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트라이던트 작전은 실패했다.
피어와 루시퍼, 2기의 영식과 마주친 베타 팀은 그 후로도 30분에 걸친 격렬한 저항 끝에 전멸. 감마 팀은 상위괴수 Unknown과의 교전으로 마스터 나이트 3명을 포함한 27명의 기사가 사망했다. 그나마도 피어와 루시퍼가 Unknown과 합류하기 전에 알파 팀이 도착해서 함께 퇴각했기에 피해가 그 정도로 끝날 수 있었다. 알파 팀은 가장 이동거리가 길었던 대신 마주친 괴수들은 최상위 개체가 77형 정도였던 덕에 큰 피해가 없었지만, 감마 팀의 퇴각을 엄호하며 12명의 기사가 사망했다. 그나마 알파 팀과 감마 팀의 생존자 대부분이 베테랑 기사들이라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각 분함대의 호위함과 수송함들은 작전 실패와 퇴각 소식을 듣고는 알파 팀과 감마 팀을 호위하며 후퇴, 이 와중에 다시 호위함 5척과 수송함 2척이 추가로 격침당했다. 남은 기사단 인원은 최초 파견 인원의 생존자 4명을 포함하여 45명. 피어와 루시퍼를 상대로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인원이었다. 물론 각개격파를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것도 Unknown이 나타나기 전의 얘기였다. Unknown이 다루는 사상력 파동기에 숫적 우위나 각개격파 같은 것은 무의미했다. 사상력을 상쇄시키지 못하는 한, 상대가 누구든 몇명이든 순식간에 해체당할 것이 뻔했다.

"제길! 제길, 제길, 제길!!"

다니엘은 의료반에게 치료를 받으면서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연신 침대를 내리쳤다. 반동으로 자꾸 몸이 흔들리는 통에 상처가 벌어져 의료반이 난감한 기색을 띄었지만 다니엘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성간 통신은? 아직도 연결되지 않았나?!"

"그게, 아직 가디언들이..."

"빌어먹을! 되는 게 하나도 없어!"

다니엘이 터뜨리는 분통에 애꿎은 의료반만 쩔쩔매고 있었다.




AE 레니핀 탈환군, 지상군 임시 사령부.
트라이던트 작전을 위해 확보했던 돌입로도 길게 가지는 못했다. 감마 분함대가 강하하고 약 1시간 후, 돌입로를 유지하고 있던 우주함 대다수가 격침되거나 큰 피해를 입고는 위성궤도 밖으로 이탈했고, 레니핀은 다시금 외부와 단절되었다. 당연히 AE 지상군과 우주군의 연락도 두절되어 있었다. 더 이상의 추가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상군은 현재 남아있는 병력만으로 여왕 괴수를 쓰러트려야만 했다. 사령부 회의실에선 지금 대책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S-81이 이끄는 괴수들의 전력은, 전체적으로는 평균적인 레벨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영식을 제외한 상위괴수 중 최상위 등급은 5형, 그것도 현재까지 2기만이 확인되었으며 모두 기사단에 의해 격퇴되었습니다. 문제는 2기의 영식과 Unknown입니다."

정보부 장교가 보고를 하며 화면을 돌리자, 세개로 분할된 화면에 각각 피어와 루시퍼, 그리고 또 하나가 떠올랐다. 장교는 화면에 나타난 각각의 괴수들을 가리키며 설명을 이어갔다. 가장 먼저 피어의 화면이 확대되었다.

"S랭크 영식, 통칭 피어. 오로라 시스템을 이용한 고속 기동 전투가 특징으로, 근접전 및 대 기사전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노심 출력은 C클래스로, 원거리 포격과 다수의 기사에 의한 차륜전으로 에너지를 소모시킬 경우 격파가 가능하다고 판단되며, 실제로 14년전 에덴 전투에서 8명의 마스터 나이트들이 격파 직전까지 몰아붙인 일이 있습니다. 다음은..."

말을 잠시 멈춘 장교는 화면을 전환시켜, 이번엔 루시퍼의 화면을 확대시켰다.

"역시 S랭크 영식, 통칭 루시퍼입니다. A클래스의 노심 출력을 활용하여 원거리 입자빔 공격을 주 전법으로 하고 있습니다. 입자빔 가속기는 양 어깨와 대퇴부에 총 4개가 파악되었으며, 발사구는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주변의 공간을 압축시켜 단 한순간 포구로 사용하고 소멸시키는 방법을 쓰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공격에 사각이 거의 존재하지 않아 배후를 노리는 식의 공격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다만 기동능력 자체는 77형과 비슷한 수준이기에, 포위 공격보다는 소수에 의한 근접 연계 공격이 유효하다고 판단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화면이 전환되며 마지막 괴수가 스크린에 비춰졌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모두가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마지막으로, 현재까지 분석이 완료되지 않은 새로운 상위괴수, Unknown입니다. 화면으로 보이다시피..."

정보부 장교도 말을 잇기 힘든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 내용들은 어슴푸레한 절망을 확고한 것으로 바꾸어 주었다.

"인간, 기사 앤 마이어를 납치하여 괴수화(化)시켜 만들어낸 괴수입니다. 정보부에서는 임시로 클래스를 신식(新式), 개체명을 트리처(Treacher)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아린 전투에서 잃은 오른팔은 괴수의 것으로 대체되어 있고, 노심 측정 결과 체내에 B클래스의 노심이 장착...된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실제 교전한 감마 팀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현 동부기사단장 다니엘 레온하르트 이상의 실력에 청적파도 완벽하게 구사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어째서인지 공격에 적극적이지 않고, 퇴각하는 부대와 기사단을 추격해오지도 않아 피해는 오히려 예상보다 적었습니다. 오히려 아군의 피해는 루시퍼와 피어에 의한 것이 더 큽니다."

세 괴수의 사진이 사라지며 화면이 전환되었다. 이번에 화면에 떠오른 것은 여왕의 둥지를 중심으로 한 대략적인 지도였다.

"일단 트라이던트 작전으로 둥지 인근의 플랜트는 70% 가량 기능을 상실한 상태입니다. 특히 메인 제네레이터 시설은 완전히 파괴되었기에 현재는 플랜트 자체가 가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괴수들이 복구하고 있지만 완전 재가동까지는 닷새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닷새간은 둥지의 방어 전력이 보충되지 않는다는 건가. 공격하려면 그 기간 동안이겠군."

부관의 설명을 들은 지상군 사령관이 중얼거렸다. 현재 날짜는 3월 30일. 타임 리미트는 4월 4일이었다. 물론 괴수 생산이 재개된다고 해도 실제로 소모된 물량이 완전히 보충되려면 며칠 더 걸릴 테지만, 심리적으로는 생산 재개시점이 마지노선이라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저 셋입니다..."

부사령관이 침울한 표정으로 사령관의 말을 받았고, 사령관도 이내 표정을 흐렸다. 그리고 회의실 전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대 기사전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피어, 다수를 상대할 때 진짜 위력이 나오는 루시퍼, 그리고 사상력을 다루는 신식. 도대체 답이 보이질 않았다.

"피어를 잡기 위해 기사 여럿이 투입되면, 분명히 기사들을 노리고 루시퍼가 나타나겠지. 거기다 신식까지 더해진다면..."

기사가 피어와 1:1로 싸워 이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C급 노심이라고는 해도 인간 1명이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 출력이라는 점에는 변함없고, 오로라 시스템은 신체가 밀착된 상태에서 휘둘러진 검격조차 회피해낼 정도의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피어를 쓰러트리려면 다수에 의한 연계 전투만이 수단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다수가 모이게 되면 루시퍼에게는 표적이 늘어나는 것밖에 안 된다. 원거리, 전방위 동시 공격이 가능한 루시퍼가 피어와 전투중인 기사들을 노리면 이쪽은 속수무책이었다. 아직까지 기동하고 있는 전투함의 장거리 포격이라면 견제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는 어려웠고, 만약 신식이 파동기를 쏘아낸다면 기사든 전함이든 더 볼 것도 없었다.

"아니, 피어와 루시퍼까지 생각할 것도 없겠군. 밀집 대형에 신식이 파동기 한방만 날려도 전멸인가..."

"제길, 최강의 전력이 최악의 적이 될 줄이야..."

지상군 사령관은 고개를 돌려 테이블에 앉아있는 기사단 대표를 바라보았다. 지금 레니핀에 있는 기사단 최상급자는 동부기사단장인 다니엘이었지만 부상이 심해 집중치료중이었고, 회의에는 부관인 두린이 대신 나와 있었다.

"혹시 지금 기사단 인원 중에, 사상력에 대응할 수 있는 기사가 있소?"

"아니요, 제가 알기로는..."

사령관의 질문에 두린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약 20년 전, 벨치스 전에서 SS랭크의 쌍둥이 영식 크로스아이 시리즈를 격퇴하기 위해 개발된 사상 파동기 청적파(靑赤波). 기사 개인이 AB 소드 외의 특수장비 없이 사상력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한 이 파동기는 벨치스의 기적을 일으킨 열쇠 중 하나였다. 현재 공식적으로 청적파를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퇴역기사 앤 마이어 뿐. E-34 사건 이후, 프레이식 검술과 청적파는 모두 괴수가 만들어낸 기술이라는 인식 때문에 기사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기피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기사들은 그 점을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 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두 사람이 들어섰다. 상체에 붕대를 칭칭 감은 다니엘과 프레이야였다.

"단장님, 아직 상처도 낫지 않았는데..."

"지금 그런 거 신경쓰게 생겼나? 저놈들을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레니핀 탈환은 고사하고 우리 싹 몰살이라고."

두린의 말을 중간에 끊은 다니엘은 사령관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의 건들거리는 태도가 아닌 진지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사령관. 작전을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작전...? 묘수가 있소?"

"묘수가 될지, 미친 짓이 될 지는 여기 이 꼬마가 하기에 달렸죠. 도박이라는 점은 똑같습니다만."

다니엘은 그렇게 말하며 프레이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프레이야는 잠깐 표정을 찌푸렸지만 잠자코 있었고, 사령관과 부사령관, 정보부 장교는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다니엘과 프레이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셋 중에서 입을 연 것은 사령관이었다.

"레온하르트 단장, 어떤 작전인지 들려주시겠소?"

"간단합니다. 전력을 둘로 나눠서 둥지를 양쪽에서 공격해 들어가는 겁니다."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는 다니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아무생각없어 보이는 작전 내용에 다들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정보부 장교가 살짝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단장님, 지금 이 상황에선 전력을 몇으로 나누든 의미가 없습니다. 한군데 있으면 몰살당하기 딱 좋고, 분산시키면 각개격파 당하기 쉬우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제안은..."

"좀 들으쇼, 정보부 장교 나리. 둘로 나누되 인원 비율은 대략 3:1 정도로 하고, 다수 쪽이 영식 놈들을 상대하는 동안 소수 쪽이 신식과 둥지를 깨는 거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상력이 어떤 물건인지 부단장님도 모르지는 않으실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전체의 1/4만 데리고 신식을 상대하라는 말씀입니까?"

"알고 있으니까 하는 소리요. 사상력 앞에선 숫자 같은 건 완전히 무의미하지. 그러니 가장 알맞은 상대를 보내면 그걸로 끝이오. 바로 이 녀석 같은 상대를."

다니엘은 다시 프레이야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고, 회의실 사람들은 모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무언가를 떠올린 두린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단장님, 그 기사..."

"오, 이제 좀 생각났나?"

"예, 분명... 프레이야 샤테니르. 최근 10년 사이에 가장 빠른 성장을 보여줬다고..."

"혹시 이 녀석 보호자도 알고 있나?"

"예? 아뇨, 거기까지는 잘 모릅니다."

두린의 대답을 들은 다니엘은 잠깐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평소 얼굴로 돌아왔다. 두린의 기사 임명 시기를 기억해낸 것이다.

"하긴, 모르는 것도 당연하겠군. 자네가 기사가 된 게 대충 10년 정도 됐지?"

"정확히 올해로 11년째입니다."

"그래, 그래. 아무튼, 자네가 기사가 되기 전이라고 해도 벨치스 전과 아린 전의 영웅이 누군지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 두 전투라면 당연히... 그리고 지금 그 사람은 적이 아닙니까. 왜 그런... ...설마..."

거기까지 말한 두린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두린이 '지금 그 사람은 적'이라고 말했을 때 프레이야가 살기 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두린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이 녀석의 보호자가 바로 앤이다. 그리고 파동기도 쓸 수 있지. 안 그러냐, 꼬마?"

"...변형을 가하긴 했지만, 기본은 파동기의 성질 그대로니까요. 정면 승부는 힘들겠지만..."

프레이야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은 다시 한번 침묵에 휩싸였다. 하지만 아까와는 다른 성질의 침묵이었다.




30분 후, 다니엘은 회의실을 나와 임시 사령부 건물을 배회하고 있었다. 다니엘의 제안에 반대하는 지휘부 인원들은 없었고, 이후에는 인원 선정과 병력 분배의 문제가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니엘이 그 작업에 임하는 동안 프레이야는 잠시 혼자 있고 싶다며 먼저 회의실을 나섰고, 뒤늦게 프레이야가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다니엘은 나머지를 두린에게 떠넘기고 프레이야를 찾으러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에 좀 다그쳐서 이 방법을 납득시킨 후로 프레이야의 표정이 영 좋지 않았던 것이 마음에 걸린 것이다.
그렇게 프레이야를 찾아 사령부 건물을 거의 헤집고 다니던 다니엘은 2층 복도에서 낯익은 누군가와 맞닥뜨렸다.

"...뭐냐, 너 왜 여기 있냐?"

"오랜만이네요, 다니엘 님."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가진, 트렁크를 들고 있는 10세 가량의 소녀.

"아니, 오랜만이고 자시고 간에, 너 실종된 거 아니었냐? 앤이 납치당한 후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정확히는 실종이 아니라 파손된 후 레니핀 군에게 회수된 거였지만요."

A-10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지만 이따금 기계 소음이 들리는 것을 보면 상태가 좋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파손이라... 수리는 그 녀석들이 해준 모양이군."

"아뇨, 원래는 제 노심만 빼가려고 했어요."

"...아항, 네 것은 오리지널이고 양산형은 유사 노심이라 그런가. 탐날 만도 했겠는데 그래."

"그랬나 봐요. 하지만 인증 코드를 입력하지 않고 노심을 제거하면 자폭한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일단 해체는 면했죠."

"호오, 토르 그 양반 꽤나 철저한걸?"

"거짓말이었지만요. 그런 기능 없어요. 노심을 강제로 정지시켜서 폐기하는 기능은 있지만."

"......"

"어쨌든, 제 노심을 빼내는 게 불가능해지자 이번엔 절 수리한 다음 프로그램을 덮어써서 레니핀에서 운용하려고 했어요. 결과적으로는 덮어쓰기에는 성공했죠. 나중에 비상 기억장치에 백업해놨던 자료를 다시 덮어써서 원상복구 했지만요. 그 다음엔 본부 시스템을 해킹한 다음 탈출했어요."

"...너 말야, 전투용 인형 맞냐?"

"일단 기본 컨셉은 대 상위괴수용 전투 인형입니다만?"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A-10의 말에 다니엘은 어쩐지 맥이 빠졌다.

"아니... 됐다. 그보다 아까도 말했지만, 너 왜 여기 있는 거냐?"

"마스터를 찾으려고요."

A-10의 말에 다니엘은 표정을 굳혔다. 이곳으로 오기 전 레니핀 본부를 해킹했다고 했고, 레니핀 방위군 사령부에서 AE 임시 사령부까지는 하루면 오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렇다면 앤이 지금 괴수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A-10이 모를 리 없었다.

"너..."

"예, 작전에 참가해서 마스터를 되찾아 올 거에요."

"그건 너에게 입력된 명령체계에 따른 건가?"

"아니요, 저의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상황에 따라선 죽여야 할 수도 있어. 상관없나?"

"...저는, 인형입니다."

약간은 뜬금없는 A-10의 대답.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감정의지가 담겨있었다.

"괴수를 쓰러트리기 위해, 인간을 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전투 인형입니다. 하지만 마스터가 저를 전투에 사용한 것은 14년 전, 아린에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피어가 다시 나타날 때까지, 마스터는 괴수와의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를 계속 곁에 두셨습니다. 그게 단순한 자기 만족인지, 자기 기만인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있어 마스터는 둘도 없는 가족입니다. 저를 만들어주신 토르 님과는 또 다르지요. 마스터를 구하기 위해, 저는 무슨 일이든 할 겁니다. 그것이 설령, 마스터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해도."

A-10의 결의에 찬 대답에 다니엘은 미소를 지었다. 비웃는 듯한, 감탄하는 듯한 묘한 미소였다.

"이젠 거의 인간이구만. 좋아, 따라 와."

"어디 가는데요?"

"네 또다른 가족 만나러.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히든 카드가 될 녀석이기도 하고."




10분 후, 다니엘과 A-10은 사령부 건물 옥상에서 프레이야를 찾아냈다. 프레이야는 출입구 지붕에 걸터앉은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이, 꼬맹이. 여기서 뭔 청승이냐."

"다니엘 씨... A-10?!"

"오랜만이에요, 프레이야."

다니엘 곁에 서있는 A-10을 알아본 프레이야는 그 즉시 지붕에서 뛰어내려 A-10에게 달려왔고, A-10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프레이야에게 인사했다. 프레이야는 그런 A-10의 양손을 잡고 반쯤 울상인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다, 무사했구나. 정말 다행이야, 다행이야..."

어느샌가 눈물이 맺힌 프레이야의 눈을 바라보며 A-10은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부터 인간에 가까운 감정 회로를 지니고 있었던데다, 거기에 더해 14년간 쌓인 경험이 A-10을 인간과 다를 바 없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프레이야가 감정을 추스르기를 기다린 A-10은 프레이야가 눈물을 닦으며 미소를 짓자 마주 웃으며 말했다.

"얘기는 들었어요. 마스터를 만나러 가실 거라면서요."

"...그래. 일단 만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야, 꼬마.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만나서 대화로 되돌려보겠다는 생각은 포기하는 게 좋을 거다. 지난번에 마주쳤을 때 그 눈과 표정 못 봤냐? 지금 녀석은 우릴 인간, 아니 아군으로 보고 있지 않아."

프레이야의 말을 들은 다니엘이 둘의 대화를 끊고 끼어들어왔다. 프레이야의 말 한마디에 그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단번에 파악한 것이다. 비슷한 상황이 과거 앤과 프레이 사이에서도 있었기에 다니엘은 기시감까지 느끼고 있었다.

"이 참에 확실히 말해두마. 넌 분명히 녀석과 만날 거야. 만나야만 해. 하지만 거기까지야. 만나서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 녀석은 적이다. 솔직히 말해서 난 너와 그 녀석이 싸우다 누가 죽어도 상관 안 해. 네가 죽고 싶어서 나섰을지라도 신경 안 써. 하지만 넌 절대 죽어선 안 돼. 아니, 녀석에게 져서는 안 돼. 너 외에는 녀석을 상대할 사람이 없어. 네가 최후의 보루다. 네가 쓰러지는 순간이, 이 행성에 있는 모든 인간에게 사망 선고가 떨어지는 순간이야. 다시 말하지만, 너 하나 죽는 거라면 난 신경 안 써. 하지만 그게 아니니까 지면 안 돼. 만약 그럴 자신이 없다면, 아니면 녀석을 어떻게든 되돌리겠다는 망상을 품고 있다면..."

성난 표정으로 속사포처럼 쏘아붙인 다니엘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골랐다. 잠시 후 다시 프레이야를 바라보았을 때, 그 눈빛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만큼 복잡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내 손으로 널 죽인다."

다니엘의 말에 프레이야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A-10은 고개를 작게 기울였다. 다니엘은 프레이야를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방금 발언과 모순된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진심이다. 그런 나약한 마음가짐으로 나서면 어차피 죽어. 더 볼 것도 없지. 그럴 바엔 그냥 여기서 죽어버리는 게 낫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심어주지 않게 말이지. 그러니까, 싸워라. 나가서 싸워. 쓰러트려. 녀석을 정말로 구하고 싶다면, 나가서 녀석을 쓰러트려. 우선 녀석을 이기지 못하면 아무것도 안 돼. 그리고 넌 사력을 다해도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 그 점을 명심해."

말을 마친 다니엘은 한번 더 프레이야를 쏘아보고는 그대로 계단을 내려갔다. 옥상에는 오도카니 서 있는 프레이야와 그 모습을 지켜보는 A-10만이 있었다.




5일 후, 우주력 444년 4월 4일. 레니핀 현지시각 07:00. 작전명 암피스바에나(Amphisbaena) 발동.
대기권용 고속비행정 3정에 엔진 추가 개조를 실행, 추가 엔진을 실드 생성용으로만 사용하며 기사단과 병력을 태우고 둥지로 전속 비행. 투입된 병력은 기사 45명, AE 지상군 보병 5개 소대와 2족 보행 장갑차인 배틀 워커 5기.
08:12. 피어 및 루시퍼와 접촉. RH(Right Head) 팀은 일행에서 이탈, 동시에 LH(Left Head) 팀 기사 40명과 보병 4개 소대, 배틀 워커 전기 전개. 영식 2기와 교전 개시. LH 팀 리더는 동부기사단장 다니엘 레온하르트.
08:47. RH 팀, 신식과 접촉. 기사 1인과 인형 1기 전개. 기사 4명과 보병 1개 소대는 둥지 침공 속행. 신식과 교전에 들어간 인원은 기사 프레이야 샤테니르와 전투인형 A-10.

결전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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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팬픽을 먼저 올린 커뮤니티에서 저번 화를 올렸을 때, 댓글로 달린 반응들에 저도 기겁했습니다. 제가 저지른 짓이 얼마나 가공할만한 일인지 뒤늦게 깨달았던 거죠 (...)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는 법입니다. 불안정하긴 해도 일단 프레이야도 파동기 사용자니까... 그리고 앤과 프레이에겐 없었던 것도 하나 있고 말이죠. (어떤 건지는 나중에 공개 예정.)

앤의 에덴 탈출 당시 다니엘이 꽤나 개념있게 나오고 있어서, 여기서도 분위기 좀 잡게 해줬습니다. 솔직히 저 상황에서 남 기분 신경써줄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만은, 단장직을 폼으로 해먹는 건 아닐 테니까요.

A-10양 부활. A-10이 개조(?) 당했다가 되돌아온 건 '스칼렛 위저드'에서 '열한번째 다이애나' 에피소드를 차용했습니다. 쓰다보니 한번 더 읽고 싶어지더군요. 'AI 다이애나 들이 갖고 있는 오리지널 본인의 추억'이 참 묘한 기분이 들게 했죠.

제목은 처음에 폭풍 전야라고 할까 했는데, 이미 저번에 한바탕 뒤집어졌고, 이번은 살짝 쉬었다가 다시 다음화부터 또 뒤집어질 예정이니 태풍의 눈이 더 적절할 것 같아 바꿨습니다. 저 태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두고 봐야겠죠. LH나 RH 둘 중 하나라도 실패하면 완전히 끝장이라는 게 문제.

그럼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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