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노벨이라고는 했지만, 제작사인 key에 공식적으로 발표한 장르는 'Keynetic Novel'(...)
...뭐 사실상의 말장난이니 넘어가기로 하고,
플레이 해보면 알겠지만 선택지 같은 건 단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음성마저도 프롤로그에서 몇마디, 에필로그에서 몇마디만 나오며,
그 마저도 동일한 대사다. (......)
그렇다고 이 작품의 가치가 별로인가 하면, 그건 아니다.
왠만한 단편 소설 이상의 감동을 가져다준다.
플라네타리움은 어떨까요?
어떤 때라도 결코 꺼지지 않는 아름답고 영원한 빛.
온 하늘의 별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호시노 유메미'
이 작품은 1인칭 시점으로, 화자(話者)는 떠돌이 폐품상이다.
약 30년전, 어리석은 일부 지도자들에 의해 각종 생화학무기와 핵병기가 세계 주요 도시로 날아들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들의 도시를 버리고 떠돌아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만약 자신들이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그동안 침입자가 오지 못하도록 무인 전투 병기를 도시에 배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몇년이고, 몇년이고 계속되는 전쟁속에서, 인류는 자신들이 도시에 남겨온 기계들을 제어하는 기술마저도 잃어버렸다.
극도로 수가 줄어든 인간이 겨우 자신들끼리의 전쟁을 멈춘 후에 남은 것은, 오염되어버린 대지와, 움직이는 모든 것들을 적으로 인식하고 공격해오는 무인 전투 병기들이었다.
주인공은 아직 쓸만한 폐품을 팔아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폐품상도 팔 것을 찾기 위해 전투를 하고 목숨을 걸어야하는 시대였다.
버려진 도시에 들어가기 위해 앞을 가로막는 다른 폐품상들을 제거하고 간신히 진입한 도시.
그 도시에서 주인공은 큰 건물 위에 거대한 돔형 구조물을 발견하고는 버려진 군사시설로 착각, 쓸만한 부속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그곳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소녀의 모습을 한, 다소 특이한 성격의 로봇 '호시노 유메미'였다......
수리중인 플라네타리움의 항성전구를 끌어안고 있는 유메미
제목에서 약간 눈치를 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작품의 주 소재는 플라네타리움이다.
플라네타리움, 아마 어렸을 때 본 사람들도 있을 물건.
생긴 건 거대한 아령 비슷한, 거기에 달려있는 수많은 크고작은 전구를 이용해서 반구형의 천장 내부에 밤하늘을 그려내는 기계.
이 작품의 배경은, 쉬지않고 비가 내리는 시대이다.
너무나도 오래 지속된 전쟁 속에서 자연환경은 급속히, 그리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되어버렸고, 그 결과 끊임없이 비가 내리거나 흐릿한 하늘만 볼 수 있는 시대.
이 시대에서 '밤하늘의 별을 본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에서나 가능한 말이다.
아니, 말이었다.
적어도 주인공이 유메미와 만나기 전까지는.
그리고 유메미가 주인공에게 플라네타리움의 천체 투영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주인공의 행동에서 (멋대로)주인공이 환자라고 인식한 유메미는 주인공이 떠나려하자 차량까지 모셔다드리겠다며 따라나선다.
하지만 도시의 장벽을 넘어야하는 장소에서 무인 4족 보행 전차와 맞닥뜨리고, 주인공이 위험해지자 유메미는 그 앞을 막아선다.
그 틈을 타 주인공은 허공을 향해 그레네이터 곡사사격을 하지만, 동시에 무인 전차의 기관포가...
"손님, 하나 물어봐도 되나요?"
"응, 뭔데?"
"손님이, 오시기 전까지, 전, 수없이, 생각해 보았어요."
"관장님과, 스태프 여러분들은, 언제 돌아오시는 걸까?
다음 손님은, 언제 오시는 걸까?
수없이, 그렇게 생각해 보았어요."
"그러면 항상, 같은 결론이 나왔어요."
"인간 여러분들은,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결론이요."
"하지만, 그럴 리가 없어요.
분명히 전, 어딘가 망가진 거라고 생각했어요."
"자기 진단 프로그램을, 실행해서, 이상을 찾아보았어요.
하지만, 어디에서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틀림없이, 자기 진단 프로그램에, 미지의 버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한동안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비에 눈동자의 초점을 맞춘다.
"손님이 오셨을 때, 전, 너무나 기뻤어요."
"역시 난, 틀리지 않았어.
손님은 날, 잊지 않으셨어."
"그렇게 생각을 하니까, 정말로 기뻤거든요."
"하지만, 그게 아닌 거죠?"
경추부의 모터가 탁한 소리를 내자 그녀의 목이 조금 움직인다.
"제가, 망가진 것이 아니라, 망가진 것은…"
광학 수지의 눈동자에 세상이 비친다.
음습한 하늘.
비에 젖은 대지.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진 폐허.
"어째서, 망가져 버린 걸까요…?"
비는 지금도 그칠 기색이 없었다.
"대략 150초 후에, 긴급 작동용 전지의, 잔량이 0이, 됩니다."
"백업용, 전지를, 소모하고 있기 때문에, 그 뒤에는, 기동 불능이 됩니다."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내게 살짝 웃어 주었다.
"단 한 번, 기록이 가능해요."
"손님."
"본 관을, 찾아 주신 기념으로, 부디, 한 말씀을…"
내려다보는 날 맑은 눈동자로 바라본다.
지금이라면 나도 알 수 있다.
누구 하나, 누구 하나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작고, 소녀의 모습을 한 로봇에게.
인간에 의해 창조되어,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 이 작은 존재에게.
"잘 들어. 진실을 말해 줄게"
"네…"
"사실을 말할 것 같으면…난 널 마중하러 온 거야."
"…네?"
아주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다.
"저 벽 너머에 말이야, 네 새로운 직장이 있어."
나는 우뚝 솟아 있는 봉쇄벽을 가리키며 말했다.
벽의 저편에 끝없이 계속되는 아무도 없는 비에 젖은 황무지를 가리키며.
"네 친구인 투영기도, 네 동료도, 모두 거기에서 기다리고 있어."
"손님도 잔뜩 와서, 널 기다리고 있어."
"네가 하는 해설을, 모두 기대하고 있어."
"넌 오늘부터, 거기에서 일하게 되는 거야."
"언제까지나 영원히, 네가 원하는 만큼 일할 수가 있어."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짜내듯이 눈동자에 살짝 미소를 담은 채 내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그건 마치, 천국 같네요…"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맞아…"
그녀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면서 다시 한동안 말을 삼켰다.
인공 눈동자는 내 등 뒤에 있는 무언가를 꿰뚫어 보듯이 살짝 떨렸다.
"…손님."
"제 소원을, 들어주시겠어요?"
"응, 뭔데?"
"제, 이어 리시버 뒤에, 슬롯이 있어요."
"제 메모리가, 삽입되어 있어요."
"제 기억은, 모두, 그곳에 기록되어 있어요."
"모두 근사한, 추억뿐이에요."
"그것을, 새로운 직장에, 전해 주시겠어요?"
"새로운 몸을, 준비해 주신다면, 전 그날부터, 업무를 시작할 수가 있어요."
"저는, 언제까지나, 인간 여러분들을 위해서, 일할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사실을, 말씀드릴 것 같으면…"
"제게는, 천국이, 필요 없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저 천진난만하게 웃는다.
"하지만, 만약, 무슨 일이 있어도…"
"저를, 천국에, 초대하고 싶으시다면…"
"손님… 부디, 부탁드립니다."
"천국을 둘로, 나누지 말아 주세요."
"로봇과, 인간, 그 둘로, 나누지 말아 주세요."
"전, 언제까지나…영원히…"
"인간, 여러분들의…"
"알았어."
"내가 전해 줄게."
나는 대답했다.
그녀는 말없이 있었다.
몇 초간의 침묵이 지금은 영원처럼 느껴졌다.
"…네."
"정말로, 감사합니다."
"너무나…기뻐요."
눈꺼풀이 살짝 떨리고 다시 한 번 눈을 떴다.
눈을 감을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손님…?"
"…어디에, 계신가요?"
고개를 돌려보려 하지만 이미 그것조차 할 수가 없다.
"손님…"
"그쪽에, 계신가요…?"
이제는 눈의 초점을 맞추는 것조차 할 수가 없었다.
"…왜일까요?"
"전 역시…망가진 것, 같아요."
"저는, 염가판이라서, 눈물을, 흘릴 수가 없지만…"
"만약, 기능이, 탑재되어, 있다면…"
"분명히, 울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눈물이, 멈추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정말로, 기쁜데…"
"행복한, 느낌이, 가득한데…"
"왜…일까요?"
"전, 망가져 있는, 모양이에요…"
눈 속에 고여 있던 비가 넘쳐 두 눈가에서 끝없이 흘러내리기 시작한다.
마치 울고 있는 것처럼.
"손님…"
"전…비오는 날이, 정말로 좋아요."
"비오는 날에는, 손님들이…많이, 오시니까요."
"언제, 손님이, 오시더라도, 괜찮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맞이해야만, 해요…"
"플라네타리움은, 어떨까요?"
"어떤 때라도, 결코, 꺼지지 않는, 아름답고, 영원한 빛."
"온 하늘의 별들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플라네타리움은, 어떨까요?"
"어떤 때라도, 결코, 꺼지지 않는…아름답고, 영원한 빛…"
"온 하늘의 별들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플라네타리움은…어떨까요…?"
"어떤 때라도… 결코… 꺼지지… 않는…… 아름답고…"
입을 살짝 열고 젖은 눈동자에 미소를 살짝 머금은 채.
그녀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녀는 너무나도 좋아했던 비를 보고 있다.
언제까지라도 지겨워하지 않고 행복한 듯이 보고 있다.
얼어붙을 듯한 비가 내리고 있다.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헤치고 귓가를 찾았다.
슬롯을 열자, 수지로 만든 카드의 끝이 조심스럽게 튀어나와 있었다.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잠금을 해제한 모양이었다.
메모리 카드를 슬롯에서 조심스럽게 빼내었다.
그리고 그녀의 상반신을 진흙 속에 살며시 뉘었다.
메모리 카드는 담뱃갑 정도의 크기였고, 약간 따뜻했다.
내 손바닥 속에서 그것은 서서히 차가워져 갔다.
방수 외투의 안주머니에서 텅 빈 방수 케이스를 끄집어내었다.
메모리 카드를 그 속에 넣고 조심스럽게 뚜껑을 닫았다.
빗소리를 가로막듯이 여러 방향에서 기동음이 들려온다.
토벌 전차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소리다.
끝없이 비가 계속 내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레네이더를 물웅덩이에 집어던졌다.
지금부터 내가 향하는 곳에는 이제 그런 건 필요가 없었다.
비는 지금도 계속 내리고 있다.
품속에는 그녀의 마음이 있다.
나는 걷기 시작했다.
별은 어디에 있을까?
어디로 가면 별을 볼 수 있을까?
나는 망가진 세상 한복판에서 그런 것들을 계속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