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을 닫고 나온 세연은, 계단을 내려오면서 여기저기서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어젯밤, 정확히는 오늘 새벽에 여관에 들어섰을 때 마주친 사람들이 1층에 나와 있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인지, 새벽에는 술기운에 거침없이 말을 내뱉은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맨 정신이라 세연이 고개를 돌리면 행여 눈이 마주칠 새라 잽싸게 눈길을 돌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숙취에 시달리는지 테이블에 고개를 박고 끙끙대는 사람도 보이는 것이, 역시 이래저래 술이 웬수다.
은근히 느껴지는 시선을 외면하면서, 세연은 카운터에 다가갔다.
“일행이 몸이 안 좋아서 그러는데, 룸서비스 되죠?”
“예, 하지만 50프룸 이상의 음식은 안 됩니다. 뭘 드릴까요?”
“스프 2접시, 그리고 작은 빵 하나. 준비되는 대로 203호로 올려주세요.”
주문을 받던 종업원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두 사람 분의 기본 메뉴도 안 되는 양인 것이다. 게다가 식당에서 먹는 것도 아니고 룸서비스로 보내달라고 하면서 고작 주문이 이거라니, 기분이 상해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름지기 상술의 기본은 친절과 미소.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손님에게 대놓고 기분이 상했다는 표현을 해서는 안 된다. 물론 간혹 손님과 맞대놓고 싸우는 경우도 벌어지기는 하지만, 그 경우에도 본전은 건질 방도를 다 마련해둔 다음이다. 종업원은 일단 이미지 관리상, 웃는 얼굴로 주문을 받았다.
“네, 스프 2접시에 빵 하나 주문받았습니다. 합계가 5프룸입니다.”
종업원이 반복하는 주문 내용을 들은 식당의 손님들 역시 상당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자느라 새벽에 세연과 아셀의 모습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일행이 몸이 안 좋아서 그러나보다’ 하고 관심을 끊었지만, 술에 취한 채 투숙하는 모습을 봤던 사람들은 또다시 뭔가 이상한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드러내놓고 비웃는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다만 역시 맨 정신이라서 그런지 새벽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묘한 분위기 속에서 세연은 태연하게 식사비를 지불했다.
“5프룸 받았습니다. 금방 올라갈 테니 방에서 기다려주세요.”
“저기, 왜 빈손이에요?”
“아, 룸서비스로 부탁했어. 간단한 거라고는 해도 음식이니까 만들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잖니.”
확실히 맞는 말이다. 멀쩡히 종업원이 있는 식당에서 손님이 음식을 받아서 올라가는 것도 좀 이상하고, 그렇다고 내려가서 식당에서 먹는 것은 아셀의 몸 때문에 좀 꺼려졌다. 그렇다면 룸서비스를 시키는 게 당연하긴 하지만, 문제는 그 메뉴 내용이었다. 아셀은 ‘자신은 스프를 시켰으니 세연은 뭔가 좀 비싼 걸 시켜서 룸서비스를 부탁했겠지’ 하고 생각했고, 그 결과 잠시 후 올라온 음식판을 보고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말한 거에다 스프만 한 접시 추가한 거예요?”
“응. 나도 그다지 식욕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세연의 표정을 보고, 아셀은 보통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 건 룸서비스를 들고 온 종업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마법을 다루는 사람 치고, 특히 일정 수준 이상 마법을 다룰 줄 아는 사람들 치고 제대로 된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으니 틀린 생각은 아니었다.
“룸서비스입니다. 다 드신 다음에는 문 밖에 내어주십시오.”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문을 나서는 종업원을 보면서 아셀은 세상사는 것도 참 힘든 일이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렇게 종잡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세연을 믿어도 되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어쨌든 눈앞에 음식이 놓여있으니, 배고픈 사람으로서는 일단 먹는 게 중요했다.
허겁지겁 까지는 아니지만 제법 빠른 속도로 스프를 떠먹는 아셀을 보고, 세연은 약간 걱정이 됐다.
“조금만 천천히 먹어. 오랜만에 먹는 음식일 테니까 급하게 먹으면 몸이 놀래서 탈 나니까. 느긋하게 먹는 편이 여러모로 좋아.”
세연의 말에 아셀은 먹는 속도를 조금 줄이기는 했지만, 역시 배고픔은 어쩔 수 없어서 금방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그 모습을 본 세연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자신의 몫으로 시킨 스프를 떠먹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연이 반쯤 먹었을 때, 아셀은 스프와 빵을 다 먹고 세연의 스프 접시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것들만 가지고는 양이 안 찬 모양이었다.
“너무 배부르게 먹는 것도 몸에 안 좋아. 그걸로 참도록 하렴.”
생각 같아서는 자기 것도 먹게 해주고 싶었지만, 한동안 제대로 된 음식을 못 먹었을 사람이 갑작스레 배부르게 식사를 할 경우 몸에 좋지 않으리라는 것은 거의 100% 확실하다. 실제로 지나치게 굶주린 사람이 허겁지겁 배를 채우다 급사하는 모습까지 본 세연으로서는 그런 상황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셀은 여전히 세연의 접시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결국 세연이 접시를 싹 비우자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조금은 남겨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한 모양이었다.
“너무 서운하게 생각하지 마. 몸에 안 좋을까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잖니? 건강해지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까 조금만 참아.”
“…네.”
납득을 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수긍은 하는 것 같았다. 적어도 일단 자신을 위해서 그런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접시와 스푼을 문 밖에 내놓은 다음, 세연은 물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라고 해봤자 아까 시장에서 사온 여행물품들을 다시 가방에 정리해 넣는 것뿐이었다. 가게에서 구입할 때 나름대로 정돈해서 넣어주기는 했지만, 역시 자신이 직접 챙겨 넣지 않으면 어디에 어떤 물건이 들어있는지 제대로 파악이 안 돼서 찜찜하다.
아셀은 옆에서 세연이 물품들을 한번 다 꺼냈다가 다시 정리하면서 넣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여행물품을 챙기는 모습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물건이 많은지 적은지도 잘 몰랐다. 사실 경력 있는 여행자들이 본다면 어이없어 할 정도로 세연이 챙긴 물품은 간소한 차원을 넘어서 부족할 정도였다. 일단 식량부터가 전부 여행식, 그것도 터무니없어 보일 정도로 적은 양이었고, 취사도구는 단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여행 필수품인 지도도 없고, 노숙용 모포도 작은 크기로 단 하나 뿐. 이건 여행이 아니라 잠깐 옆 동네 놀러가는 게 아닌가 싶은 수준이었지만, 아셀로서는 알아볼 재간이 없었고 세연은 다 해결할 방법이 있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결과적으로 짐은 등에 매는 가방, 그것도 크지 않은 것에 다 들어갔다. 이제 남은 문제는…….
“잠깐 기다려줘. 그리고 혹시 몰라서 말해두는데, 겁먹거나 놀라지 말고.”
“…안 놀래요.”
어린 아이 취급이 싫은지 볼이 부은 얼굴로 대꾸하는 아셀을 보고 세연은 귀엽다는 생각에 핏 웃었다. 그게 또 기분이 나빴는지 아셀은 뾰로통한 얼굴로 계속 있었다.
세연은 주머니에서 자그마한 보석이 달린 목걸이를 꺼냈다. 아까 여행물품을 사러 나가서 같이 사온 물건이었다.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단순한 디자인에 목걸이 줄도 얇은 가죽끈이었다. 세연은 목걸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목걸이의 보석 위쪽 허공에 손을 뻗었다. 다른 손은 자신의 명치 부근에서 가볍게 거머쥔 채 눈을 살짝 감은 모습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하려는 것 같았기에 아셀도 어느새 표정을 푼 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세연의 말이 들려오는 순간, 세연의 손이 떠 있는 허공과 목걸이가 놓인 테이블 위에 마법진이 하나씩 그려졌다. 그와 동시에 벌어지는 영력의 흐름은 마법사들이 봤다면 정말 기겁했을 테지만, 아셀은 그저 그 화려한 모습에 감탄할 뿐이었다. 어차피 놀랐다는 사실에서는 오십보백보이겠지만.
그렇게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빛으로 그려진 마법진이 사라진 다음 세연은 목걸이를 집어 들어 아셀에게 내밀었다.
“자, 이거.”
“에?”
“뭐니, 그 반응은. 이상한 생각으로 주는 거 아니니까 일단 받아. 너한테 꼭 필요한 물건이니까.”
세연의 말에 아셀은 목걸이를 받아들었지만,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무래도 남자아이여서 그런지 목걸이를 걸고 다니는 것이 남 보이기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세연이 아니었다.
“아, 안 돼. 제대로 목에 걸렴.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라 영(靈), 그러니까 귀신들이 달라붙지 않도록 도와줄 물건이니까. 주머니에 넣어도 효과에는 영향이 없지만, 혹시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확실하게 목에 걸어야 해.”
“…네.”
영이 따라붙지 않도록 도와준다는 말에 목에 걸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부끄러운지 아셀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연은 며칠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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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P는 여전히 에뮬레이팅 프로그램으로 슈로대OG2를 돌리고 있습니다. 1회차 클리어 후 2회차에 도전 중. 자금은 펑펑 남아돌고 있습니다만 이후 플레이를 위해 또 아껴두고 있습니다. 개조는 주력기체들만 조금씩. PP 투자는 전 캐릭터에 SP 회복만 달아준 다음 묵혀둡니다. (...) 그런데, 어째서 최종 보스는 HP만 많은 바보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최종 보스 전에 나오는 녀석들은 HP도 많은데다 HP회복, EN회복, 특수방어까지 달려있어서 짜증나게 만들던데 정작 보스는 피만 많은 바보더군요. 각성에 재동걸고 필살기들 펑펑 날려주니 그대로 산화. ...조금 어이없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은 히로익 에이지는 이제야 좀 재미있어지는 느낌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주인공이 너무 먼치킨이라 긴장감이 없었는데, 전화부터 동급의 적이 그것도 다수가 출현하면서 제법 위기감이 생기더군요. ...그래봤자 최강 주인공 만세입니다만. (...)
命의 작중에 나오는 세연의 주문에 관해섭니다만, 모음 중 'eu'는 우리말 모음 'ㅡ'로 통용됩니다. 'u'는 'ㅓ', 'oo'는 'ㅜ'입니다. 그 외 주문에 사용된 모음에 대한 질문이 있는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