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 이 글은 라이트노벨 인피니트 스트라토스의 설정만을 이용해 쓰여진 팬픽입니다.
원작 캐릭터들은 등장하지 않으니 이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라본 그곳에는, 힘을 잃고 추락하는 한대의 기체가 있었다. 일순간 벌어졌기에 누구도 반응하지 못했고, 또 누구도 이렇게 한순간에 끝나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음 순간 벌어진 기습에 아무도 반응하지 못했던 것은.

[경고! 적기 2대가 고속 접근중! 충돌 코스!]

"?! 크윽...!"

기체의 하이퍼 센서가 위험을 알렸지만 타이밍이 늦었고, 그에 더해 몸 상태도 이미 만신창이였기에 제때 반응할 수 없었다. 요격을 위해 몸을 돌리려 했을 때에는 이미 적기들에게 붙잡혀 있었다.

"시우!"

"저 녀석들이!"

"떨어졋!!"

완전히 밀착한 상태라서 사격만으로 적을 떨쳐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접근해서 떼어내려 했지만 그것도 잠시, 곧 움직임을 멈췄다. 그 이유는 시우도 잘 알고 있었다. 하이퍼 센서가 또다른 경고를 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고! 접촉중인 적기의 에너지 반응 증대! 임계점은 돌파했을 것으로 추정. 폭발 위험!]

"너희들..."

"잊고 있었던 모양이네?"

"그러면 서운하지. 한때는 동고동락하던 사이였는데 말이야."

""그러니까 함께 가자고─────!!!!!"

곧이어 두 명의 기체에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반파된 세 대의 기체는 섬광에 휩싸였고 잠시 후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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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팬픽 - [Infinite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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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6년 4월 2일.
'그러니까 왜 이렇게 된 거냐고... 물어봐도 대답해줄 사람은 없지만.'

한시우(韓翅羽), 16세, 한국인.
원래대로라면 대한민국에서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있어야 할 소년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처한 자신의 처지에 한숨이 나왔다.
학교 시설은 좋았다. 운동장이라고 할까, 그런 시설은 5개가 넘었고, 전원 기숙사제라지만 공동 목욕탕에 매점에 심지어 어지간한 대학급 도서관도 있고, 계속 서술하자면 마치 어딘가의 학원도시를 축소시켜놓은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랬다. 시설에는 불만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런 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다면 3년간 기숙사 생활도 괜찮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게 문제였다.

'제발 동물원 원숭이 보는 듯한 그 시선 좀 어떻게들 안 되겠어...?'

아까부터 계속 등뒤는 물론 양 옆, 심지어는 대각선 앞쪽에서까지(앞쪽 자리는 몇명 안 되는 데다 수업중에 대놓고 뒤를 돌아볼 사람은 없으니 사실상 반 전부) 이따금 꽂히는 시선의 화살이 너무 아팠다. 첫날 수업 시작도 하기 전에 이 모양이니 정말 앞날이 캄캄했다.

'...밥 먹다가 체할지도 모르겠네. 아니, 신경성 위염 같은 거라도 걸리는 거 아닐까.'

시우가 '남들 입장에서는 행복한 고민일지도 모르겠지만, 막상 겪어보면 생지옥'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교실 앞쪽 문이 열리며누군가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낯익은 사람이었다. 그래봤자 입학 시험 때 한번 본 게 고작이었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하게 안심이었다.

"자, 주목. 내가 오늘부터 1년간 너희들, 1학년 C반을 담당할 담임교사 야마모토 사키(山本 サキ)다. 담당 과목은 IS 훈련 전반이니까, 아마 가장 자주 보게 될 거다."

학생들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사키의 말을 들으며 시우는 다시 한번 사키를 보았다. 시험 때에는 경황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다소 차가운 인상이긴 하지만 어쩐지 늠름하다는 느낌이었다. 어쩌면 시험장에서는 IS를 장착중이라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인지도 몰랐다.

"자, 그럼 각자 자기 소개를 하기로 하지. 출석번호 1번부터."

반 친구들의 자기 소개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시우는 또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인피니트 스트라토스(Infinite Stratos), 줄여서 IS. 2108년에 공개된, 현존 최강의 병기.
개발자인 시노노노 타바네(篠ノ之 束) 박사가 처음 IS를 공개했을 때, 세계는 그다지 주목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IS는 본래 지원 없이 데브리 지대에서 장시간 활동이 가능한 차세대 우주복을 목표로 개발되던 도중, 동력원과 시스템 제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사실상 파기된 기획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개월 후, 전세계를 경악시킨 '백기사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이 사정권에 들어가는 세계 각국의 미사일 기지에서 돌연 발생한 관제 시스템 이상으로 4천발이 넘는, 정확히 세면 4527발의 각종 장거리 미사일이 발사되었고, 이를 백기사가 나서 전부 요격에 성공한 것이다. 실제로 발휘된 IS의 성능에 경악한 각국 정부는 순식간에 연합, 단 이틀 뒤에 미군 제7함대를 포함한 대규모 연합 함대가 일본을 향해 출항했다. 그리고 다시 하루 뒤, 백기사는 항모 7척과 순양함 12척, 구축함 10척, 잠수함 11척, 전투기 413대, 군사위성 9기를 무력화시키고 유유히 자취를 감추었다. 그 압도적인 성능, 광학과 레이더를 아우르는 스텔스 능력, 게다가 이런 피해 와중에 인명 손실은 단 한명도 없었다는 사실에 전세계는 그제야 IS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었고 곧이어 일본 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 이런 저런 얘기 다 압축해서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너네 국민이 만든 것때문에 지금 세상이 뒤집어졌으니 알아서 책임져라. 관련 교육기관도 설립하고, 코어도 만드는대로 공여하고, 코어 관련 정보도 공유하고. 대신 프레임 개발에 관련된 기술까지는 캐묻지 않으마. 그나마 다 떠넘기긴 조금 미안하니까 금전 지원도 해주긴 할게.' 정도.
여기에 덧붙여 IS 개발과 관련된 조항을 신설하여 체결한 것이 바로 알래스카 조약으로, 추가된 내용은 코어의 국가간 거래 및 양도 금지, IS는 사용된 코어를 보유한 국가의 소유, IS의 타국 내 군사 행동 금지, IS 연구를 내세운 비인도적 행위 금지 등이었다.

'바로 그 알래스카 조약 때문에 설립된 게 바로 이 IS 스쿨이란 말이지...'

그리고 왜 시우가 지금 IS 스쿨에 있는가 하면, 사실 단순한 이유였다. 입학시험장에서 IS를 기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일이 또 한번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당연했다. 오로지 여성만이 기동할 수 있다는 IS를, 사상 최초로 남자가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시우는 그 이후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하며 진저리를 쳤다.

'아니, 애초에 내가 이런 상황에 처할 거란 생각을 언제 해봤겠냐고...'

"...우. 한시우!"

"아, 네!"

한창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던 시우는 사키가 부르는 소리에 한박자 늦게 대답했고, 덕분에 사키의 찌를 듯한 시선과 마주치고 말았다. 잔뜩 얼어있는 시우의 귀로 여학생들의 작은 웃음소리와 함께 사키의 말이 들려왔다.

"입학 첫날, 그것도 자기 소개하는 동안에 딴 생각이라니 배짱이 두둑하군. 그렇게 여유로운가?"

"아뇨, 죄송합니다..."

"알았으면 어서 일어나서 자기 소개해라. 네 차례다."

사키의 말에 시우는 그제야 벌써 자기 순서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IS 스쿨의 출석 번호는 성(姓)의 알파벳 순으로 정하고 있어서 시우는 반에서 중간쯤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시우는 주변을 둘러보며 작게 심호흡을 했다. 30명의 시선이 집중되고, 그것도 죄다 이성이라는 점 때문에 더더욱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차라리 방금 전까지는 행복했다고 생각하면서 시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시우입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그러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특이한 것 전혀 없는, 문자 그대로의 인사에 불과한 자기소개만 끝낸 시우는 서둘러 자리에 앉았고, 시우가 앉자마자 여학생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시우는 뒤쪽 자리에서 숫기가 없다느니, 귀엽다느니, 가지고 싶다느니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자, 조용, 조용. 아직 자기소개가 다 안 끝났으니 마저 들어라. 다음 사람."

사키의 말에 여학생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겨우 자신이 화제에서 빠졌다는 생각에 시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IS 스쿨은 분명히 IS 파일럿 교육기관이지만, 동시에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도 갖추고 있다. 즉 IS 조종기술은 조종기술대로, 고등학생이 받아야 할 수업은 그 수업대로 모두 가르친다는 뜻이고, 그 때문에 학사 일정도 꽤나 빠듯해서 방학식이나 개학식이 있는 날도 정규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첫날 수업을 끝마친 시우의 정신적 피로도는 MAX에 근접해 있었다. 수업 방면으로나, 교우 관계 방면으로나 적어도 지금은 온통 스트레스를 주는 것들 뿐이었다.

"좋아, 이것으로 종례를 마친다. 기숙사 점호는 오후 9시 50분이니 잊지 말도록. 아, 그리고 한시우."

"네?"

종례를 끝내고 나가려던 사키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시우를 불렀다.

"한국에서 네 전용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더군. 아마 일주일 안에 도착할 것 같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라."

"...네?"

말을 마친 사키는 시우의 당혹감에도 아랑곳않고 그대로 교실을 나섰다. 그렇게 학생들만 남자 교실은 다시 소란스러워졌지만, 일반적인 학교의 방과 후에 있는 소란스러움과는 차이가 있었다.

'뭐야, 차별하는 거야?'

'실력도 아직 모르는데 벌써 전용기?'

'좋겠다~ 난 언제 전용기 받아보나~'

'혹시 누가 뒤에서 봐주고 있는 거 아닐까?'

'그보다는 천문학적인 확률의 케이스니까 지원을 잘 해주는 거겠지.'

'희귀 케이스인가...'

수근거림 속에서 들려오는 그 내용에 더 견딜 수 없게 된 시우는 도망치듯 교실을 빠져나왔고,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기숙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시우는 IS 스쿨 입학 전에 각종 테스트를 받으면서 연구소에서 이런저런 데이터를 뽑아냈다는 사실을 떠올렸지만, 지금은 그런 걸 생각할 기분이 아니었다. 여학생들이 노골적으로 훔쳐보는 것과 속닥거리는 것도 애써 무시한 채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시우는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유일한 남학생이기 때문에 시우는 방을 혼자 쓰고 있었고, 이 점도 여학생들이 수근거리는 이유 중의 하나였다.

"...큭!"

그리고는 주먹을 쥔 손으로 강하게 침대를 내리쳤다. 침대 스프링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지만 시우는 아랑곳 않고 계속해서 주먹을 내리쳤다. 한번, 두번, 세번. 그렇게 몇번이고 침대를 두들긴 시우는 약간 기분이 풀리자 몸을 돌려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시우는 무언가를 짓씹듯 내뱉었다.

"제기랄... 언제 내가 이런 세상에서 살고 싶다고 했냔 말이다, 이 빌어먹을 신 같으니라고."

시우는 드러누운 채로 두달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평범이라는 행복을 살던 그 시절의 기억을.




두달 전까지만 해도 시우는 특별히 잘나지도, 특별히 못나지도 않은, 대한민국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메카닉과 관련된 것이라면 다소 지나친 관심을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에 일상생활이나 교우관계에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날, 시우는 서점과 게임 샵에서 라이트 노벨과 게임 소프트-마침 신간이 나온 라이트 노벨 IS, 그리고 여러 모로 관련이 있어 보이는(...) 게임 X장X희-를 사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집 근처 지하철 역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했을 때, 커다란 경적소리가 들려오자 시우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속도를 줄이지 못한 채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대형 트럭을 보았다. 트럭에 부딪힐 때까지의 그 짧은 시간 동안, 시우가 한 생각은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어제 갔다올걸' 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눈을 떴을 때, 시우는 자신이 갑옷을 닮은 무언가에 손을 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엄청난 양의 정보가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잠시 후 시우가 손을 대고 있던 IS는 어느 틈엔가 시우에게 장착되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옆에 서 있던 여성이 경악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시우도 기겁하고 있었다. 접촉하는 순간 알게 된 정보로 지금 자신이 입고 있는 것이 IS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더불어 하이퍼 센서를 통해 주변 환경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고, 코어에서 전달하는 정보를 통해 현재의 연월일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덧붙여 자신이 지금 중학생 정도의 모습이라는 사실까지도.

덕분에 혼란이 가중되었다.

시우에게 있어 IS는 소설과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오는 가상의 장비였다. 작중에서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나타난 트럭에 치이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이 IS를 장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환생트럭이니 빙의니 하는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 뒤에 처하게 된 상황은 더 가관이었다. 일단 IS를 입기는 했으니 테스트는 진행되었고, 입학시험에서 IS 적응도를 테스트하던 교관-지금 시우의 담임인 사키였지만 그 때는 이름을 몰랐다-의 평가까지 받고 나자 어디선가 튀어나온 검은 양복의 무리들에게 연행되다시피 해서 웬 연구소로 끌려간 것이다. 나중에 그 연구소가 한국의 국립 IS 연구소라는 사실을 알게 되긴 했지만, 끌려간당시에는 그대로 감금당한 채로 연구대상이 되는 게 아닌가 해서 공포에 질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우는 후견인 아저씨와 누나인 시영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나마 아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긴 했어..."

어째서 본래 시우가 있던 현실의 인물들인 아저씨와 누나까지 있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낯익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시우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다. 그리고 그 둘과 대화를 나누면서 시우는 몇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화도중 몇번이나 자신이 이 세계의 시우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킬 뻔 했지만 간신히 들통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었다.)

이 세계에서도 시우와 시영은 남매라는 것, 여기서도 부모님은 시우가 태어난 직후 돌아가셨다는 것, 그 후로 아버지의 직장 상관이셨던 아저씨가 후견인이 되어 도와주셨다는 것. 다시 말해 개인적인 관계들은 원래 있던 세계와 거의 동일했다.

얘기가 끝나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시우에게 '사상 최초로 IS를 움직일 수 있는 남성'이라는 점 때문에 한동안 연구를 도와달라며 시영과 아저씨가 부탁했을 때에는 그러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거부권은 없다고 봐도 좋았고, 실제로 거부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입학 테스트가 끝나자마자 납치되다시피 했던 걸 생각해보면 정말 섬뜩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턱 하니 던져진, 전화번호부와 맞먹는 두께와 크기의 책 두권. IS 스쿨 입학 안내서와 IS 개론서였다. 입학안내서는 왜 주는지 알겠는데 개론서는 왜 주냐는 말에는

'그럼 아무것도 모르는채 들어갈 거냐? 글도 못 읽는 사람이 학교 들어가는 격인데?'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전세계 학생들이 한 곳에 모이는 일본 소재 IS 스쿨이라는 특성상, 영어와 일본어 회화 및 읽고 쓰기까지 배웠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시우가 입학 테스트를 받고 IS 스쿨에 정식 입학하는 오늘까지 연구를 돕고 입학 준비만 한 것은 아니었다. 책 속에서나 나오는 세계에 떨어진 이상, 이 세계가 어떻게 되어있는지는 알아둬야만 했다. 유비무환, 지피지기 백전불태,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지 않는가.

'마지막 속담은 조금 경우가 잘못된 것 같지만... 뭐, 상관없으니까.'

어쨌든 틈틈이 나름대로 조사해본 결과, 지금 시우가 있는 세계는 소설이나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세계와는 조금, 아니 생각보다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이 세계에는 원작 주인공인 오리무라 이치카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그 누나이자 몬도그로소 1회 대회 우승자인 오리무라 치후유조차 없었다. 그보다 한술 더 뜨는 것은, 지금은 IS가 개발된 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시기라는 점이었다. 원작에서는 기껏해야 10년 정도 지났을 뿐인데. 게다가 그 주제에 IS의 개발세대는 원작과 똑같이 3세대 개발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아니지. 생각해보면 10년 정도 되는 기간동안 병기의 개발 세대가 3대까지 가는 게 비정상이지. 어느 동인녀 작가 각본의 로봇물을 빙자한 물건도 아니고.'

현실-그러니까 원래 시우가 살던 세계-을 떠올려보면, 현대 병기의 세대별 개발 간격은 10년 이상 걸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그게 아무리 세기말 천재, 아니 세기적 천재가 함께 했다고 해도 거의 3년마다 한 세대가 갈린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실제로 이 세계의 시노노노 타바네는 천재이긴 해도 그 정도 수준은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다곤 해도 장거리 미사일 4천발이 넘는 걸 동시에 일본으로 날린다는 점에서 매드 사이언티스트 확정에 실력도 보증된 거지만.'

그리고 또 자기가 원래 알던 것과 다른 점은, 코어의 제작 기술이 완전 공개되어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었다. 소설에서는 기술이 공개되었는지 어땠는지는 몰라도 코어를 만들 수 있는 것이 오직 타바네라는 사실만은 확실했는데, 이 세계에서는 자금과 기술력만 받쳐주면 어느 나라에서든 코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작'이 가능하다는 얘기지, '기동'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별개였다. 다시 말하자면 만들 수는 있어도 기동 여부는 시도를 해봐야 알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기술 공개 후 현재까지 기동에 성공하는 코어는 전세계를 통틀어 연 평균 3~4개. 쉽게 말해 뽑기운이었다. 그 와중에 미국은 거의 매년 1개씩은 기동에 성공하고 있었으니 과연 쇼미더머니의 나라라 불릴 만 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바로 코어에 수명이 있다는 점. 소설에서는 가장 오래 된 코어도 기동시간 10년 안팎이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1세대 IS의 코어들은 벌써 기동시간이 30년에 육박하고 있었다. 그리고 타바네가 공개한 자료들에 따르면 코어의 수명은 대략 40년, 그리고 초기화와 최적화를 반복할 때마다 수명이 연 단위로 감소한다고 한다. 실제로 최초로 공개되었던 백기사의 코어는 각종 연구를 위해 초기화와 최적화를 거의 몇달 간격으로 반복한 결과 20년도 못 버티고 기동을 정지했다.
이 때문에 코어의 생산이 매년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거의 그만큼 매년 기동을 정지하는 코어들이 생기는 통에 수량은 600기 근처를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참고로 2136년 1월까지 전세계에서 기동중인 코어의 수는 614기였다.

'아직은 뭐 망국기업 같은 것도 없는 것 같고... 애초에 그런 녀석들이 대놓고 활동하지는 않겠지만 말이지.'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여권신장은 제법 되었지만 소설에서처럼 여존남비까지 치우치는 일은 없었다. IS가 분명 뛰어난 병기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를 제압하는 면에서의 얘기이고, 실질적으로 전쟁이 끝나는 것은 지상군이 진군해서 해당 지역을 점령할 때이다. 아무리 IS가 우수하다고 한들, 베트남전처럼 거의 게릴라 전술을 벌인다면 소수의 IS로는 대응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수틀리면 아예 의심가는 지역을 초토화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국제사회에서 비난을 면치 못할 테니 쓸 수 없는 방법이라 봐야 했다. 해군 역시 해적 행위 방지나 선박 호위, 불법 어로 감시 등의 필요 등으로 계속 존재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IS 때문에 제대로 피 본 방면은 공군 정도였다. IS가 한번 떴다 하면 전투기는 더 볼 것도 없이 과녁판 신세였고, 그렇다고 게릴라 전술을 쓸 수 있는 체계도 아니었으니 대규모 감축은 피할 수 없었다. 한 때는 공군 무용론까지 나올 정도였다고 하니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는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아무튼 군대는 전쟁 수행 이외에 평시에도 자연재해 복구나 대규모 공사 등에 투입되는 식의 활용이 용이했기 때문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고, 남성 전체가 여성보다 못하다는 인식은 별로 없었다. 찾아보면 있기야 했지만, 그 정도는 20세기 후반, 21세기 초반의 정신줄 놓은 자칭 페미니스트들의 수준 정도에 숫자도 극소수였다. 물론 그 반대도 있었고, 그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어쨌든 적응할 수 밖에 없겠네..."

시우는 두달 전부터의 기억을 되짚어보자 그나마 마음이 좀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안정되었다는 건 아니고, 반쯤 체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했다. 도망칠 곳은 어디에도 없고, 처한 상황이 극단적으로 불합리한 것도 아니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적당히 무시하고 적당히 어울리며 살면 큰 문제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시우는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원래 세계에서처럼, 물 흐르듯이 조용히 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이 너무도 물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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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트 노벨 '인피니트 스트라토스'의 팬픽입니다. 모 커뮤니티에서 연재했던 물건을 블로그에서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역시 지금봐도 부족해보이는 물건이지만... 어떻게 고쳐야할지 판단이 안 서서 말이죠(...) 그냥 그대로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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