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하늘을 보고 있었다.
알에서 나온 지 이제 겨우 3일째, 날기는커녕 솜털도 안 가시고 덩치는 어미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몸집의 〔새〕였다. 같이 태어난 형제들은 옆에서 배고프다며 삑삑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새〕만큼은 조용히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물론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면 형제들과 함께 먹이에 달려들어 난동을 피웠지만, 잘 때와 먹이를 먹을 때를 제외하면 〔새〕는 항상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날도 그렇게 하늘을 보던 〔새〕는 자신도 모르게 둥지의 가장자리로 올라섰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자그마한 날개를 퍼덕이던 〔새〕는, 순간 중심을 잃고 둥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마침 먹이를 물어다놓고 잠시 쉬고 있던 어미가 기겁해서 낚아채 올렸으니 망정이지, 만약 어미가 둥지에 없었더라면 〔새〕는 그날로 이승을 하직했을 것이다. 〔새〕를 조심스레 둥지에 내려놓은 어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새〕를 나무라기 시작했지만, 〔새〕는 어미가 뭐라고 하든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혼자서 잔소리를 늘어놓다 지친 어미는 결국 다시 먹이를 찾아 나갔다. 시간은 어느 새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석양빛으로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새〕는 다시 날개를 움찔거리고 있었다.
〔새〕는 날개를 폈다.
어느 덧 〔새〕의 몸집은 어미와 맞먹게 되었고, 솜털도 다 빠져 어느새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미가 시키는 대로 〔새〕의 형제들은 하나씩 하나씩 둥지에서 날아올랐다. 정확히는 날아올랐다기보다는 활공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겉으로는 다 큰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된 비행은 해본 일이 없었고, 그렇다 보니 날개 근육도 필요한 만큼 단련되어 있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여야 날아오를 수 있는지 모르는 것도 위로 뜨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어쨌든 형제들은 모두 무사히 다른 나무로 건너가는데 성공했다. 그중에는 활공에서도 실수해서 나무 밑동까지 내려간 형제도 있었지만, 낑낑대며 어떻게든 나무를 타고 올라 간신히 높은 가지에 앉았다. 그리고 이제는 〔새〕의 차례였다.
어미와 형제들의 시선 속에서 〔새〕는 조용히 날개를 폈다 접기를 반복했다. 마치 날개가 멀쩡한지, 자신의 날개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 〔새〕는, 날개를 활짝 펴더니 둥지 아래로 몸을 던졌다. 어미와 형제들은 깜짝 놀랐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듯 둥지를 떠난 〔새〕는 다음 순간, 불어온 바람을 타고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새〕는 어느새 둥지보다, 둥지가 지어진 나무보다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어미가, 형제들이 어안이 벙벙해서 멍하니 바라만 보는 가운데, 〔새〕는 점점 더 높이, 점점 더 멀리 날아올랐다.
〔새〕는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녔다.
자신의 둥지를 마련한 〔새〕는 잘 때와 먹이를 먹을 때를 제외하면 계속 하늘을 날아다녔다. 빠르게 내리 꽂히기도 했고, 힘차게 날아오르기도 했고, 날개를 편 채 활공을 하기도 했다. 교미도, 먹이도 〔새〕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교미는 나는 것만큼 즐겁지 않았고, 먹는 것도 나는 것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교미를 하면 새끼들이 생기고, 그렇다면 마음껏 날아다닐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새〕는 교미를 하지 않았다. 먹이 역시, 움직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큼만 먹었다. 그 이상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 원하는 대로 날아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하늘을 나는 것에만 맞추어 생각하고 사는 〔새〕를, 동족들은 괴짜라고 생각하며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새〕는 상관하지 않았다. 〔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늘을 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뿐이었다.
〔새〕는 배가 고팠다.
〔새〕는 벌써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고 있었다. 다른 동족들이라면 이틀이 아니라 사나흘 정도는 어떻게든 견딜 수 있겠지만, 하늘을 날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슬아슬한 양만 먹어온 〔새〕에게는 이틀간의 금식 아닌 금식은 상당히 위험했다. 아무래도 시기적으로 겨울이다 보니 먹잇감이 눈에 잘 안 뜨이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건 어째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뜸했다. 게다가 어쩌다 먹잇감이 보인다 해도 몸에 힘이 없다보니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놓치기 일쑤였다. 배가 고프니 날개에 힘이 안 들어가고, 힘이 없으니 사냥에 실패하고, 사냥을 실패하니 또 굶고……. 악순환이었다. 동족들에게조차 오만하다고 따돌림 받을 정도로 하늘을 즐기던〔새〕가 배가 고파 굶어죽는다면 정말이지 지나가던 참새가 웃을 일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도저히 농담으로 생각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바람이 조금만 바뀌어도 균형조차 못 잡고 비틀거리겠는가.
지금도 〔새〕는 바람에 비틀거리며 활공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굶다가는 하늘이 아니라 저승을 날아다니게 될 상황이었으니, 아무리 힘이 없더라도 먹이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없이 허공에 뜬 채 아래를 내려 보고 있는데, 문득 어떤 움직임이 시야에 들어왔다. 작은 새였다. 종류는 잘 모르겠지만, 덩치는 제법 있는 것이 잡기만 한다면 며칠간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날개를 다쳤는지 날지도 못하고 푸드덕 거리며 땅 위를 움직일 뿐이었다. 〔새〕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먹잇감을 향해 내리꽂혔고, 다음 순간 〔새〕의 두 발은 먹잇감을 확실히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날아오르려고 하자 갑자기 아래에서 무언가가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잠시, 갑자기 땅에 덮인 눈이 휘날리면서 발밑에서 뭔가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새〕와 먹잇감을 덮쳐눌렀다. 그물이었다. 먹잇감은 미끼였던 것이다. 공복감과 허탈감으로 기운이 완전히 빠져버린 〔새〕는 그저 멍하니 그물 밑에 눌려있을 뿐이었다.
〔새〕는 눈을 떴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막대기들이 보였다. 나무들과 비슷한 갈색을 띄고 있지만, 어쩐지 기분 나쁜 냄새와 빛깔을 가진 막대기들이었다. 상당히 촘촘하게 세워져 있어서 〔새〕가 빠져나갈 틈은 없었다.
〔새〕는 커다란 새장에 갇혀 있었다.
그날, 〔새〕는 어떤 인간이 만든 덫에 걸려 잡혔다. 그리고 그대로 작은 새장에 넣어져 그 인간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새〕를 잡은 인간은 사냥을 즐기는 것 같았다. 집안 여기저기에 〔새〕의 동족은 물론, 다른 종류의 새들이 세워져 있었다. 〔새〕는 처음엔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조금 더 살펴보자 그 새들이 모두 죽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죽은 새를 이리저리 만져서 살아있을 때처럼 꾸며서 세워놓은 것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어쩐지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새〕가 갇힌 새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좀 더 작은 새장들도 몇 개 있었다. 거기에는 〔새〕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들이 갇혀 있었다. 노랗고, 빨갛고, 부리는 심하게 구부러져 있고, 울음소리도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더 해괴했던 것은 그 새들이 인간의 말과 비슷하게 운다는 점이었다. 가끔은 저것들이 새인지 인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새장 속에서의 생활은 갑갑했다. 물론 먹이야 매일같이 주니까 배는 불렀지만, 〔새〕에게 먹이는 그저 하늘을 날아다닐 힘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큰 즐거움을 빼앗긴 〔새〕에게는 먹이가 많든 적든, 맛있든 맛없든 의미가 없었다. 그저 하루 종일 새장 너머, 창문 너머의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새〕는 날갯짓을 했다.
〔새〕를 잡아온 인간의 집에는 그보다 훨씬 작은 인간도 살고 있었다. 이 인간은 〔새〕를 괴롭히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새〕를 잡아온 인간이 없을 때면, 작은 인간은 주변의 긴 막대를 주워와 〔새〕가 갇힌 새장의 틈새로 이리저리 찔러 넣곤 했다. 그때마다 〔새〕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멀리 날아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사방팔방이 모두 막힌 새장 속에서는 그저 구석으로 몰릴 뿐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중엔 경험이 쌓인 건지, 작은 인간이 찔러오는 막대를 날개로 살짝 쳐낼 수도 있게 됐다. 이걸 좋아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 〔새〕는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작은 인간이 또 막대를 들고 〔새〕를 괴롭혔다. 〔새〕도 이젠 일일이 반응하기도 지겨워서 정확하게 찔러오는 것만 날개 끝으로 살짝 밀어냈는데, 이 행동 때문에 작은 인간이 약이 오른 모양이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새장을 붙잡고 흔들더니, 새장 어느 한 구석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 자리는 다른 자리와 달리 네모 모양으로 막대기가 덧대어져 있어서 〔새〕는 항상 궁금했다. 이참에 저 자리는 왜 다른 자리와 생긴 게 다른가 알 수 있겠다며 가만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그 부분의 막대들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막대들이 위로 들쳐 올려졌던 것이다. 다른 곳은 모두 막대로 가로막힌 가운데, 오직 그곳만 막혀있지 않았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새〕는 그대로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작은 인간은 놀라서 뒤로 넘어졌고, 그 틈을 타서 〔새〕는 새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창문도 대문도 모두 닫혀 있었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어떤 네모난 물건 위에 앉아있자니, 작은 인간이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화가 난 건지 무서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작은 인간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대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 보였다. 문이 열린 너머로 〔새〕를 잡아온 큰 인간이 보였다. 〔새〕는 다시 한 번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큰 인간도 〔새〕가 갑자기 달려들자 놀라 주저앉았고, 〔새〕는 무사히 집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큰 인간이 망연히 〔새〕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새〕는 그 위를 한 바퀴 돌고는 태양이 있는 쪽을 향해 날아갔다.
〔새〕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퍼덕이는 날개에는 힘이 없었다. 기운 없는 몸은 조그만 바람에도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흐릿한 눈은 먹잇감은커녕 코앞의 장애물을 알아보는 게 고작이었다.
인간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지 벌써 나흘이 지났다. 빠져나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새〕는 자기가 살던 숲이 어느 쪽인지 알지 못했다. 잡힌 다음 새장에 넣어져 차로 실려 왔기 때문에 방향 감각이 소용이 없었다. 무작정 태양이 뜨는 쪽을 향해 날았지만, 가도 가도 숲은 보이지 않고 인간들이 드나드는 커다란 돌덩어리들만 보일 뿐이었다. 중간에 잠시 쉬기도 했지만, 가장 문제는 먹잇감이 안 보인다는 점이었다. 비둘기는 너무 무리가 많았다. 한번 멋도 모르고 덤볐다가 무리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바람에 오히려 위험해진 적이 있었다. 참새는 너무 작은데다 잽싸기까지 했다. 쥐는 눈에 띄면 이내 고양이가 채어가기 일쑤였다. 결과적으로 여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갈수록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뭔가 목에서 자잘한 알갱이들이 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날다가도 기침이 나와 균형을 잃곤 했다.
어느새 땅이 바로 발아래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니, 〔새〕가 힘이 빠져 점점 고도가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새〕는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갈 힘이 없었다. 지금 높이를 유지하는 것도 벅찼다. 그렇게 점점 땅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새〕는 정신을 잃었다.
"엄마, 저기 봐. 큰 새가 누워있어."
"어머, 안 돼. 이리와. 저런 거 함부로 만지면 안 돼요."
한 모녀가 땅에 떨어진〔새〕의 곁을 지나쳤다. 길을 걷는 수많은 인간들 중 누구도 〔새〕에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새〕는 숨이 멎어 있었다. 날개도, 가슴도, 목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개미가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새〕의 눈은 감겨있지 않았다. 한껏 뜨여져 있는 그 눈은 위를 보고 있었다. 푸르른 하늘을, 높디높은, 끝없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어쩐지 눈에 익은데...' 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약 6~7년 전, 포립(4Leaf)에 한창 매달리던 시절에 끄적였던 단편을 이리저리 손본 물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손을 봤다기 보다는 전면적으로 고쳐서 다시 썼다고 봐야겠지만... -_-a
...그나저나 命은 언제 쓰나. (...)
알에서 나온 지 이제 겨우 3일째, 날기는커녕 솜털도 안 가시고 덩치는 어미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몸집의 〔새〕였다. 같이 태어난 형제들은 옆에서 배고프다며 삑삑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지만, 어찌 된 일인지 〔새〕만큼은 조용히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물론 어미가 먹이를 물어오면 형제들과 함께 먹이에 달려들어 난동을 피웠지만, 잘 때와 먹이를 먹을 때를 제외하면 〔새〕는 항상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날도 그렇게 하늘을 보던 〔새〕는 자신도 모르게 둥지의 가장자리로 올라섰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자그마한 날개를 퍼덕이던 〔새〕는, 순간 중심을 잃고 둥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마침 먹이를 물어다놓고 잠시 쉬고 있던 어미가 기겁해서 낚아채 올렸으니 망정이지, 만약 어미가 둥지에 없었더라면 〔새〕는 그날로 이승을 하직했을 것이다. 〔새〕를 조심스레 둥지에 내려놓은 어미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 〔새〕를 나무라기 시작했지만, 〔새〕는 어미가 뭐라고 하든 그저 하늘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혼자서 잔소리를 늘어놓다 지친 어미는 결국 다시 먹이를 찾아 나갔다. 시간은 어느 새 저녁이 다 되어 있었다. 석양빛으로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새〕는 다시 날개를 움찔거리고 있었다.
〔새〕는 날개를 폈다.
어느 덧 〔새〕의 몸집은 어미와 맞먹게 되었고, 솜털도 다 빠져 어느새 어른의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미가 시키는 대로 〔새〕의 형제들은 하나씩 하나씩 둥지에서 날아올랐다. 정확히는 날아올랐다기보다는 활공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겉으로는 다 큰 것처럼 보이지만 제대로 된 비행은 해본 일이 없었고, 그렇다 보니 날개 근육도 필요한 만큼 단련되어 있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여야 날아오를 수 있는지 모르는 것도 위로 뜨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였다.
어쨌든 형제들은 모두 무사히 다른 나무로 건너가는데 성공했다. 그중에는 활공에서도 실수해서 나무 밑동까지 내려간 형제도 있었지만, 낑낑대며 어떻게든 나무를 타고 올라 간신히 높은 가지에 앉았다. 그리고 이제는 〔새〕의 차례였다.
어미와 형제들의 시선 속에서 〔새〕는 조용히 날개를 폈다 접기를 반복했다. 마치 날개가 멀쩡한지, 자신의 날개가 맞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한 〔새〕는, 날개를 활짝 펴더니 둥지 아래로 몸을 던졌다. 어미와 형제들은 깜짝 놀랐다. 미처 말릴 틈도 없이 바닥으로 내리꽂히듯 둥지를 떠난 〔새〕는 다음 순간, 불어온 바람을 타고 그대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새〕는 어느새 둥지보다, 둥지가 지어진 나무보다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어미가, 형제들이 어안이 벙벙해서 멍하니 바라만 보는 가운데, 〔새〕는 점점 더 높이, 점점 더 멀리 날아올랐다.
〔새〕는 마음껏 하늘을 날아다녔다.
자신의 둥지를 마련한 〔새〕는 잘 때와 먹이를 먹을 때를 제외하면 계속 하늘을 날아다녔다. 빠르게 내리 꽂히기도 했고, 힘차게 날아오르기도 했고, 날개를 편 채 활공을 하기도 했다. 교미도, 먹이도 〔새〕의 흥미를 끌지는 못했다. 교미는 나는 것만큼 즐겁지 않았고, 먹는 것도 나는 것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교미를 하면 새끼들이 생기고, 그렇다면 마음껏 날아다닐 수가 없게 되기 때문에 〔새〕는 교미를 하지 않았다. 먹이 역시, 움직이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양만큼만 먹었다. 그 이상 먹으면 몸이 무거워져 원하는 대로 날아다닐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을 하늘을 나는 것에만 맞추어 생각하고 사는 〔새〕를, 동족들은 괴짜라고 생각하며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새〕는 상관하지 않았다. 〔새〕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하늘을 나는 즐거움을 누리는 것뿐이었다.
〔새〕는 배가 고팠다.
〔새〕는 벌써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고 있었다. 다른 동족들이라면 이틀이 아니라 사나흘 정도는 어떻게든 견딜 수 있겠지만, 하늘을 날 때 불편하다는 이유로 아슬아슬한 양만 먹어온 〔새〕에게는 이틀간의 금식 아닌 금식은 상당히 위험했다. 아무래도 시기적으로 겨울이다 보니 먹잇감이 눈에 잘 안 뜨이는 건 당연하겠지만, 이건 어째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뜸했다. 게다가 어쩌다 먹잇감이 보인다 해도 몸에 힘이 없다보니 제대로 붙잡지 못하고 놓치기 일쑤였다. 배가 고프니 날개에 힘이 안 들어가고, 힘이 없으니 사냥에 실패하고, 사냥을 실패하니 또 굶고……. 악순환이었다. 동족들에게조차 오만하다고 따돌림 받을 정도로 하늘을 즐기던〔새〕가 배가 고파 굶어죽는다면 정말이지 지나가던 참새가 웃을 일이었지만, 지금 상황은 도저히 농담으로 생각하고 웃어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바람이 조금만 바뀌어도 균형조차 못 잡고 비틀거리겠는가.
지금도 〔새〕는 바람에 비틀거리며 활공하고 있었다. 이대로 계속 굶다가는 하늘이 아니라 저승을 날아다니게 될 상황이었으니, 아무리 힘이 없더라도 먹이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없이 허공에 뜬 채 아래를 내려 보고 있는데, 문득 어떤 움직임이 시야에 들어왔다. 작은 새였다. 종류는 잘 모르겠지만, 덩치는 제법 있는 것이 잡기만 한다면 며칠간 식량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게다가 날개를 다쳤는지 날지도 못하고 푸드덕 거리며 땅 위를 움직일 뿐이었다. 〔새〕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그대로 먹잇감을 향해 내리꽂혔고, 다음 순간 〔새〕의 두 발은 먹잇감을 확실히 움켜쥐고 있었다. 하지만 그대로 날아오르려고 하자 갑자기 아래에서 무언가가 잡아당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잠시, 갑자기 땅에 덮인 눈이 휘날리면서 발밑에서 뭔가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새〕와 먹잇감을 덮쳐눌렀다. 그물이었다. 먹잇감은 미끼였던 것이다. 공복감과 허탈감으로 기운이 완전히 빠져버린 〔새〕는 그저 멍하니 그물 밑에 눌려있을 뿐이었다.
〔새〕는 눈을 떴다.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막대기들이 보였다. 나무들과 비슷한 갈색을 띄고 있지만, 어쩐지 기분 나쁜 냄새와 빛깔을 가진 막대기들이었다. 상당히 촘촘하게 세워져 있어서 〔새〕가 빠져나갈 틈은 없었다.
〔새〕는 커다란 새장에 갇혀 있었다.
그날, 〔새〕는 어떤 인간이 만든 덫에 걸려 잡혔다. 그리고 그대로 작은 새장에 넣어져 그 인간의 집으로 오게 되었다. 〔새〕를 잡은 인간은 사냥을 즐기는 것 같았다. 집안 여기저기에 〔새〕의 동족은 물론, 다른 종류의 새들이 세워져 있었다. 〔새〕는 처음엔 어찌 된 일인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조금 더 살펴보자 그 새들이 모두 죽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죽은 새를 이리저리 만져서 살아있을 때처럼 꾸며서 세워놓은 것들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어쩐지 기분 나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새〕가 갇힌 새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좀 더 작은 새장들도 몇 개 있었다. 거기에는 〔새〕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들이 갇혀 있었다. 노랗고, 빨갛고, 부리는 심하게 구부러져 있고, 울음소리도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더 해괴했던 것은 그 새들이 인간의 말과 비슷하게 운다는 점이었다. 가끔은 저것들이 새인지 인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새장 속에서의 생활은 갑갑했다. 물론 먹이야 매일같이 주니까 배는 불렀지만, 〔새〕에게 먹이는 그저 하늘을 날아다닐 힘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가장 큰 즐거움을 빼앗긴 〔새〕에게는 먹이가 많든 적든, 맛있든 맛없든 의미가 없었다. 그저 하루 종일 새장 너머, 창문 너머의 하늘만 바라볼 뿐이었다.
〔새〕는 날갯짓을 했다.
〔새〕를 잡아온 인간의 집에는 그보다 훨씬 작은 인간도 살고 있었다. 이 인간은 〔새〕를 괴롭히는 것을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새〕를 잡아온 인간이 없을 때면, 작은 인간은 주변의 긴 막대를 주워와 〔새〕가 갇힌 새장의 틈새로 이리저리 찔러 넣곤 했다. 그때마다 〔새〕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도망 다닐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멀리 날아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사방팔방이 모두 막힌 새장 속에서는 그저 구석으로 몰릴 뿐이었다. 그렇게 살다보니 나중엔 경험이 쌓인 건지, 작은 인간이 찔러오는 막대를 날개로 살짝 쳐낼 수도 있게 됐다. 이걸 좋아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 〔새〕는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작은 인간이 또 막대를 들고 〔새〕를 괴롭혔다. 〔새〕도 이젠 일일이 반응하기도 지겨워서 정확하게 찔러오는 것만 날개 끝으로 살짝 밀어냈는데, 이 행동 때문에 작은 인간이 약이 오른 모양이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새장을 붙잡고 흔들더니, 새장 어느 한 구석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 자리는 다른 자리와 달리 네모 모양으로 막대기가 덧대어져 있어서 〔새〕는 항상 궁금했다. 이참에 저 자리는 왜 다른 자리와 생긴 게 다른가 알 수 있겠다며 가만히 바라보는데, 갑자기 그 부분의 막대들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막대들이 위로 들쳐 올려졌던 것이다. 다른 곳은 모두 막대로 가로막힌 가운데, 오직 그곳만 막혀있지 않았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새〕는 그대로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작은 인간은 놀라서 뒤로 넘어졌고, 그 틈을 타서 〔새〕는 새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창문도 대문도 모두 닫혀 있었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어떤 네모난 물건 위에 앉아있자니, 작은 인간이 울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화가 난 건지 무서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작은 인간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대문이 활짝 열리는 것이 보였다. 문이 열린 너머로 〔새〕를 잡아온 큰 인간이 보였다. 〔새〕는 다시 한 번 그곳으로 달려들었다. 큰 인간도 〔새〕가 갑자기 달려들자 놀라 주저앉았고, 〔새〕는 무사히 집 밖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큰 인간이 망연히 〔새〕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새〕는 그 위를 한 바퀴 돌고는 태양이 있는 쪽을 향해 날아갔다.
〔새〕는 하늘을 날고 있었다.
퍼덕이는 날개에는 힘이 없었다. 기운 없는 몸은 조그만 바람에도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흐릿한 눈은 먹잇감은커녕 코앞의 장애물을 알아보는 게 고작이었다.
인간의 집에서 도망쳐 나온 지 벌써 나흘이 지났다. 빠져나온 것까지는 좋았지만, 〔새〕는 자기가 살던 숲이 어느 쪽인지 알지 못했다. 잡힌 다음 새장에 넣어져 차로 실려 왔기 때문에 방향 감각이 소용이 없었다. 무작정 태양이 뜨는 쪽을 향해 날았지만, 가도 가도 숲은 보이지 않고 인간들이 드나드는 커다란 돌덩어리들만 보일 뿐이었다. 중간에 잠시 쉬기도 했지만, 가장 문제는 먹잇감이 안 보인다는 점이었다. 비둘기는 너무 무리가 많았다. 한번 멋도 모르고 덤볐다가 무리들이 한꺼번에 날아오르는 바람에 오히려 위험해진 적이 있었다. 참새는 너무 작은데다 잽싸기까지 했다. 쥐는 눈에 띄면 이내 고양이가 채어가기 일쑤였다. 결과적으로 여태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갈수록 숨쉬기가 힘들어졌다. 숨을 깊이 들이쉬면 뭔가 목에서 자잘한 알갱이들이 걸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날다가도 기침이 나와 균형을 잃곤 했다.
어느새 땅이 바로 발아래까지 다가와 있었다. 아니, 〔새〕가 힘이 빠져 점점 고도가 낮아진 것이다. 하지만 〔새〕는 다시 높은 곳으로 올라갈 힘이 없었다. 지금 높이를 유지하는 것도 벅찼다. 그렇게 점점 땅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새〕는 정신을 잃었다.
"엄마, 저기 봐. 큰 새가 누워있어."
"어머, 안 돼. 이리와. 저런 거 함부로 만지면 안 돼요."
한 모녀가 땅에 떨어진〔새〕의 곁을 지나쳤다. 길을 걷는 수많은 인간들 중 누구도 〔새〕에게 가까이 가려 하지 않았다. 〔새〕는 숨이 멎어 있었다. 날개도, 가슴도, 목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에서 개미가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새〕의 눈은 감겨있지 않았다. 한껏 뜨여져 있는 그 눈은 위를 보고 있었다. 푸르른 하늘을, 높디높은, 끝없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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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눈에 익은데...' 하시는 분들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약 6~7년 전, 포립(4Leaf)에 한창 매달리던 시절에 끄적였던 단편을 이리저리 손본 물건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손을 봤다기 보다는 전면적으로 고쳐서 다시 썼다고 봐야겠지만... -_-a
...그나저나 命은 언제 쓰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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