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쏘아부친 말에 입을 꽉 다물고 있던 마법사는,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에 고개를 들며 소리쳤다.
“그건 안 돼! 이 아이는 내줄 수 없네!”
“아직도 그 소리에요? 정말 당신은 당신 손자를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식이에요? 아니면 애초에 돈 주고 산 아이니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다는 말인가요?!”
“말이면 다인 줄 아나! 모든 연구에는 위험과 희생이 있는 법이야! 의술도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하며 발전한 것. 하지만 사람들은 의사를 매도하지는 않네. 오히려 칭송하기까지 하지. 내 연구가 의술과 다를 게 무엇인가!”
“억지 부리지 말아요! 당신이 말하는 의술은 환자들이 마지막 희망으로 자진해서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내놓은 거예요! 다짜고짜 데려와서 실험 재료로 쓰는 당신과 같다니, 그건 의사와 환자들에 대한 모욕이에요!”
아이에 대한 죄책감은 남아있는 것 같아 구제의 여지가 있는 줄 알았는데, 이건 정말 심각하다. 생체연구를 하는 주제에 아직도 자신이 정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거야? 슬슬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가고 있는데, 시그리드가 다시 우리 사이에 끼어들었다.
“저기, 제가 미처 말씀드리지 못한 게 있는데요. 실은 오늘 오후, 아니 이미 자정이 넘었으니 어제 오후네요. 어제 오후에 로비에다가 회의 소집을 요청했거든요. 아직 다른 마법사들에게 통보가 가지 않았을 테니까, 지금 여기서 일을 수습하는 게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요? 아침 일찍 바로 회의 요청 취소하면 되니까요.”
…이 녀석, 협상가 기질이 있군. 아니, 이 경우에는 반쯤 협박이네. 하자는 대로 얌전히 안 하면 상당히 곤란해질 겁니다, 라는 말이잖아. 하지만 저쪽은 보통이 아니었다.
“흠, 어디 하고 싶은 대로 해보게. 날이 밝기 전에 탑에서 나가면 될 일이야.”
마법사는 가슴을 펴며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너무나 당당한 대답에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연구실을 찬찬히 훑어보니, 수상해 보이는 물건들의 아래에는 모두 이동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아이가 들어있는 대형 시험관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마도 추적을 피하기 위해서 한번 사용되면 지워지도록 만들었겠지. 과연, 언제든 재빨리 도망칠 수 있으니 대담하게 탑에서 연구를 진행했던 건가. 탑이 제공하는 방대한 문헌과 막대한 양의 재료는 금기의 연구를 진행하는 자로서도 발각 위험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위급할 때 연구 물품들과 함께 신속히 사라질 수단까지 있다면 거리낄 이유가 없겠지.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했군.
“……흥.”
마법사가 도주를 위해 마련한 준비를 가볍게 한번 비웃어주면서, 이동 마법진을 없애기 위한 마법을 발동시켰다. 1회성 마법진을 무효화시키는 것은 지극히 간단하지.
“Sarajyura.”
내가 주문을 외우는 순간, 마법사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은…… 웃고 있어?
“…뭐야?”
마법진은 그대로였다. 그렇다고 내 마법이 발동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분명히 제대로 걸렸지만, 저 마법진들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그렇다면….
“설마, 1회용이 아니었어?”
“물론이네. 설마 내가 유지하기도 까다롭고 매일같이 새로 그려야할 1회용 마법진을 준비해뒀다고 생각했나? 저것들은 발동되면 받치고 있는 물건을 설치된 바닥면과 함께 이동시킬 영구 마법진이네. 만약 발동시킨다면 여기에는 텅 빈 연구실과 바닥에 구멍 몇 개가 남게 되지.”
방심했다. 너무 쉽게 봤어. 마법사 세계에서 매장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탑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면 보통 준비가 아니었을 텐데, 나도 모르게 얕잡아봤다. 마법사는 나를 오만하게 바라본 다음, 시그리드를 향해 말했다.
“가능하면 자네들에게 날 이해시킨 다음 돌려보내고 싶지만, 아무래도 저 아가씨를 보니 안 될 것 같군. 우리는 여기서 헤어져야겠네. 몇 년 후에 내 연구 결과가 알려지면 자네들도 나를 이해할 수 있겠지.”
말을 마친 마법사는 이동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안 돼!”
나는 소리치며 마법사를 향해, 정확히는 그 옆에 있는 대형 시험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법진을 동시에 발동시키는 것 때문인지 마법사의 주문은 일반적인 이동 주문보다 길었고, 그 덕에 아슬아슬하게 닿을 수 있었다.
“세연!”
시그리드의 말이 들린다 싶은 순간, 발밑의 마법진이 빛을 발하더니 나는 시험관과 함께 섬광에 휩싸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낯선, 하지만 내부 배치는 상당히 낯익은 어떤 연구실에 있었다. 물론 대형 시험관을 비롯한 여러 연구 물품과, 그 마법사도 함께였다. 마법사는 찡그린 얼굴을, 다시 말하면 제법 험상궂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자네도 참 끈질기군.”
“그 점은 나도 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평소엔 이렇게까지 어떤 일에 나선 적이 없으니까.”
잠시 말을 멈추고, 옆에 있는 시험관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 안에 갇혀있는 아이를 바라보면서.
“아마도 이 아이 때문일 거예요. 이 아이는, 남 같지 않으니까. 그래서, 난 더더욱 이 일을 용납할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