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자,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했어."

"하아, 하아... 네, 앤도 수고하셨어요."

"샤워 준비 다 끝났습니다. 내일은 학교 가야 하니까 얼른 씻고 주무세요."

"아, 고마워, A-10. 앤, 그럼 먼저 씻을게요."

샤워실로 향한 프레이야가 도중에 건넨 목검을 받아든 A-10은 다른 손에 들고 있던 타올을 앤에게 건넸다. 레니핀의 현재 계절은 완연한 가을이었고, 거기다 지금 시간은 자정이었다. 땀을 제때 닦아 두지 않으면 감기에 걸릴 수도 있었다.

"고마워, A-10. 준비성 철저한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것 때문에 오히려 더 부려먹힌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넘어가지요. 프레이야의 지금 실력은 어떻게 보세요?"

역시 목검을 A-10에게 넘기고 타올로 땀을 닦던 앤은 A-10의 물음에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생각보다 배우는 게 빨라. 게다가 응용력도 있고. 단지, 청적파를 완전히 터득하는 건 힘들 것 같지만...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니 그 이상을 바랄 수는 없겠지."

푸른색과 붉은색의 파동을 발현하는 청적파는 프레이식 검술의 요체가 되는 기술이었다. 이 파동기는 초상능력이 없는 앤을 위해 프레이가 만들어 낸 것이기에 이론상으로는 누구든지 사용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실전에서 필요한 수준의 위력을 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련과 전투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이론으로는 청파와 적파를 모두 쓸 수 있지만, 지금 프레이야를 가르치고 있는 앤이 적파만 사용할 수 있는데다 의료용 나노머신과 적파의 상성 문제 때문에 파동기를 실제로 보여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체득에 시간이 걸리고 그마저도 완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말이지, 청적파를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기 전에 큰일 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실전을 통해서 완성되는 거니까."

"말이 씨 된대요. 그런 말씀은 삼가해주세요."

A-10의 말에 고개를 으쓱한 앤이었지만, 사실 속으로는 프레이야의 성장 속도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트레이닝을 시작한지 표준역법으로 9개월, 검술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5개월 정도 지났을 뿐이었지만 프레이야는 벌써 웬만한 기사 교육생 2~3년차 수준의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1~2년만 더 가르치면 실력 자체는 견습기사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조금 불안정해보이던데...'

앤은 방금 전의 대련에서 느낀 위화감을 떠올렸다. 얼마 전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던 것이 오늘은 확연했다. 빈틈이 좀 보이긴 했지만 아직 배우는 과정이니 당연한 일이었고, 전체적으로 움직임 자체는 괜찮았기에 그 위화감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아... 대체 뭐가 문제람...?"

그 시각, 프레이야도 같은 문제 때문에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며 투덜거리고 있었다. 요즘 기(氣)의 제어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방금 전 대련 중에도 양손의 목검에 기를 불어넣는 과정이 중간에 꼬이는 바람에 빈틈이 생기는 일이 몇번 있었다.

"쌍검술이 나하고 안 맞는 건가..."

프레이야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다시 한번 양팔을 움직여 검술을 대강 구현해보았다. 양손에 검을 쥐고 휘두르는 것에는 문제가 없어서, 말그대로 물 흐르듯 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검을 휘두르는 것'만은. 그런데 파동기를 쓰기 위해 기를 움직이면 제어가 어려워지는 일이 종종 생겼다. 지금은 아직 연습단계이니 괜찮다 쳐도, 만약 실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자리에서 죽은 목숨이었다.

"일종의 슬럼프려나..."

지금 프레이야의 고민을 앤이 알게 된다면 기막혀 했을 것이다. 검을 배우기 시작한지 채 반 년도 안 된 아이가 기를 움직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전례를 따지자면 프레이 같은 경우도 있고, 고대의 검사들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그런 경우가 있었다고는 해도 놀랄 일이라는 점에선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 재능과 빠른 성장이 문제가 되고 있었다. 아직 완전히 체계가 잡히지 않은 검술을 배우다 보니 미처 개선되지 않은 부분까지 그대로 배우는 바람에 탈이 생긴 것이다. 이 문제를 깨닫고 해결책을 찾아낸다면 프레이야는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은 더 훗날의 일이었다.




프레이야의 하루 일과 중 검술 수련은 그리 긴 시간을 차지하지 않았다. 지금 프레이야의 나이는 13세. 아직 의무교육기간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낮에는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리고 귀가하고 나면 9시까지는 가게 도우미, 그 뒤 30분간은 가게 뒷정리. 그런 다음 집에서 12시까지 검술 대련, 그 후에 샤워 후 취침이었다.(과제는 가능한 학교에서 해치우는 습관을 들여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수련을 처음부터 대련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어서, 일단은 앤이 건네준 검술 교본을 보고 스스로 자세를 익힌 다음 앤이 바로잡아주는 식으로 시작했다. 사실 프레이식 검술은 원래 자세나 검로(劍路) 같은 것이 구체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게 아니라서 사용자의 직감에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 때문에 교본만 보고 익혔다간 자칫 완전히 잘못된 습관을 가질 수도 있었다. 그 때문에 앤은 처음 한달동안 눈에 불을 켜고 프레이야의 자세를 교정하려 했지만, 그 교정해야 할 잘못된 자세가 거의 보이지 않아 금방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 일로 앤은 프레이야의 직감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감이 밥 먹여 주는 건 아니란 말이지..."

아무리 감이 좋아도 그걸 실제로 구현할 능력이 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직감은 오랜 세월 다듬어진 습관보다 못한 법. 그리고 현재 프레이야는 '벽'에 가로막혀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나야 중앙에서 배우면서 도움받은 것도 있었고, 프레이도 있었지만..."

체계적으로 짜여진 교육·단련 체계, 천재적인 실력을 갖춘 스승, 거기다 앤 자신의 의지까지 더해졌기에 앤은 문자 그대로 공전절후의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프레이는 애초에 카테고리 자체가 달랐으니까 논외로 치더라도, 초상능력도 없으면서 탑소드에 거의 근접했던 앤이었기에 한눈에 재능이 있다는 게 드러나는 프레이야의 지금 상황이 더욱 안타까웠다.

덜그럭.

앤이 생각에 잠겨있는데 옆에서 접시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싶어서 고개를 돌려 보니, A-10이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접시를 들고와 싱크대 옆에 올려놓고 있었다. 원래 놓여있던 것까지 합치면 십여장은 넘을 듯 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마스터. 아까부터 손이 놀고 있는데요. 설거지 거리가 계속 쌓여가고 있어요."

"알았어, 알았어. 금방 끝낼게."

"조금 있으면 프레이야가 돌아올 시간입니다. 주문 밀려들 걸 생각하면 얼른 끝내두시는 게 좋을 거에요."

"...알았다구."

누가 주인이고 누가 종업원인지 헷갈릴 것 같은 대화였다.




그날 밤의 대련은 어제보다 더욱 엉망진창이었다. 이제는 몸놀림까지도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제까지는 그래도 앤의 공격을 받아내고 이따금 반격도 해왔지만, 오늘은 일방적으로 방어만 하면서 그마저도 수시로 뚫려서 바닥에 구르곤 했다. 보다못한 앤이 먼저 목검을 내렸다.

"...안 되겠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자."

"네? 더 할 수 있어요. 시간도 아직 남았잖아요?"

프레이야는 의문을 표하며 벽에 걸린 <span id="POPS6541_342" class="pops">시계</span>를 쳐다봤다. 시간은 11시를 조금 넘긴 시각. 평상시의 대련 종료까지는 아직 30분 이상 남아있었다.

"안 돼. 지금 네 상태로는 계속해봤자 도움이 안 될 뿐더러, 잘못하면 부상을 입을 수도 있어. 실력을 쌓으려고 대련하는 건데, 부상을 입어서 수련이 중단되어서야 말이 안 되지. 그러니까 오늘은 이걸로 끝."

"...알았어요."

목검을 A-10에게 건네고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프레이야의 뒷모습을 보며, 앤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갈수록 태산이네. 제대로 슬럼프에 빠진 모양인데. 이걸 어쩐다..."

"슬럼프를 겪고 나면 한층 더 뛰어난 실력을 갖게 된다고 하니, 오히려 좋은 것 아닐까요?"

"그거야 슬럼프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얘기고. 벗어나지 못하면 말짱 꽝이잖아. 뭔가 계기가 필요할 것 같은데..."

사실 아예 슬럼프를 겪지 않은 사람도 한명 정도 알고 있지만, 역시 그 사람은 카테고리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논외였다.

"지금이라도 중앙에 보내시는 건 어때요? 거기라면 적어도 교육면에 있어서는 마스터보다 더 잘하는 기사분들도 계실 텐데요."

"초상능력도 없는 데다 실력도 어중간한 아이를 대뜸 받아줄 정도로 중앙이 무르진 않다구. ...가만, 그러고 보면..."

A-10의 제안에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대답한 앤이었지만, 무언가 떠오른 듯 다시 생각에 잠겼다. 이따금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도 난 모양이었다.




"아, 프레이야. 잠깐 할 얘기가 있으니까 이리 와서 좀 앉아볼래?"

며칠 후, 역시 평소보다 대련을 일찍 끝마친 프레이야는 방에 가려다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앤에게 불렸다. 대련이 끝나면 1초라도 빨리 자두라는 것이 앤의 방침이었기에 프레이야는 지금 앤의 행동이 조금 의아했다. 그런 프레이야에게 앤은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이제 중앙에 가렴."

"...네?"

"중앙기사단에서 정식 기사 교육을 받으라는 얘기야. 아무래도 그 편이 좋을 것 같아."

난데없이 나온 중앙 얘기에 프레이야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되물었다. 아무 얘기도 없이 떠나라고 하면 당황하는 것이 당연하다.

"자, 잠깐만요, 앤. 지금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요즘 대련이 잘 안 돼서 화 났어요? 내가 제대로 못해서 실망한 거에요? 갑자기 왜 중앙에 가라는 거에요?"

"아니, 화 난 것도 아니고 실망한 것도 아니야. 그저..."

"내가 꼴도 보기 싫어진 거에요?"

프레이야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앤을 바라보며 말했고, 그 모습을 본 앤은 그제야 앗차 싶었다. 아무리 평소에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인다고 해도 프레이야는 이제 고작 13살이었다.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아직 부모와 함께 살면서 그 사랑을 받으며 자랄 나이인 것이다. 하지만 괴수에게 가족을 잃고,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보내져서 새로운 가족(이라고 할 만한 사람)과 살게 되었는데 갑자기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면 버림받았다는 생각을 하기엔 충분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애였구나. 이런 면은 프레이하고 또 비슷하네. ...아니, 프레이하고 비교하면 이 아이한테 실례가 되려나.'

"미안, 미안. 내가 설명이 부족했구나. 내 말은, 아무래도 내가 가르치는 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으니까 중앙에서 기초를 닦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얘기야."

"하지만 기초라면 이미 앤에게 배운 것들이잖아요."

"그건 프레이식 검술의 기초고, 거기다 애초에 프레이식 검술에는 기초고 뭐고 없어. 그저 초식과 파동기 사용법만 있을 뿐이지. 프레이가 만들 때 엄청 날림으로 만들어놔서 정리하면서 머리 깨지는 줄 알았다구."

앤은 쓴웃음을 지으며 프레이야의 말에 대답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네가 싫어진 것도 아니고 미워진 것도 아니야. 네가 뛰어난 기사가 되었으면 해서 중앙에 가라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언젠간 갈 생각이었잖니?"

"그야 그렇지만... 아직은..."

"괜찮아, 중앙기사단은 교육시설은 잘 마련되어 있고 체계도 제대로 잡혀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네 실력이라면 교육생 입단 시험 정도는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을걸? 물론 그 뒤는 너 하기 나름이지만 말이지."

"그래도..."

"그리고 중앙에 가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어."

거기까지 말한 앤은 잠시 말을 멈추고 프레이야를 바라보았다. 그 진지한 눈빛에 프레이야도 어떤 얘기인지 대강 짐작이 갔다.

"네 슬럼프를 극복하고, 한 단계 더 올라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앙에 가야 해. 여기 계속 있어선 넌 '벽'을 넘을 수 없어."

"하지만 여기서도 잘만 하면..."

"아니야. 슬럼프를 탈출하기 위해선 뭔가 계기가 필요해. 라이벌이라도 좋고, 스승이라도 좋고, 그것도 아니면 신념이라도 좋아. 무언가가 자극을 주어야 해. 하지만 여기엔 자극이 될 만한 것이 없어. 네 상대를 해줄 수 있는 건 나나 A-10 정도고, 그것도 이미 지겨울 정도로 대련해봤으니 상대방의 습성 같은 건 거의 파악된 상태지. 물론 그렇다고 이길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얘기가 달라지지만 말이야. 어쨌든, 지금 네가 슬럼프를 빠져나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 중앙에 가는 거야. 내 말 이해했니?"

"......"

프레이야는 말이 없었다. 이해는 했지만 수긍은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생각보다 완고한 태도에 앤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중앙에 가서 교육생이 된다고 해서 완전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야. 1년에 두번 정기휴가가 있고, 실전에 나가게 되면 위로휴가도 있어서 그 때마다 만날 수 있어."

"그래도... 떨어져 있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다시금 프레이야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걸 본 앤은 머리를 감싸쥐고 싶은 심정이었다. 평소에 어른스러운 점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 아이다운 고집을 피울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어른스러움 때문에 반동이 커서 이런 면에서 더 아이처럼 구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논리적인 설득보다는 어떻게든 달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아, 잠깐 좀 기다려 봐."

앤은 말을 하자마자 방에 들어가더니, 잠시 후에 손에 무언가를 든 채 나왔다. 프레이야에게 내민 그것은 작은 보석이 박힌 <span id="POPS167_586" class="pops">귀걸이</span> 한쌍이었다. 한쪽에는 붉은색, 다른 쪽에는 푸른색의 보석이 박힌 귀걸이. 원래는 기사단에 입단하기 전에 프레이가 생일선물로 앤에게 사준 것이지만, 앤이나 프레이 둘 다 장신구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여태까지 귀걸이 함 속에서 꺼내지 않은 물건이었다. 덧붙이자면, 그 해 프레이의 생일에는 똑같은 디자인의 귀걸이를 사서 선물해줘야 했다.

"자, 이걸 하나씩 귀에 달자. 그리고 서로 생각날 때마다 이 귀걸이를 떠올리는 거야. 어디에 있든, 이 귀걸이를 하고 있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응?"

앤의 난처해 보이는 미소를 본 프레이야는 결국 앤이 내민 귀걸이 중 하나를 집어 들고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움직임에 눈물이 한방울 바닥에 떨어졌다.




일주일 후, 프레이야는 레니핀 중앙 우주공항에서 탑승수속을 밟고 있었다. 승객들의 줄 뒤편에는 앤과 A-10이 배웅을 하러 나와 있었다. 수속을 마치고 우주선에 타기 전, 프레이야는 몸을 돌려 앤과 A-10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마주 보며 손을 흔드는 프레이야와 앤의 한쪽 귀에는 자그마한 푸르고 붉은 귀걸이가 매달려 있었다.
프레이야가 탑승구 안쪽으로 사라진 후, 앤은 조용히 걸음을 돌렸다. 옆에서 걷던 A-10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따를 뿐이었다.




우주력 430년에 있었던 E-34의 아린 행성 침식으로 인해 중앙기사단은 그 본거지를 잃었다. 엄청난 희생 끝에 E-34는 격퇴했지만 아린 행성은 결국 폐기지정 되었고, 중앙기사단은 아린의 바로 옆 행성계인 리아드 행성계에서 재건을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도 사실상 붕괴 상태까지 간 중앙기사단은 재건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다시 설립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것은 시설 뿐만 아니라 인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E-34 각성 당시 중앙에 모여있던 교육생들이 전멸한 것은 기사단의 존립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전선에서 죽어나가는 숫자를 보충할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벨치스 전이 기사단의 줄기를 반쯤 부러뜨린 사건이라고 하면, 아린 전은 기사단의 뿌리를 거의 다 끊어버린 사건이었다.
이런 문제 때문에 현재 중앙기사단은 입단시험이니 뭐니 하면서 교육생을 가려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당장 머릿수가 부족한 마당에 자질을 따지기는 어려웠고, 실력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기르며 된다는 시각도 있어서 지금은 입단 신청을 하면 기본 실력 테스트만 거치고 입단 처리를 끝내고 있었다.
참고로, 프레이야는 앤이 추천장을 써서 기사단의 책임자에게 보냈기에 그 테스트마저도 건너뛸 수 있었다.(앤이 프레이야에게 그 얘기를 해줄 때 옆에 있던 A-10은 '역시 빽은 가지고 봐야 하는 거군요'라고 했다.)

"뭐, 정확히 말하면 '일단 받아 주기는 한다만 실전에서 죽어도 우린 모른다'는 방침이라고 할까. 덕분에 요 7년간 교육생과 견습기사 사망률은 그 이전의 두세배까지 뛰어 올랐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또한번 앞에서 달리고 있는 차를 추월했다. 분명 규정 속도는 넘지 않고 있는데도 왠지 모르게 같이 타고 있는 사람이 불안해지는 운전이었는데, 남자는 그 점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듯 했다.

"응? 왜 그러나, 꼬마 숙녀님. 얼굴 표정이 좀 안 좋은데? 방금 얘기에 겁 먹었어? 아니면 혹시 멀미해?"

"아, 아뇨... 그런 건 아니에요..."

남자는 프레이야가 리아드 중앙 우주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말을 걸어와서는 앤에게 연락을 받았다며 프레이야를 차에 태웠다. 외모나 나이대가 앤이 말해준 그대로였기에 프레이야는 아무 생각없이 탔지만, 지금은 차라리 버스를 탈 걸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저... 그런데 마일로 씨..."

"응? 왜 그러나, 꼬마 아가씨?"

그렇게 대답하며 또 한 대를 추월하는 마일로. '뭐랄까, 저 나이 먹도록 독신이라는 게 어쩐지 이해된다'는 생각을 하며 프레이야가 말을 이으려는 순간, 이번엔 급정거를 하는 바람에 혀를 깨물고 말았다.

"~~~~!!!!"

"왜 그래, 아가씨? 할 말 있는 거 아니었어?"

"아, 아후 허또 아니헤효. ...그것보다 마일로 씨, 슬슬 이름으로 불러주셨으면 좋겠는데요. 그 꼬마 아가씨라는 표현, 어쩐지 듣기 안 좋아요."

"아, 미안 미안. 신경에 거슬렸나 보군. 알았어, 그럼 제대로 프레이야라고 불러주지. 그건 그렇고... 거의 다 온 것 같군."

말을 마친 마일로의 차는 이윽고 고속도로에서 벗어나더니 속도를 더 올렸다. 순간적으로 기겁한 프레이야였지만, 지금 진입한 도로에는 어째서인지 다른 차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일로의 차 외에는 아예 차가 없었다. 프레이야는 몰랐지만, 이 도로는 중앙기사단으로만 통하는 전용도로였기 때문에 기사단과 관련있는 사람들 외에는 지나다닐 일이 없었다.
잠시 후, 마일로의 차에서 내린 프레이야의 눈에 초고층의 타워가 들어왔다. 단면이 정오각형의 형태인 타워의 주변에는 그보다는 낮지만 그래도 꽤 높은 건물들이 일정한 배치를 따라 세워져 있었고, 타워와 빌딩 뒤편에는 거대한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신생 중앙기사단의 본부와 교육 및 훈련시설, 그리고 병기 실험장이었다. 엄청난 규모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프레이야의 앞에서 본부 건물을 등지고, 마일로가 입을 열었다.

"그럼, 중앙기사단 교육부 총장 자격으로 말하지. 기사단 입단을 환영한다, 프레이야 샤텐니르 교육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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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나이트런 39화가 업로드 되었죠.

......더 할 말은 없습니다.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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