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 (시로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사건이 일어나고, 이리야가 마토 사쿠라의 조부인 마토 조켄의 손아귀에 넘어가버린다. 이리야를 구출하기 위해, 시로는 자신에게 팔을 이식해 준 신부와 함께 아인츠베른의 별장으로 향하고, 이리야를 데리고 나오던 도중 추격해온 서번트 어새신의 상대를 위해 신부는 뒤에 남는다.
하지만, 마토 조켄에게는 어새신 외에도 또 하나의 서번트-이리야에게서 빼앗은 버서커-가 남아있었다. 전투능력으로만 따지면 최강의 서번트. 서번트를 지니지 못하고, 마술사의 실력도 낮고, 왼팔의 마술회로는 쓸 수도 없는 상태의 시로가 상대할 수 있는 녀석이 아니었다.
왼쪽 어깨, 성해포의 매듭에 손을 댄다.
손목은 눈에 띄게 세게 묶여 있기에, 벗길 거라면 어깻죽지부터다.
남은 건 힘껏 당기는 것뿐.
그러기만 하면, 지금까지 경험한 것의 수십 배나 되는, 그 아픔이 찾아온다.
「--------」
코토미네는 시한폭탄 스위치라고 했다.
벗기면 도화선에 불이 붙는다.
폭발하는 게 1분 뒤인지 하루 뒤인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한 번 붙은 불은 결코 끌 수 없다는 것뿐.
---혀가 마른다.
각오해봤자 공포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불안하고 불안해서 소리지르고 싶어진다.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
나는, 나 자신이 무섭고 무서워서 견딜 수 없다.
자신이 죽는 건 당연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대로 있어도 죽임을 당한다.
어느 쪽이든 죽는다면, 조금이라도 오래 계속되는 쪽을 택할 뿐이다.
그러니, 무서운 건 단 하나.
이 몸이 부서지는 것보다 빨리, 내 마음이 미쳐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뿐.
「하--------아」
그 아픔을 견딜 수 있는 걸까.
싸우기 전에 자신도 알 수 없게 되고 이리야도 사쿠라도 알아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
알아보지 못하게 돼서, 지키겠다고 맹세한 말조차 생각해내지 못하게 되는 걸까.
그게 무서웠다.
그 하나가 무엇보다 무서웠다.
그래서 봉했다.
이 팔은 결코 사용하지 않겠다, 죽을 지경에 처해도 사용할 수 없다고 알고 있었다.
……버서커의 모습은 다른 사람 일이 아니다.
왼팔의 아픔에 견뎌내지 못하고, 제정신을 잃으면 저러한 것이 된다.
아니, 그 두려움은 왼팔이 있는 한 계속 존재하겠지.
이 팔은 나를 죽이는 악몽의 구현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알고 있으면서, 지금까지 남겨둔 건 무엇을 위해서였는가.
----잘라내 버리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남겨둔 이유는 하나뿐.
이 팔은 사용되기 위해 계속 존재하며, 녀석은 필요하니까 나에게 맡겼다.
나는 나 자신에게 심판 당한다, 라고 녀석은 말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라고 이리야는 말해줬다.
「그래----그걸로 충분해」
속죄는 여기에.
자신을 배신하고, 많은 목숨을 희생으로 삼았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은 변함없고, 그것을 위해 계속 존재한다.
붉은 벌에 힘을 넣는다.
사느냐 죽느냐.
맞서기 위해 심호흡을 하고, 잡아 찢듯이 오른팔을----
순간.
세계가 붕괴됐다.
「
,아」
절망이 불고 있다.
초속 100미터를 가볍게 넘는 엄청난 바람.
사람이 서기는커녕, 생명의 생존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 강풍이 세게 부딪쳐 온다.
이미 바람 따위가 아니다.
세차게 부는 그것은 강철 바로 그것이라, 풍압에 육체가 눌려 으스러진다.
「
,커」
안구가 으스러진다.
등이 벽에 파고든다.
손을 들기는커녕 손가락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역류하는 혈액.
표백되어 가는 정신.
아픔 따위 없다.
아픔을 느끼고, 견디려 하는 것 따위, 여기서는 너무나도 인간답다.
「
아, 아」
녹는다.
저항하는 괴로운 소리조차 지를 수 없다.
아무것도 없다.
항거할 방법 따위 없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데도,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다.
「
아아, 아」
하얗게 녹는다.
몸도 의식도 무감동하게 무너져 간다.
앞으로.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인가.
그래도 앞으로.
무엇을 위해 이렇게 된 것인가.
저 저편으로.
무엇을 위해 싸우는 것인가.
이 바람을 넘어서, 앞으로.
「
――――――」
----사라진다.
몸은 처음부터 패해 있어도 마음만은 질까 보냐 하며 이를 악물고 있었던 마음이 사라진다.
버티지, 못한다.
아무리 힘을 줘도 움직일 수 없다,
아무리 마음을 정해도 남을 수 없다.
자신의 모든 존재를 걸고 오른손을 꽉 쥐려고 시도한다.
그걸 할 수 있으면 버틸 수 있다.
몸의 일부가 움직이면, 그 감각을 발판 삼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주먹을 쥐기는커녕 손가락 끝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왼쪽 눈이 멀었다.
바람 우는 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엷어져 가는 의식과 시야.
그, 속에서
있을 수 없는, 환상을 봤다.
「
아아, 아」
서 있다.
이 바람 속에서 저 녀석은 서 있다.
서서, 저편으로 가려고 하고 있다.
---당연한 듯이.
붉은 외투를 펄럭이며, 강철의 바람에 밀리지 않고, 앞으로.
「
아아, 아」
턱에 힘이 들어갔다.
으득으득 이빨에서 소리를 냈다.
오른손은, 이미 주먹이 돼 있었다.
붉은 기사는 나 따위 안중에 없다.
살짝 돌아본 얼굴은 엄하고, 이 바람에 삼켜지려 하는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
녀석에게, 이 결과는 당연한 것이었다.
에미야 시로의 힘 가지고는 이 바람엔 거스를 수 없다.
자신을 배신하고, 힘에 겨운 소망을 품은 남자에게 미래 따위 없다고 알고 있었다.
녀석의 말은 옳다.
쌓이고 쌓인 벌(빚)은 나 자신을 심판하겠지.
그런데도, 녀석의 등은.
"----따라올 수 있겠나"
모멸하는 듯이, 믿는 듯이.
내 도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 ----따라올 수 있겠나, 는 무슨」
시야가 불탄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던 몸에 있는 대로 모든 열을 부어 넣는다.
손발은, 대검을 휘두르는 것 같은 바람을 가르며,
「네놈 쪽이야말로, 따라와라----!」
혼신의 힘을 담아, 붉은 등을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