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랄까, 어쩐지 다나카 요시키 선생님의 SF소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동맹군 장교 앤드류 포크 준장이 떠올랐습니다. (...)
동맹군 제 5함대 사령관 뷰코크 중장이 이젤론 요새와 초광속 통신을 연결했을 때, 통신 스크린 화면에 등장한 것은 작전참모 포크 준장의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나는 총사령관 각하의 면회를 요구했지, 귀관을 만나자고 하지 않았다. 일개 작전참모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나오다니 너무 오만하군."
노장군의 목소리는 통렬했다. 박력으로도 관록으로도 포크가 감히 따를 수 없었다. 젊은 참모는 순간 머쓱했으나 야심가답게 당당히 맞섰다.
"총사령관 각하와의 면담은 모두 소관을 통해서만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면담하시려는 것입니까?"
"귀관에게 밝혀야 할 사항이 아니네."
뷰코크도 이쯤되자 나이건 체면이건 전부 팽개쳐 버렸다. 물론 의식적이 아닌 반사적 행동이었지만......
"그렇다면 면회는 사절합니다."
"이건 작전상 용무야."
"아무리 높으신 분이라도 규칙은 준수하셔야 합니다. 그럼 이것으로 통신을 끊겠습니다."
뷰코크는 '이 새끼야, 네 맘대로 만든 규칙이 아니냐'고 쏘아주려 했으나 포크는 그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잠깐!"
끊으려는 통신을 막고 뷰코크는 할 수 없이 말했다.
"전선의 각 함대사령관들은 지금 모두 철수를 원하고 있다. 그 건에 대해 총사령관 각하의 양해를 구하려는 거네."
"철수라고요?"
포크 준장의 입술이, 노장군이 예상했던 대로 심하게 일그러졌다. 아니, 그는 몸을 바들바들 떨기까지 했다.
"용감하기로 동맹국 제 1인자이신 뷰코크 장군께서 싸워 보지도 않고 철수를 주장하시다니 이건 정말 의외군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게."
불쾌한 듯이 뷰코크의 말투였다.
"애당초 귀관들이 이따위 무모한 작전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면 무사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 책임을 자각하는 게 어떤가!"
"소관이라면 후퇴 따윈 하지 않습니다. 뭐가 무서워 패배주의자를 자칭하는 겁니까?"
불손한 그 한 마디가 노장군의 두 눈에 초신성의 섬광을 달리게 했다.
"그런가? 그럼 좋다. 내가 자리를 내어주지. 나는 이제부터 이젤론으로 귀환한다. 귀관이 내 대신 전선에 나와 함대를 지휘하라!"
포크의 입술은 일그러짐의 한계에 다다라 그 이상 더 진행되지 못했다.
"될 수도 없는 일을 그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합니다."
"불가능한 일을 고집부리고 있는 건 내가 아니라 귀관이다. 그것도 안전한 장소에서 편안하게 앉아 있으면서 말이다."
"소관에게 모욕을 주시는 겁니까?"
"호언장담을 듣는 데도 이젠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이다. 귀관은 자신의 재능을 말로써만 아니라 실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타인에게 명령을 내리기에 앞서 우선 자기 자신이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는 게 어떤가?"
포크의 야윈 두 뺨에서 핏물이 빠져나가는 소리를 노장군은 듣고 있는 듯 했다. 결코 뷰코크의 헛된 상상만은 아니었다. 젊은 참모장교의 두 눈은 초첨을 잃었으며 낭패와 공포가 얼굴 전면에 번져갔다. 이어 신음하는 듯한 비명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지켜보는 뷰코크의 시선 앞에서, 포크의 모습이 통신 스크린 아래로 무너져 내렸다. 장면이 바뀌어 우왕좌왕하는 사람들이 모습이 떠올랐으나 그 사정에 대한 설명은 아직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글쎄요."
뷰코크 곁에 서 있던 부관 클레멘테 대위도 상관의 의문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흰 가운을 걸친 군의관이 화면에 나타나 뷰코크를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야마무라 의무 소령입니다. 현재 포크 준장께선 의무실에서 가료 중이므로 그 사정에 대해 소관이 설명해 올리겠습니다."
"어떻게 된 건가?"
"전환성 히스테리로 인한 신경성 증세입니다."
"히스테리라고?"
"예. 극도의 좌절감이 흥분을 불러일으켜 시신경이 일시 마비되는 현상입니다. 15분쯤 지나면 회복이 되겠습니다만, 그동안 여러 차례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원인은 정신적인 것이므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거스르면 안 됩니다. 좌절감이나 패배감을 안겨 주면 큰일납니다. 그 누구도 그가 하는 말에 따라야 하며, 그의 뜻에 따라 주어야 합니다."
"군의관도 이상해졌군. 그거 제 정신으로 하는 말인가?"
"이것은 어렸을 때, 제멋대로 버릇없이 자란 사람들에게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자아 이상확대 증상입니다. 따라서 선악에 관계없이 자아욕망의 충족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러니 장군님께서 비례를 사과하고, 분발하여 그의 작전을 실행, 승리를 얻어내셔야 합니다. 포크 준장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행동을 하실 때 비로소 이 질환은 제거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포크 준장은 바로 저런 인물입니다. 자기 자신의 공명심에 심취하고 완벽한 흑백논리주의자이며 자신에게 반대하면 무조건 적으로 간주하지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의 발언을 보고 나니, 저 인물이 퍼뜩 떠오르더군요. ......진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