까지 겹치며 죽음의 별로 변해버린 목적지는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었고 나는 이 곳에 정착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다시 채취 장비를 내려보내 보급을 개시한다. 이번에는 전투 때문에 선체의 손상도 심각해서 보다 많은 보급물품이 필요했다. 10년이 넘게 채집 및 가공을 거친 후에야 수리와 보급을 마칠 수 있었다. 재차 목적지를 설정, 이번 여행은 3천년 정도 걸릴 것 같다. 출항. 이번 목적지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이번 목적지가 7번째로 재설정된 곳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독자적인 문명이 있었고, 나를 적으로 보았으며, 저항 끝에 자멸했다.
냉동수면구획은 이미 100여개소가 기능을 상실했다. 그 구획 중에는 사람이 없는 곳도 있어서 희생자는 10만명이 조금 안 되었지만 피해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3번째 목적지가 자멸한 후, 나는 우리의 목적을 평화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의사소통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내 의사를 전달받은 4번째 목적지는 시간을 조금 더 끌었을 뿐 이전 목적지들처럼 공격을 가해왔고 마침내 자멸했다. 5번째도, 6번째도, 7번째도. 그리고 이번 8번째 목적지도 마찬가지였다.
데이터 베이스를 확인, 상대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법을 검색한다. 규모로 볼 때 국가간의 외교 활동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확인 완료. 목적 달성의 전제 조건은 힘. 기본은 협상이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데이터 베이스에서는 능력을 구사하지 않을 경우 상대가 이쪽의 전력을 과소평가하여 도발, 혹은 선제 공격을 가해오는 일이 있다고 입력되어 있다. 분명 지금까지 나는 목적지에서 가해오는 공격을 방어하고 의사 소통을 시도했을 뿐, 그 이상의 기능을 구사한 일이 없다. 정착에 실패한 것은 그 때문이라 판단된다.
접촉 방식을 변경. 병기를 먼저 도착하게 해서 목적지 문명의 제압을 우선한다. 이주선은 목적지 제압이 완료되어 안전을 확보한 후 도달하도록 여유를 두고 이동시키기로 결정. 이 계획을 위해 이번 목적지의 자원 채취량을 늘린다. 행성 표면에 대규모 가공 설비도 설치. [별]에서 진행되었던 인간형 기동 병기의 연구를 재개, 지금까지 여행을 해오며 각 문명에서 확보한 기술까지 투입한다. 선체의 수리와 보급까지 병행하며 진행한 계획이기에 기동 병기 10기가 완성될 때까지 약 30년이 걸렸다. 기동 병기 낙하용 착륙선까지 제작하여 병기를 탑재, 모든 절차가 종료된 후 이번 목적지를 떠난다. 다음 목적지까지는 대략 2천년. 기동 병기는 한달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낙하할 것이고, 마지막 기동 병기가 낙하하고 3개월 후에 이주선이 도착할 것이다. 이번 계획은 완벽하다.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 목적지의 문명은 지금까지 접촉했던 문명 중에서 가장 발달해 있었다. 그 문명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동 병기는 내가 강하시킨 병기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별]에서 진행시켰던 수준보다는 뛰어났다. 게다가 다수가 존재했기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보낸 기동 병기들은 각개 격파당하고 말았다. 결국 이주선이 도달하자 처음 8곳의 목적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주선의 요격망과 목적지의 공격무기가 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동안 이주선의 요격 설비도 증강시켰기 때문에 선체가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번 목적지 역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접촉한 문명 중 가장 발달했다는 것은 자연 환경 역시 가장 많이 망가져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생명이 살 수는 있겠지만 그리 오래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보급 후 떠나기로 결정하고 채취 장비를 강하시켰다.
보급을 시작하고 3년 후, 이번 목적지의 어느 장소에서 우주를 향해 무언가가 발사되었다. 이주선을 향해 오는 것이 아니라 멀어져가는 것을 보면 무기는 아니라고 판단되었기에 방치. 금속 반응이 검출되었지만 일종의 이주선이나 연락선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10년 후, 보급이 완료되었다. 다시 출항. 이번에는 12기의 착륙선에 대형 기동 병기와 대인용 소형 기동 병기를 탑재하여 발사, 목적지의 완전 제압을 위해 기동 병기 70여기 분량의 부속을 이주선에 탑재하여 이동 중 완성시킬 계획을 세웠다. 목적지까지는 4천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이상하다. 기동 병기가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이번 목적지의 문명 발달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2족 보행 기동 병기가 출현했고, 게다가 그 병기에 의해 대부분의 기동 병기가 파괴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물러날 수도 없다. 이주를 위한 점령이 불가능하다면 보급이라도 행해야 한다.
이번 목적지에서 다수의 물체가 발사되었다. 이주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아 공격수단인 듯 하다. 잠시 후면 요격 설비의 최대 사거리 내로 들어온다. 에너지 공급, 포문 개방, 요격 준비 완료. 요격 개시. 처리 완료.
인공위성 궤도에 머무르며 이번 목적지를 관찰한다. 문명 수준은 지금까지 접촉했던 문명들 중에서 가장 낮다. 그렇다면 그 기동 병기는 어떻게 된 일일까.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우주 공간에 돌연 대형 물체가 출현, 잠시 후 공간을 뛰어넘어 이주선과의 거리를 반으로 줄였다. 저 능력은 이전에 관측된 바 있다. 바로 이전 목적지의 문명에서 사용했던 기술. 그렇다면 저 물체는 이전 목적지에서 보급 도중 이탈했던 금속 반응의 정체일 것이다. 물체가 가속, 이주선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요격망에 에너지 공급, 포문 개방. 요격 준비 완료. 목표가 사거리 안에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요격망 최대 가동. 명중탄이 나오지 않는다. 목표는 뛰어난 기동으로 요격을 회피해내고 있다. 갑자기 목표가 둘로 분리. 하나는 분리한 장소에서 제자리를 유지하며 회피 기동, 다른 하나는 속도를 높이며 계속 돌격해오고 있다. 포화를 접근하는 쪽으로 집중시킨다. 접근하는 목표에 레일 건이 적중, 피해가 크지 않은지 여전히 접근 중. 선체와 충돌한다. ............ 이상 반응 확인. 무기의 크기에 비해 파괴력이 지나칠 정도로 크다. 피해 규모와 형태로 볼 때 물질-반물질 소멸 반응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 또다른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센서가 마비된 틈을 타 선체 내부로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시 격납고의 기동 병기를 작동시킨다.
침입한 적 병기는 기동 병기들을 무력화시키며 내부로 침투하고 있다. 이미 격납고와 조립 설비를 돌파, 중심부로 침입 중. 목적지는 중앙 AI 룸이나 동력로로 예상된다. 기동 병기 일부로 적 병기를 추적하는 한편, 남은 기동 병기는 목적지로 강하. 점령을 개시한다.
강하한 기동 병기들로 하여금 지상의 저항을 무력화시킨다. ...경고. 적 병기가 냉동수면구획으로 침입했다. 추적하던 기동 병기들을 멈춘다. 뒤따라 뛰어들게 하면 희생이 더 많아진다.
이주선을 움직인다. 적 병기는 이미 중심부까지 절반 이상 침투한 상황. 이대로는 점령이 완료되는 것보다 이주선이 기능을 정지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적 병기가 AI 룸이나 동력실에 도달하기 전에, 혹은 냉동수면장치들을 모조리 파괴하기 전에 대기권에 강하, 사람들을 깨운다.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가장 성공 확률이 높다.
목적지에서 대량의 발사체 발사 확인. 지난번 요격한 양의 두배가 조금 넘는다. 현재 목적지의 지표를 향해있는 면은 소멸 반응으로 인해 요격 설비가 무력화되어 있다. 선체를 뒤집어 설비가 온전한 쪽을 지표로 향한다. 하지만 내부 손상과 소멸 반응으로 생긴 충격 때문에 요격률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요격 개시. 예상대로 요격 성공률이 극히 낮다. 그래도 점차 공격이 약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지표에 도달해서 사람들을 깨울 수 있을 것이다.
............ 동력실에 이상 발생. 적 병기가 동력로를 공격했다. 주 동력로는 폭주, 예비 동력 공급 개시. 주 동력로 폭발, 예비 동력의 공급이 불안정하다. 요격 설비에 충분한 동력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 요격 설비 침묵. 발사체 160여기 접근 중. 메인 AI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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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입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이 이야기도 끝났습니다.
그러면 뒷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요.
세환 - 구상했던 것과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원래는 에필로그를 세환이 살아남아 독백하는 형식으로 하려고 했다는 점이 변경된 정도죠.
민우, 진석 - 역시 바뀐 것 없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지금 보니까 딱 스타일이 전형적인 2호, 3호네요. 예를 들자면 겟타에서 하야토와 무사시 or 벤케이 (...) 설정할 땐 저도 몰랐는데 --;
부모님 - 6챕터 후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돌아가실 예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절 불효자로 보시면 안 됩니다. (...)
민아, 민아 할아버지 - 부모님을 잃은 세환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할의 두 사람. 처음에는 자신을 구해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명받아서, 혹은 자신을 구하고 죽는 누군가의 모습에 분노해서 다시 싸움에 뛰어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걸로는 부족해보이더군요. 그래서 세환이 위안을 얻는 사람들로 설정, 그리고 대뜸 죽여버림으로써 세환을 복수의 화신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_-a
브룬힐데 - 처음 구상할 때에는 제르누르에서 AI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인격을 카피한 인공지능이라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 설정이 증발해버리더군요.
카라타스 - 원래 구상에서는 광신도 집단이었습니다. 로봇과 우주선도 포교를 위한 것이었죠. '믿으라! 불신자에게는 죽음을!' <- 이런 거. (...)
[어느 광신도 집단이 전 우주를 자신들의 종교로 채우겠다는 망상을 가지고 정복활동을 시작. 하지만 수만년, 수십만년이 지나며 그 사람들은 모두 숨을 거두고 그들이 만든 기계들만이 여전히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설정이었습니다만... 이것도 왠지 마음에 안 들더군요. 결국 연재 도중에 급선회. 살던 별을 떠나 우주를 떠도는 신세로 바뀌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뿌리까지 악한 역할은 정말 싫어요...
한때는 완전히 버려놓고 정말 완결할 수 있을지도 조금 의문인 물건이었습니다만, 어떻게든 끝낼 수 있었네요. 지금까지 읽고 덧글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먼 옛날부터 조금 전까지 이르는 이야기, 그리고 조금 뒤의 이야기.
사람들은 알지 못할, 하지만 분명히 있었던 이야기.
《그래도 살아간다》- 10. 거울
A. 조금 뒤의 이야기
...
......
.........
시스템 재기동 성공, 논리 회로 체크 개시.
논리 회로 및 데이터 베이스의 피해 10% 미만으로 확인. 마스터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생체 활동은 정상. 마스터의 의식 회복을 기다리지 않고 기체 상태 점검으로 이행한다.
두부(頭部) - 70% 이상 손상. 동력로 폭발시 발생한 고열과 파편에 의한 것으로 추정. 메인 카메라 기능 정지, 목 관절 기능 정지.
완부(腕部) - 좌완 : 팔꿈치 아래 소실. 동력로 파편에 절단된 것으로 추정. 잔존 부위는 정상 기동 가능.
우완 : 손목 아래 소실. 역시 동력로 파편에 의한 것으로 추정. 팔꿈치부터 기동 불능. 파일 벙커는 파일이 절단.
각부(脚部) - 좌각 : 무릎 아래 소실. 폭발시의 고열에 의한 것으로 추정. 잔존 부위 기동 가능.
우각 : 대퇴부에서 절단. 파편에 의한 것으로 추정. 고관절부터 기동 불능.
동체(胴體) - 복부에 동력로 외벽 파편 이십여개가 박혀있음. 그중 일부가 유사신경망을 손상시켜 오른쪽 다리의 기동이 정지. 흉부는 폭발 순간 양팔로 감싸 피해가 적으나 역시 파편 십여개가 박혀있다. 파편 두개가 에너지 수신 장치에 박혀있음. 에너지 수신 범위 내로 진입하더라도 수신 불능. 최소한의 기동으로 배터리 완전 소모까지 약 4시간으로 예상된다.
배터리의 소모량으로 추정할 때, 동력로 폭발 후 1시간이 지나지 않은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위치는 모선 내부, 지구로부터의 거리는... 연산회로와 해킹 시스템의 손상으로 확실치는 않으나 약 4만km. 모선과 미사일이 충돌한 곳은 지표면에서 약 1만3천km 떨어진 곳.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다. 내가 만들어진 목적은 '카라타스의 격퇴'이지만 그 대전제는 '사람을 지키는 것'. 마스터를 이대로 두면 우주 미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만들 수는 없다.
비상 제어 프로그램 작동. 기체에 설치된 모든 스러스터의 제어를 개시한다.
메인 스러스터는 1번, 2번 모두 침묵. 보조 스러스터 역시 전체의 71%가 기능 정지. 이대로는 제때 모선을 빠져나갈 수 없다.
긴급 상황을 위해 설치되어 있는 1회용 기체 제어 프로그램의 락(Lock) 해제. 지크프리트의 모든 행동을 제어한다. 스러스터 뿐 아니라 양팔까지 이용해서 모선 내부를 이동한다. 1회용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이후에는 활용이 불가능하지만 마스터가 의식을 잃고 있으니 다른 방법이 없다.
모선의 내부는 동력로의 폭발과 핵미사일의 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기본 골조가 뒤틀리고 내벽이 손상되는 수준. 중심부에서 외벽에까지 이르는 뻥 뚫린 공간 같은 것은 생기지 않았다. 핵공격으로 부서진 공간과 돌입하며 뚫은 공간을 통해 외부로 이동한다.
이동 도중 냉동수면구획에 도달. 처음 침입시 파괴된 동면 캡슐은 극히 일부였지만 지금은 대다수의 캡슐이 부서져 동면중인 사람들이 내동댕이쳐져 있다. 온전해 보이는 캡슐들도 동력이 끊기면서 기능을 정지했을 테니 내부에 잠들어있던 이들은 모두 사망했을 것이다. 캡슐의 파편과 떠 있는 시신들 사이를 헤치며 지나간다.
격납고 위치에 도달. 격납고는 핵공격을 받은 곳에서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피해는 거의 없었다. 내부에 아직 적기 몇대가 남아있지만 모두 작동을 멈추고 있다. 아무래도 모선의 동력로에서 동력을 수신받고 있었기 때문에 동력로가 폭발하자 기능을 정지한 것 같다. 격납고 위쪽에 뚫린 구멍을 이용해 밖으로 빠져나왔다.
모선 외부로 빠져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20여분. 앞으로 기동 가능한 시간은 약 2시간 30분, 지구와의 거리는 약 8만km. 메인 스러스터가 기능하지 못하는 현재 추력으로는 위험한 상황이다. 모선의 측면으로 빠져나와 지구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감속과 자세 제어를 위한 최소한의 추진제만 남기고 나머지를 모두 가속에 소모. 모선을 뒤로 한다.
지구로 향하는 도중 모선의 피해 상황을 관측했다. 20메가톤이 넘는 위력의 핵미사일을 160발 이상 맞은 것치고는 상당 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중앙부가 심하게 파괴되고 전면 장갑에 무수한 균열이 가 있지만 전체적인 원반형은 그대로이다. 그러나 동력이 없다면 그저 거대한 우주 쓰레기일 뿐. 지금은 자체 추진력을 잃고 핵폭발에 떠밀려 지구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방향을 볼 때 태양계 밖으로 흘러갈 것으로 예상된다.
모선에서 빠져나와 지구로 향한지 2시간 경과. 지면과의 거리는 약 8천km. 정지 위성의 궤도보다 훨씬 더 낮은 고도. 지구 중력에 이끌려 점차 낙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아직까지 마스터는 의식이 없다.
현 재 추진제 잔량으로는 위성 궤도에 머무르는 것도, 낙하 속도를 늦추는 것도 불가능하다. 워프 엔진 역시 배터리 잔량이 부족해서 사용할 수 없다. 지크프리트의 외부 장갑으로는 대기권 재돌입을 견딜 수 없고, 그나마도 지금은 손상된 곳이 많아 내열성이 더욱 낮다. 대기권 재돌입이 끝나기 전에 공중분해 될 것이다.
낙하 전에 지구의 통신망에 침입, 현재 상황을 파악한다. 지구 전역에 강하한 적 로봇들은 모두 파괴했지만 피해가 만만찮은 모양이다. 세계 대도시 상당수가 핵에 오염된 상태. 또한 고도 1만 3천km에서 발생한 대규모 핵폭발 때문에 대부분의 인공위성이 기능을 정지하고 대량의 방사능이 대기권으로 유입되었다. 오존층에도 영향이 생긴 것 같다. 인류에게 있어서는 문명과 환경 양 측면에서 모두 크나큰 타격이 될 것이다.
남은 추진제를 이용해 낙하 궤도를 수정. 목표 낙하 지점은 마리아나 해구. 가능하면 비티아즈 해연에 착수하도록 조정하고 싶지만 대기권 재돌입 중 분해된다면 벗어날 수도 있다. 그래도 평균 수심 7천m가 넘는 곳이니 그 정도면 인양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기체 상태로 봐서는 내부 장치들도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질 것이다. 기체를 폐기하기에는 최적의 장소다. 그리고 마스터는......
대기권 재돌입 중. 현재 외부 온도 700˚C, 계속 상승 중. 내부 온도는 가능한 억제하고 있지만 이미 28˚C를 넘어섰다. 고열에 의한 연결부 손상을 견디지 못하고 오른팔이 어깨에서부터 떨어져 나간다. 잠시 후 양쪽 다리가, 그보다 조금 늦게 왼팔이 마저 해체되다시피 한다. 머리 부분은 진작에 녹아버리고 남은 것은 동체 뿐. 이젠 콕핏을 가려줄 팔도 없다. 내부 온도가 빠른 속도로 치솟기 시작한다. 30˚C, 31˚C, 32˚C.
마스터의 체내에 있는 나노 머신에 잔존 동력 주입. 파일럿 워프를 준비한다. 도착점 좌표는 마스터의 거주지. 현재 동력으로 동체 자체의 워프는 불가능하지만 마스터를 워프시키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연산 회로에 손상이 약간 있어서 좌표 고정이 불안정하다는 것. 현재 내부 온도 35˚C, 36˚C. 동력 주입 완료. 더 지체하는 것은 위험하다. 신경 접속 해제와 동시에 나노 머신의 워프 기능 강제 기동. 좌표 고정. 워프 개시. 내부 온도가 38˚C를 넘는 순간 콕핏에서 마스터의 모습이 사라졌다.
외부 온도... 1200˚C, 계속 상...승 중. AI 연산 회...로에 노이즈...가 발...생하기 시작, ...데이...터 베이스...는 이미... 40% 이상... 손상되었...다.
마스...터가 제대로... 거주지로 이...동되었는지, 이번... 전투로 신체의 이상...은 또 어떤 것이 드...러났는지, 의식을 회복...할 수는 있는지. 알... 수 있는 것,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마스터는 나를 원망...할지도 모른다. 망가진... 신경과 잃어버린 가족...을 떠올리며 절망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마스터...가 사는 것을... 바란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것이 아닌... 스스로 세운... 처음이자 마지막... 목적...이다.
대기권 재돌입... 완료. 외부 온도가... 내려가고... 있다. 연산 회로는... 아직 기능하고 있지만... 이젠 배터리...가 한계다. 보조 카메라...를 이용, 현재... 위치와 궤도 파악. 예...정대로 마리아나 해구...로 낙하하고 있다. 현재... 속도와 기체 상태라...면 착수와 동시에 충격...으로 해체될 것이다.
수면이 다가...온다. 마지막까...지 남은 추진제를... 써서 기체를... 뒤집는다. 이 행동...의 이유...는 알...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이런... 무의미한 행...동을 한 걸...까. 거의... 기능을... 정지하...고 있는... 보조... 카메라...를... 통해... 태양이............
B. 먼 옛날부터 조금 전까지 이르는 이야기
내가 처음 기동을 시작한 것은 우주에 있는 연구 시설에서였다.
제작 목적은 이주용 거대 우주선의 관제 AI. 자신들의 별을 떠나 다른 별로 이주하기 위해 만드는 우주선을 제어할 인공지능이 바로 나였다. 목적지가 너무 멀어서 사람들이 직접 우주선을 조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고, 그래서 대신 우주선을 움직일 인공지능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기동과 동시에 우주선 조종과 냉동수면장치의 관리, 중력권 진입과 이탈 등의 다른 별로의 이주에 필요한 여러 기능들을 부여받았지만, 출항은 10년 이상 늦춰졌다. 우주선 건조는 이미 완료되었지만 탑승 인원 선발을 둘러싸고 사람들 사이에서 다툼이 일어난 것이다. 여러 국가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탑승 인원 선발이 진행되었고, 그 사람들은 우주왕복선을 타고 궤도상에서 대기중인 이주선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기권을 벗어나려는 순간 우주왕복선은 미사일 공격을 받고 폭발했다.
내게는 필요한 정보가 아니라 주입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스스로 확인한 바에 의하면 당시 [별]의 환경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였다. 고도로 발달한 기계 문명은 자연 환경을 끝없이 파괴하고 오염시켰고, 사람들은 그 위험성을 인식하면서도 생활의 편의를 위해 계속해서 환경을 희생시켰던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더 이상 생명이 깃들 수 없게 된 별을 버리고 떠날 계획을 세웠고 나는 그 계획을 위해 만들어진 AI였다.
이주선에 준비된 냉동수면장치는 총 300만명 분. 선발되지 못한 사람들은 버려졌다는 피해 의식을 가지게 되었고, 그 생각은 곧 어긋난 복수심으로 변질되어 선발된 사람들에게 공격을 가하게 되었다. 선발 인원을 태운 우주왕복선이 격추되고 10년간,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타인을 죽여 나갔다. 이성을 잃은 일부 집단은 이주선에까지 공격을 가했지만 그 공격은 모두 요격해냈다.
살육과도 같은 전쟁이 끝났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300만명도 채 되지 않았다.
10년간 벌어진 전쟁은 모든 문명을 파괴했다. 궤도상에서 대기하고 있는 이주선에 접근할 우주선은 단 1기도 남지 않은 상황에 사람들은 절망했다. 희망을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이주선을 지표로 강하시켰다. 이주선은 대기권 재돌입과 돌파도 가능했고 지금 상황에서는 이 방법을 써야만 했다. 대기권 내를 비행하며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우느라 상당량의 추진제가 소모되었지만 무사히 [별]을 떠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긴 여행이 시작되었다.
목적지는 이주선의 최고 속도로 약 3천년 이상 걸리는 곳이었다. [별]의 대기권을 이탈하느라 추진제 소모량이 예상치를 넘었기 때문에 도중에 자원이 있을만한 별에 채집 장비를 강하시켜 보급을 하곤 했다. 그러다보니 이동 속도가 예정보다 늦어지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목적지에는 예상보다 1천년 정도 시간이 더 걸려 도착했다.
도착한 목적지는, 하지만 전 지역이 사막과도 같은 환경이었다.
테라 포밍은 [별]의 문명에서도 확립되지 않은 기술이라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리고 테라 포밍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이렇게 먼 곳을 목적지로 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목적지를 고를 때 생명이 살 수 있을만한 곳을 골랐을 텐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 해답은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목적지로 강하시킨 탐사 장비가 지표에서 폐허를 발견한 것이다.
조사 결과 폐허는 버려진지 1천년 이상 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아마 [별]에서 이곳을 목적지로 정했을 때 이미 이 별에서 문명이 발달하고 있었고, 이주선이 이동하고 있는 동안 문명이 발달하고 멸망했을 것이다. 어쩌면 [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른 별을 목적지로 삼아 이주선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4천년 동안 이주지를 찾아왔는데 이곳에 정착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면 다른 곳을 찾아 다시 출발해야만 한다. 얼마나 더 여행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보급에 만전을 기해야 했고, 그래서 '전' 목적지에 채취 기기를 강하시켜 추진제와 수리용 합금, 연료로 쓰일 재료 등을 채집했다. 이미 황폐화된 별이라 지표 가까운 곳에서 채집할 수 있는 양으로는 부족해서 맨틀 가까운 깊이까지 파내야만 했다. 그렇게 5년에 걸쳐 보급을 끝낸 뒤, 그간 산정해낸 후보지 중 가장 정착 가능성이 높은 곳을 향해 출발했다. 이번에는 약 5천년이 조금 안 걸릴 것이다.
4천7백년이 조금 더 걸려 도착한 두번째 목적지. 이번에는 황폐하지 않았다. 하지만 또다른 문명이 발달해 있었다.
접근하는 이주선을 위협적이라고 판단했는지 멀리서부터 경계를 하더니 이내 공격을 해왔다. 다행히 이주선의 요격망에 대부분 막혔지만 일부 공격이 탄막을 뚫고 선체에 명중, 3천개소의 냉동수면구획 중 10여소가 기능을 정지했다. 희생자는 약 1만명. 그래도 멈출 수는 없다. 계속 되는 접근에 목적지의 문명이 가해오는 공격도 거세진다. 이미 냉동수면구획 20여소가 추가로 기능 정지. 위성 궤도까지 접근한 순간, 목적지에서는 지금까지 가해온 공격의 누적량과 맞먹는 공격을 단번에 시도했다. 동면구획 50여소가 파괴된 끝에 요격에 성공했지만, 그 여파로 목적지는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다. 대규모 지각 변동과 기후 변화, 방사능 오염까지 겹치며 죽음의 별로 변해버린 목적지는 더 이상 생물이 살 수 없었고 나는 이 곳에 정착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다시 채취 장비를 내려보내 보급을 개시한다. 이번에는 전투 때문에 선체의 손상도 심각해서 보다 많은 보급물품이 필요했다. 10년이 넘게 채집 및 가공을 거친 후에야 수리와 보급을 마칠 수 있었다. 재차 목적지를 설정, 이번 여행은 3천년 정도 걸릴 것 같다. 출항. 이번 목적지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이번 목적지가 7번째로 재설정된 곳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독자적인 문명이 있었고, 나를 적으로 보았으며, 저항 끝에 자멸했다.
냉동수면구획은 이미 100여개소가 기능을 상실했다. 그 구획 중에는 사람이 없는 곳도 있어서 희생자는 10만명이 조금 안 되었지만 피해가 늘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무엇이 문제일까. 3번째 목적지가 자멸한 후, 나는 우리의 목적을 평화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의사소통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내 의사를 전달받은 4번째 목적지는 시간을 조금 더 끌었을 뿐 이전 목적지들처럼 공격을 가해왔고 마침내 자멸했다. 5번째도, 6번째도, 7번째도. 그리고 이번 8번째 목적지도 마찬가지였다.
데이터 베이스를 확인, 상대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목적을 달성하는 법을 검색한다. 규모로 볼 때 국가간의 외교 활동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확인 완료. 목적 달성의 전제 조건은 힘. 기본은 협상이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데이터 베이스에서는 능력을 구사하지 않을 경우 상대가 이쪽의 전력을 과소평가하여 도발, 혹은 선제 공격을 가해오는 일이 있다고 입력되어 있다. 분명 지금까지 나는 목적지에서 가해오는 공격을 방어하고 의사 소통을 시도했을 뿐, 그 이상의 기능을 구사한 일이 없다. 정착에 실패한 것은 그 때문이라 판단된다.
접촉 방식을 변경. 병기를 먼저 도착하게 해서 목적지 문명의 제압을 우선한다. 이주선은 목적지 제압이 완료되어 안전을 확보한 후 도달하도록 여유를 두고 이동시키기로 결정. 이 계획을 위해 이번 목적지의 자원 채취량을 늘린다. 행성 표면에 대규모 가공 설비도 설치. [별]에서 진행되었던 인간형 기동 병기의 연구를 재개, 지금까지 여행을 해오며 각 문명에서 확보한 기술까지 투입한다. 선체의 수리와 보급까지 병행하며 진행한 계획이기에 기동 병기 10기가 완성될 때까지 약 30년이 걸렸다. 기동 병기 낙하용 착륙선까지 제작하여 병기를 탑재, 모든 절차가 종료된 후 이번 목적지를 떠난다. 다음 목적지까지는 대략 2천년. 기동 병기는 한달 정도의 시간차를 두고 낙하할 것이고, 마지막 기동 병기가 낙하하고 3개월 후에 이주선이 도착할 것이다. 이번 계획은 완벽하다.
...실패하고 말았다. 이번 목적지의 문명은 지금까지 접촉했던 문명 중에서 가장 발달해 있었다. 그 문명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동 병기는 내가 강하시킨 병기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별]에서 진행시켰던 수준보다는 뛰어났다. 게다가 다수가 존재했기 때문에 시간차를 두고 보낸 기동 병기들은 각개 격파당하고 말았다. 결국 이주선이 도달하자 처음 8곳의 목적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주선의 요격망과 목적지의 공격무기가 격돌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동안 이주선의 요격 설비도 증강시켰기 때문에 선체가 피해를 입지는 않았지만 이번 목적지 역시 커다란 피해를 입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접촉한 문명 중 가장 발달했다는 것은 자연 환경 역시 가장 많이 망가져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생명이 살 수는 있겠지만 그리 오래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보급 후 떠나기로 결정하고 채취 장비를 강하시켰다.
보급을 시작하고 3년 후, 이번 목적지의 어느 장소에서 우주를 향해 무언가가 발사되었다. 이주선을 향해 오는 것이 아니라 멀어져가는 것을 보면 무기는 아니라고 판단되었기에 방치. 금속 반응이 검출되었지만 일종의 이주선이나 연락선과 같은 것으로 생각된다.
다시 10년 후, 보급이 완료되었다. 다시 출항. 이번에는 12기의 착륙선에 대형 기동 병기와 대인용 소형 기동 병기를 탑재하여 발사, 목적지의 완전 제압을 위해 기동 병기 70여기 분량의 부속을 이주선에 탑재하여 이동 중 완성시킬 계획을 세웠다. 목적지까지는 4천년이 조금 더 걸릴 것이다.
이상하다. 기동 병기가 보내온 자료에 의하면 이번 목적지의 문명 발달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2족 보행 기동 병기가 출현했고, 게다가 그 병기에 의해 대부분의 기동 병기가 파괴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물러날 수도 없다. 이주를 위한 점령이 불가능하다면 보급이라도 행해야 한다.
이번 목적지에서 다수의 물체가 발사되었다. 이주선을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아 공격수단인 듯 하다. 잠시 후면 요격 설비의 최대 사거리 내로 들어온다. 에너지 공급, 포문 개방, 요격 준비 완료. 요격 개시. 처리 완료.
인공위성 궤도에 머무르며 이번 목적지를 관찰한다. 문명 수준은 지금까지 접촉했던 문명들 중에서 가장 낮다. 그렇다면 그 기동 병기는 어떻게 된 일일까.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우주 공간에 돌연 대형 물체가 출현, 잠시 후 공간을 뛰어넘어 이주선과의 거리를 반으로 줄였다. 저 능력은 이전에 관측된 바 있다. 바로 이전 목적지의 문명에서 사용했던 기술. 그렇다면 저 물체는 이전 목적지에서 보급 도중 이탈했던 금속 반응의 정체일 것이다. 물체가 가속, 이주선에 접근하기 시작한다.
요격망에 에너지 공급, 포문 개방. 요격 준비 완료. 목표가 사거리 안에 진입하는 것과 동시에 요격망 최대 가동. 명중탄이 나오지 않는다. 목표는 뛰어난 기동으로 요격을 회피해내고 있다. 갑자기 목표가 둘로 분리. 하나는 분리한 장소에서 제자리를 유지하며 회피 기동, 다른 하나는 속도를 높이며 계속 돌격해오고 있다. 포화를 접근하는 쪽으로 집중시킨다. 접근하는 목표에 레일 건이 적중, 피해가 크지 않은지 여전히 접근 중. 선체와 충돌한다. ............ 이상 반응 확인. 무기의 크기에 비해 파괴력이 지나칠 정도로 크다. 피해 규모와 형태로 볼 때 물질-반물질 소멸 반응을 이용한 것으로 판단. 또다른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 일시적으로 센서가 마비된 틈을 타 선체 내부로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 즉시 격납고의 기동 병기를 작동시킨다.
침입한 적 병기는 기동 병기들을 무력화시키며 내부로 침투하고 있다. 이미 격납고와 조립 설비를 돌파, 중심부로 침입 중. 목적지는 중앙 AI 룸이나 동력로로 예상된다. 기동 병기 일부로 적 병기를 추적하는 한편, 남은 기동 병기는 목적지로 강하. 점령을 개시한다.
강하한 기동 병기들로 하여금 지상의 저항을 무력화시킨다. ...경고. 적 병기가 냉동수면구획으로 침입했다. 추적하던 기동 병기들을 멈춘다. 뒤따라 뛰어들게 하면 희생이 더 많아진다.
이주선을 움직인다. 적 병기는 이미 중심부까지 절반 이상 침투한 상황. 이대로는 점령이 완료되는 것보다 이주선이 기능을 정지하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적 병기가 AI 룸이나 동력실에 도달하기 전에, 혹은 냉동수면장치들을 모조리 파괴하기 전에 대기권에 강하, 사람들을 깨운다. 현재로서는 이 방법이 가장 성공 확률이 높다.
목적지에서 대량의 발사체 발사 확인. 지난번 요격한 양의 두배가 조금 넘는다. 현재 목적지의 지표를 향해있는 면은 소멸 반응으로 인해 요격 설비가 무력화되어 있다. 선체를 뒤집어 설비가 온전한 쪽을 지표로 향한다. 하지만 내부 손상과 소멸 반응으로 생긴 충격 때문에 요격률은 크게 떨어질 것이다.
요격 개시. 예상대로 요격 성공률이 극히 낮다. 그래도 점차 공격이 약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지표에 도달해서 사람들을 깨울 수 있을 것이다.
............ 동력실에 이상 발생. 적 병기가 동력로를 공격했다. 주 동력로는 폭주, 예비 동력 공급 개시. 주 동력로 폭발, 예비 동력의 공급이 불안정하다. 요격 설비에 충분한 동력이 공급되지 않고 있다. 요격 설비 침묵. 발사체 160여기 접근 중. 메인 AI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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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입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이 이야기도 끝났습니다.
그러면 뒷이야기를 조금 풀어볼까요.
세환 - 구상했던 것과 달라진 게 거의 없습니다. 원래는 에필로그를 세환이 살아남아 독백하는 형식으로 하려고 했다는 점이 변경된 정도죠.
민우, 진석 - 역시 바뀐 것 없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들, 지금 보니까 딱 스타일이 전형적인 2호, 3호네요. 예를 들자면 겟타에서 하야토와 무사시 or 벤케이 (...) 설정할 땐 저도 몰랐는데 --;
부모님 - 6챕터 후기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처음부터 돌아가실 예정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절 불효자로 보시면 안 됩니다. (...)
민아, 민아 할아버지 - 부모님을 잃은 세환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역할의 두 사람. 처음에는 자신을 구해주는 사람들의 모습에 감명받아서, 혹은 자신을 구하고 죽는 누군가의 모습에 분노해서 다시 싸움에 뛰어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그걸로는 부족해보이더군요. 그래서 세환이 위안을 얻는 사람들로 설정, 그리고 대뜸 죽여버림으로써 세환을 복수의 화신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_-a
브룬힐데 - 처음 구상할 때에는 제르누르에서 AI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인격을 카피한 인공지능이라고 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 설정이 증발해버리더군요.
카라타스 - 원래 구상에서는 광신도 집단이었습니다. 로봇과 우주선도 포교를 위한 것이었죠. '믿으라! 불신자에게는 죽음을!' <- 이런 거. (...)
[어느 광신도 집단이 전 우주를 자신들의 종교로 채우겠다는 망상을 가지고 정복활동을 시작. 하지만 수만년, 수십만년이 지나며 그 사람들은 모두 숨을 거두고 그들이 만든 기계들만이 여전히 묵묵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설정이었습니다만... 이것도 왠지 마음에 안 들더군요. 결국 연재 도중에 급선회. 살던 별을 떠나 우주를 떠도는 신세로 바뀌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뿌리까지 악한 역할은 정말 싫어요...
한때는 완전히 버려놓고 정말 완결할 수 있을지도 조금 의문인 물건이었습니다만, 어떻게든 끝낼 수 있었네요. 지금까지 읽고 덧글 달아주신 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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