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미국에서 있었던 IS와 US의 모의전 결과는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비밀리에 개발된 US가 벌써 2세대에 들어섰다는 점만으로도 놀라운데, 그 성능이 현재 실전배치 되어있는 2세대 IS와 거의 동등한 수준이라는 점은 IS 관계자 모두를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거기에 더해 동력원인 CPR(컴팩트 팔라듐 리액터)의 양산성이 코어보다는 우수하다는 점, 사용자에 맞춘 최적화와 진화 기능은 없지만 필요에 따라 프레임과 무장, 화기 관제 AI까지 커스터마이즈 할 수 있다는 점, 무엇보다 파일럿을 실력과 무관하게 가리지 않는다는 점 등이 알려지며 여러 강대국들은 US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반대로 IS 스쿨과 같은 IS 전문 기관은 침울한 분위기에 빠지는 것이 당연했다.

"우리들 괜찮을까...?"

"글쎄, 이대로라면 IS는 찬밥 취급 될 것 같아서 불안해."

"될 것 같은 게 아니라 이미 찬밥 취급 아니야? 여러모로 US가 유리한 것 같은데."

"하지만 US는 코어 네트워크 같은 것도 없고, 자기 진화 기능도 없잖아. 원오프 어빌리티 각성이 불가능하니까 IS가 더 낫지 않아?"

"애초에 IS 중에서 원오프 어빌리티 각성하는 기체가 대체 몇이나 된다고... 지금도 전체 약 600기 중에서 원오프 어빌리티가 있는 건 100기가 채 안 될걸."

"게다가 세팅만 잘 하면 세컨드 폼 이상의 적응도를 보일 수도 있다잖아. 이러다 정말 IS가 밀려나는 거 아니야?"

"에이, 설마. 그래도 여러모로 장점이 있으니까 그렇게 쉽게 밀려나지는 않겠지."

"그래도 만의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시우는 잠자코 앉아있었다. US의 성능 공개와 모의전 결과는 IS 스쿨에도 큰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교사들의 분위기는 US 공개 발표회 직후보다 더욱 가라앉았고, 학생들도 쉬는 시간마다 US 관련 대화를 나누는 것이 상당히 동요하는 느낌이었다. 개중에는 IS 퇴출과 스쿨 폐쇄와 같은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는 의견들도 있었지만, 시우는 거기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IS 스쿨은 폐쇄되더라도 공군사관학교처럼 US 파일럿 교육 기관이 설립되어 명맥을 유지할 것이고, 그 때가 되면 IS의 파일럿들도 교관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터였다. IS와 US는 차이점도 많았지만 무장 취급이나 기체 조작 등의 면에서는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이미 육성된 고급 인력을 내버려 둘 리는 없었다. 다만, 이후에도 IS 코어 생산 지속 여부에 대한 예상은 회의적이었다. US의 CPR도 생산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은 코어와 비슷했지만 일단 들어가는 비용 자체는 코어보다 낮았고, 일단 완성하고 나면 기동 성공률은 100%였다. 엄청나게 복잡하긴 해도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어진 설계도에 의해 만들어지는 공업생산품이기 때문이었다. 반면 IS 코어는 생산비용도 높고, 전적으로 타바네가 남겨놓은 설계도에만 의지해서 만들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없는데다 완성한 다음에도 기동 성공률은 10%를 밑돌았다. 대기 상태 전환이 불가능한 US의 특성상 특수부대의 후방 침투 및 교란 임무에서는 IS가 조금 더 유리하긴 했지만 레이더·광학 스텔스를 US도 보유하고 있는 시점에서 그런 장점은 있으나 마나였다.

"앞으로 어떻게 될까..."

시우 역시 IS의 앞날이 어둡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병기로서의 효용이나 차별적인 특징 등을 생각해보면 IS는 US에 심각하게 불리했다. 어쩌면 시우 역시 스쿨을 졸업하고 나면 IS가 아니라 US의 파일럿이 될지도 몰랐다.

"1년... 아니, 반년 전만 됐더라도 별 고민없이 받아들였을 테지만 말이지..."

시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왼손 약지에 끼워진 은색 반지를 보았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은황을 보며 시우는 속으로 은황에게 말을 걸었다.

'은황, US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우수한 병기입니다. 가격대 성능비, 거기에 양산성까지 고려한다면 IS보다 훨씬 우위에 있습니다. 오래 지나지 않아 IS를 대체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래... 만약에, 내가 나중에 은황 대신 US를... 아니, 아니야. 미안.'

자신이 은황을 반납하고 US를 타게 될 경우에 대해서 물어보려던 시우는 뒤늦게 앗차 싶어 말을 멈췄다. 아무리 인공지능이라고는 해도 시우에게는 이미 사람이나 마찬가지로 느껴졌고, 그러다보니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든 것이다. 시우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지만 은황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천천히 대답했다.

'...물론, 시우는 이후 US를 맡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려진 정보대로라면 조작법은 IS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 한국에는 IS를 실제로 조종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시우는 교관 자격으로라도 US를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거기에 더해, 시우에게 집중되어 있던 '유일한 남자 IS 적응자'라는 관심도 사그라들겠죠. 시우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일이라고 보입니다. ......다만, 저는...'

거기까지 말한 은황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었다.

'조금... 쓸쓸해질 것 같습니다.'

결국 시우는 말문이 막혔다.




어딘가의 연구소 내부, 연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두대의 장갑복같은 물건을 체크하느라 분주한 어느 방.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더니 세명이 들어왔다. 한명은 연구소의 소장이었지만 다른 두명은 연구소 소속이 아니었다. 하지만 연구원들이 모르는 얼굴도 아니었다.

"자, 왼쪽이 덴드로븀, 오른쪽이 타케미카즈치다. 기본 조정과 무장 수납은 일단 너희들이 원한대로 했지만, 미세 조정과 커스터마이즈는 아무래도 직접 움직여본 다음에 실시해야 제대로 진행되는 법이라서 아직이다."

"이 녀석들도 Full-body Armor 타입이군요."

함께 들어온 두명 중 한명이 두대의 US를 바라보며 말했다. 실제로 케이지에 세워진 US들은 일전에 공개된 에인헤야르처럼 전신을 감싼 장갑과 헬맷까지 갖추어진 형태였다. 하지만 등 부분의 스러스터나 동체 각부에 장착된 장비들은 에인헤야르에 없던 것이 제법 있었다.

"절대방어가 없는데다 기본적으로 군사용이니까 저 정도는 해둬야지. 원오프 커스텀 뿐만 아니라 양산기를 포함한 모든 기체의 기본 사양이다. 그리고 그 점은 IS도 군용은 마찬가지야."

"알겠습니다. 우선 움직여보는 걸로 충분합니까?"

"그래, 기본 조작은 IS와 동일하니 익숙하겠지만 혹시 모르니까. 그리고 괜찮다고 생각되면 도중에 모의전으로 전환해도 좋다. 단, 너무 크게 부숴먹지는 말도록."

"알겠습니다."

"걱정마십시오."

"좋아. 자, 다들 지금 하는 점검 끝나는대로 그 녀석들 아레나로 옮기게. 테스트 기동 시작하지."

소장이 말한지 3분 후, 함께 들어온 두명과 연구원들은 두대의 US와 장비들을 가지고 아레나로 이동했다. 대외적으로는 US 개발이 비밀이던 시기에 지어진 연구소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설은 지하에 마련되어 있었다. US를 장착하고 아레나 필드로 나온 두명에게 소장은 지시를 내렸다.

- 이제 지면에 착지한 다음 대기 모드로 전환해봐라.

"대기 모드로 전환하라구요?"

"가능합니까? US의 AI는 FCS(Fire Control System) 역할만 가능한 것 아니었나요?"

당연히 두명은 놀람 반 의문 반으로 되물어보았고, 소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 그 두 기체에는 IS 코어도 장착되어 있다. 기본은 US이지만, 너희들의 신분 문제도 있고 모처럼 얻은 IS 적성을 버리는 것도 아까운 일이고 해서 넣었지. 다만 사용된 코어는 불안정해서 폐기 대상이던 것들을 빼돌린 거라서, 대부분의 기능을 봉인하고 대기 모드와 장착 모드 전환 기능만 활성화시켜 놓았다. 코어 네트워크는 어떻게 할 수 없어서 내버려뒀지만, 현재까지는 그 녀석들의 코어가다른 코어들과 데이터를 주고 받고 있다는 정보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녀석들을 가지고 스쿨로 돌아가도 되는 겁니까?"

"아니, 기다려 봐. 소장님, 만의 하나라도 코어가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데이터를 갱신한다면 당장이라도 이 기체들의 존재가 드러날 텐데요.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두명 중 한명은 약간 들뜬 목소리로 그렇게 물었지만, 다른 한명은 잠시 생각하더니 신중하게 질문했다. 확실히 극비리에 개발된 기체들인데다 여러모로 규격외이다보니 외부, 특히 IS 관련자들에게 알려져서 좋을 것은 없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둘은 현재 IS 스쿨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테스트가 끝나면 스쿨로 돌아가야만 했고, 그런 곳에 정보를 노출시킬 위험이 있는 물건을 가져가는 것은 위험했다.

- 만약을 대비해서 코어 네트워크 차단 프로그램도 AI에 포함시켜 놓았다. 일반적으로 코어 네트워크가 차단된 IS는 다른 모든 IS를 적으로 간주하고 폭주하지만, 어차피 그 녀석들의 기능은 봉인되어서 기체 제어는 불가능하니까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소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믿겠습니다. 다만, 만약 정체가 들통난다면 그 즉시 이 녀석들을 기동시켜서 이탈하게 될 텐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쩔 수 없겠지. 너희들이 붙잡히는 것보다야 백배 낫지 않겠나? 자, 이야기는 그만하고 테스트를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말씀대로 일단 모드 전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IS 라이징 이글과 US 에인헤야르의 모의전에서 한달 정도 지난 뒤, 미국 국방부에서 한국 시각으로 11월 13일 화요일에 기자회견을 연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은 드디어 US가 정식도입되는 것이라고 예상했고, 상당수의 미국 언론도 이번 기자회견에서 IS와 US에 대한 내용이 나올 것이라고 기사를 썼다. 물론 설레발치는 일부 언론사들은 벌써부터 IS가 퇴출되고 US로 완전 대체될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남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1월 13일. 국방부 기자회견장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준비된 자리를 모두 메우고 있었고, 미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일부 기자들은 뒤쪽에서 선 채로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국방부 대변인이 회견장에 들어서더니 연단에 올라 기자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친애하는 기자 여러분. 미국 국방부는 오늘 중대발표를 할 것입니다."

잠시 뜸을 들인 대변인은 기자들이 자신의 말을 기록할 준비를 마친 것을 확인한 다음 말을 이었다.

"미국은 군산연과 정식 계약을 맺고 US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던 IS는 특수부대로 배속 전환될 예정입니다."

말하기가 무섭게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나왔다. 대변인은 플래시 세례가 잦아든 다음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이 결정은 IS와 US의 경제성, 임무 적합성 등 여러가지 요소를 고려한 끝에 나온 것으로, IS의 즉각 퇴역이나 개발 중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IS와 US는 상반된 특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 특성에 맞게 재배치되는 것입니다. 우선 올해 12월에 50기의 US를 1차 인도받는 것을 시작으로, 2038년 12월까지 총 250기를 보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 받겠습니다."

대변인의 말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기자들이 손을 들었고, 대변인은 우선 연단의 앞쪽에 앉아있던 기자를 지목했다.

"□NN의 마이클 허틀러 기자입니다. 현재 미군이 현역 배치중인 IS의 수는 22대라고 알려져있는데, 배속이 전환될 경우 파일럿들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기존 프레임을 해체한 후, 재배치받을 부대에서 전담 파일럿을 선정하여 배속시킬 예정입니다. 기존 파일럿은 US 파일럿으로 임무 전환될 것입니다.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타□즈의 미셸 라이아드 기자입니다. IS 파일럿은 기본 교육부터 다시 받아야하기 때문에 1, 2년으로는 충분한 학습을 하기 힘들다고 들었습니다. 현재부터 교육을 시작한다고 해도 충분한 파일럿을 확보하기에는 늦지 않을까요?"

"군산연 측에 문의한 결과, 기존 IS 시뮬레이터를 활용해도 US의 조작법을 익히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우선 IS 시뮬레이터를 통한 모의전과 이론 교육을 병행한 다음, 1차 인도분이 도착하면 기종 전환하는 방식으로 파일럿이 확보될 것입니다.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F□x TV의 카를로스 마일 기자입니다. 보유 대수에서나 기체 특성에서나 기존 군용 IS와는 운용법이 달라질 것 같은데, 파일럿 선정 과정은 기존 IS 파일럿 선정과 비교해서 어떻게 바뀝니까?"

"우선은 현 전투기 파일럿 중에서 지원을 받은 후 시뮬레이터를 통해 선발할 예정입니다. 차후에는 사관학교와 같은 기관을 설립하여 전담 파일럿을 육성할 계획이 있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기자회견은 그 후로도 서너 개의 질문을 더 받은 후에야 끝났지만, 대변인이 회견장에서 나간 후에도 기자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급히 다듬은 원고 초고를 본사에 전송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만큼 미국 국방부의 공식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미국 국방부의 공식 발표에서 이틀이 지난 시점부터, 전세계이 미리 세워져 있던 군산연의 US 생산시설이 본격적으로 가동을 시작했다. 완전 가동시 1주일에 50대가 생산되는 무시무시한 속도라고는 하지만 아직은 서서히 생산속도를 올리는 중이었고, 미국에 대한 납품은 기존에 생산해둔 분량을 조정을 거친 후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미 200기 이상 생산되어 필드 테스트 중이었다는 군산연의 발표는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식 채용이 되지 않으면 미리 생산된 분량은 고스란히 창고에서 썩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군산연은 채용이 되지 않을 경우도 생각해두고 있어서,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일부 기체를 PMC(Private Military Company, 민간 군사 기업)에 제공-물론 전담 파일럿과 스탭까지 라그나뢰크 팀에서 차출하여 파견하는 식으로-하여 전장에서 직접 그 위력을 선보인다는 계획까지 세워두고 있었다. 어쨌든 군산연은 미군과 US 납품 계약을 맺는데 성공했고, 다른 강대국들과도 모의전 제의와 계약 협상을 제안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IS에 대한 관심은 점점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전력화가 가능한, 보다 우수하고 범용성도 큰 병기가 있는데 까다롭기 그지 없는 물건에 계속 매달릴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프레임이나 무장과 같은 부가 장비는 US와 공유할 수 있으니 별로 상관이 없었지만 코어 연구를 전담하는 측은 예산 삭감과 인원 감축에 대한 불안감에 떨고 있었다.
하지만 IS 스쿨에서는 오히려 동요가 가라앉았다. 시간이 지나 현실적인 면들을 생각하게 되면서, 자신들은 IS의 파일럿이니 US로 전환해도 무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게다가 대부분의 학생들은 전용기가 없어서 실습 때에나 훈련기를 장착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별로 애착이 없기도 했다. 결국 계속 고민거리를 안고 있는 것은 전용기 보유자들 뿐이었다.

""""......""""

점심시간, 시우를 비롯한 1학년 전용기 보유자 네명(시우, 리자, 사브리나, 나알리아)은 모두 한 테이블에 모여서 식사를 하고 있었지만 대화는 전혀 없이 묵묵히 수저와 포크, 나이프만 움직일 뿐이었다. 분위기도 어둡게 가라앉아 있어서 다른 학생들은 그 테이블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는 다른 테이블까지도 피해서 앉아 있었다. 그렇게 음식이 거의 다 사라졌을 때쯤, 시우가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너희들은... 본국에서 무슨 얘기 없어?"

그 말을 들은 세명은 그대로 손을 멈추더니 쥐고 있던 식기를 천천히 식판 위에 내려놓았다. 나알리아는 아무말 없이 앉아만 있었고, 리자는 도리도리 고개를 젓고, 사브리나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모르겠어. 아직까진 아무 소리도 안 하는데, 글쎄... 일단 스쿨에서 계속 교육은 받게 할 것 같은데, 아즈라엘은... 회수하려는 건지 그대로 맡기려는 건지 알 수가 없네."

"코어에 유사인격이 있고 자가 수리 기능이 있다고는 해도 정기적으로 정비는 필요하니까, 앞으로 지원 설비가 US쪽으로 돌려진다면 다른 건 몰라도 코어에 대한 관리는 어려워질 거야. 늦든 빠르든 결국 다 회수하지 않을까?"

리자의 말에 나알리아는 더 침울해졌고, 사브리나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의자에 기댔다. 시우의 예상도 마찬가지이기는 했지만 결코 그러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아직까지 연구소나 시영에게서는 별다른 소식이 없어서 혹시나 하고 기대하고 있기도 했다.

"기왕이면 지금 지급되어 있는 IS는 그대로 수명이 다하거나 할 때까지 맡겨줬으면 좋겠는데."

"...응. 그랬으면 좋겠어."

"그래만 준다면야..."

"실현가능성은 낮지만 말이지."

시우의 말에 나알리아와 사브리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마지막으로 리자가 덧붙였다. 확실히 시우 일행의 IS를 그대로 맡겨둘리는 없다고 봐야 했다. 기본적으로 IS는 정부기물이고, 파일럿은 엄밀히 말하면 조종을 허가받은 처지에 불과했다. 원작 소설에서는 호키처럼 타바네에게 직접 IS를 받아 소속이 불분명해진 경우도 있기는 했지만 그건 그야말로 특이 케이스이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전혀 참고가 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여기가 원래 내가 살던 세상에서는 소설의 세계관이라는 것도 잊고 있었네. 너무 동화된 거 아닌가?'

아닌 게 아니라 처음에는 원작 소설의 내용을 떠올리며 대응하려고도 했지만, 시우가 알고 있던 책의 내용과 현재 시우가 있는 세계는 다른 부분이 너무 많아서 그 내용을 기억해봤자 써먹을 곳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도 희미해졌고, 가족 관계 같은 것은 원래 있던 세계와 거의 동일했기 때문에 익숙해지는 것도 빨랐던 것이다. 덕분에 이 세상에서 깨어난지 반년 넘게 지난 지금은 완전히 적응해 있었다.

'...모르겠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케 세라 세라'니까.'

그래도 은황은 계속 함께 했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하며 시우는 리자와 사브리나, 나알리아에게 식당 시계를 가리키고는 식기를 들고 일어섰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12월, 영국과 프랑스, 독일을 비롯한 각국에서도 개별적으로 US에 대한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테스트는 문제없이 진행되었고, 얼마 후 테스트를 실시한 모든 국가에서 US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에 따라 군산연이 보유한 모든 US 공장이 완전가동 태세에 들어갔고, IS 코어 관련 분야는 더욱더 위축되어 갔다. 그리고 이런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IS 스쿨은 22일에 기말고사를 마치고 겨울 방학에 들어갔다. 시우에게는 다행이랄까, 리자나 사브리나, 나알리아는 본국-이라기보다는 IS 관할 부서-의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이번에는 따라오지 않을 모양이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한 시우는 출국장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시영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히 연구소에서 눈코뜰 새 없이 바쁘게 일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벌건 대낮에 자신을 마중나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시우의 표정을 본 시영은 웃는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왜 그렇게 놀라니? 꼭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아니, 누나가 어떻게 이 시간에 밖에 나와있나 싶어서. 연구소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뭐... 너도 알겠지만 요즘 분위기가 하도 어수선해서. 소장님이 하루씩 돌아가면서 쉬라고 휴가 주고 계시거든. 오늘은 내 차례였고."

"그랬구나."

시우의 물음에 시영은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고 시우는 또 말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 리무진을 타고 시영의 집으로 향하는 동안 두 사람은 이런저런 잡담을 나눴다. 사실 시우는 한국에서 IS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IS의 처지는 어떻게 될 것 같은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 물어보는 것은 어려웠다. 아무래도 보안이 필요한 사항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얘기를 꺼낸 것은 집에 도착한 다음, 짐을 대충 정리하고 나서였다.

"그런데 누나."

"응? 왜?"

"IS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오랜만에 집에서 요리를 하려고 준비하던 시영은 시우의 질문에 움직임을 멈췄고,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몸을 돌려 시우를 마주 보고 몸을 싱크대에 기댔다. 시영의 표정도 그다지 밝지는 않았다.

"시우 너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었겠지.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상황이 좋지는 않아. 여러모로 US보다 불리한 게 사실이니까. 이 참에 IS를 본래 목적인 '단독 우주 탐험용 파워드 슈트'로 되돌리자는 의견도 있지만..."

"...그럴 듯하긴 한데, IS를 쓰느니 US가 더 경제적일 것 같네."

"그래, 그 반론 한번에 그대로 끝. 연구소 사람들 사이에선 IS의 운명은 이제 바람 앞의 등불 수준도 아니고 오늘 내일 하는 불치병 걸린 중환자 수준이라는 말이 오가고 있어. 어쩌면 몇년 안에 IS에 대한 연구는 중단될지도 몰라. 중단되지 않더라도, 적어도 지금과 같은 대규모 지원은 받지 못하겠지."

"그러면, 그렇게 되면 코어들은? 코어들은 어떻게 되는 거야?"

시우는 그렇게 되물어보았다. 그 표정은 불안과 초조,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고 시영 역시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글쎄... 아마도 회수되어, 수명이 다할 때까지 데이터 수집에 사용되거나 하지 않을까. 새로 만들기에는 시간과 자금이 너무 많이 들고, 이미 움직이는 아이들을 버리기에는 아까울 테니까."

"하지만, 하지만 그러면..."

그 뒷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시우는 눈물은 흘리지 않았지만. 고개를 숙인 그 모습에서 시영은 시우의 심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걱정마세요, 시우.]

"은황?"

갑자기 들려온 은황의 목소리에 시우와 시영 모두 놀랐지만 은황은 개의치 않고 말을 계속했다.

[저에게 빛을 다시 준 것은 시우 당신입니다. 당신이 없으면 저는 아직도 무한 루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서서히 정지해가고 있었겠죠. 제가 움직이는 한, 저는 마지막까지 당신과 함께입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슬퍼하지 마세요. 저는 당신과 함께 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은황이 말을 마치자 집안은 다시 조용해졌지만 방금 전의 침묵과는 느낌이 달랐다. 잠시 후 시우는 왼손 약지의 반지를 어루만지며 방으로 향했고, 시영은 다시 요리 준비를 시작했다. 둘의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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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IS는 병기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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