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 이 팬픽은 나노하 StS 이후 약 70년이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요 인물은 등장하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 쉘터 제1게이트 돌파, 제2게이트 방어팀 교전중! 오래는 못 버팁니다!

"미안하다. 힘내서 버텨달라는 말 밖에는 해줄 수가 없어."

- 지부장님 잘못도 아닌데 신경쓰지 마십시오. 상황이 급하니 통신 끊습니다, 이상!

화면에 비치던 남자가 모습을 돌리며 공간 모니터가 종료되었다. 5개의 게이트 중 1개가 돌파되었을 뿐이지만, 그 첫번째 게이트에 방어팀의 1/3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망은 밝지 않았다. 페이는 막막한 기분에 한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간신히 쉘터까지 도망친 비전투원들이 걱정이 가득한 눈으로 페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페이는 억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다들 걱정하지 마라. 게이트가 완전히 뚫리는 것보다 트론 녀석이 쓰러지는 게 더 빠를 테니까."

그렇게 페이는 자신도 반신반의하는 말로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카앙 하는 디바이스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튀었다. 벌써 10여 분 가량 싸우고 있는 에리나와 실비아의 PA는 곳곳이 찌그러지고 금이 가 있었지만, 둘의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더 빠르고 날카로워지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아직도 ELF 전투반과 무장대가 전투중인지 끊임없이 폭음과 진동이 전해져 왔지만 두사람에겐 중요하지 않은 일이었다.
한 차례 다시 격돌한 둘이 거리를 벌렸을 때였다.

『Sir, 피하십시오!』

『Master, 회피를!』

바르디슈와 레이징 하트가 동시에 경고를 발했고, 실비아와 에리나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복도 구석으로 몸을 내던졌다. 그 직후에 회색빛 마력포가 본부장실 문을 부수며 뛰쳐나오더니 그대로 벽을 부수고 건물 밖까지 뻗어나갔다. 포격마법은 운 나쁘게도 진로상에서 교전중이던 국원과 민간 마도사를 직격했고, 두 사람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피를 흘리며 지상으로 추락했다. 명백한 살상 설정이었다.

"맙소사..."

"본색을 드러냈나, 트론."

망연자실한 상태로 반쯤 주저앉은 실비아와 달리, 에리나는 이를 갈며 일어섰다. 그 눈에, 새하얀 PA를 장착하고 지팡이형 디바이스를 든 채 본부장실을 나오는 트론의 모습이 보였다. 분노에 가득찬 에리나의 시선을 무시하고, 트론은 멍한 표정의 실비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실망이네, 디사이플 집무관. 독단으로 명령을 위반하다니, 사람을 잘못 봤군. 지금 이 자리에서 본부장 권한으로 1계급 강등에 3개월 근신에 처한다. 허나 지금부터 명령에 복종한다면 정상을 참작해줄 수도 있다. 가서 ELF와 에르트 놈들을 진압하도록. 물론 비살상 설정을 해제하라는 명령은 현재도 유효하다."

트론의 말에 실비아는 느릿느릿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실비아에겐 방금전 상황도 그렇고, 지금 들은 말도 온통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였다. 하지만 트론의 태도는 강경했다.

"더 말하지 않겠다. 당장 나가서 폭동을 진압하라. 더 이상의 명령 불복종은 좌시하지 않겠다."

"지금 적을 앞에 두고 여유부릴 때냐!"

트론이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에리나는 명백하게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트론은 그런 에리나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실비아에게 지시만 내리고 있었다. 참다 못한 에리나는 큰 소리로 외치며 트론에게 돌진했다.

"받아랏!"

트론의 포격이 복도를 훑었다고는 해도 공간이 비약적으로 넓어진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에리나의 공격은 실비아를 상대할 때처럼 근접전이었다. 하지만 트론의 대응은 에리나의 예상을 벗어난 것이었다.

"블링크(Blink)." 『Stinger ray.』

트론은 고속기동마법을 써서 뒤로 물러나며 에리나의 공격을 피했고, 발이 땅에 닿는 것과 동시에 고속직사탄을 날렸다. 에리나는 황급히 실드를 전개했지만 배리어 관통 능력을 가진 스팅거 레이는 실드를 뚫고 날아들었다.

"큭!"

미간으로 날아오는 광탄을 에리나는 자세를 무너트리며 간신히 회피했지만, 트윈 테일로 묶은 긴 머리카락의 한쪽이 광탄에 휩쓸리며 몇가닥이 흩날렸다. 위기를 넘긴 에리나가 미처 태세를 정비하기도 전에 트론의 디바이스가 날아들었다. 피하는 건 무리였기에 에리나는 레이징 하트를 들어 막았다. 그 순간, 에리나는 위협을 느꼈다.

『Break...』

"팬텀 러쉬!"

디바이스가 닿자마자 에리나는 고속기동마법으로 몸을 피했고, 영창 중이던 트론의 공격마법은 목표를 잃고 소실되었다. 거리를 벌린 채 경계의 눈초리를 띤 에리나를 보며 트론은 비웃음 섞인 감탄사를 발했다.

"허, ELF의 졸병이 제법 감이 좋군."

"멋대로 지껄이시지."

독기 섞인 대답을 돌려주긴 했지만 에리나는 속으로 식은 땀을 흘렸다. 자신의 레어 스킬인 마력 감지가 아니었다면 지금쯤 레이징 하트는 산산조각나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정말로 감이 좋아. 지금까지 직접 닿기까지 했는데 브레이크 임펄스(Break impulse)를 피한 녀석은 네가 처음이거든. 자랑거리로 삼아도 좋을 거다. 물론 살아남을 때의 이야기지만."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는데도 트론은 여유만만한 태도였다. 그 모습이 굉장히 눈에 거슬렸지만 에리나는 쉽게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근접전은 디바이스끼리 맞부딪치는 것은 위험하고, 원거리 포격전이 되면 익숙하지 않은 자신이 불리하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도 없는 상황이니 완전히 진퇴양난이었다. 머뭇거리는 에리나를 보던 트론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말했다.

"오지 않을 건가? 그럼 내가 가지!"

『Blink.』

다음 순간, 에리나의 몸은 아까 트론의 포격으로 건물에 뚫린 구멍을 통해 밖으로 날려지고 있었다. 고속기동마법으로 코앞까지 접근한 트론이 디바이스를 풀스윙으로 휘둘러 에리나를 타격한 것이다. 거기에 부분적인 스러스터 추력까지 더해지자 기습을 당한 에리나로서는 견딜 재간이 없었다.

"꺄악!"

"아직이다! 파워 프레셔(Power pressure)!"

트론은 아직 허공에 떠 있는 에리나를 향해 날아오더니, 근접 타격 마법을 사용해서 디바이스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몇배로 증가된 타격력에 에리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지상으로 내리꽂혔다. 중간에 부딪힌 국원과 ELF 전투원이 사방으로 튕겨나갔지만 트론은 신경쓰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을 둘러보더니 국원들에게 경고했다.

"시공관리국 제군, 본부장은 분명 비살상 설정을 해제하라고 했다. 헌데 상당수가 아직도 비살상 설정을 해제하지 않은 채 전투 중이군. 다시 한번 명령한다. 시공관리국 국원들은 전원 비살상 설정을 해제하라. 따르지 않는 자는 항명죄를 적용, 즉결처분도 감수할 것이다. 이곳은 전장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상대는 적이다. 적에게 자비는 필요없다. 비살상 설정을 해제하라. 이상."

말을 마친 트론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ELF 전투원을 향해 마법을 쏘았고, 전투원은 심장을 관통당한 채 추락했다. 그 모습을 본 민간 마도사와 전투원 몇명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려던 때였다.

『Phantom rush.』

"스피어 스트라이크!"

지면에서 누군가가 솟구치며 트론을 스쳐 지나갔다. 트론은 실드를 전개했지만 그 자의 공격은 실드를 종잇장처럼 가르고 들어왔고, 놀란 트론이 서둘러 몸을 피했지만 PA의 흉부 장갑이 길게 찢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잠시 자신이 입은 피해를 확인하던 트론은 자신의 머리 위를 올려다 보았다. 그곳에는 검은 갑옷의 마녀, 에리나가 서 있었다. 추락할 때 다쳤는지 머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그 눈은 어느 때보다도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에리나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나와 댄스 중인 걸로 아는데? 상의도 없이 파트너를 바꾸는 건가?"

"이런, 이런. 지쳐서 포기하신 줄 알았는데. 그런데 그거 아나? 너무 끈질긴 여자는 인기가 없어."

"아무렴 변태 중년 아저씨보다 인기가 없을까? 리미터-1 해제."

『Roger, release the first limiter.』

"버르장머리 없는 말괄량이에겐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지. 리미터 해제."

『Copy, release the limiter.』

두 사람의 디바이스가 복창하는 것과 함께 각자의 PA에서 마력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에리나의 PA 엘즈리온은 등과 전신 관절부에서 검은색 마력광을, 트론의 PA 제라프는 어깻죽지 부근에서 회색빛 마력광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둘의 모습은 검은 로브를 두른 사신과 회색 날개를 가진 타천사 같았다.
잠시 후, 굉음과 충격파를 동반하며 칠흑의 사신과 회색빛 타천사가 충돌했다.




- 제3게이트 돌파, 제4게이트 방어팀 준비합니다.

OVL 본사의 쉘터는 어느새 2개 게이트만 남아있었다. 그나마 5번 게이트는 방어팀도 없이 AMF 발생 장치만 설치된 단순한 장벽에 불과했기에 4번 게이트가 사실상 최종 방어선이었다.

"본부 공략에 나선 팀에서는 연락 없나?"

- 아직입니다. 아무래도 제대로 연계가 안 되다 보니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닐까요? ...적 발견! 통신 종료합니다!

공간 모니터가 종료되는 것을 보며 페이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지만, 동료들을 향해 뒤돌아서면서 표정을 풀었다. 지금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자신이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질 텐데, 그것은 절대로 안 될 일이었다. 페이는 자신의 속내를 감춘 채 사람들을 다독이며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정작 자신의 초조한 마음은 달래지 못한 채, 페이는 에리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비아는 부서진 벽을 통해 관리국과 ELF의 싸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젠 뭐가 옳고 뭐가 그른지 제대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줄곧 옳다고 믿어왔던 관리국, 계속 그릇되었다고 생각해왔던 ELF, 그 판단기준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었다. 비살상 설정을 해제하는 국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고, 그에 비해 ELF 대원이나 민간 마도사들은 여전히 비살상 설정을 고집하고 있었다. 그 싸움 한가운데에서 에리나와 트론이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트론의 마법은 살상 설정이었기 때문에 에리나가 피하면 다른 사람이 무방비하게 맞아 부상을 입었고, 그것이 몇번 반복되자 에리나는 방어마법에 서툴면서도 일일이 실드를 발동시켜 막아내고 있었다. 그 의지는 가상했지만 근본적으로 방어마법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은 극복할 수 없었고, 에리나는 서서히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아주 위급할 때에는 에리나도 어쩔 수 없이 트론의 공격을 피해냈지만, 그럴 때마다 여지없이 다른 사람이 피를 흘리며 추락했다.
관리국 본부 건물 주변에서 솟아오르는 연기와 땅에 널브러진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보던 실비아는 바르디슈를 고쳐 쥐었다.

『Sir, 결심하셨습니까?』

"...그래."

『이해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아니, 백이면 백, 틀림없이 매도 당하겠지요.』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난 정의와 질서를 수호하는 시공관리국원이야. 그게 내 긍지이기도 하고. 누가 뭐라고 하든, 그 점은 변하지 않아."

『그렇게 말씀하실 줄 알았습니다.』

바르디슈의 대답에 실비아는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바르디슈."

『천만에요. 전 제 본분을 다하는 것 뿐입니다. 전 당신의 디바이스이니까요.』

"그래서 더 고마워. 날 주인으로 인정해줘서. 그럼 갈까? 리미터 해제."

『Yes, sir. Release the limiter. Sonic move.』

황금빛 섬광이 전장을 가로질렀다. 섬광이 나아가는 곳에는 검은 사신과 회색 타천사가 있었다.




『Blaze cannon.』

"슛!"

『Round shield.』

지름 1미터에 달하는 회색빛 광구가 에리나의 실드에 충돌했다. 트론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에리나의 집중력은 한계에 가까웠다. 기본적으로 에리나의 전법은 고속 기동에 의한 히트 앤드 런이었기 때문에 방어마법은 다른 마법들보다 더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고, 피하거나 방어에 실패하면 다른 사람들이 당한다는 생각 때문에 부담이 더 커진 것이다. 에리나가 숨을 몰아쉬며 실드를 거뒀을 때였다.

『Master!』

에리나의 정면에서 트론이 돌진해오고 있었다. 블레이즈 캐논을 쏜 직후 그 뒤를 따라 달려들었던 것이다. 에리나는 서둘러 피하려고 했지만 누적된 피로감 때문에 일순간 반응이 늦어졌고, 트론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트론의 디바이스가 무서운 기세로 에리나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꼼짝없이 당한다는 생각에 에리나는 눈을 감았다.

카아앙.

생각했던 것과 다른 소리에 에리나는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는 눈앞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실비아가 바르디슈를 들어 트론의 공격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리미터를 해제한 실비아의 제라프에서는 마력광이 날개처럼 방출되고 있어서 마치 황금빛 날개의 천사처럼 보였다.
자신을 막아선 실비아를 보며 트론은 입술을 일그러트렸다.

"이게 무슨 짓인가, 디사이플 중위."

"그만 하시죠, 본부장님. 이건 관리국이 할 일이 아닙니다."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제압하는 것이 관리국이 할 일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주지는 않습니다. 지금 본부장님의 행동은 명백한 살인 교사 및 살인입니다."

"질서 회복과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조처다. 관리국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질서일 텐데."

"목적, 수단, 결과.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도리에 어긋난다면 그것은 비난의 근거가 됩니다. 본부장님도 아시지 않나요?"

실비아의 이상에 가까운 정론에 에리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트론은 인상을 찌푸렸다. 정확히 말하면, 그 표정은 분노한 표정에 가까웠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하면 지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이었다.

"너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내'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누구를 위해서 이러는지도 모르면서! 네가 날 비난할 수 있나! 이 모든 것이...!!"

느닷없이 쏟아지는 비난에 실비아는 어안이 벙벙했다. 트론이 이런 일을 벌이는 것과 자신이 무슨 관계인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실비아의 표정에 트론은 하던 말을 멈추고 표정을 굳혔다.

"...좋다. 집무관 실비아 디사이플 중위, 시공관리국 에르트 본부장의 권한으로 자네를 지금 이 시간부로 직위해제한다. 또한 항명죄를 저질렀으므로 즉결처분한다."

트론의 디바이스가 회수되는가 싶더니 빠른 속도로 실비아의 흉부장갑에 꽂혔다. 실비아나 에리나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주문이 영창되었다.

『Break impulse.』

잠시 실비아의 몸이 떨리는가 싶더니, 강렬한 폭음과 함께 하얀 PA가 산산조각나 흩어졌다. 실비아는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떨어지기 시작했고, 재빨리 쫓아간 에리나가 받아내긴 했지만 그 몸은 이미 피투성이였다.

"실비아, 정신차려! 실비아!"

"아, 괘, 괜찮아... 쿨럭!"

의식은 잃지 않았지만 실비아의 부상은 한눈에도 심각해 보였다. PA가 깨지며 그 조각들에 의해 전신에 수많은 자상을 입었고, 브레이크 임펄스의 진동 충격에 의해 내상을 입었는지 피까지 토했다. 에리나는 눈에 핏발을 세우며 트론을 올려다 보았지만 그 눈에 담긴 감정은 곧 경악으로 바뀌었다. 트론이 자신의 주변에 엄청난 수의 마력 칼날을 생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상 설정의 광역 공격 마법이었다.
피하기에 늦었다고 판단한 에리나는 실비아를 끌어안은 채 레이징 하트의 카트리지를 로드했다. 철컥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카트리지 하나가 모두 소모되었고, 에리나는 그 마력을 모두 라운드 실드를 생성하고 유지하는데 집중했다. 그 와중에도 에리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두 조심해! 광역 공격이다!!"

에리나의 외침을 들은 ELF 대원들과 민간 마도사들은 급히 방비에 들어갔다. 트론보다 낮은 고도의 마도사들은 방어마법을 구축했고, 근처에 있거나 동일한 고도, 혹은 높은 고도에 있던 마도사들은 트론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모두 국원들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고, 마침내 트론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스팅거 블레이드 익스큐션 시프트(Stinger blade execution shift)!"

트론의 시동어와 함께 200발이 넘는 스팅거 블레이드가 지상을 향해 쏟아졌다. 살상 설정인데다 실드에 막히더라도 폭발하는 성질 때문에 범위 안에 놓인 마도사들은 꼼짝 못하고 방어만 하는 수밖에 없었고, 시간이 지나며 실드가 깨져 직격되는 사람들도 나오기 시작했다.

"으악!"

"컥!"

"꺄앗!"

"읏, 크헉!"

스팅거 블레이드의 폭격이 끝났을 때, 범위 안에 있던 마도사들은 절반 이하로 줄어있었다. 에리나도 격추는 면했지만 계속된 폭발의 충격을 받아낸 양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그런 에리나를 향해 트론이 내리꽂혔다.

"파워 프레셔!"

방금 전까지 공격을 막은 충격이 가시지 않은데다 실비아까지 안고 있는 에리나는 피할 수 없었다. 그대로 정수리에 트론의 디바이스가 내려쳐지는 순간이었다.

"사이즈 슬래시!"

눈앞을 가르는 금빛 칼날에 트론은 공격을 멈추고 몸을 피해야만 했다. 목표를 잃은 칼날은 트론이 입은 PA의 어깨장갑을 잘라내는데 그쳤지만, 트론에게 위협을 느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신중하게 거리를 두는 트론과 에리나의 사이에 배리어 재킷을 입은 실비아가 떠있었다.

"실비아, 너 상처가..."

"괜찮아. 이 정도로 죽을 정도로 약하지 않으니까. 그것보다 아까 카트리지 다 썼지? 얼른 바꿔 끼워."

사실은 당장이라도 기절하고 싶을 정도로 온몸이 아팠지만, 실비아는 애써 표정을 숨기며 거짓말을 했다. 지금 트론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자신과 에리나 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에리나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더 이상 묻지 않고 카트리지를 교환했고, 무표정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던 트론은 두 사람이 자세를 잡자 입을 열었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힘, 그것이 결정하니까."

"하지만 본부장님, 힘이 곧 정의는 아닙니다."

"그러나 정의를 실천하는 자는 힘이 있는 자이지. 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해."

거기까지 말한 트론은 디바이스를 한바퀴 돌리더니 두 사람을 향해 겨눴다. 더 이상 말을 나눌 필요는 없다는 태도였다. 에리나와 실비아는 슬쩍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란히 트론을 향해 돌격했다.




페이의 디바이스에 4번 게이트가 돌파당했다는 신호가 전달되었다. 방어팀은 전부 당했을 것이다. 이제 관리국 무장대에게서 페이 일행을 지켜주는 것은 두께 40cm의 특수금속제 게이트와 AMF 발생 장치 뿐이었다. 물론 게이트 사이에 존재하는 미로같은 구조가 시간을 조금 더 벌어주긴 하겠지만, 어디까지나 '조금 더 시간이 걸리는' 것에 불과했다. 끝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불안해하는 동료들을 다독여주던 페이는 한 사람이 차분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디바이스 마이스터인 타미노였다. 무섭다고 울고불고 난리치는 것보다야 낫지만, 이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 너무나 침착한 그 모습이 이상해보였다.

"타미노, 괜찮아?"

"네? 뭐가요?"

페이의 물음에 타미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반문했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의식한 페이는 타미노에 귀에 대고 속삭였고, 타미노도 페이의 목소리에 맞춰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불안하지 않냐고."

"아, 그거요? 그야 당연히 불안하죠. 하지만 에리나를 믿으니까요."

"응? 에리나?"

"네, 에리나요. 최연소 전투원이면서 그 능력은 최상위권, 게다가 관리국에서는 마녀라고 부를 정도로 경계의 대상이잖아요. 게다가 레이징 하트도 상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난 디바이스고. 그 정도면 기대해볼 만도 하잖아요? 틀림없이 막판 역전해줄 거에요."

제대로 된 근거라고 할 것은 전혀 없었음에도, 타미노는 에리나와 레이징 하트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순수하게까지 보이는 그 믿음에 페이도 불안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래, 믿어보자. 분명 성공할 거야."




"라이트닝 랜스(Lightning lance)!"

주문이 완성되자 실비아의 주위에 형성된 6개의 라이트닝 스피어(Lightning sphere)에서 금빛 창날이 발사되었다. 트론은 라이트닝 스피어를 피해냈지만 곧이어 에리나의 공격이 가해졌다. 맞부딪친 레이징 하트에 트론이 브레이크 임펄스를 걸려고 했을 때였다.

"턴(Turn)!"

실비아의 목소리에 슬쩍 뒤를 돌아본 트론은, 방금 피해냈던 라이트닝 랜스가 방향을 바꿔 등뒤로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라이트닝 랜스는 직선으로 날아가다가 공중에서 멈춘 후 재가속하는, 특이한 방식의 유도조작탄이었던 것이다. 트론은 짧게 혀를 차더니 에리나를 밀어내던 반동으로 라이트닝 랜스의 궤도에서 벗어났고, 목표를 놓친 라이트닝 랜스는 에리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캔슬(Cancel)!"

충돌 직전, 실비아가 아슬아슬하게 해제 주문을 외운 덕에 에리나는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이번엔 실비아가 위험에 처했다. 에리나에게서 떨어진 트론이 실비아를 향해 포격을 날린 것이다.

"블레이즈 캐논!"

"디펜서!"

몸 상태가 엉망인 실비아가 포격을 그대로 받기에는 무리였기에, 실비아는 카트리지 3발을 로드한 상태에서 겨우 방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숨돌릴 틈도 없이 트론의 공격이 이어졌다.

"실드 크래셔(Shield crasher)!"

실비아의 실드에 트론의 디바이스가 충돌하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실드가 깨져나갔다. 당황한 실비아가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에 트론이 사격마법을 외웠다.

"디바인 버스터!"

위기의 순간 에리나가 트론을 향해 포격을 날렸고, 트론은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서야만 했다. 실비아에게 다가온 에리나는 트론에게서 실비아를 보호하듯 나서며 물었다.

"괜찮겠어? 상태가 안 좋아 보여."

"아직은, 버틸 수, 있어. 후우... 아직은." [계획이 있는데, 해볼래?]

"...그래, 알았어. 하지만 무리하면 안 돼." [일단 듣고 나서.]

"걱정 마. 그리고 내겐 할 일이 있으니까, 그리 쉽게 쓰러지지 않아." [포격마법 큰 거 한방, 쓸 수 있어?]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괜찮은 것 같네." [있기는 한데, 어쩌려고?]

"당연하지, 시공관리국의 집무관을 얕보면 곤란해." [내가 본부장님의 주의를 끌 테니까 기회를 노려서 쏴.]

실비아와 대화와 염화를 동시에 주고받던 에리나는 실비아의 마지막 염화에 놀라 뒤를 돌아보았지만, 그 때 이미 실비아는 트론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코트와 제복 형태로 이루어져 있던 실비아의 배리어 재킷은 어느새 코트는 사라지고 몸에 착 달라붙는 타이즈 형태로 변해 있었고, 거기에 더해 손목과 발목에 작은 금빛 날개까지 돋아 있었다. 실비아의 고속기동형태, 스톰 폼(Storm form)이었다.
통상 전투형태인 임펄스 폼(Impulse form)에서 스톰 폼으로 전환한 실비아의 속도는 트론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스쳐 지나가며 가해지는 실비아의 공격에 트론은 제자리에 못 박힌 듯 움직이지 못하고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언뜻 봐서는 실비아가 확실히 우위에 서 있는 상황이었지만, 에리나는 실비아가 움직인 비행 경로에 그녀의 마력광인 황금빛 말고도 붉은 색 잔영이 남는 것을 보았다. 전신의 상처에서 흩뿌려지는 피였다.

[멈춰, 실비아! 그래선 네 몸이 견디질 못해!]

[시간이 없어, 얼른 준비해! 네 말대로 오래 버틸 수는 없으니까 어서!]

실비아를 말리려던 에리나는 대답을 듣고 입술을 깨물었다. 시작하기 전에 말렸으면 모를까, 이미 시작한 뒤에는 말려봤자 늦은 것이다. 결국 에리나는 실비아의 부담이 조금이라도 덜하도록 준비를 서둘렀다. 에리나의 발밑에 미드칠더식 마법진이 떠오르더니 트론을 향해 겨눠진 레이징 하트의 전방에도 포격 마법진이 구성되었다. 그와 함께 주변의 마력이 포격 마법진을 향해 끌려들기 시작했고, 에리나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단축하기 위해 카트리지의 마력까지 거기에 더했다.

"이, 이런!"

에리나의 모습을 본 트론은 위험한 것을 직감하고 자리를 피하려 했지만, 그 때마다 실비아가 진로를 차단하며 날아들었기 때문에 1cm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에리나의 마법진에 집중되는 마력의 밀도는 높아져 갔고, 트론은 점점 초조해졌다. 빠져나갈 방법을 찾던 트론은 갑자기 배리어를 전개했고, 실비아의 공격은 배리어를 두들기는데 그치게 되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에리나가 모은 마력만 해도 트론의 배리어를 뚫기에는 충분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멈추지 않고 빠른 속도로 트론의 배리어를 두들기며 그를 견제하던 실비아는, 다시 한번 트론의 배리어를 가격하려던 순간 소름이 돋았다. 트론이 웃고 있었던 것이다. 위험을 느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늦은 상황. 실비아가 트론의 배리어를 가격하는 것과 동시에 트론의 입이 열렸다.

"배리어 버스트(Barrier burst)!"

콰앙 하는 폭음과 함께, 실비아는 폭발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채 공중으로 내던져졌다. 에리나는 경악으로 눈을 크게 떴지만 영창중이던 마법을 중단시킬 수는 없었다.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취소시키기에는 너무 늦었던 것이다. 그런 에리나의 시야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트론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영창이 종료되는 것보다 트론이 도착하는 것이 먼저였다.

"어트랙트 바인드(Attract bind)!"

에리나를 향해 거침없이 날아가던 트론의 주위에 3개의 링이 떠오르더니, 트론을 결박하고는 에리나에게서 떨어트렸다. 상대를 포박한 후 원하는 위치로 이동시키는 견인형 바인드 마법이었다. 추락하던 실비아가 정신을 수습해서 전개한 것이다. 왼팔과 머리 반쪽이 피로 물들고 한쪽 눈을 감은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지만 실비아는 포기하지 않았다.

"실비아아아! 실비아 디사이프으으으으으으으으을!!"

마지막 순간에 방해를 받은 트론은 바인드 브레이크를 준비했지만, 그보다 빨리 에리나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스타라이트(Starlight)─────"

"네놈들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잇!!"

"브레이커(Breaker)────────!!"

미친듯이 외치는 트론을 향해, 칠흑같이 어두운 거대한 포격이 발사되었다. 그 검은 포격은 마치 블랙홀처럼 트론의 육신을 그 광기와 함께 집어삼켰고, 그러고도 계속 뻗어나가 관리국 본부의 최상층을 직격했다. 모두가 놀라 바라보는 가운데, 시공관리국 에르트 본부의 본부장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허억, 허억, 허억..."

포격을 끝낸 에리나는 거친 숨을 내쉬며 트론의 모습을 찾았고, 의식을 잃은 채 추락하고 있는 그의 모습을 발견했다. 서둘러 트론을 붙잡고 몸 상태를 확인하던 에리나는 안도했다. PA와 디바이스는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었지만, 에리나가 마지막까지 비살상 설정을 풀지 않았기 때문에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축 늘어진 트론에게 수갑을 채우고 내장된 AMF 발생장치를 작동시키던 에리나는 염화와 공개 통신망에서 동시에 흘러나오는 통신을 들었다.

"[에르트에서 교전중인 모든 관리국원에게 알린다. 시공관리국 에르트 본부장 트론 서바이스가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므로, 부본부장 에밀리오 라시보가 그 직무를 인계받았다. 시공관리국원은 전원 전투를 중지하라. 반복한다, 관리국 본부장이 직무 수행이 불가능하므로 부본부장이 직무를 인계받았다. 관리국원은 전원 전투를 중지하라. 전원 전투를 중지하라.]"

에리나는 몰랐지만, 부본부장은 관리국 본부 건물에 침입한 다른 전투반원들이 비교적 사건 초기에 신병을 확보한 상태였다. 다만 그 때는 관리국의 최고 명령권자가 본부장인 트론이었기 때문에 별로 가치가 없었지만, 트론이 의식을 잃은 지금 총지휘권은 부본부장에게로 넘어온 것이다. 관리국 에르트 본부의 부본부장인 에밀리오는 정직하면서 온건한 인물이어서, 강경파인 트론이 쓰러진 마당에 전투를 더 지속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전부터 에밀리오는 에르트의 자치나 독립에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트론의 지나칠 정도로 강압적인 통치 방식에 반감을 품고있던 차였다.
에밀리오를 확보한 ELF 전투원들은 부본부장을 탈환하려는 무장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한편, 트론이 건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그 전투 영상을 에밀리오에게 보여주었다. 잔인하기까지 한 트론의 행동에 결국 에밀리오는 전투 중지를 결심했고, ELF의 굳은 의지를 확인하자 전투를 멈출 방법은 관리국의 항복 뿐이라고 생각해서 트론이 쓰러지자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 지부장님, 관리국이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성공했어요!

페이는 제5게이트에 가해지는 충돌음이 갑자기 사라지자 어리둥절하던 차에, 이반이 걸어온 통신을 받았다. 귀로는 확실히 들었지만 실감이 나지 않은 페이는 이반에게 되물었고, 이반은 들뜬 목소리로 재차 보고했다.

"미안한데, 전투반장. 다시 말해주겠나? 관리국이 항복했다고?"

- 예, 지부장님! 트론은 에리나가 쓰러트렸고, 다른 친구들이 에밀리오에게서 항복 선언을 받았답니다. 우리가 이겼어요!

너무도 바라왔지만 멀게만 느껴졌던 소망이 이루어진 것이다. 믿기지 않는 소식에 쉘터는 잠시 침묵에 휩싸였고, 곧이어 환호성으로 가득찼다. 모두들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와중에, 페이도 웃음을 띠며 이반에게 말했다.

"그래... 수고했다, 반장. 정말 수고했어. 그리고 고맙다."

그 목소리는 기쁨에 떨리고 있었다.




경황이야 어찌 됐든, 최일선에서 전투에 임하고 있던 에리나는 갑작스런 관리국의 항복 선언이 무척 뜬금없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 더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의식을 잃고 있는 트론을 다른 ELF 대원들에게 넘긴 에리나는 실비아의 모습을 찾았고, 관리국 의료반에게 응급치료를 받고 있는 실비아를 발견했다. 실비아에게 달려가려던 에리나는 무장국원들에게 제지당했다.

"비켜요, ...할 말이 있어요."

친구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ELF 대원과 관리국원이 친구라고 했다간 실비아를 의심할 것 같아 말을 바꿨다. 하지만 무장국원들에겐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ELF 대원이 국원에게 할 말이 있다고? 웃기지 마시지."

"흥, 한바탕 욕설이라도 해주시려는 건가? 꺼져."

비록 관리국이 항복했다고 하더라도 방금 전까지 전투를 벌였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국원들은 적대적인 말투로 에리나를 막아섰고, 에리나는 그런 국원들을 마주 쏘아보았다. 그때 실비아가 몸을 일으키며 손을 들었다.

"보내...줘요. 아는 사람이에요."

실비아의 말에 두 국원은 칫 하는 소리와 함께 길을 비켜주었고, 에리나는 실비아의 곁에 다가올 수 있었다. 실비아를 치료하고 있던 의료반원이 에리나를 힐끔 쳐다보긴 했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실비아..."

"괜찮아, 난 내 긍지를... 지킨 거니까. 신경 안 써도 돼."

"하지만 돌아가면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잖아."

"넌 네가 옳다고... 생각해서 ELF에 들어갔지? ...나도 내가 옳다고... 생각한 걸 한 거야. 마찬...가지야."

실비아의 말에 에리나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그 손을 꼭 쥐었다. 잠시 후 앰뷸런스가 도착해서 실비아를 실어갈 때까지 둘은 그대로 손을 잡고 있었다.




"흥, 큰소리 치더니 별 볼 일 없는 녀석이었나. 기대한 게 잘못이었군."

본국의 한 집무실, 어느 젊은 국원이 막 전송된 데이터를 확인하며 냉소하고 있었다.

"아니, 남 탓 할 게 아닌가. 어차피 누워서 침뱉기가 될 뿐이니까."

공간 모니터에서 다른 데이터를 불러내는 남자는 20대 초반, 검은 머리의 회색 눈을 갖고 있었다. 트론과 통신을 주고 받던 그 남자였다. 남자는 새로 띄운 데이터를 보며 중얼거렸다.

"영감들은 그쪽으로 기운 것 같고... 그럼 그 수 밖에 없나. 웬만하면 쓰고 싶지 않았는데."

그 말과는 달리, 남자의 얼굴은 어쩐지 기쁜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눈에는 어떤 데이터가 비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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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A-109 제라프(Zeraf)
관리국의 최신형 파워드 아머. 착용자의 자질에 따라 마력 랭크를 최대 2.5랭크까지 증폭시킬 수 있지만 리미터가 달려있어 평소에는 1.5랭크 UP. 아칸젤에 비해 전반적으로 출력과 내구성이 향상된 신형으로, 단가도 비싸고 생산 속도도 늦어 현재는 확보 수량이 많지 않다. 기본 컬러링은 흰색. 아칸젤과의 외형상 차이는 헬멧의 바이저가 얼굴 전면을 덮던 타입에서 눈만을 가리는 타입으로 바뀐 것. 코 아래는 공기 정화 장치가 달린 마스크로 가려지며 필요에 따라 개폐 가능.
리미터 해제시 잉여출력을 등부분(어깻죽지)에서 방출하며, 이 때의 모습은 천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방출되는 잉여출력에 특별한 위력은 없으며, 이때 잉여출력의 색은 착용자의 마력광과 동일하다.


EPA-666A 엘즈리온(Elzrion)
ELF의 최신형 파워드 아머로, 아직 프로토타입 단계. 착용시 기본적으로 마력 랭크가 2랭크 UP되며, 퍼스트 리미터 해제시 3랭크 UP된다.
양팔등에 마력 칼날 생성기가 내장되어 있으며, 필요에 따라 연사형 중거리 마력포로 활용 가능. 기본 컬러링은 회색이지만 에리나가 착용하면서 컬러링을 검은색으로 변경. 초기형인 EPA-666은 기동 테스트 중 정보를 입수하고 기습해온 관리국 PA 부대에게 격파되었지만 데이터는 간신히 회수했다. 그 데이터를 참조해 만든 것이 EPA-666A.
리미터 해제시 잉여출력이 등부분과 전신 관절부에서 새어나오는데, 이 때의 모습은 검은 로브, 혹은 망토를 입은 저승사자 그 자체. 마력광 변화장치 때문에 착용자의 마력광이 아닌 검은색의 마력광이 나온다.
'엘즈리온'은 에르트의 창세신화에 등장하는 주신의 아바타 중 하나의 이름으로, 분노한 파괴신일 때의 이름. 현재 EPA-666A는 단 1기만 있기 때문에 ELF에서는 에리나를 엘즈리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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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 제라프와 엘즈리온의 리미터 설정이 공개되었습니다. 설정을 보면서 '어?' 싶으신 부분도 있을 텐데, 그런 부분들은 차후에 또 공개될 테니 기다려주세요...
그러고보면 PA의 팔등에 마력 칼날 생성기나 마력포가 장비되어 있다고 설정해놓고는 정작 쓴 일은 한번도 없군요. 뭣하러 달아놨을까요 (...)


이번편은 제목 짓는 게 조금 어려웠습니다. 올릴 때에는 '벽을 넘다'였는데, 조금 임팩트가 부족한 것 같아서 본부 건물 최상층 날려버리는 이미지에 맞게 수정.
'하늘을 부수다'도 생각해봤지만 그건 지나치게 강해보여서 (...)

사실은 아예 건물을 중간쯤에서 부러뜨려서 상층 일부가 붕괴하는 모습을 그려볼까도 했는데, 그랬다간 민간 피해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홀짝)


관리국 에르트 본부가 드디어 무릎을 꿇었습니다. 원래는 트론을 꺾고 그 모습을 본 국원들이 전의를 상실하는 것으로 하려고 했는데, 시내에 여기저기 퍼져있는 사람들이 쉽게 그럴 것 같진 않더군요. 그래서 부랴부랴 부본부장이라는 녀석을 급조(...)해서 전투 중지 명령을 내리게 만들었습니다.
에리나와 실비아의 대결이 조금 맥없이 끝난 감이 있는데, 둘을 한 편으로 묶으려면 저 전개가 가장 무난하게 생각되어서 말이죠. 혹시 다른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은 충고를 부탁드립니다.

여전히 전투장면 묘사는 조금 부실하게 생각됩니다만, 이상과 현실의 차는 크다지요. 실력은 안 되면서 보는 눈만 높아져가지고 아주 죽겠습니다 --;;

마지막에서 짐작하셨다시피, 아직 끝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제부터가 진짜 클라이막스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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