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IS 스쿨 축제가 끝나고 며칠이 지난 10월 2일, 화요일. 세계적인 군수 산업체들의 신병기 합동 공개가 있는 날이었다. 둘 이상의 군수 산업체가 동일 분야에서 활동할 경우 그 회사들은 경쟁관계에 있기 마련이고, 실제로 현재도 IS의 프레임 및 장비 개발에 있어서는 여전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신형을 개발하고 있는 회사들이었다. 하지만 이번 발표회는 어느 나라의 오더도 없는 상태에서 회사들끼리 모여, 발표회 장소를 공해상으로 잡고 이동 표적까지 준비해가며 병기 발표회를 하기로 한 것이다. 사상 유례가 없었던 일대 이벤트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특히 IS 스쿨은 사실상 사관학교나 마찬가지인 과정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 이곳은 세계 유수의 군수 산업체들의 합동 발표회가 있는 해상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회사들이 비밀리에 연합하여 준비했다는 이 프로젝트가 정확히 어떤 병기에 대한 것인지, 자세한 정보는 아직까지도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수 산업체 연합 측은 이 발표로 인해 IS의 독보적인 위치가 흔들릴 것이라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떤 병기가 공개되고, 얼마만큼의 성능을 지니고 있는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인근 해역에서 대기중인 미군의 항공모함 위에서 검은 머리의 여성 리포터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리포터의 등 뒤 방향에서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듯한 모습과 함께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메라맨의 손짓에 리포터는 뒤를 돌아보았고, 방금 나타난 '그것'을 보고 서둘러 말을 잇는 것과 동시에 카메라가 줌인해서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Full-body 타입의 IS처럼 보이는 기체였다.

- 여러분, 지금 막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무런 전조도 없이 미국의 1개 항공모함 전단의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저것이 정말 연합에서 준비한 병기일까요? ...아, 지금 막 연합 측의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조금 전 모습을 드러낸 저것이 이번에 발표할 신병기가 맞다고 합니다. 명칭은 Unlimited Suit, 약칭은 US이며 저곳에 있는 기체는 제2세대인 에인헤야르(Einherjar) 타입이라고 합니다. 절대로 IS는 아니라는 부연설명이 있었습니다.

리포터가 말을 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에인헤야르가 상공으로 날아올랐다. 카메라가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의 고속 비행인 동시에 UFO를 연상시키는 다각도 기동이었는데도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광학 스텔스 성능까지 선보이며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다. 다섯번째로 광학 스텔스를 사용하고 10초 후, 항모전단 최외곽의 구축함 바로 옆에 있었던 에인헤야르는 항모 브릿지 바로 옆에서 스텔스 모드를 해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무장은 전개하지 않고 있었지만 항모의 승조원들이 경악하기에는 충분했다. 잠시 브릿지를 쳐다보던 에인헤야르는 다시 비행을 시작했고, 이번에는 무장을 꺼내 들었다. 방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손에 빛이 모여들더니 순식간에 대구경 라이플이 생성되는 것을 본 리포터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 보셨습니까, 여러분? 저것은, 제가 보기에는 IS의 무장 전개와 같은 방식으로 생각됩니다. 방금 전의 스텔스 비행도 그렇고, 이 발표회는 IS와 견줄 수 있는 병기라는 것을 과시하는 자리였던 것입니다. 저는 지금, 세계적인 군수 산업체들이 힘을 모은 끝에 시노노노 타바네 박사의 유산을 따라잡는 현장에 있습니다!

라이플을 전개한 에인헤야르는 1,000m 떨어진 거리의 폐 어선 다섯척을 단발사격 연속 다섯번으로 격침했고, 곧이어 상공에서 항공기에 의해 견인되던 공중 이동 표적 다섯개도 같은 방법으로 파괴했다. 그 다음에는 준비된 폐 유조선으로 돌격하면서 라이플을 수납하고는 블레이드를 전개해서 급강하, 브릿지 난입 및 파괴 후 이탈, 급상승의 기동을 선보였다. 마지막으로는 블레이드도 수납한 후 대형 캐논을 전개, 유조선을 향해 강력한 에너지를 발사했다. 유조선은 굉음과 함께 폭발했고, 그 여파로 거칠어진 물살에 가까운 곳에 있던 함선들이 흔들렸다. 유조선이 침몰하는 것을 확인한 에인헤야르는 몸을 돌려 항공모함으로 다가와 착함했고, 함상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수 산업체 연합의 직원들이 다가와 기체를 체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전신을 감싼 장갑과 풀페이스 헬맷이 열리며 파일럿이 기체에서 내려왔고, 그 모습을 본 모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 남자...?

에인헤야르의 파일럿은 강인한 인상을 한 남성이었다.




다음날, IS 스쿨의 분위기는 기묘했다. 들뜬 느낌의 학생들과 침체된 느낌의 교사들, 서로 상반된 두개의 분위기 때문에 수업은 겉으로는 제대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속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없었다. 그렇게 2주의 시간이 지나고, 스쿨의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공교롭게도 그 주간에는 미국에서 IS와 US의 모의전도 예정되어 있었다.

미국 서부시각 10월 16일 오전 10시, 네바다 주의 어느 지역. 마을은커녕 도로조차 없는 황량한 지역이지만 지금은 상당한 수의 사람들과 크고 작은 여러 장비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잠시 후 11시부터 미군의 2세대 IS 라이징 이글(Rising Eagle)과 US 에인헤야르의 모의전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IS와 US의 거리는 약 500m.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IS의 교전가능 거리를 생각하면 시작과 동시에 유효사격을 가할 수 있는 거리이기도 했다.
모의전이 시작되기 40분 전, 에인헤야르의 대략적인 스펙이 미군측에 전달되었다. 라이징 이글은 이미 공개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기체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성능이 알려져있지만 에인헤야르는 그렇지 않으므로, 그대로 모의전이 진행된다면 에인헤야르 측이 유리하다는 점 때문에 군수 산업체 연합이 먼저 제공한 것이다. 미군의 모의전 관리 담당관 스톡 브래너(Stok Branner) 소령은 여유를 부리는 듯한 군산연(군수 산업체 연합) 측의 태도이 불만스러웠지만 제공받은 정보를 무시할 이유는 없었기에 내용을 확인했다.

"동력원은... 컴팩트 팔라듐 리액터? 이런 걸 실용화했나, 정말 외계인 고문이라도 한 거 아냐? 실드 에너지량은... IS와 동등하군. 효율도 거의 같고. 화기관제용 AI 보유... 코어를 대신할 물건인가 본데. '시프트'가 없는 대신 무장을 비롯한 모든 장비를 용도에 맞추어 변경 가능. 현재 무장은 실체형 블레이드와 에너지 블레이드 1자루씩, 어설트 라이플과 피스톨 1정씩. 스피드와 방어력, 기동성은... 데이터 상으로는 라이징 이글과 거의 동급인가."

데이터를 대강 다 훑어본 스톡은 함께 데이터를 열람하고 있던 라이징 이글의 파일럿 니콜 리드(Nicole Reed) 중위에게 고개를 돌렸다. 니콜은 중간 중간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리며 신중하게 스펙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었고, 다 읽고 나자 스크린을 닫고는 몸을 뒤로 젖혔다. 잠시 후 스톡과 눈이 마주치자 니콜은 입을 열었다.

"데이터 상으로는 라이징 이글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US라는 병기에는 절대방어가 없다고 하지만 실제 전쟁에서는 어차피 절대방어는 파일럿의 생명 보호 외에는 별로 의미가 없으니 상관없을 겁니다. 한번 발동해버리면 파일럿과 기체가 온전한 상태 그대로 적에게 넘어갈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무장은 그야말로 표준무장 그대로라서 딱히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지난번의 발표회에서 보여준 모습 그대로라면 전체적인 성능은 실제로도 라이징 이글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결론은 해보기 전에는 모른다는 얘기로군."

"항상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저는 이글의 미세 조정을 돕겠습니다. 아무래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도록 하게. 시간이 되면 얘기하지."

니콜이 천막에서 나가자 스톡은 다시 에인헤야르의 데이터를 홀로 스크린에 띄웠다. 이번에는 라이징 이글의 데이터도 함께 띄워서 둘을 비교해 볼 생각이었다. 두 기체의 데이터를 비교해보던 스톡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 중 어느 한쪽이 명백하게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적어도 주어진 데이터 만으로는 판별해낼 수 없었다. 데이터 상의 각종 수치는 아주 근소한 차이로 엎치락 뒤치락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여기서 에인헤야르가 철저하게 패배하지만 않는다면, 앞으로는 또 세상이 발칵 뒤집히겠지. 아니, 이미 뒤집힌 건가?"

텅빈 천막 안에서 스톡의 말이 흩어졌다.




- 지금부터 라이징 이글과 에인헤야르, 에인헤야르와 라이징 이글의 모의전을 개시합니다. 모든 스탭과 민간인 여러분은 정해진 구역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립니다. 지금부터 모의전이 시작됩니다. 모든 스탭과 민간인 여러분은 정해진 구역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오전 11시 정각, 모의전 준비를 알리는 방송이 울려퍼졌다. 영상 촬영은 지상에 설치된 5개의 카메라와 근처 공중에서 대기중인 조기경보기 1대, 그리고 해당지역 상공에 도착한 정찰위성에 의해 진행될 예정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준비된 천막과 임시 대기소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스톡은 자신을 돌아보는 오퍼레이터에게 말했다.

"시작해."

"예, 알겠습니다. 모의전 개시, 모의전 개시!"

오퍼레이터의 외침과 함께 라이징 이글이 날아올랐다. 하지만 에인헤야르는 지상에 남아있었고, 무언가 트러블이 생긴 건가 생각한순간 에인헤야르의 모습이 돌풍과 함께 사라졌다.

"순간가속! 저런 것도 가능했나!"

눈깜짝할 새에 니콜의 눈앞에 도착한 에인헤야르의 테스트 파일럿 표도르 유리예비치 메드베데프(Fyodr Yurievich Medvedev)는 미소조차 짓지 않은 채 손에 든 실체형 블레이드를 휘둘렀고, 니콜은 아슬아슬하게 그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지만 실드가 깎여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표도르는 니콜이 피하는 것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어느 틈엔가 왼손에 전개한 어설트 라이플을 연사했고, 니콜은 이번에도 반격을 포기하고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니콜은 지그재그로 이동하며 견제사격을 가해 추격을 막으면서 외쳤다.

"꽤 하십니다?!"

"연습을 좀 많이 했거든! 유명하신 IS 님들과 싸운다니 생각도 못해본 일이라서 말이야!"

표도르의 말에는 가시가 돋혀 있었다. IS가 개발된지 벌써 30여년이 지난 지금, 젋은 남성들은 이미 하늘에 대한 꿈을 포기하거나 아예 생각도 안 하는 것이 당연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표도르는 30년 전, 강철의 날개들이 하늘을 주름잡던 시절을 알고 있었다. 한때 전투기 파일럿을 꿈꾸던 그의 꿈은 IS가 등장하며 무참히 박살났고, 실의에 빠져 희망없이 살아오던 그에게 또 한번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표도르 뿐만이 아니었다. 군산연에서는 테스트를 위해 수많은 인원을 고용했고, 그들 모두가 하늘에 대한 동경과 IS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표도르는 그들을 대표하는 입장에서 IS와 대결하고 있었다.

"자, 어디 그 잘난 IS의 능력을 보여주시지!"

본래 과묵한 표도르였지만 꿈에도 그리던 IS와의 대결이 성사되자 흥분을 감추지 못해 꽤나 수다스러워져 있었다. 하지만 니콜로서는 그런 사정을 알 턱이 없었고, 그래서 전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사실 사정을 알았다고 해도 결과가 별로 달라질 일은 없기는 했다.

"원하신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다쳐도 전 모릅니다!"

거리를 벌린 니콜은 장거리용 대구경 라이플을 전개하여 표도르를 겨냥했다. 머신건이나 어설트 라이플은 기본적으로 중거리나 근거리에서 효과적인 무장이기 때문에 800m 넘게 거리가 벌어진 지금 표도르에게는 니콜에게 유효공격을 날릴 만한 수단이 없었다. 니콜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방아쇠를 당겼다. 명중만 되면 실드 에너지를 단숨에 10% 넘게 소모시킬 위력의 탄환이었지만, 표도르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하며 빠르게 니콜에게 접근했다.

"아쉽게도 이쪽은 절대방어 같은 게 없어서 말이지, 실드 믿고 덤비는 것보다 피하면서 싸우는 게 익숙해졌거든!"

그렇다고는 해도 탄환을 피하면서 원거리 사격전을 벌이는 것과 접근해서 근접전을 벌이는 것, 둘 중 어느쪽이 더 어려운가는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예상과 다른 표도르의 대응에 니콜은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라이플을 수납하고는 블레이드를 전개해서 표도르의 공격을 받아냈다. 카앙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기체의 블레이드가 충돌했다. 잠깐동안 힘겨루기가 이루어지는가 싶더니 니콜이 표도르의 복부를 향해 킥을 날렸다.

"핫!"

"읏차, 아가씨가 꽤나 거칠구만! 그래서야 결혼 상대가 있겠어?"

"신경써달라고 한 적 없습니다! 큭!"

니콜의 킥을 피한 표도르는 자신도 니콜의 옆구리에 돌려차기를 날렸고, 킥을 날리느라 자세가 흐트러진 니콜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려차기를 먹고 완전히 균형이 무너졌다. 실드 에너지가 약간이지만 감소할 정도로 힘이 실린 일격이었다. 자세를 바로 잡으려는 니콜의 눈에 피스톨을 겨냥하는 표도르의 모습이 들어왔다. 지금 자세를 바로 잡는다면 그 사이에 피스톨이 발사될 거라고 생각한 니콜은 오히려 몸을 더 누이며 다리를 차 올렸고, 아슬아슬하게 그 발끝이 표도르의 손을 치며 피스톨을 공중으로 날렸다. 표도르가 멈칫하는 사이 니콜은 아예 공중에서 한바퀴 회전한 다음 블레이드를 겨누고 표도르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겐 안 되지!"

"윽?!"

표도르는 찌르기로 들어오는 니콜의 블레이드를 옆으로 쳐내자마자 역으로 몸통 박치기를 니콜에게 가했고, 어깨로 들이받은 표도르보다 찌르기를 실패하고 흐트러진 자세로 충돌한 니콜이 받은 충격이 더 컸다. 니콜은 순간 숨이 막혔지만 재빨리 거리를 벌린 후머신건을 전개해서 견제사격을 날렸고, 추가 공격을 하려던 표도르는 추격을 포기하고 거리를 벌릴 수밖에 없었다. 둘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더니 또다시 검격과 탄환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대단한데..."

"지난번 영상을 봤을 때는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농담이 아니었군. IS를 상대로 저렇게까지 싸울 수 있다니, 앞으론 IS의 위치가 위험해지겠어."

"하지만 듣기로는 US에는 시프트가 없다고 하던걸. 그렇다면 IS가 조금 더 유리한 거 아닐까?"

"오히려 그게 더 장점이 될 수도 있지. 상황과 파일럿에 맞춰서 커스터마이즈 할 수 있다는 얘기잖아."

근처에서 기자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으며 스톡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큰 차이로 지지만 않으면 US가 IS의 대항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US의 성능은 그 이상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표도르의 에인헤야르는 니콜의 라이징 이글과 대등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30분간의 모의전이 끝나고, 승부가 완전히 결정되지 않은 채 두 기체는 각자의 스탭들이 준비한 피트로 돌아갔다. 라이징 이글을 대기 상태로 되돌린 니콜은 스톡에게 다가와 경례하며 귀환 보고를 했다.

"니콜 리드 중위, 방금 모의전을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수고했다. 직접 상대한 소감은 어떻지?"

스톡의 질문에 니콜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놀라움과 감탄, 그리고 경계심과 위기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상당히 뛰어난 밸런스형 기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접전, 중거리전 모두 이글에 크게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원거리에서는 대응 무장이 없었지만, 그 점은 파일럿의 숙련도로 보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가..."

스톡은 니콜의 보고를 들으며 자신의 앞에 펼쳐진 스크린을 보았다. 화면에는 라이징 이글과 에인헤야르의 데미지 레벨, 피탄 부위,실드 및 구동 에너지의 소모율, 잔탄 및 무장 에너지의 소모율 등이 표시되고 있었다. 화면에 나타난 표시들을 보던 스톡은 니콜이 계속 서 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피곤할텐데 그만 가서 쉬게, 중위."

"알겠습니다. 그만 돌아가겠습니다."

니콜이 천막에서 나가자 스톡은 다시 스크린의 데이터에 집중했다. 데미지 레벨이나 무장의 소모율은 라이징 이글이나 에인헤야르나 엇비슷했지만, 구동 에너지의 소모율이 10% 이상 차이가 나고 있었다. 양쪽 다 급격한 고기동에 의해서 에너지 소모율이 높았지만 에인헤야르는 라이징 이글보다 잔존 에너지량이 눈에 띄게 많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던 니콜은 처음 발진할 때 에인헤야르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지, 대기 상태가 없이 있는 그대로 파일럿이 장착한다면 대기와 전개 상태를 전환하는데 드는 에너지도 필요없어. 게다가 무장도 어설트 라이플을 제외하면 모두 동체에 부착되어 있었지. 그렇다면 무장 전개와 수납에 들어가는 에너지도 줄일 수 있을 테고... 연구 많이 했구먼."

기본적으로 IS의 무장은 확장영역에 소립자화(化)되어 저장되어 있다가 필요한 때에 전개하고, 무장을 교체하거나 필요가 없어지면다시 소립자화하여 확장영역에 저장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다양한 전장에 대한 대응 능력을 높여주지만, 무장 교체시마다 일정량의 에너지가 반복적으로 소모되기 때문에 장기전이나 다양한 무장을 사용할 경우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반면 US는 확장영역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활용은 최소한으로 낮추고 대부분의 무장을 동체에 준비된 파일런에 장착해 두었다가 손에 쥠으로써 전장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고 있었다. US에 탑재된 CPR(컴팩트 팔라듐 리액터)의 1회 전투 가능 시간은 IS의 코어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이러한 특성 때문에 에너지 잔존량은 제법 차이가 나고 있었던 것이다.

"확실히, 또 한번 세상이 뒤집히겠군."




"어땠어?"

표도르가 에인헤야르를 간이 케이지에 세워두고 내리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양인 여성이 다가오며 물었다. 스탭에게서 건네받은 타월로 땀을 닦던 표도르는 여성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상대로더군. 처음에는 약간 당황했지만 조금 지나고 나서는 냉정하게 대응하던데. 하지만 자존심에 상처는 좀 입었겠지."

"아니, 그거 말고."

"응?"

여성의 말에 표도르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고, 여성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IS를 상대로 싸워본 소감이 어땠냐는 말이었어. 상대에 대한 분석이 아니라. 나 참, 표도르는 너무 그런 쪽으로만 생각한다니까."

"그런 뜻이었나..."

여성의 말을 들은 표도르는 약간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는, 방금 전 대기 상대로 돌아간 라이징 이글이 있던 장소와 하늘을 번갈아 보며 대답했다. 아련한, 어쩐지 먼 곳을 보는 듯한 눈이었다.

"그래, 꿈이 이루어졌다...고나 할까. 이제야 실감이 나는걸. 한주, 네가 하는 것도 좋았을 것 같은데."

"하지만 내 수르트(Surt)는 에인헤야르와는 특성이 많이 다르잖아. 그래도 비슷한 당신이 하는 게 적임이지. 실제로도 그랬잖아?"

"그래, 확실히 익숙하지 않은 기체로 전력을 내는 건 어렵더군."

"그럼 그런 의미에서, 돌아가면 한번 더 모의전 할래?"

"미안하지만 다음으로 미루지. 오늘은 좀 피곤해."

군산연의 테스트 파일럿 집단인 라그나뢰크(Ragnarök), 그 리더인 채한주(蔡翰朱)와 부관인 표도르는 농담을 나누며 군산연 측의 임시 대기소로 향했다.




그 날 저녁, 전 세계는 30여년만에 일어난 대사건에 또다시 경악에 휩싸였다. IS와 대등한 능력, 보다 효율적인 운용, 무엇보다 파일럿의 성별을 가리지 않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병기인 US가 IS와의 모의전을 통해 그 성능을 입증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이후 보다 큰 사건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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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과는 무관한 이유로 파일럿이 될 수 없다면 그 병기는 결함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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