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팬픽은 나노하 StS 이후 약 70년이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요 인물은 등장하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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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관리국 에르트 본부 건물에 돌입한 에리나 일행은 먼저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들을 향해 공격 의사를 보이는 국원은 없었다. 처음부터 수가 많지 않았던 국원들은 그저 한데 모여 겁먹은, 혹은 분노한 표정으로 일행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관리국원이라고 모두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본부에 근무하는 사무직원들로 한정하면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비율은 3:7 정도다.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들도 대부분 마도 랭크가 낮거나 전투와는 거리가 먼 보조계열 사용자들이니, PA까지 갖춰입은 ELF 전투반에게 맞서는 것은 무리였다.
자신들을 공격해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이반은 천장을 향해 다시 한번 마법을 쏘았다. 이번엔 건물 내에서 일직선으로 본부장실까지 갈 생각이었다.
"블레이즈 버스터!"
굉음과 함께 천장 일부에 구멍이 뚫렸지만, 역시 중간에 발동된 실드로 인해 5개 층을 뚫는데 그쳤다. 남은 2개 층은 직접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그것은 곧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무장국원들과의 전투를 의미했다.
"할 수 없지, 간다!"
이반의 외침과 함께 일행은 단숨에 부서진 천장 사이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몇분 후, 뚫린 천장과 벽을 통해 폭음과 진동이 전해져오는 사무실로 관리국의 새하얀 PA가 날아들었다. 실비아였다.
"실비아 테스타로사 디사이플 집무관입니다. 침입한 적들은?"
"위로 갔습니다! 천장을 뚫었어요."
"알았습니다. 여러분은 어서 피하세요. 건물 밖도 위험하니까 되도록 낮은 층의 중심부로 가 계세요."
말을 마친 실비아는 ELF 대원들을 쫓았다. 그리 멀리 갈 필요도 없었다. 남아있는 무장국원들과 전투를 벌이던 ELF 대원들은 본부장실 2층 아래에 발이 묶여 있었다. 대원들 중 누군가가 구멍을 통해 올라온 실비아를 보았다.
"젠장, 추격자다!"
그 말을 들은 무장국원들은 환호성을 올린 반면, ELF 대원들은 혀를 찼다. 아주 잠시, 모두의 주의가 흐트러졌다.
『Phantom rush.』
파란색의 ELF 소속 PA, 하얀색의 관리국 소속 PA와 구별되는 칠흑의 PA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와 동시에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며 무장국원들 몇명이 내동댕이쳐졌다. 실비아에게 주의가 쏠리며 양측의 포화가 뜸해진 순간, 검은 마녀가 고속 기동 마법으로 무장대의 방어선을 강행돌파한 것이다.
"빌어먹을, 쫓아!"
"어딜!"
황급히 마녀의 등에 포격을 쏘려던 국원들은 남아있는 ELF 대원들의 견제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실비아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자신이 참여한다고 해도 지금 이곳의 상황을 빠른 시간 안에 정리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라도 마녀를 쫓아 막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실비아의 생각을 이해했는지, 무장대 분대장은 실비아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였다.
『Sonic move.』
실비아는 마녀가 했던 것처럼 고속기동마법으로 교전 현장을 벗어났다. 빠른 속도로 실내를 이동한 실비아는 본부장실이 있는 층에서 마녀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아크 세이버!"
실비아가 바르디슈를 한번 휘두르자, 첨단부에 생성되어 있던 마력 칼날이 분리되어 회전하며 마녀를 향해 날아갔다. 미처 실드를 구성할 시간이 없었던 마녀는 급히 몸을 굽혀 피할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에 접근한 실비아는 힘차게 바르디슈를 휘둘렀다. 카앙 하는 소리와 함께 바르디슈와 마녀의 디바이스가 충돌했다. 바르디슈의 황금빛 코어와 마녀의 디바이스의 붉은 색 코어가 잠깐 반짝였다.
재빨리 바르디슈를 회수한 실비아는 방향을 바꿔 마녀와 본부장실로 향하는 복도 사이를 가로막았다. 이제 마녀가 본부장실로 가려면 실비아를 쓰러트려야만 했다. 자신에게 바르디슈를 겨누고 있는 실비아를 보던 마녀가 입을 열었다. 지난번처럼 변조가 된 목소리였다.
"비켜."
"아니, 비킬 수 없다."
"다시 말한다, 비켜."
"다시 대답해주지. 비킬 수 없어."
"마지막이다. 비켜!"
"대답은 똑같아. 비켜줄 수 없다!"
"체인 샷!"
대답을 듣기가 무섭게 내뻗은 마녀의 왼손에서 고속연사탄이 쏟아져 나왔다. 좁은 복도에서 회피 후 역습은 어려웠기에 실비아는 실드를 쳐서 막아야만 했고, 다음 순간 바르디슈가 경고음을 발했다.
『Sir, 뒤!』
바르디슈의 말에 실비아는 황급히 앞으로 몸을 던지며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 새 실비아의 등 뒤로 돌아온 마녀가 휘두른 디바이스의 창 끝이 바로 몇센티 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몸을 한바퀴 굴리며 자세를 잡으려는 실비아의 코앞으로 다시금 마녀가 돌진해왔다. 금속음을 내며 디바이스가 충돌했다. 잠시 힘겨루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동시에 둘이 나가떨어졌다. 실비아는 마녀의 걷어차기에, 마녀는 실비아가 순간적으로 쏜 마법에 맞은 것이다. 둘 다 큰 충격은 받지 않은 듯 벽에 부딪히자마자 다시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실비아와 마녀가 싸우는 곳은 실내, 그것도 복도라서 포격 마법은 고사하고 유도 조작탄조차 제대로 쓰기가 어려웠다. 결국 전투는 서로 한정된 마법만 사용되는 격투전의 양상을 띠었다. 그러던 중, 마녀의 디바이스가 실비아의 헬멧을 힘껏 두드렸다.
"악!"
비살상 설정이라고는 해도 마력 창날은 무기물에 대해서는 확실한 효과를 내고 있었다. 실비아의 머리를 보호하던 제라프의 헬멧은 기능을 상실하고 쪼개져 떨어졌다. 사르륵 소리를 내며 트윈테일로 묶은 실비아의 금발이 흘러내렸다.
"무..."
그 모습을 본 마녀가 어째선지 동작을 멈췄다. 마치 못볼 것을 본 듯한, 아니 무언가에 큰 충격을 받아 순간적으로 이성이 마비된 듯한 모습이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실비아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라이트닝 스매셔!"
왼손에서 발사된 황금빛 구체가 마녀를 향해 일직선으로 날아갔고, 넋이 반쯤 나가있던 마녀는 제때 반응하지 못하고 공격을 정통으로 맞았다. 폭음과 진동이 일어나며 마녀는 실비아의 반대편 벽에 처박혔다. 연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실비아는 먼지 너머로 보이는 그림자를 향해 돌격해 바르디슈를 휘둘렀지만, 걸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당황한 실비아의 눈에, 몸을 낮춰 바르디슈를 머리 위로 흘려보낸 마녀의 모습이 보였다. 왼손을 주먹 쥔 채 한껏 뒤로 끌어당긴 모습이었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마녀의 주먹이 실비아의 복부를 가격했다. 스러스터까지 순간 발동시켰기 때문에 위력은 상당했고, 실비아는 그대로 방금 쓰러졌던 자리까지 날려졌다. 그러나 실비아는 그 상황에서도 공격 기회를 잡았다.
"라이트닝 스매셔!"
두번째로 날아간 구체가 마녀의 정면에서 폭발했다. 마녀가 자세를 낮춘 상태였기 때문에 라이트닝 스매셔의 폭발 위치는 얼굴 바로 앞이었다. 잠시 후 몸을 일으키는 실비아의 눈에, 똑같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는 마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 검은 PA는 건재했지만, 헬멧 부분은 마력탄이 근거리에서 폭발한 여파 때문에 곳곳에 금이 가고 깨져서 마녀가 일어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조각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쩌적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 정면을 가리고 있던 부분의 절반이나 되는 면적이 떨어졌다. 마녀는 순간적으로 왼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지만, 실비아는 마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 그럴 리가..."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몸을 돌리려던 마녀는 실비아의 중얼거림을 듣고 행동을 멈췄다. 감춰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잠시 후 마녀는 천천히 왼손을 내렸고, 그와 함께 헬멧의 나머지 부분이 마저 떨어지며 얼굴이 완전히 드러났다. 그 얼굴은 실비아가 익히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에리나... 어째서 네가..."
"어째서고 뭐고 없어. 그저 난 ELF 단원이고 넌 관리국원일 뿐. 그래서 지금 여기에 있는 거니까."
에리나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실비아는 울컥했다. 지금 자신이 듣고 싶은 말은 그런 게 아니었다. 실비아가 올바른 성격이라고는 해도 아직 어린 나이이고, 부모님 두분이 모두 관리국원, 그것도 고위직이다 보니 그 기반에는 '관리국=정의'라는 기본 공식이 깔려 있었다. 때문에 지금 실비아에게 에리나는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던 것이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에르트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거야?"
"에르트에 혼란을 가져오는 건 ELF가 아니야. 관리국이지."
"무슨 소리야, 관리국은 전 차원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기관이라고!"
"그래, 국원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말하지. 적어도 다른 곳에서는 정말 그럴지도 몰라. 하지만 에르트에서도 그럴까?"
"...뭐?"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거야. 에르트에 부임해 온지 얼마 안 되었으니, 본국이나 미드칠더와 비교했을 때 위화감 같은 걸 꽤 많이 느꼈을 것 같은데. 안 그래?"
"그, 그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었다. 처음 에르트에 왔을 때 택시 기사의 반응, 이해할 수 없는 법안의 통과, 시위에 대한 과도한 무력 진압, 버스에서 만난 모자의 모습, 본국이나 지상 본부에는 없는 테러 대책부의 존재와 그 월권에 가까운 행동... 그외에도 생각해보면 이상한 점이 너무나도 많았다. 하지만 실비아는 그 이상 깊게 파고들어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조금 알아보기도 했지만, 비슷한 사례가 계속 나오다보니 지역적 특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되어 그만뒀던 것이다.
곤혹스러워하는 실비아를 보며, 에리나는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그 시각, 트론은 본부장실에서 어떤 인물과 차원통신 중이었다. 공간 모니터에 비춰지는 사람은 검은 머리에 회색 눈을 가진 젊은 남자 국원이었다.
- 꽤나 일이 커진 것 같군.
"그래, 생각보다 세게 나오는데."
- 전송되는 정보에 따르면 본부 건물에도 침입을 허용한 것 같은데, 괜찮은가?
"그거라면 방금 전까지 집무실 밖에서 폭음이 들려오던데, 지금은 조용해졌지."
- 막아낸 건가, 아니면 계속 전진 중인가... 아무튼 방심은 금물이야.
젊은 남자는 계급장으로 보았을 때 소령, 나이도 20대 초반 정도로 보였지만 41세에 준장 계급을 가진 트론에게 평어를 쓰고 있었다. 게다가 트론조차 그것이 당연한 듯이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물론 젊은 남자의 주변에는 아무도 없는 상태로 보였지만, 그렇다 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이 상황을 제압한다면 오히려 득이 되지 않을까?"
- 경우에 따라선 그렇겠지. 결과가 좋다면, 그리고 잘만 이용한다면 말이야.
"그 점에 있어선 네가 수고를 좀 해줬으면 하는데. 정보부니까."
- 부려먹을 셈인가. 뭐, 괜찮겠지. 해둬서 나쁠 건 없을 테니.
"그래, 어차피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신경 좀 써달라고. 그런데, 차원 함대는 아직인가?"
- 그게 좀 어렵게 됐다. 차원 함대는 기대 안 하는 게 좋을 거야.
"뭐라고?"
남자의 말을 듣던 트론이 눈꼬리를 살짝 올렸다. 트론은 ELF와 마도사 협회의 '폭동'을 빌미로 본국의 차원 함대를 불러 그 힘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 어찌된 일인지, ELF가 행동을 개시하자마자 십여 개 차원에서 ELF의 행동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공식적으로 시공평의회에 전달했다. '어느 차원이든 각자의 차원에 대한 일은 자신들이 스스로 해결할 권리와 의무가 있다'면서 말이야. 성명을 전달한 차원들, 다들 영향력이 크면서 시공관리국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던 곳들이다. 아무래도 ELF가 사전에 그들과 밀약을 맺었던 모양이야. ELF로서는 독립을 얻을 수 있으니 좋고, 그 차원들로서는 관리국의 영향력을 줄일 수 있으니 좋은 일이겠지.
이야기를 들으며 트론의 표정은 점점 험악해졌지만, 남자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 게다가 현재 시공평의회 구성원들은 유약하기 짝이 없다. 다들 휴전, 아니면 독립이나 자치 인정 쪽으로 의견이 기울고 있어. 아무래도 에르트 본부가 매년 막대한 예산과 인원을 잡아먹는다는 이유도 한몫 하는 것 같은데.
"젠장, 그 노망난 늙은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여긴 최전선이라고! 본보기란 말이야! 분수를 모르고 날뛰는 놈들에겐 어떤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지 확실히 보여줘야 하잖아! 그런데 그런 좋은 본보기를, 고작 그런 이유로 포기하겠다는 건가?"
-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 차원 함대가 발이 묶인 이상 믿을 수 있는 건 너 뿐이야.
분을 참지 못하고 날뛰려던 트론은 차분한 남자의 말에 침착을 되찾았다. 잠시 목을 가다듬던 트론은 공간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좋아, 그럼 내 손에서 처리하지. 아주 확실하게 말이야."
- 기대하겠다. 그럼 끝나고 보자고.
남자의 말이 끝나자 핏 하는 소리와 공간 모니터가 종료되었다. 통신을 완전히 종료한 트론은 관리국의 모든 PA와 시설에 연결되는 공용 회선을 열고는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지. 정의와 질서 수호를 자처하는 시공관리국인데, 어째서 에르트에서는 쉬지않고 관리국에 대항하고 있을까.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에르트 인이 뼛속부터 반골이라는 식의 답변 말고."
"으..."
"게다가 듣도 보도 못한 디바이스 소지와 마도사 자격에 대한 법안. 에르트 인의 관리국 입국 제한. 트랜스포터 사용 금지. 이런 것들은 왜일까?"
"입국 제한이라고?"
"몰랐어?"
에리나의 물음에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모르는 것도 당연한 것이, 실비아는 부모가 모두 미드칠더 인인데다 고위 국원이었기 때문에 그 조항을 접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관리국에 입국한 것은 본국으로 돌아간 다음이니 주변에 에르트 인이 있을 턱이 없었다.
"에르트 인이 관리국에 입국하는 데에는 제한이 있어. 우선 마력 랭크가 B랭크 이상일 것. 마력 랭크가 B랭크 미만이거나 없는 사람은 입국 자격조차 없지. 그리고 반드시 관리국이 지정한 학교를 나와야 하고, 에르트 출신이 아니며 계급은 소령 이상인 국원 최소 3명이 신원을 보증해야 해. 물론 기본적인 입국 시험은 당연히 받아야 하고. 그 과정을 모두 거친 다음 말단 국원으로 입국할 수 있지. 집무관 시험을 보려면 최소 20년의 국원 경력에, 다시 대령 이상의 국원 5명이 신원 보증을 해줘야 해. 물론 보증을 해주는 국원들은 에르트 출신이 아니어야 하고. 집무관 임관을 사실상 막아놓은 거지. 혹시, 여기서든 본국에서든 에르트 출신 고위 국원 본 적 있어?"
생각해보면 없었다. 실비아는 여기 온 뒤로 집무관들이 고향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면 항상 미드칠더 이야기만 나왔다는 사실, 그리고 본국에서는 에르트 출신 국원-집무관이나 함장급까지 포함해서-을 한명도 만나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관리국은 철저하게 에르트를 발밑에 뒀어. 그들이 에르트에 바라는 건 오직 복종 뿐. 질서? 그래, 질서는 있을지도 몰라. 오직 관리국만을 위한 질서가 말이야."
"아, 아니야. 그럴 리 없어. 그건 극히 일부..."
"그렇게 생각해? 그럼, 저 밖에 와 있는 수많은 민간 마도사들은 왜 나선 걸까?"
"그건 디바이스 소지법과 마도사 등록법에 대한 반발로 모인 거야."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 일단 그 이유도 크긴 하지. 그럼 그 법은 왜 만들었다고 생각해?"
"ELF의 행동에 제약을 걸기 위해서겠지."
"하지만 법안이 발효되면 ELF보다 민간 마도사들의 피해가 더 클 거야. 안 그래?"
"그건 그래.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 ELF를 막으려면 그 정도 피해는 감수할 수밖에 없어."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인가. 그렇다면 전 차원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별 하나 정도는 없앨 수도 있겠네?"
"그게 무슨 소리야! 관리국이 그럴 리 없잖아!"
"실제로 이 에르트에서 그렇게 하고 있어. 만약 일이 잘못된다면 이 별 하나를 통째로 죽음의 별로 만들 수도 있을걸. 이미 전적이 있을 텐데? 신력 91년, 제 37관리세계."
에리나가 언급한 사건을 머릿속에 떠올린 실비아는 말문이 막혔다. 관리국원에게 그 사건은 금기였다. 질량병기를 이용한 폭동이 발생한 차원, 그곳에서 일어난 참사. 갖은 노력 끝에 은폐되긴 했지만, 그 때 벌어진 일들에 대한 진실은 도시전설과 같은 식으로 전 차원계에 퍼져 있었다. '관리국의 대규모 함대 소실, 진압 작전 끝에 행성 불모지화'라는 내용이. 실비아는 입술을 깨물며 반론했다.
"그 때와 지금은 상황이 달라."
"뭐가 다르지? 질량병기 사용 여부만 다를 뿐, 관리국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은 같아. 한번 벌어진 일은 두번도 벌어질 수 있어. 그리고 우린 그런 꼴을 당하고 싶지 않아."
"그건 끝까지 공격해왔기 때문에 생긴 결과야. 관리국의 말을 따르면 아무 일 없어!"
"넌, 본부장이 날 죽이라고 하면 죽일 거야?"
"뭐?"
난데없이 튀어나온 에리나의 질문에 실비아는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마당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널 죽일 리가 없잖아."
"ELF가 관리국에 반발하는 것도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면 돼."
"말도 안 되는 억지 부리지 마!"
"네겐 억지로 들릴지 몰라도 우린 지금 절박해!"
트론의 지시가 국원들에게 전달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실비아는 헬멧이 파괴되었지만 비상용 통신기는 무사했고, 건물 내 스피커를 통해서도 지시가 전달되었기에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지시는 안 듣느니만 못한 것이었다. 적어도 실비아에게는.
- 전 관리국원에게 알린다. 비살상 설정을 해제하라. 반복한다, 비살상 설정을 해제하라. 지금부터 저항하는 자는 사살해도 좋다. 이것은 시공관리국 에르트 본부의 최고 명령권자인 본부장 트론 서바이스 준장의 명령이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비살상 설정을 해제하라니, 그렇게 되면 포격이든 유도 조작탄이든 직격할 경우 큰 부상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만약 배리어 재킷이나 PA로 보호받지 못하는 곳을 맞는다면...
상상도 못한 지시에 당황했는지, 아래에서 ELF 전투반과 무장대의 교전 소음도 어느새 멎어 있었다. 적막이 흐르는 건물 안에서, 멍해진 실비아를 가만히 바라보던 에리나가 벌레씹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딱 그 상황이네. 이젠 좀 알겠어?"
철컥 소리를 내며 에리나가 레이징 하트를 고쳐잡자, 실비아도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아니, 모르겠어. 하지만 난 비살상 설정을 유지할 거야. 반드시 널 막은 다음 본부장을 찾아가 따지겠어."
"어쩔 수 없는 이상주의자구나, 너는. 그래도 변하지 않은 것 같아서 그건 기뻐."
"난 하나도 기쁘지 않아. 넌 너무 많이 변했으니까. 포기할 수 없겠어?"
"너도 자신이 국원이라는 걸 포기할 수 없겠지? 마찬가지야."
"그렇구나, 그럼 어쩔 수 없겠네."
다음 순간, 복도에 다시 충돌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 소리는 아래에서 다시 들려오기 시작한 교전 소음에 묻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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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에리나와 실비아가 전장에서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물론 에리나야 실비아가 국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저렇게 전장에서 마주치면 충격이 크겠죠.
실비아는 몰라도 에리나는 금방 실비아를 알아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실 수도 있겠는데, PA 장착하면 사실상 전신 갑옷이니 입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기가 힘들지요. 바이저라도 올리지 않는 이상에야...
트론의 통신 상대도 설정에는 진작부터 정해져 있었습니다만, 역시 능력이 부족해서 그간 등장할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뜬금없게 느껴지시더라도 양해를... --;
이번 후기는 어째 이해해주십사 하는 말 뿐이군요. -_-a
그럼 다음편에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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