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 이 팬픽은 나노하 StS 이후 약 70년이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요 인물은 등장하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ELF 전투반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전투가 재개되었다. 격돌 직전에 국원들은 아슬아슬하게 배리어 재킷을 PA로 변경했고, 반응이 늦어 미처 장착하지 못한 사람들은 동료들이 엄호해주는 사이 무사히 전환할 수 있었다. 전투 양상은 소속으로 보면 3파전이었지만, 실제로는 ELF 단원과 대치 중인 국원의 뒤에서 테러리스트가 공격하는 식의 연계 아닌 연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본래 테러리스트 집단을 무너트리는 게 목적이었던 만큼, ELF 단원들은 오해받기 딱 좋은 지금 상황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이 놈들, 이젠 테러 집단과도 손을 잡은 거냐!"

"아니야! 우리 목적도 저 놈들 때려부수는 거였다고!"

"거짓말 마라!"

게다가 테러리스트에게 국원 몇명이 당해서 쓰러지고 나니 대화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적으로 규정되고 있으니 대화가 통할 여지가 거의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답답한 건 답답한 것이다. 그렇게 또 한명의 국원이 ELF 단원과 맞붙다 테러리스트의 기습에 전투불능이 되는 순간이었다. 네명의 국원을 상대로 이리저리 빠져나가던 마녀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더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고, 필사적으로 마녀를 쫓던 국원들도 마녀의 이상한 행동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어 동작을 멈췄다. 다음 순간, 마녀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변조 장치를 통해 나오는, 기계적인 느낌이 섞인 목소리였다.

"모두 피해!"

말하기가 무섭게 마녀는 자신의 앞에 서 있던 국원에게 돌진, 국원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 허리를 붙잡고 고속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다른 두 국원은 그 모습에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뒤쫓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뭐가 있는지 미처 확인할 틈이 없었다.

"이런 젠장!"

"도망쳐! 휘말리면 끝장이다!"

"이런 건 예정에 없었잖아!"

"시꺼! 얼른 튀어!"

마녀의 외침을 들은 ELF 단원들은 위쪽을 힐끗 바라보더니 맞서고 있던 국원들을 무시한 채 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마스크에 가려져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 얼굴들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왜 그러는지 궁금해져 위쪽을 바라본 국원들은 경악했다. 무수한, 그야말로 무수한 숫자의 마력 칼날이 허공에 떠 있었던 것이다. 그 칼날들은 모두 아래쪽, 관리국과 ELF의 전투 현장을 향하고 있었다.

"전원 대피!"

그 마력 칼날 무리의 중심에 로스트 로기아를 쥔 마도사가 있는 것을 본 실비아는 대피 명령을 내렸다. 머릿속에선 릴스가 적전 도주니 뭐니 하면서 아우성이었지만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잠시 후, 수많은 마력 칼날이 땅으로 내리꽂혔다.

"우와아악!"

"커헉!"

"꺄아악!"

"으아앗!"

마력 칼날은 땅에 격돌하며 그대로 폭발했고, 굉음과 진동과 충격파가 국원들과 ELF 단원들을 덮쳤다. 흙먼지가 걷힌 후, 몸을 일으키며 상황을 파악한 실비아는 암담한 심정이었다. 24명의 국원 중 절반이 중상, 게다가 그 중 상당수는 당장 집중 치료가 필요한 치명상이었다. ELF 단원들의 움직임을 보고, 그 다음에 공격을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였기 때문에 미처 공격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거기다 방금 전 공격이 살상 설정이라는 점도 단단히 한몫 했다. 반면 테러리스트들은 아까 간신히 떨어트린 한명을 빼고는 모두 상처 하나 없는 상황이고, 게다가 그 중 한명은 방금 전 공격을 가한 자였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로스트 로기아의 마력을 이용하고 있는 만큼 언제든 다시 쓸 수 있다고 봐야 했다. 여전히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릴스의 염화를 무시한 채, 테러리스트를 견제하며 부상자 후송을 지시하던 실비아의 눈에 ELF 단원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젠장, 일이 더럽게 돌아가는구만."

"대장, 장과 안톤이 당했어요!"

"쳇... 운이 없으려니까..."

"뭘 그리 호들갑이야, 이 정도론 안 죽는다니까..."

"빌어먹을, 이거 꽤 심한데. 리온, 전송시켜."

"예, 대장."

ELF 전투반의 대장은 리온이라는 사내를 시켜 중상자를 전송시키는 참이었다. 만약을 대비해 합류 지점 같은 곳에 미리 대기하고 있는 인원들이 있을 터였다. 동료들이 전송되는 것을 확인한 ELF의 대장은 고개를 들어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테러리스트들을 한번 보고는, 시선을 돌려 실비아와 눈을 마주쳤다. 바이저에 가려서 정말로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지만 실비아가 잠시 굳어있자니, 그에게서 역시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봐, 국원 아가씨."

"네? 저, 저요?"

"그래, 거기 당신. 상황이 안 좋으니 잠깐 손 잡지 않겠어?"

손을 잡자고? 악수하자는 건가? 아니면 나란히 손잡고 걷자는 건가? 의외의 전개에 실비아는 잠시 현실도피에 빠졌지만, 재차 말을 거는 ELF 대장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쪽도 부상자가 많은 것 같고, 우리도 2명이 당했어. 하지만 저 놈들은 이제 겨우 한놈 떨어졌지. 이번만이라도 협력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무시해라, 디사이플 중위! 저 놈들은 범죄자다! 죄인과 협력한다니 어불성설이야!]

시끄럽게 떠드는 릴스를 무시하며 실비아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ELF도 관리국에게는 체포 대상이지만, 최소한 지금 진행중인 작전은 ELF가 목표가 아니라 테러리스트와 밀수범이었다. 밀수범은 이미 다 잡았고, 테러리스트는 우두머리는 놓쳤지만 그 일당이 남아있는 상태. 하지만 지금 있는 인원으로 체포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24 : 7이 단 일격에 12 : 6, 게다가 다시 네명이 동료 후송으로 빠져서 실제로는 8 : 6이니 숫적 우위도 언제 역전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실비아는 고개를 들어 테러리스트 마도사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허공에 뜬 채 오만하게 실비아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마치 '언제든 밟을 수 있지만 어디까지 발버둥치는지 한번 봐 주겠다'라고 하는 듯했다. 그 중 몇몇은 자기들끼리 시시덕거리기까지 했다. 주객전도라고 할까, 고양이 쥐 생각해주는 격이라고 할까.
어쨌든 입장이 사실상 역전되었다고 판단한 실비아는 옆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무장대 소대장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실비아가 자신을 보자 소대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지금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소대장이 동의한 것을 확인한 실비아는 ELF의 대장에게 대답했다.

"좋아요, 이번 한정으로 협력하죠."

[무슨 소리인가, 디사이플 중위! 이적 행위다! 자네 행동, 전부 상부에 보고하겠어!]

또다시 날아드는 짜증스러운 릴스의 염화에, 결국 실비아도 폭발했다. 실비아는 그때까지 참고 있던 화를 있는대로 쏟아냈다.

[시끄러워요. 닥쳐요. 입 다물어요. 찌그러져 있어요. 애초에 당신이 멋대로 작전 목표를 바꾸는 짓거리만 안 했어도 이 지경까진 안 됐어요. 처음부터 저 마도사만 노렸으면 피해가 이렇게 커지진 않았을 거라구요. 나야말로 당신의 언행을 전부 보고할 테니 각오해둬요. 그리고 당부하는데, 이제 집중해야 되니까 상황 끝날 때까지 염화 걸지 말아요. 보내도 안 받아요.]

한바탕 쏘아붙인 실비아는 염화를 끊자마자 제라프의 염화 차단 기능을 활성화시켰다. 이전까지의 관리국 PA에는 없었던 기능인데, 적과 대치 중 염화에 의한 혼란 유발이 몇차례 보고된 이후 추가된 기능이다. 대신 기본적으로 무선 통신 장치가 헬멧에 장비되어 있었는데, 실비아는 그것도 무장대와의 회선은 유지한 채 지휘 차량과의 회선만 끊었다.

"좋아, 좋아. 그럼 이번 한번만이지만 잘 부탁해, 국원 아가씨. 난 '이반'인데... 저 로스트 로기아 쥔 녀석 좀 맡겨도 되겠지?"

"자, 잠깐만요. 설마 나 혼자 맡으라구요?"

"응? 왜 그렇게 놀라? 자신없어?"

"지, 지금 그런 농담이 나와요?!"

실비아의 흥분한 목소리에 이반은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아, 걱정 마. 우리 쪽에선 나랑 엘즈리온이 나설 거니까."

"엘즈리온?"

"관리국에서 검은 마녀라고 부르는 우리 귀염둥이."

이반의 말에 마녀가 고개를 홱 돌리며 날카로운 기세로 말했다. 트윈 테일의 갈색 머리카락이 허공에서 춤을 췄다.

"한번 더 그 소리 하면 그 땐 대장도 때려눕힐 겁니다."

"하하, 농담이야 농담. 너무 과민반응 하지 말라구."

이반이 웃으며 마녀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는 모습에 실비아는 어이가 없었다. 물론 동료니까 저렇게 친근하게 대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실력차가 큰 사람이 상대라면 거리감을 느끼는 것이 보통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적이 눈앞에 있는 상황이니 여유는 더더욱 없을 텐데 저런 식이라니, 이반이라는 사람은 통이 크거나 간이 배밖으로 나왔거나, 그 둘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반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다시 말했다.

"자, 그럼 저 녀석에게 다굴이 뭔지 보여주자구. 그쪽도 두세명 정도 부탁해."

"알았어요. 소대장, 도와줄 거죠?"

"물론입니다, 집무관님."

"좋아, 믿겠어. 그럼 가자!"

이반의 외침과 함께 다시 전투가 시작됐다. 로스트 로기아를 가진 마도사를 상대하는 인원은 관리국과 ELF에서 한명씩 더 가담해서 현재 6명, 이쪽을 뺀 다른 곳은 5+3 : 5. 아슬아슬한 우위였다. 게다가 실비아 측이 맡은 마도사는 전형적인 포격형에 방어마법까지 단단해서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타격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주의를 돌려서 방금 전과 같은 광역 마법을 못 쓰게 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대론 끝이 없는데..."

"서둘러, 다른 쪽이 정리되면 또 아까처럼 될 거야!"

이반의 초조한 목소리에 실비아는 무슨 소리인가 했지만, 곧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지금 집단전이 벌어지고 있는 쪽이 마무리 된다면, 그 전투가 어느 쪽이 승리하든 상관없이 저 마도사는 광역마법을 퍼부을 수 있었다. 만약 테러리스트들이 이긴다면 녀석들이 피한 다음 쏟아부으면 되고, 반대가 된다면 역시 더 거리낄 것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실비아는 전신에 오한이 달리는 것을 느꼈다.

"그렇겐 안 돼!"

『Sonic move.』

실비아는 소닉 무브를 써서 단숨에 마도사에게 접근한 다음 도끼 형태의 바르디슈를 휘둘렀지만, 중간에 카앙 하는 소리와 함께 배리어에 막혀버렸다. 배리어를 전개하는 모습을 따로 보이지 않았고 그럴 틈도 없었는데 언제 펼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재차 바르디슈를 휘두르려던 실비아는 배리어 안쪽에서 마도사가 포격 마법진을 전개하는 모습을 보았다.

"서, 설마?"

"위험해!"

『Phantom rush.』

번개처럼 나타난 마녀가 실비아를 낚아챈 것과 거의 동시에 적 마도사의 포격이 발사됐다. 하지만 실비아는 살상 설정의 포격을 정통으로 맞을 뻔했다는 사실보다 적이 배리어를 전개한 채 포격을 날렸다는 사실에 더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마법 술식 구축에 뛰어나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이건 사기잖아!"

실비아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적 마도사는 피식 웃었고, 그게 더욱 화를 돋웠다. 이성을 잃은 실비아는 회피 기동조차 없이 돌격해 들어갔고, 소대장은 사색이 되어 실비아를 쫓았다. 실비아가 무작정 날아오는 모습을 본 마도사는 디바이스로 원을 그리듯 한바퀴 회전했고, 디바이스의 첨단부가 지나간 자리에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링이 떠올랐다. 곧이어 그 링 표면 곳곳에서 마력이 응축되기 시작했고, 뭔가 불길함을 느낀 실비아와 소대장이 제자리에 멈추는 순간 마도사는 디바이스를 곧추 세우며 외쳤다.

"리볼빙 터렛(Revolving turret)!"

그와 동시에 링에서 16방향으로 포격이 쏘아졌다. 그것도 한번으로 그치지 않고 조금씩 각도를 바꿔가며 세 차례나 더. 심상찮은 모습에 미리 대비하고 있던 실비아 쪽은 그나마 피해가 적었지만, 다른 테리러스트들을 상대하고 있던 국원들과 ELF 단원들은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고스란히 휩쓸렸다.

"크아악!"

"아아, 아아아! 팔, 내 팔!"

"크... 커헉! 쿨럭, 쿨럭!"

순간적으로 실드를 펼쳐 치명상만은 피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이 방비도 못한 채 당해 지상은 온통 피바다가 되었다. 복부를 관통당한 사람, 팔이 떨어져나간 사람, 심장이나 머리를 꿰뚫려 절명한 사람... 소대장과 이반마저도 실드를 완전히 전개하지 못하고 각각 왼팔과 왼다리를 당해 사실상 전투능력 상실. 참담한 심정으로 상황을 살피던 실비아는 다른 테러리스트들도 쓰러져 있는 상황에 경악했다. 저 마도사는 피아조차 불문하고 마구잡이로 쏘아댔던 것이다. 자신이 저지른 무자비한 학살의 결과를 보면서, 마도사는 즐겁다는 듯이 웃었다. 사람들은 미처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의 눈빛에는 광기가 가득했다.
으스러져라 이를 가는 실비아를 진정시키려는 듯 바르디슈가 말했다.

『Sir, 우선 마음을 가라 앉히십시오. 흥분해선 될 일도 안 됩니다.』

"바르디슈..."

『냉정해지십시오.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동료들이 위험해집니다. 침착하게 대응해서 가능한한 빨리 끝내야 합니다.』

"후우... 알았어. 거기 마... 아니, 엘즈리온이라고 했던가?"[당신 고속 기동이 특기인 것 같으니 저 자 주의를 끌어줘. 그러면 내가 어떻게든 배리어를 무력화시킬게.]"잘 부탁해."

육성과 염화를 섞은 실비아의 말에 마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른 속도로 날아올랐다. 직선적인 움직임이었지만 마도사가 조준하는 순간 궤도를 바꾸는 것을 반복하면서 확실히 마도사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A.C.S 드라이버 온!"

『A.C.S driver on. Phantom rush.』

3미터 거리까지 접근한 마녀는 디바이스의 고속돌격장비를 가동하는 것과 동시에 마법으로 고속 접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마도사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하앗!"

힘껏 내리치는 디바이스의 창머리 한켠이 전개되며 추진장치가 돌출되어 마력을 뿜어냈다. 휘두르는 힘에 가속력이 더해지며 충격량은 몇배로 증가했다. 콰앙 소리와 함께 일순간 배리어가 일그러지는 것이 마녀의 눈에 들어왔다. 배리어 계열은 구체형으로 형성되어 전방위 방어를 위한 것이고, 또한 튕겨내는 것이 아닌 막아내는 용도이기 때문에 강도 자체는 그다지 강하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지금 마녀의 공격으로 인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압력이 약해지면 원상복귀 되겠지만 적어도 마도사의 배리어를 뚫을 가능성은 보였다. 거기까지 생각한 마녀는 마도사가 공격 마법진을 구성하는 것을 보고 서둘러 물러섰다. 그냥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조금 전 사용한 고속기동마법을 다시 써서 이탈과 동시에 다른 방향에서 디바이스를 휘둘렀다.

"이야압!"

다시 한번 커다란 충돌음이 들리며 이번엔 배리어의 측면이 찌그러졌다. 배리어의 강도가 약해진 듯, 디바이스가 파고들어가는 깊이가 아까보다 더 깊었다. 기회였다.

"좋았어, 큭?!"

마녀는 한번 더 방향을 바꿔 디바이스를 꽂아넣을 생각이었지만 포기하고 몸을 빼야만 했다. 어느샌가 완성된 유도조작탄 여덟발이 마녀를 노리고 날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칫, 성가시게!"

다시 고속기동마법으로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그것조차 어려웠다. 피할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마법탄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제자리에서 고작 1m 정도 움직이며 공격을 피해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마녀는 속으로 이를 갈며 마도사를 노려보았고, 때마침 대형 포격 마법을 준비하던 마도사와 눈이 마주쳤다. 이성이 사라지고 살기와 광기만 남은 그 눈에 마녀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마도사의 포격 마법이 완성되었다.

『Scythe slash.』

"하아아!"

마녀가 꼼짝없이 마도사의 포격에 휩쓸리려는 찰나, 마도사의 뒤에 나타난 실비아가 절단 마법이 걸린 바르디슈로 배리어를 내리쳤다. 아니, 갈랐다. 배리어가 찢어진 것을 느낀 마도사는 당황하며 자리를 피했고, 유도조작탄의 제어가 허술해진 틈을 타 마녀도 포격을 피할 수 있었다.

"플라즈마 스매셔(Plasma smasher)!"

거리를 벌리는 마도사를 놓칠세라 실비아는 추가타를 날렸지만, 금방 침착을 되찾은 마도사의 실드에 막혀버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실드는 방어력도 뛰어나고 전개도 빠르지만, 전방에만 형성되기 때문에 등 뒤는 고스란히 노출된다. 실비아는 그것을 노렸던 것이다.

"스피어 스트라이크(Spear strike)!"

"크아악!"

순식간에 마도사의 뒤로 파고 든 마녀는 인정사정없이 디바이스를 휘둘렀다. 검게 빛나는 마력 칼날이 마도사의 왼쪽 팔과 허리를 베고 지나갔고, 로스트 로기아는 잘려나간 마도사의 손에 쥐어진 채 땅으로 떨어졌다.

"이, 이것들이이이이이!!"

마도사는 고통과 분노가 섞인 고함을 내지르며 마녀에게 디바이스를 겨누려 했지만 마녀의 동작이 더 빨랐다. 게다가 망설임조차 없었다. 마녀는 이미 한 팔을 잃은 상대의 머리에 디바이스 풀스윙을 날린 것이다.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마도사는 땅으로 추락했다.
잔인하게까지 보이는 마녀의 행동에 실비아는 내심 화가 치밀었지만 그것을 억눌렀다. 이미 살인을 저질렀으니 이성을 잃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고, 따라서 일초라도 빨리 제압해야 한다는 점은 자신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바인드 같은 방식도 있는데 굳이 머리를 가격해서 기절시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봐, 당신."

억지로 참긴 했지만 역시 목소리에서 화가 난 기색이 드러났는지, 마녀는 대답없이 고개만 돌려 실비아를 보았다. 그 행동이 꼭 '뭐가 문제지?'하고 묻는 것 같아 더욱 실비아의 화를 돋웠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어?"

"무슨 얘기인가?"

"마지막에 디바이스로 가격한 거 말이야!"

"그게 뭐가 잘못됐나?"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한 태도에 결국 실비아는 폭발했다.

"당연히 잘못됐지! 왜 휘두른 거야? 그냥 바인드로 묶거나 했어도 됐잖아! 꼭 그렇게 일부러 부상을 입혀야 해?"

"바인드 브레이크 안 쓴다는 보장이 있나. 그리고 바인드 브레이크에 너나 내 바인드가 반드시 안 깨진다는 보장 있나. 차라리 의식을 잃게 만드는 편이 더 낫다고 봤는데."

"이익...!"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실비아는 인정할 수 없었다. '법과 정의와 질서를 지키는 관리국원'이라는 자긍심이 강한 실비아에게 마녀의 행동은 무법자와 마찬가지였다. 실비아가 디바이스를 고쳐쥐며 다시한번 소리치려던 때였다. 갑자기 마녀가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어딜 보는 거야? 내 말 아직 안 끝..."

『Phantom rush.』

실비아가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마녀의 모습이 사라졌다. 정확히는 고속기동마법으로 땅 위로 돌진한 것이다. 어안이 벙벙해 있는 실비아의 시선 끝에 마녀가 한 국원의 손을 밟는 모습이 잡혔다. 아까 마법사의 전방위 공격에 다리를 다친 중상자였다.

"무슨 짓이야!"

마녀는 실비아의 외침을 무시하고 국원의 손을 발로 찼고, 국원은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움켜쥐었다. 실비아는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크 세이버(Arc saber)!"

바르디슈를 휘두르자 낫 형태의 마력 칼날이 분리되어 회전하며 마녀를 향해 날아갔고, 마녀는 서둘러 날아올라 공격을 피했다. 하지만 목표를 놓친 마력 칼날은 부메랑처럼 마녀를 향해 궤도를 바꿨다. 다시 자신에게 날아오는 칼날을 보며 마녀는 혀를 찼다.

"스피어 스트라이크!"

마녀는 코앞까지 접근한 칼날을 디바이스로 내리쳤고, 디바이스에 걸린 절단 마법과 실비아의 공격이 충돌하며 상쇄되어 사라졌다. 하지만 그 때 이미 실비아는 공격 준비를 마쳐놓고 있었다.

"멀티플 라이트닝 랜스(Multiple lightning lance)!"

실비아의 양 옆에 총 여섯개의 마력 구체가 떠올라 있었다. 이제 한마디만 하면 고속유도탄이 마녀에게 발사될 참이었다.

"기다려! 설명하겠다!"

"시끄러워! 너 같은 녀석에게 들을 설명 따위 없어!"

"중요한 얘기다!"

"먼저 너부터 잡고 나서! 파이어(Fire)!"

"저 로스트 로기아는 사람을 미치게 한다!"

마녀가 외치는 것보다 실비아가 공격하는 게 더 빨랐다. 마녀는 피할 새도 없이 날아든 라이트닝 랜스를 실드로 막았지만, 폭발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처박혔다. 하지만 실비아는 그 모습을 보고도 추가 공격을 넣지 않았다. 플라즈마 스매셔를 막아내던 마도사의 눈빛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것은 실비아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를 흔들며 일어서는 마녀에게 실비아가 질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으... 머리가 울리네. 성질이 좀 급한데."

"잔말말고 대답해. 무슨 소리야?"

"추측인데, 아마 저 로스트 로기아에는 접촉한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것 같다. 아까 저 마도사도 제 정신은 아니었지. 그 점은 느꼈겠지?"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을 본 마녀는 걸음을 옮겼다. 그 앞에는 요사스럽게 빛나는 자줏빛 로스트 로기아가 있었고, 바로 옆까지 다가간 마녀는 디바이스로 로스트 로기아를 살짝 건드려 봉인마법을 걸었다.

『Sealing.』

"방금 전 그 국원 얘기인데, 땅에 떨어진 로스트 로기아를 쥐더니 갑자기 유도조작 마법의 술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살상 설정으로."

"뭐라고? 말도 안 돼! 아니, 잠깐. 당신은 어떻게 그걸 눈치 챈 거야?"

"그건 내 능력이라고 해두지. 어쨌든, 목표는 자기 주변의 부상자들이었던 모양이다. 내가 내려오기 전까지 비뚤어진 웃음을 지으며 쓰러진 사람들을 둘러보고 있더군. 자세한 건 나중에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봐라."

"뭐? 자, 잠깐!"

붙잡으려는 실비아의 말에 마녀는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너도 서두르는 게 좋을걸. 이대로는 치료 시기를 놓친다."

말을 마친 마녀는 부상을 입은 동료들을 한데 모으기 시작했다. 리온이라는 마도사가 전송하기 쉽도록 도우려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실비아도 통신으로 의료지원과 후송을 요청했다. 물론 회선을 열자마자 날아온 것은 릴스의 성화였지만, 실비아는 그것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용건만 전달하고 다시 끊었다. 그동안 마녀는 리온의 전송마법에 마력을 공급하고 있었다. 상처의 통증 때문에 정신 집중이 어려운 듯했지만 전송마법진은 제대로 구축되는 중이었다. 잠시 후 마법진이 거의 완성되자 마녀는 일어서서 실비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는데, 망설여지는지 고개를 돌렸다 바라봤다 하면서 주저했다. 그 흔들거리는 갈색 트윈테일의 모습에 결국 답답해진 실비아가 먼저 물었다.

"왜? 할 말 있으면 해."

바로 그 순간, 리온의 전송마법이 완성되며 ELF 단원들이 빛에 휩싸였다. 잠시 후 빛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

뭔가 허무해진 실비아는 그저 고개를 갸웃하며 부상당한 동료들에게 돌아갈 뿐이었다.




ELF의 합류 포인트.
만 약을 대비해 대기하고 있던 의료전담반이 기겁하며 부상자들과 시신을 옮기는 동안, 마녀는 PA를 해제하고 검은 색의 배리어 재킷 차림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벽에 기댄 채 눈으로는 동료들을 보고 있지만 촛점이 맞지 않고 있었다. 손안에서 만지작거리고 있는 붉은 구슬이 깜빡였다.

『Master, 괜찮으십니까?』

"아... 괜찮아, 레이징 하트. 아무 일 아냐."

『그렇습니까? 뭔가 불안정해 보입니다만.』

"뭐... 복잡한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겪으니 좀 그렇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기운 내십시오, master. Master라면 금방 극복하실 겁니다.』

"하하, 고마워, 레이징 하트. 덕분에 조금은 나아진 것 같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이제 복귀하셔야지요.』

"그래, 그래야지."

영차 소리를 내며 벽에서 등을 떼는 마녀의 모습은 아직 10대 중반의 소녀. 갈색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 머리 모양은 포니테일이 아닌 트윈 테일이었지만, 마녀의 얼굴은 실비아도 익히 아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돌아갈 채비를 하던 동료들 중 한명이 마녀에게 소리쳤다.

"그만 철수하자, 에리나!"

"밖에선 '엘즈리온'으로 불러주세요. 사람들 귀도 있으니까."

"하지만 본명이 더 예쁜걸."

"들통나면 안 되니까 좀 참아줘요."

"예, 예. 알아 모시겠습니다, 아가씨."

"어쩐지 기분 나쁘니까 그 말투도 그만 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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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101 아칸젤(Acangel)
관리국의 현 주력 파워드 아머. 근접전을 대비한 마력 칼날 생성기가 양팔등에 내장. 기본 컬러링은 흰색. 착용시 기본적으로 마력 랭크 1랭크 UP.


APA-109 제라프(Zeraf)
관 리국의 신형 파워드 아머. 마력 랭크 1.5랭크 UP. 전반적으로 출력과 내구성이 향상된 신형으로, 단가도 비싸고 생산 속도도 늦어 현재는 확보 수량이 많지 않다. 기본 컬러링은 흰색. 아칸젤과의 외형상 차이는 헬멧의 바이저가 얼굴 전면을 덮던 타입에서 눈만을 가리는 타입으로 바뀐 것. 코 아래는 공기 정화 장치가 달린 마스크로 가려지며 필요에 따라 개폐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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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입니다.

적 마도사는 사실 자코로 만들려고 했는데 어느샌가 쑥쑥 파워업이 되더니 혼자서 20여명을 쓸어버릴 정도의 괴물이 되었습니다. 그래봤자 당하는 모습은 자코답습니다만 (...)

마녀의 정체는... 뭐 다들 짐작하셨을 거라 생각합니다.

중간 에피소드를 줄이고 그냥 엔딩으로 일직선으로 달릴지, 아니면 조금 늘어지더라도 그냥 살릴지 생각중입니다. 줄이면 하나, 안 줄이면 둘인데... 역시 분량 늘리는 건 스스로가 답답해져서 말이죠 -_-a

그럼 다음 글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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