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력이 새어나오는 곳은 정확하게 67층 3호실이었다. 그다지 기대는 안 한 상태에서 시그리드에게 누가 쓰는 방인지 물어보니, 역시나 누구인지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문을 확 열어젖혀 버리자는 제안도 함께.
“조금…이 아니라, 상당히 무례한 행동이야, 그거.”
“뭐 어때. 열어보고 나서 위험하지 않은 실험 중이었으면 ‘아, 죄송합니다’하면 되는 거고. 정말 위험한 실험이면 당장 뛰어들어 중지시키면 되는 거야.”
“걸고넘어지고 싶은 점은 많지만 일단 하나만 물어보자. 저 문에 아무런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명색이 마법사 연구실인데. 최소한 트랩 한두 개 정도는 기본으로 걸려있을걸?”
“그건 세연 네가 해결해주면 되고.”
“…….”
이 녀석, 내 생각보다 대책 없는 녀석이었구나. 여러모로 특이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 정도로 무턱대고 밀고 나가는 성격인 줄은 몰랐는데.
“좋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고 치자. 위험한 거면 중지시키면 되지만, 만약 오해였다면 단순히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잖아. 마법사의 실험을 방해하면 어떤 일을 당해도 할 말 없다는 건…….”
“마법사 세계의 불문율이지. 하지만 동시에 마법사는 자신의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자기 몸도 실험 재료로 쓸 사람들이기도 하지. 어떻게 생각해?”
“…졌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마법사를 대화로 상대하려 하면 안 된다. 일단 나도 명색이 마법사이긴 하지만, 마법사의 논리를 논리로 상대해서는 끝이 안 난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주든가, 아니면 실력행사로 때려눕히든가 둘 중 하나다. 결국 이번에도 넘어가는구나.
“Tamji.”
마법으로 확인해보니, 의외로 문에 걸린 마법은 잠금 마법 하나였다. 알람도 안 걸려 있고, 침입자 격퇴를 위해 공격 마법이 걸린 것도 아니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허술한걸. 설마 안에 뭔가 더 있나?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이 일대의 영력을 고정시켜 마법 발동을 막는 것이지만, 그렇게 하면 지금 저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실험도 중단될 테니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무슨 실험 중이었는지 알아내기가 곤란해질 수가 있다. 게다가 영력 차단막도 있으니 영력 고정이 쉽사리 먹히지도 않을 테고. 그렇다면 일단 문의 잠금 마법을 해제한 후, 방어막을 친 채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한다는 얘기군.
“…번거로운 건 딱 질색인데.”
하지만 어쩌겠는가, 하기로 했으면 확실히 해야지. 게다가 정말 만의 하나라는 경우일 수도 있고.
“Mabup Gangje Hæje, Mabup Bangumak.”
무효화 주문(Dispel)으로 잠금 마법을 풀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마법 방어막을 우리 주위에 둘렀다. 이제 문을 열고 상황을 보는 것만 남았는데,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든 우리가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리라는 것은 피할 수 없겠군. 별 일 아니라면 무단침입이니 상당히 곤란해질 테고, 심각한 일이라면 상대가 우리를 그냥 놔두지 않을 테니 또 그건 그것대로 곤란해진다. 아아 정말, 어떻게든 시그리드를 말려서 위치만 알아두고 돌아가는 건데 그랬어. 이제 와서 말린다고 해도 들을 리도 없고. 그렇게 속으로 한탄하고 있는 동안, 시그리드는 판자를 방 앞에 바짝 붙인 다음 문을 열려고 손을 뻗고 있었다.
“자, 그럼 열어보실까.”
…즐기고 있군, 이 인간. 혹시 이쪽이 본성인가?
시그리드가 문을 조심스레 열자, 갑자기 엄청난 기세로 영력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말 그대로 영력의 폭풍우였다. 실제로 옷자락이 날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지만, 몸 주변에 있던 영력들이 순식간에 쓸려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맙소사… 시그리드, 너 아무래도 제대로 한 것 같다.”
분명히 시그리드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로 심각하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겠지. 지금도 이 정도인데, 만약 며칠 더 있었다면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짐작도 안 된다. 더군다나 분명 영력은 쓸려 나가고 있는데도 방어막은 멀쩡히 유지되고 있는 걸 보면, 이건 마법에 이용되는 일반적인 영력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설마, 정말로 사령(邪靈)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던 거야?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서 들어가 보자. 방어막은 이상 없으니 걱정 말고.”
“좋아, 그럼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나 직접 보자고.”
그렇게 시그리드는 뛰어들다시피 연구실로 들어가더니, 몇 걸음 안 가 갑자기 우뚝 서버렸다. 덕분에 나는 시그리드가 방어막 영향 내에 있게 하려고 바짝 붙어가다가 하마터면 부딪힐 뻔 했다. 대체 뭐야? 시그리드의 어깨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바라보니 앞에는 우리 쪽을 바라보고 있는 마법사가 한명, 그리고 그 옆에는 무슨 튜브가 잔뜩 연결된, 투명한 원기둥 같은 물체가 있었다. 그 안에는, 10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하나가 투명한 액체에 잠겨 있었다.
“…인체 실험이었나. 더군다나 살아있는 인간이라니, 악질적인 네크로맨서도 하지 않는 이런 짓을…….”
앞에서 중얼거리는 시그리드를 내버려 둔 채, 나는 나도 모르게 앞으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자네들은 누군가! 멋대로 남의 연구실에 들어오다니, 이게 무슨 짓인가!”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채 악을 쓰는 마법사도 무시하고,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잠시 말도 잊은 채, 그저 아이에게로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