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오랜만이다. 제대로 말하자면 정확하게 10년 만이지.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여전히 음산한 느낌이다. 애초에 세워진 위치가 중심가가 아니라 으슥한 골목이니 사람이 북적댈 리가 없겠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개미새끼 한 마리 지나다니지 않는 이런 분위기를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이곳이 이렇게 적막한 이유는 단 하나다.
진리의 탑.
다른 이름으로는 ‘미치광이의 탑’, ‘저주받은 탑’, ‘악마들의 탑’……. 그만큼 일반인들이 마법사에 대해서 가지는 인식은 경외(敬畏), 그 자체다. 솔직히 말하자면 공경보다는 공포 쪽에 더 가까운 편이다. 물론, 그런 말을 마법사들 앞에서 꺼냈다간 그 자리에서 개구리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도 말은 안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보통 사람들에게 마법이란 무서운 것일 테지만, 그것을 다루는 마법사도 무서운 사람일 테지만, 마법사만큼 솔직하고 아이 같은 사람들도 없으니까. …고위 마법사일수록 마법 외에는 눈에 안 들어와서 괴팍하다는 것은 어쩔 수 없긴 해도. 다시 고개를 들어 탑을 바라보았다. 이젠 탑이라기보다는, 거의 하늘을 받치는 기둥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10년 사이에 또 증축한 모양인데, 덕분에 이제는 1층에서 꼭대기가 몇 층인지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이렇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풍기는 건물 안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마법사들이 새로운 마법을 만들어내고, 기존의 마법을 개량하고, 사라진 마법을 복구하기 위해 쉼 없이 연구하고 있을 것이다.
탑의 문을 열고 들어서니, 10년 전의 모습에서 전혀 변한 게 없는 로비가 보였다. 여전히 어두컴컴하고, 먼지가 살짝 쌓여있고, 창구의 접수원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그동안 접수원이 바뀌었는지 얼굴이 낯설었다. 하긴, 그때 접수원 하던 사람은 이미 나이가 40줄은 되어 보였으니 그 사이에 은퇴해서 느긋하게 살고 있을 법도 하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앉아있던 접수원은 내가 들어서자 고개를 돌리더니, 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어서 오십시오. 어떤 용무로 오셨습니까?”
“진리의 탑 소속 마법사입니다.”
…한층 더 표정이 이상해졌다. 하긴 새파랗게 젊은 사람, 그것도 여자가 마법사라고 말하면 이해가 안 될 법도 하겠지.
“그렇다면 표식을 그려주시겠습니까?”
대답 대신 허공에 손가락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 보였다. 물론 손가락 끝에 라이트(Light)를 걸어서 궤적이 남게 하는 것도 잊지 않고. 접수원은 표식을 확인한 후에도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더 괴상한 표정이 됐다. 아마도 ‘저렇게 젊은 여자가 어쩌다 이런 길에 빠져들었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겠지. 하지만 나도 좋아서 마법을 하게 된 건 아니다.
“좋습니다. 들어가십시오.”
접수대를 지나쳐 내부로 통하는 문을 열기 전에 슬쩍 뒤를 돌아보니, 접수원이 고개를 설레설레 젓고 있었다. 뭐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는 안 봐도 훤하다만.
진리의 탑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사실 엄청나게 할 일이 없는 곳이다. 접수대라고 해도, 이런 으스스한 곳을 찾는 사람은 많아봤자 일주일에 두세 명 정도다. 그 사람들에게서 받는 돈으로 대체 어떻게 이렇게 큰 건물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니, 건물만이라면 차라리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마법사라는 사람들은 식사를 돈으로 하나 싶을 정도로 돈을 펑펑 써댄다. 무슨 연구비니, 연구 재료니 하면서 이런 저런 물건들을 들여오는데, 물건들이 들어올 때 운반해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정말 까무러칠 정도로 비싼 물건들뿐이다. 게다가 그렇게 들여온 물건들은 태반이 중간에 뭔가 잘못돼서 버려진다. 그렇다고 그냥 버리지도 않는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로는 이해할 수 없는 뭔가 이상한 일들을 하다가 버려지는 물건들이기 때문에, 그냥 버리면 굉장히 위험하다나 뭐라나. 무슨 영적 오염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쨌든 보통 쓰레기 버리듯 하면 큰일 난다는 건 거의 확실하대서 매번 버릴 때마다 또 그 비싼 물건들을 이용해서 뭔가 처리를 해서 버린다. 이러니 한번 물건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사라지는 돈의 액수는 정말이지 세는 게 무서울 정도다. 그런데도 여긴 묘하게 잘 굴러간다. 빚 받으러 오는 사람들도 없고, 돈이 모자라서 물건을 못 들여오는 일도 없다. …하긴, 돈 빌려주고 못 받는다고 이런 곳으로 쳐들어올 만큼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도 없겠지만. 이런 곳에서 3년 가까이 접수원 일을 보다보니, 도저히 긴장이란 것을 겪어보질 못했다.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비싼 물건들이 들어왔다 버려지는 것도 하도 많이 봐서 이젠 덤덤하다. 게다가 마법사들도 그다지 많이 마주치는 편은 아니다. 한번 연구실에 처박히면 한 달은 기본이고, 길게 가면 일 년 넘게 안 나오는 경우도 봤다. 정말이지, 머릿속에 뭐가 든 사람들인지 신기할 뿐이다. 가끔씩은 그런 요상한 길에 빠져든 마법사라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이지 지금까지 본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안됐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나이는 대충 20대 중반에, 단정한 얼굴을 한 여자였다. 튼튼해 보이는 여행복과 가방을 보니 여행자 같았는데, 맙소사, 마법사였다. 더군다나 진리의 탑에서 쓰는 표식까지 능숙하게 그려냈다. 저렇게 젊은 나이에 저 정도라면 아주 어릴 때부터 마법을 배웠다는 건데, 정말 불쌍하게 됐다. 얼굴도 제법 예쁘고 성격도 괜찮아 보이는데, 어쩌다 저런 길로 빠져들었는지……. 마법이란 물건이 사람 인생 하나 또 망쳤다는 생각에 난 고개를 내저었다.
문 안쪽은 여전히 휑뎅그렁했다. 천장도 없는 원형의 방 안에 툭하고 튀어나온 기둥 비슷한 것 외에는 장식조차 없었다. 하긴, 이런 장소를 꾸밀 시간과 노력이 있다면 자기 연구에 다 쏟아 부을 사람들이긴 하다만. 기둥에 다가가서 손을 대자, 눈앞에 안내용 환영이 나타났다.
“…그동안 이 사람들 취향이 좀 바뀐 모양이네.”
전에는 분명히 인자한 얼굴을 한 할아버지 모습의 환영이었는데, 지금 보이는 환영은 젊은 여성, 그것도 꽤 예쁜 얼굴의 환영이었다. 안내용 환영은 대개 한번 만들면 변경하는 일 없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누군지 몰라도 꽤나 할 일이 없어서 심심했던 모양이다. 아니면 스트레스 해소 차원에서 손을 댔거나. 몇 년 지난 후에는 조그만 아이 모습의 환영이 나온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 진리의 탑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탑 소속 마법사인데, 마법사 중에 시그리드 바렐이라는 사람 있나요?”
- 시그리드 님이라면 현재 20층 5호실을 사용하고 계십니다. 그리로 이동할까요?
“그 전에 먼저 통신 연결 좀 해주세요.”
- 지금 연결해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눈앞에 커다란 사각형의 영상이 나타났다. 그 속에서 시그리드는 꽤나 꾀죄죄한 모습으로 소파에 누워 자고 있었다.
“이봐, 시그리드. 일어나, 지금이 몇 시인데 아직까지 자고 있어?”
- 우응… 누군지 몰라도 나 좀 그냥 둬….
“그만 자고 좀 일어나. 몇 년 만에 친구가 찾아왔는데 그냥 돌려보낼 셈이야?”
- 진짜 친구라면 자게 내버려 둬….
“자꾸 그러면 쳐들어간다.”
- …….
시그리드는 계속 비몽사몽 상태에서 대답하더니 결국은 도중에 도로 잠들어버린 것 같았다. 몇 년 만인데 이대로 갈 수는 없으니 공언한대로 쳐들어가는 수밖에.
“시그리드의 방으로 이동해주세요.”
-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순간 덜컹 하는 느낌과 함께 바닥이 통째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속도나 안정성 면에서 발전이 있나 조금은 기대했는데, 정말로 변한 거라곤 안내용 환영 하나 뿐이었다. 하긴, 속도를 높이려면 경량화는 기본이고 탑승자를 위해서 반중력에 보호막까지 걸어둬야 할 테니 차라리 그냥 쓰는 편이 낫긴 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수직 이동실은 20층에 도착했다. 수직 이동 통로를 빙 둘러싼 문들 중에서 5호실 문패를 발견하고는 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문 앞에 떡하니 세워져있는 관(棺)이었다.
“뭐야, 이거? 이게 왜 여기 나와 있는 거야?”
정리하기 귀찮다고 관을 하나 구해서는 그 안에 이런저런 물건을 다 집어넣고 지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니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어쨌든 관을 지나 응접실로 들어오니, 시그리드가 여전히 소파에 파묻혀서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창백한 피부에 꼼짝도 안 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시체로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방 한쪽에 세워져 있는 관은 그런 생각을 한층 더 커지게 했다.
“이봐, 시그리드. 일어나. 나 왔어.”
“…….”
“그만 자고 좀 일어나. 7년 만에 만났으면서 이러기야?”
“우웅… 잠 좀 자게 그냥 두라니까….”
…어쩔 수 없다. 조금 미안하지만 강제로 깨울 수밖에.
“Yukjoongnyuk, Hæje.”
"쿠엑!"
시그리드의 몸이 1미터 정도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그대로 떨어지더니 소파의 쿠션에 튕겨 그대로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원래는 소파 위에 떨어지는 충격으로 일어나게 할 셈이었는데, 이건 조금 예상 밖이다. 그래도 크게 다치지는 않았는지, 시그리드는 머리를 문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어떤 놈이야! 깨우지 말라고 했… 어라?”
“오랜만이야, 시그리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가 무슨 유령도 아니고. 시그리드는 아픈 머리를 문지르는 것도 잊은 채 내 얼굴을 바라보더니,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