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 이 팬픽은 나노하 StS 이후 약 70년이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요 인물은 등장하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실비아 일행이 본부로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동이 터오고 있었다. 예상은 했지만 영락없이 철야근무한 상황. 근무 수칙대로라면 업무 때문에 밤을 새운 국원은 근무 취침이라는 형식으로 그날(밤새고 아침이 된 날) 오전 근무를 쉴 수 있지만, 실비아는 이번 작전에서 준지휘관 급이었기 때문에 보고서 제출에 쫓겨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늦게 냈다가 만약 릴스가 제출한 보고서가 먼저 올라가는 날에는 그 자의 성격을 보건데 온갖 중상모략을 당할 것이 뻔하니 최대한 빨리 완성해서 보고해야 했다.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대기모드의 바르디슈에서 수집된 현장상황정보를 꺼내 정리하고, 그 중에서 중요한 정보를 보고서에 첨부하고, 아니다 싶은 부분은 다시 쓰고 하기를 세 시간. 출근 시간이 되어 집무실에 들어온 필리아는 다크 서클을 눈 밑에 단 채 공간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실비아를 보고 기겁했다.

"지, 집무관님, 괜찮으세요?"

"아, 필리아. 어서 와요..."

"설마 밤 새우신 거에요?"

"하암... 어쩔 수 없었어요, 일초라도 빨리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 아하아암..."

입을 가리며 하품하는 실비아의 모습에 필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구석에 놓인 전기 포트의 스위치를 넣었다. 커피는 카페인이 들어있으니, 나중에 근무 취침할 사람에게 주기에는 안 좋을 거라는 생각에 서랍 안에 들어있던 코코아를 꺼내 컵에 넣었다. 잠시 후 물이 끓자 필리아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코코아를 실비아에게 가져다 주었고, 컵을 책상에 내려놓는 순간 실비아가 키보드에서 손을 떼며 기지개를 켰다.

"하우우우~ 끝났다아~ 전송까지 완료오..."

"수고하셨습니다, 코코아 좀 드세요."

"고마워요오... 아, 마시따아..."

긴장이 풀리자 졸음이 쏟아지는 듯, 발음도 불분명해지고 있었다. 감겨오는 눈을 깜빡이며 억지로 잠을 쫓으려는 실비아에게 필리아는 한숨 자는 것을 권했다.

"잠깐 눈 좀 붙이시는 게 어때요? 근무 취침 시간이니까 문제 될 건 없어요."

"하지마안... 여기 본부고..."

"그래도 쉬시는 게 좋아요. 괜히 더 버티시다가 복도에서 쓰러질지도 모르니까요. 취침실 준비할까요?"

"하아암... 그럼 부탁할게요오..."

마지막에 실비아는 거의 반쯤 졸면서 대답했고, 어쩐지 귀여워보이는 그 모습에 필리아는 속으로 살짝 웃으며 취침실에 연락을 넣었다. 자리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필리아는 여성용 취침실에서 한 자리를 확보한 다음 실비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집무관님, 자리 준비 됐... 어머나."

몇 분 걸리지도 않은 그 사이에 실비아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색색 숨소리를 내며 자는 모습은 엘리트 집무관이 아닌 십대 소녀의 모습 그대로라, 필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잠시 잠든 실비아를 바라보던 필리아는 이내 고민에 빠졌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취침실까지 옮긴담?"




에리나는 미행을 대비해 몇군데의 은신처에서 차량과 의복을 바꿔가며 이동, 회사에 출근했다. 페이의 회사인 'OVL'(OVer Limitation)은 유령회사가 아닌 제대로 된 회사였고, 회사 사람들 중 ELF와 관련있는 사람들은 최상급 임원들과 연구원 몇명 정도이기 때문에 밤새 ELF활동을 했다고 다음날 결근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나마 이동하는 차 안에서 잠깐씩 눈을 붙인 덕에 졸음은 어느 정도 가셨지만 신체적인 피로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페이의 호출을 받은 에리나는 눈가림용 서류철을 옆구리에 끼고 사장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은 채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리고 담배를 꼬나문 페이의 모습이 들어왔다. 에리나가 문을 닫는 모습을 보고 페이가 입을 열었다.

"어서와. 다친 곳은 없는 것 같아서 다행이네."

"그것보다 다리 내려요. 담배 꺼요. 창문 열고 환기시켜요. 건물 안에서 담배 피지 말라고 몇번 말해야 알아들어요?"

페이의 인사를 무시하며 에리나는 사장실 창문을 열어젖혔다. 9월 아침의 시원한 공기가 방 안에 가득하던 담배 연기를 밖으로 몰아냈다. 에리나의 불만섞인 시선을 받은 페이는 다리를 내리고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실패했다고? 게다가 피해도 꽤 크다고 들었어."

"사람이 지적하면 조금이라도 반성하는 기색을 보여봐요... 뭐 그건 넘어가고. 윗대가리는 도망, 추적하려다 전투에 휘말렸고, 투입됐던 전투반은 나 빼고 전부 사망 혹은 중상. 즉사한 건 한명이었는데 지금쯤이면 더 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볼프 부상이 심각했으니까."

"대체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정확한 건 몰라요. 추적하려는데 갑자기 숨어있던 창고로 포격이 날아들었는걸요. 들킨 줄 알고 무장 갖추고 뛰쳐나갔더니 녀석들이랑 관리국이 대판 싸우고 있는 한복판이고."

"노리고 쐈는지 어떤지도 잘 모른다는 소리네."

"그렇네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빗나간 공격이 우연히 우리쪽으로 날아든 걸지도 모르겠어요."

"나 참,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야말로 길가다가 뒤로 넘어졌는데 코가 깨지는 격. 페이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잠시 그러고 있던 페이는 에리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아, 그러고보니 너 이번에도 레이징 하트 막 휘둘렀지?"

"그게 내 방식인걸요."

"몇번이나 말하는데, 레이징 하트는 암드 디바이스가 아니라 인텔리전트 디바이스라고. 타격용이 아니란 말이야."

"그래서 개조도 많이 했잖아요?"

"근본적으로 강도의 차이란 게 있잖니... 연구실에 가서 메인터넌스 받도록 해. 내가 연락해둘게."

일방적으로 말을 마친 페이는 연구실로 내선을 연결하면서 에리나에게 나가라는 손짓을 했다. 억지로 떠미는 느낌에 에리나는 볼을 조금 부풀리며 사장실을 나섰다. 그대로 본사 지하에 위치한 디바이스 연구시설로 향한 실비아는 연구실 중 하나의 문 앞에 섰다. '제4연구실, 타미노 마치니'라고 쓰인 문을 열자 마침 디바이스를 분해하고 있던 남성 연구원이 고개를 들었다.

"아, 어서와 에리나. 페이에게서 온다는 얘기 들었어."

"바쁠 텐데 미안해요, 타미노. 괜찮다는데 페이가 자꾸 떠밀어서."

"아니야, 이런 경우엔 페이의 말이 옳아. 실전에 자주 투입되는 디바이스는 그만큼 빨리 마모되는데다 너와 레이징 하트는 특히 전투 방식이 거치... 격렬하니까."

"그냥 거칠다고 말하셔도 돼요."

미안한듯 웃는 타미노에게 에리나가 손목에 걸린 붉은 구슬, 레이징 하트를 꺼내 내밀었다.

"기왕 하는 거, 확실하게 해주세요."

"걱정마. 자, 그럼 시작해볼까 레이징 하트?"

『잘 부탁합니다, 타미노.』

"끝나면 연락주세요. 레이징 하트, 나중에 봐."

"응, 알았어." 『나중에 뵙겠습니다, master.』

벌써부터 메인터넌스 준비에 바빠 자신을 보지도 않고 인사를 받는 타미노의 모습에 에리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타미노는 다 괜찮은데 디바이스 정비만 하게 되면 너무 몰입한다는 흠 아닌 흠이 있었다. 그렇다고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고, 또 디바이스 제작이나 개량에는 흥미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갑자기 이상한 기능이 추가된다거나 하는 일은 없어서 에리나도 별 걱정없이 정비를 맡기고 있었다. 에리나는 부산스럽게 장비들의 전원을 올리는 타미노의 모습을 뒤로 하고 연구실을 나섰다.




그날 퇴근할 무렵, 에리나는 타미노에게서 연락을 받고 다시 연구실로 향했다. 메인터넌스가 빨리 끝났다고 생각하고 연구실로 들어선 에리나에게 타미노는 겸연쩍은 얼굴을 하며 레이징 하트를 내밀었다.

"저기, 미안한데 정비는 안 하고 기능 점검만 조금 했어."

"네? 왜요?"

"그게, 부속 일부 교체 정도로 끝날 상황이 아니라서 말이야. 기초 프레임에까지 충격이 누적된 상태라 본격적으로 오버홀 해야할 것 같아. 그리고 여기 설비로는 오버홀은 무리니까, 시간 내서 '그곳'에 가보는 게 좋을 거야."

"그렇게 심해요?"

"음~ 내 기억으로는 마지막으로 메인터넌스 받았던 게 지난 3월, 그러니까 반년 전이지? 거리를 두고 싸우게 되는 지팡이형 디바이스보다 근접전을 주로 하는 암드 디바이스 같은 종류가 더 피로가 빨리 누적되기 마련이고, 특히나 레이징 하트는 암드와 인텔리전트의 부속이 동시에 쓰이고 있기 때문에 부속간의 균형도 중요한 아이거든. 앞으로는 한달에 한번은 정비받는 습관을 들여. 그게 너에게나 레이징 하트에게나 좋으니까."

"그랬군요... 미안, 레이징 하트. 내가 신경을 못 썼구나."

『괜찮습니다, master. 전 지금 당장이라도 실전에 나갈 수도 있어요.』

"레이징 하트 양, 허풍은 그만. 상태 안 좋은 거 아는 사람 앞에서 그런 소리 하는 것도 실례야?"

『그도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타미노, master.』

"아니, 내가 더 미안해. 너무 부담을 줘서."

『Master...』

에리나와 레이징 하트의 대화를 듣던 타미노는 못 말리겠다는 표정을 짓더니, 손뼉을 쳐 주의를 끌었다.

"자, 자. 이제 그럼 그만 돌아가주시겠습니까? 주인과 디바이스의 아름다운 모습은 댁에 돌아가서 계속 연출해주세요."

타미노의 말에 반쯤 쫓겨나듯 연구실 밖으로 나온 에리나는 그대로 사장실로 가서 페이와 함께 레이징 하트의 오버홀 예정을 잡았다. 오버홀 시작 예정일은 약 2주 후가 되었다.




작전이 있은 후 일주일, 실비아는 그 동안에 후속 보고서를 두번 더 작성해서 제출했다. 현장상황정보를 몇번씩 재생해서 최초 보고서에서 놓친 부분을 추가하고 분석실에서 올라온 로스트 로기아에 대한 분석 결과도 넣다 보니 보고서의 분량은 거의 두배가 넘게 늘어나 있었다. 전자 문서로 보고하니 망정이지, 만약 종이로 출력했으면 두께만도 상당한 분량이 되었을 것이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작전은 일단 실패 취급 받는 것은 면했다. 하지만 체포 대상 중 하나였던 테러단체의 간부들은 모두 도주했고, 게다가 동원된 무장대 인원 중 1/3이 사망, 1/3은 최소 반년의 집중치료가 필요한 중상을 입었다는 사실 때문에 릴스와 실비아는 첫 보고 회의 석상에서 상당한 질책을 받았다. 공개적인 장소에서 처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징계는 피할 수 없다고 봐야 했다.
작전 수행일에서 2주 후, 징계 통보를 겸한 최종 보고 회의가 열렸다. 3차 보고서에서 추가된 사항은 분석실에서 보내온 로스트 로기아에 대한 최종 분석 결과 뿐이었지만, 그 내용이 문제였다.

"1, 2차 보고서에 실려있는 대로, 임시 명칭 '매드 퍼플'의 당 로스트 로기아는 고농도의 마력 결정체라는 사실과 자연 상태에서도 일정량의 마력을 방출한다는 점,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여 마력 방출량이 조절된다는 점이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매드 퍼플과 물리적으로 접촉한 국원이 비살상 설정을 해제한 이유, 또한 동료들을 공격하려 한 이유는 규명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전에 매드 퍼플의 마력을 사용하던 범인 역시 살상 설정이었지만 조사 결과 자신의 의지로 처음부터 비살상 설정을 해제했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어째서 국원이 비살상 설정을 해제했으며 동료들을 표적으로 삼았느냐는 점입니다."

실비아는 콘솔을 조작해서 회의실 전면 스크린의 내용을 바꿨다. 화면은 결정체 형태의 로스트 로기아와 그에 관련된 수치에서 그래프로 교체되었다.

"이틀 전 분석실에서 보내온 분석 결과입니다. 생체 실험 결과, 매드 퍼플이 방출하는 마력에 신경계에 이상자극을 가하는 파동이 섞여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신체에 작용하는 보조 마법, 속도 증가나 근력 증가등의 마법은 단순히 근육의 힘을 늘리는 것에서부터 엔돌핀이나 아드레날린 등의 호르몬을 과다분비시키는 것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그러니 마력이 신경계에 영향을 주는 일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 그 파동은 지극히 미약한 것으로, 초보적인 대마법 처리로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체와 직접 접촉할 경우 말초신경을 통해 파동이 침투하여 전신으로 퍼집니다. 확인된 바로는 최장 1분이면 뇌 신경계에 영향을 발생시키며, 부상의 고통 등으로 인해 접촉자의 정신 상태가 만전이 아닐 경우 이 시간은 더욱 단축될 수 있다고 합니다. 작전 당시 접촉한 국원의 장갑은 손가락이 드러나는 종류였고, 이 때문에 매드 퍼플을 확보할 때 직접 접촉이 발생했습니다. 당 국원의 이상 행동은 이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실비아는 다시 화면을 넘겼다. 이번에 나타난 것은 사진이나 그래프가 아닌 문자 데이터였다.

"무한 서고에 이러한 특성을 가진 물체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고, 3일 전 관련 정보를 제출받았습니다. 이에 의하면 매드 퍼플은 약 270년 전 제29무인세계에 아직 사람이 살던 시기의 물건으로, '광전사'를 만들기 위해 제작된 코어라고 합니다. 당시 제29무인세계는 장기간에 걸친 전쟁 중이었고, 이로 인해 인구가 급감하여 병력 확보가 어려워지자 민간인을 강제로 징집하여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자연히 미숙련병은 기존 병사들보다 빠르게 소모되었고, 이러한 훈련 부족에 의한 병력 손실을 메꾸기 위해 이성을 억제하고 전투에 충실하게 만드는 '광전사 프로젝트'가 개시되었습니다. 이 이상의 자료는 해당 세계가 완전 무인화되며 함께 소실되어 존재하지 않습니다만, 이것만으로도 매드 퍼플의 위험도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작전 당시 또다른 매드 퍼플로 추정되는 동일한 외형의 로스트 로기아 1개가 테러 집단의 손에 넘어간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2급 수색 지정을 요청합니다."

보고가 끝나자 회의실 조명이 켜졌다. 하지만 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의 표정은 밝아질 줄을 몰랐다. 여러모로 골치아픈 상황이 된 것이다. 잠시간의 침묵을 깨고 간부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디사이플 중위, 그 매드 퍼플에 내재된 마력은 대략 어느 정도인가?"

"분석 결과에 따르면 S랭크의 마법까지 무리없이 구성할 수 있다고 하며, 그 이상의 고출력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폭발 술식을 구성할 경우에는 위력의 상한선 추정이 어렵습니다."

S랭크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력량을 폭발로 바꾼다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최소한 거리 하나는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제대로 된 폭발식까지 더해진다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좋아, 매드 퍼플에 관한 것은 며칠 안에 정식으로 공문을 내겠네. 그러면, 다음은 작전 중 발생한 문제들에 대해서인데..."

에르트 본부장 트론이 실비아와 릴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2주간 진행된 사문회와 보고서 검토, 관련 회의를 거친 에르트 본부의 정식 결정이 나올 차례였다.

"작전 지휘관 릴스 플리핀트 대위와 부지휘관 실비아 T. 디사이플 중위 양자에게 모두 책임이 있으나, 작전수행기록을 분석한 결과 플리핀트 대위의 지휘력 및 현장대응력 부족이 주원인이라 판단되어 해당 장교는 2계급 강등, 6개월 감봉의 징계를 받는다. 또한 디사이플 중위는 명령불복종 및 적 도주 방조가 확인되었으나 명령불복종은 지휘관의 능력 부족, 적 도주 방조는 극심한 아군 피해로 인해 불가피한 것이라 판단되어 6개월 감봉의 징계를 받는다. 이의 사항은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제출하도록. 그 외의 수단을 통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트론의 말에 릴스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항의하려고 했지만, 트론의 마지막 말에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그 표정은 여전히 벌레씹은 얼굴이었다. 반면 실비아는 자신의 징계가 생각보다 가볍다고 생각했다. 명령불복종에 이적행위까지 덧붙어 최소한 계급 강등은 당하지 않을까 했던 것이다. 테러 대책부의 안하무인 행동에 고위 장교들도 불만이 많았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는 여기서 종료하지. 다들 수고했네."

트론은 회의실을 나가며 실비아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를 본 실비아는 자신의 징계가 가벼운 것이 트론의 입김이 작용한 때문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하지만 실비아의 기억에는 굳이 트론이 자신을 도와줄 만한 이유가 없었기에 금방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회의실을 나서 집무실로 향하는 도중에 휴대전화가 울리자 실비아는 근처의 휴게실로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상대는 에리나였다.

"에리나, 어쩐 일이야?"

- 목소리 좀 들어볼까 해서 전화했지. 요즘 만나기는커녕 전화도 못 했잖아.

"아, 미안. 요새 일이 바빴거든. 쌓인 일거리가 많아서 여유가 없었어."

- 부임한지 두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밀려있어?

"그런 게 있어요. 자세한 내용은 대외비니까 그 얘기는 여기서 끝."

- 에~, 치사해.

"여긴 엄연한 공공기관이라고. 그런 거 일일이 말했다가 언제 어디서 문제 생길지 몰라."

- 네, 네. 원칙주의자 실비아 님이시니 어련하시겠습니까.

전화기 너머로 입을 삐죽 내밀고 있는 에리나의 모습이 떠올라 실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웃을 뻔 했다.

"그만 해. 그건 그렇고 용건은 뭔가, 에리나 군?"

- 아, 다름이 아니라 나 며칠 후에 출장 나가거든. 뭐 선물이라도 사다줄까 해서.

"출장? 지사나 공장 둘러보러 가는 거야?"

- 아니, 지사고 뭐고 할 것 없이 우린 건물이 본사 건물 하나야. 이번에 갈 곳은 기술 제휴하고 있는 다른 회사.

"흐음~, 어딘데?"

- 파리우드. 비행기 시간만 무려 15시간이야. 게다가 중간에 갈아타기까지 해야된대. 생각만 해도 피곤하다, 야.

파리우드는 에르트 행성을 기준으로 에르트 시(市)의 완전히 반대편에 위치한 도시로, 에르트 시와 함께 행성 에르트의 2대 도시이기도 하다. 70여년 전만 해도 3개 도시가 포함되어 5대 도시로 유명했지만 관리국과 에르트 간의 전쟁 끝에 에르트를 제외한 4개 도시가 폐허가 되었고, 그 중 복구된 것은 파리우드가 유일하며 그나마도 기존 도시가 있던 지역의 외곽에서 신도시로 시작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파리우드는 이름만은 오래 되었지만 실상은 신흥도시와 다를 바 없는 곳이다.

"힘들겠다..."

- 그래서, 원하는 선물은 있어?

"거기가 뭘로 유명한지도 모르는데 원하는 게 있겠니? 그냥 괜찮아 보이는 걸로 하나 부탁할게."

- 그것도 그렇구나. 알았어, 인상적인 걸로 하나 살게.

"...인상적인 건 좋지만, 충격적인 건 사양할게."

- ...칫.

에리나가 아쉽다는 듯 혀를 차고 잠시 동안 둘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조금씩 쿡쿡 거리다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어쩌면 옛날에 이렇게 농담을 주고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하하하, 아~, 오랜만에 개운하게 웃었네. 덕분에 꿀꿀했던 기분도 풀렸어."

- 무슨 일 있었던 모양이네.

"뭐, 조금은. 그래도 해결된 참이니까 신경 안 써도 돼."

- 그래, 그러면 선물은 무난한 걸로 한번 찾아볼게. 너무 기대는 하지 마?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오고."

- 응, 그러면 갔다 와서 다시 연락할게. 그때 봐.

"그래, 돌아오면 그때 다시 통화하자. 그럼 끊을게."

- 응, 안녕.

삣 소리와 함께 통화가 끊어졌다. 실비아는 웃느라 눈꼬리에 작게 맺힌 눈물을 닦으며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창밖의 하늘이 유난히 푸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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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VL(OVer Limitation)

페이가 사장으로 있는 디바이스 관련 업체.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제작한 디바이스의 성능이 우수해서 지명도가 높다. 시공관리국 에르트 본부에서 디바이스 제작을 의뢰해오는 경우도 있다.

ELF 조직 내에서는 전투반이 사용하는 디바이스를 담당하며(PA는 또 다른 업체에서 담당), 회사 사람들 중 ELF와 연관이 있는 사람들은 최상급 임원들과 비서실 멤버, 그리고 연구원 중 일부들 뿐. 다른 사원들은 모두 일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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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편입니다. 이번 편도 쉬어가는 느낌의 내용...

회사 명칭을 이리저리 바꿔보다가 한계 돌파라는 느낌으로 바꿨습니다. ...뭔가 전자장비 업체 이름과는 안 맞는 것 같지만 (...)
로스트 로기아는 꽤나 위험한 녀석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 쓸 때만 해도 저 정도로 위험도 높은 녀석 아니었는데... 나중에 또 등장할지 어떨지.

그럼 다음 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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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노기 하프 서버 : 실피리트 데레스테 : Sylphirit 소녀전선(中) : Sylphirit 소라히메(日) : Sylphirit 퍼즐 앤 드래곤(한) : 569,733,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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