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에 명시했다시피 모종의 경로(...)를 통해 퍼온 것입니다.
번역자 분께 양해를 구하려고 했지만, 저로서는 연락이 불가능한 관계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PC용 게임 'Phantom : Phantom of Inferno'의 EIN 루트 번역입니다.
두 권으로 출간된 소설의 번역은 나쯔에 님의 홈페이지로 가시면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신에게 강철의 이빨을 주겠어.
흔들림 없는 얼음의 눈을 주겠어.
공포를 넘어서기 위한,
분노와 슬픔과 희망을 주겠어.
그러니까 싸워. 죽여. 긴 꿈이 끝날 때까지...
언젠가 오게 될 속죄의 날을, 살아 맞이하게 될 때까지.
< 팬텀 오브 인페르노 DVD-Video Edition 벽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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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자, 그곳은 기억에 없는 방이었다.
파자마 같은 옷을 입고, 딱딱한 침대에 눕혀져 있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곰팡이와, 먼지와, 기계기름인 듯한 냄새.
너무나... 춥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
여자애였다.
아마도... 나이는 자신과 큰 차이가 없다.
검고, 깊고, 차가운 눈동자.
마치 겨울밤의 호수 같은...
소녀: “정신이 들어?”
여자애에게 질문을 받고 애매하게 끄덕였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그리고 두 사람, 방안에 누군가가 더 있다.
외국인이었다.
은발의 남자와, 짙은 갈색머리의 여자.
남자: “Good morning boy. How are you?”
은발의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묘하게 친근하게 구는, 어딘지 깔보고 있는 듯한 어투.
...........
여자쪽은 잠자코 있다.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듯한, 찌를듯한 눈초리.
남자: “...OK, ‘Phantom’ ”
하고, 은발의 남자가, 여자애에게 말을 건다.
남자: “Let's start his test. Don't be too hard.”
...뭐지.
소녀: “Yes, master”
여자애도 이번에는 영어였다.
남자는, 그녀를 '팬텀' 이라고...
확실히, 그렇게 들렸다. 그녀의 이름인걸까.
여자애에게 손을 잡혀 무언가가 쥐어졌다.
...나이프다
군대에서 사용할 듯한, 무겁고 두께 있는 서바이벌 나이프.
이걸로 대체, 어쩌라는 걸까?
소녀: “일어서”
여자애가 재촉했다.
어느새 그녀도, 오른손에 똑같은 나이프를 쥐고 있다.
“이봐, 대체 무슨...”
그렇게 물어보려고 했다.
-휭!-
칼날이 번개처럼 반짝였다.
-털썩!-
코끝을 그녀의 나이프가 스치고 지나갔고,
당황해서 피한 순간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더라면...
엎드린 채로 아연실색 하고 있는 동안,
여자애는 침착한 걸음걸이로 침대를 돌아서 다가온다.
소녀: “죽고 싶지 않으면, 제대로 해”
...영문을 모르겠다.
싸우라는 건가? 이 나이프로?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체, 여기는 어디야?
왜 이런 방에 누워있었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이프를 든 여자애가, 눈앞까지 닥쳐왔다.
..........
급히 일어나, 여자애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칠 곳을 찾았다.
출구는 없나? 문은? 창문은?
-휭!-
제대로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배후에서 살기(殺氣).
달리려 했던 다리가 꼬여 다시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바로 머리 위의 공기를 나이프가 베어냈다.
-휭!-
덮어씌우듯이 여자애가 나이프를 내려쳐 왔다.
목소리로 나오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러 피한다.
.........
그녀는 진심이다.
게다가, 무섭게 움직임이 빠르다.
무거운 나이프를 아무렇게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볍게 휘둘러온다.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암살자처럼.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이 녀석들은 뭐야?
무엇 하나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한 가지.
...........
지금, 그녀에게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다가는, 죽는다.
............
여자애의 눈을 응시하며,
넘겨받은 나이프를 앞으로 내밀고, 신중하게 일어섰다.
검고, 깊고, 차가운 눈동자.
...그런가.
이제야 알겠다.
이건 아까 꾸던 꿈의 계속이다.
아직 꿈속에 있는 거다.
쫓아오던 검은 눈동자... 그건, 이 여자애였던 거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 같은 건 없다.
이건 그냥 꿈이니까.
어쨌든, 살아남는 것만을, 도망치는 것만을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만약 도망칠 수 없다면, 그 때는...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녀는 확실히 나이프를 다루는데 익숙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승산이 없다.
방의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소리죽인 웃음소리가 난다.
아까의 은발 외국인...
그녀를 ‘팬텀'이라고 불렀던, 그 남자.
아까, 그 녀석은 여자애에게 영어로 뭔가 명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틈을 노리면서, 천천히, 옆걸음으로 이동했다.
여자애는 움직이지 않는다.
유연하게 나이프를 쥔 채로 몸의 방향만을 바꿔온다.
...있다.
시계(視界)의 가장자리에, 그 은발 외국인의 모습이 들어온다.
남자는 흥분한 듯 했다.
나이프를 쥐고 서로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을, 열기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순간이면 된다.
여자애의 주의를, 뭔가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면...
아마도, 승산은 그 이외에는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자애에게서 시선을 떼어...
그리고 은발 남자를 노려보았다.
소리를 지르고 나이프를 치켜든 후, 남자를 노려 던지려 했다.
순간, 그러나 확실히, 여자애는 동요했다.
남자를 비호하려는 듯 사이로 끼어들어온다.
기다리고 있었던, 순간의 허점.
지금밖에 없다.
-쿵!-
나이프를 던지려 했던 자세 그대로, 여자애에게 몸통박치기를 걸었다.
뒤엉킨 채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다.
여자애는 완전히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이쪽은 곧바로 무릎으로 일어섰다.
틈을 주지 않고 뛰어들어, 쓰러진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
어째서인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아무리 꿈이라고는 해도, 사람을 죽이려 하고 있는데...
마치 자신이 아니라,
치켜든 나이프 쪽이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그녀 또한 겁먹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슬픈 듯한, 가련한 듯한...
마지막에는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내밀어진 나이프 끝에, 분명히, 붉은 피가 보였다.
동시에, 꿰뚫리는 듯한 충격이, 바로 밑에서 턱을 덮쳤다.
그녀가 누운 채로 내지른, 강렬한 어퍼 펀치.
눈앞이 새하얗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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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기절해있는 동양인 소년을,
세 사람은 각각의 감정을 지니고 내려다보았다.
남자: “어떻습니까, 미즈(Ms.) 맥케넨.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은발 남자의 득의양양한 미소에서 눈을 피한 여자...
클라우디아=맥케넨은,
부상을 입은 소녀를 흘낏 바라보았다.
클라우디아: “...꼴사납구나, 팬텀”
소녀: “...죄송합니다”
남자: “알겠습니까? 이 소년은 훈련을 받지 않았습니다. 전술 소양도 없죠”
남자: “단순히 갖고 태어난 본능만으로, 그와 같은 행동을 취한 겁니다”
남자: “천재입니다. 그것도 생사가 걸린 궁지에 처해야, 비로소 나타나는 재능의 소유자입니다”
남자: “이건 그야말로...”
남자: “우리 조직 '인페르노'에 가담키 위해 태어난 듯한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클라우디아: “...그렇다 쳐도, 그가 그것을 원할까?”
남자: “원할까, 라고요?”
참으로 우습다는 듯,
은발의 남자는 고소(苦笑)했다.
남자: “세상에 깨어나는 것을 거부하는 알은 없으며, 싹트는 것을 거부하는 씨앗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지요”
클라우디아: “특기인 세뇌인가”
남자: “그렇습니다. 완벽하죠. 이미 최면과 약물에 의한 처치가 끝나있습니다”
남자: “지식이나 판단력은 그대로 두고,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기억만을 봉인했습니다”
남자: “말도 할 수 있고, 눈에 비치는 것이 무엇인가도 인식하죠.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것만은 알 수 없습니다”
남자: “이름도, 가족도, 친구도... 무엇 하나 기억해낼 수 없습니다. 교육에는 최고로 좋은 상태이죠”
남자: “완성도는, 이 '아인' 으로 증명한 바...”
소녀: “....”
남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즈 맥케넨. 이것은 자비인 것입니다”
남자: “그는, 너무나 불운한 현장에 있었죠. 본래대로라면 말살해야 할 목격자입니다”
남자: “하지만 저로서는, 그에게 다시 한번 보람 있는 인생을 걸어갈 찬스를 주고 싶군요”
남자: “당신께서도, 같은 생각이 아니십니까?”
클라우디아: “.......”
클라우디아: “...단독 여행자에, 미성년. 게다가 일본인이라. 귀찮은데, 그 나라의 매스컴은”
남자: “이미 입출국 기록도 말소하도록 수배해 두었습니다”
남자: “더 이상 그의 행적은 아무도 쫓을 수 없습니다. 기밀은 만전입니다”
클라우디아: “......”
클라우디아: “...좋아. 사이스=마스터. 이 소년은 너에게 맡긴다”
클라우디아: “아인에, 츠바이라. 제자의 이름정도는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때”
그런 말을 내던지고, 클라우디아는 방을 뒤로했다.
그 뒷모습을, 사이스 마스터라 불린 남자는 냉소로 전송한다.
사이스: “과연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나에게 명령할 수 있을까? 아가씨.....”
사이스: “이제 됐다, 아인. 물러가 상처를 치료해라”
아인: “...예,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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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까와 똑같은 방.
똑같은 침대.
똑같은 냄새의 공기.
하지만 이번에는, 주변에 사람의 기척은 없다.
두통이 있다.
몸의 마디마디가 쑤신다.
틀림없이 얻어맞고 정신을 잃은 것 같다.
...그렇지, 죽음을 당할 것 같은 상황이었었는데.
몸을 일으켜 양손을 바라보고,
이렇다할 지장 없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 살아있다.
엄청나게 춥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변함없이 병원에서 검사받을 때 입는 하얀 파자마 같은 옷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마도 병원같은 게 아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휑한 창고 같은, 살풍경한 방이었다.
벽도 바닥도 드러난 콘크리트.
천정가까이에 작은 창문이 있지만 위치가 너무 높아 들여다 볼 수 없다.
출입구는... 녹슨 철문이 하나.
조악하게 매달린 백열전구가,
이따금 경련하듯 빛을 발한다.
전압이 안정되지 않은 듯 하다.
이건, 역시... 아직 꿈속인걸까?
멍하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맨발로 바닥에 내려왔다.
마비될 정도로 차가운 콘크리트의 감촉이, 발 안쪽을 찌른다.
이 선명한 감각은... 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잠겨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철문은 미는 것만으로 간단히 열렸다.
-끼익-
여기는... 폐공장 같은 곳인가.
단순히 넓은 공간이, 창문에서 들어오는 달빛에 드러나 있었다.
창유리는 깨어져 없어졌기에 밤의 냉기가 거침없이 신체에 들이닥쳐 온다.
어둠에 눈을 찌푸리면서, 차가운 바닥을 발끝을 들고 목적 없이 걸었다.
벽에 무슨 주의 팻말이 있다.
하지만 완전히 풀 알파벳이라 잘 모르겠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경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MAX HEADROOM 15 FEET’
...‘높이 제한’ 경고문인가?
단위가 피트라면... 여기는, 미국인걸까.
건물 밖으로 나왔다.
-휘이이이잉-
끝없는 황무지를, 바람의 신음소리만이 지나간다.
...이런 경치, 텔레비전에서 밖에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는 일본이 아니다.
아인: “정신이 들었어?”
배후에서,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가 났다.
...........
...무심결에 한 발, 뒤로 물러서 버렸다.
아인: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제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변함없이 조용한,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
손에는, 지금은 흉흉하게 빛나는 나이프가 아닌,
목도리가 붙어있는 방한복을 안고 있다.
이 애는 대체, 뭘까?
“너는...”
아인: “이름이라면, 없어”
이쪽에서 묻는 것보다 먼저,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인: “부르기 곤란하면 아인 이라고 불러. 언제나 그렇게 불리고 있으니까”
아인...
별명 같은 걸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까는 왜, 그런 짓을?”
최초로 입에 담은 질문은, 그것이었다.
단순한 농담이나 장난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때, 그녀... 아인은 확실히 살의를 담은 나이프를 휘둘렀었다.
아인: “당신의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서야”
“...재능?”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인: “당신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
아인: “...사람을 죽이는 재능. 살아남는 재능. 암살자로서의 재능이”
“그런...”
황당한 소리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지 말아줘. 대체 무슨 근거를 가지고...”
아인: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하지만 곧바로 받아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아까의 싸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 행동했던 걸까?
단순히 앞뒤 생각 않고 부딪혔다... 그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자기에 대한 일인데, 마치 타인에 대한 기억 같다.
그렇지만 확실히, 그녀를 죽이려 했던 것은 진짜다.
증오라든지, 이기고 싶다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다.
그랬는데도...
...........
최후에는 아인이 이겼다.
하지만 만약, 그녀에게 얻어맞은 것이 일순이라도 늦었다면...
정말로, 그녀를 찔렀을까?
이제와서지만, 공포가 가슴을 물들여온다.
아인: “보통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는 먼저 틀림없이 패닉을 일으켜”
아인: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려 했을 테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살해당했을 거야”
아인: “하지만 당신은 달랐어.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먼저, 상황에 대처했지. 그것이, 당신의 재능이야”
“....”
그런... 말도 안 되는.
아인: “틀림없이 지금까지는, 그런 자신을 알아채지 못했겠지”
아인: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는 한은 알 수 없어. 몸에 위기가 닥쳤을 때만 나타나는 능력이니까”
그러고 보니, 아인은 오른팔에 붕대를 감고 있다.
설마, 상처를...?
“그래서, 나에게 나이프를 쥐어줬다는 거야?”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아인: “그래”
...바보 같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애는?
“말도 안돼! 자칫 잘못했으면 죽었을 거라고!”
아인: “그렇겠지”
아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분노보다 오히려 당혹감이 앞섰다.
이 애에게는, 감정이라는 게 없는 걸까.
“...아무렇지 않은 거야? 너도 생명이 걸린 일인데?”
아인: “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살고 있어”
아인: “죽일 수 없을 때는, 죽을 때야”
가라앉은 어투로, 아인은 그렇게 말했다.
살인을 위해, 살고 있어...?
문득, 아까 있었던 은발 외국인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명령하던 남자.
“너... 암살자 같은 뭐 그런 거야?”
아인: “그래. 암살자야”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야말로, 그런 기분이었다.
아인의 나이는 몇 살일까?
확실히 어른스러운 인상은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직 어린애다.
이런, 소녀라 해도 좋을 나이의 여자애가 암살자라고?
농담이겠지?
그렇게 웃어넘기고 싶었다.
...그렇게 웃어넘기지 못했던 것은,
나이프를 손에 들고 덮쳐오는 아인의 모습이,
지금도 눈꺼풀 안쪽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잊을 수 없다. 그 때의 공포는.
“...그래서, 나를 시험해서 어쩔 셈이었는데?”
아인: “당신도 암살자가 되는 거야, 츠바이”
너무나 분노한 나머지, 눈앞이 어두워졌다.
“헛소리 하지 마... 왜 내가, 그런 걸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아인: “살기 위해서”
아인의 대답은 짧았다.
더구나 당연하다는 듯이.
아인: “당신은 츠바이. 두 사람 째의 나”
아인: “그러니까 당신도, 사람을 죽이는 일로밖에 존재를 허가받지 못해”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지 마!”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나에게는, 제대로 이름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말이 막혔다.
왜지? 왜 안나오지?
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거야?
“...내 ...이름은...”
.............
아인: “없어. 이젠”
아인: “생각해도 소용없어. 당신의 기억은 전부 지워졌으니까”
그런...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래,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여기는 대체 어디인지?
여기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그 딱딱한 침대에서 눈을 뜨기 전의 일은, 무엇하나 기억나지 않아...
말은 할 수 있다.
눈에 비치는 것이 무엇인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지식을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나?
대체, 이 나는, 어디의 누구인거지....?
“...네가, 그런 거야?”
아까, 아인이 말했다.
기억은 ‘지워졌다'라고.
사고 같은 게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머릿속을 조작당한 거다.
아인: “내가 아냐. 사이스=마스터야”
아인: “...내 주인이고, 조직 ‘인페르노' 의 일원. 그가 당신의 기억을 처리했어”
사이스=마스터...
그, 은발 외국인말인가?
아인: “당신은 봐서는 안 될 것을 봤어. 그래서 죽었어야 했지”
아인: “하지만 마스터는, 당신의 재능을 알고 죽이기는 아깝다고 생각했어”
아인: “그래서 당신의 기억을 빼앗고, 또 하나의 인생을 준비한거야”
아인: “인페르노의 일원, 암살자로서의 인생을”
아인: “...당신은, 다시 태어난 것과 같아”
차가운 바람이 지나쳐간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와, 아무것도 없어진 마음속을.
...........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머리를 지면에 짓눌렀다.
바람이, 이렇게 차가웠다니.
“어째서지...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대체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아인: “...거부해도, 좋아”
황무지를 지나치는 바람보다도, 아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
아인: “그러면, 최초의 예정대로 당신은 죽어야해. 지금 여기에서”
아인: “나의 역할은, 당신을 죽이는 일이었어”
아인: “하지만, 지금은 아냐. 당신은 내일부터 여기서, 나에게 모든 걸 배워야해. 암살자로서의 모든 것을”
아인: “ 리고 당신은, 진정한 츠바이 로서... 나의 분신이 되는 거야”
마른 모래에 떨어진 눈물방울이, 검고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
.......
무엇을 잃었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
그것마저도, 알 수 없다.
단지, 무서웠다.
외로웠다.
자신의 마음에 뚫려버린, 휑하게 커다란 구멍의...
그 깊이와 어두움에 떨며, 눈물이 쉴 새 없이 솟아올랐다.
아인: “울 수 있을 때 울어둬”
아인: “그건, 아주 사치스러운 일이니까”
“...꿈이야. 틀림없이, 그냥 꿈이야...”
“...이런 건 거짓말이야. 전부, 모든 게, 나쁜 꿈이야...”
아인: “그렇게 생각하는 게 위로가 된다면, 상관없어. 꿈이라고 생각해”
아인: “...하지만, 긴 꿈이 될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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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부터는, 예(例)의 ‘훈련' 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때까지 몸을 쉬어두도록, 그렇게 말한 그녀는 마중 나온 차에 올라 사라져갔다.
지금은, 이 폐공장에 혼자.
도망칠까...
문득, 그런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제대로 말도 구사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게다가 이런 황무지 한 가운데서,
혼자서 뭘 어쩐다는 것인가.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모포와 방한복을 넘겨받았기에,
더 이상 추위로 잠을 깨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밤은 잠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날이 밝을 때까지 시간은 있다.
그때까지, 조금 생각을 정리하자...
...........
아인이라 이름 밝힌, 그 여자애...
암살자라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나이프를 들었을 때의 그 기백. 빈틈없는 몸놀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틀림없이 익숙하게 보이는 분위기였다.
아마 그런 식으로 몇 명이나 사람을 죽인 적이 있겠지.
차갑고, 깊숙이 젖은 검은 눈동자를 떠올린다.
그래.
왠지 그 때 '슬픈 눈이다'라고...
그렇게 느꼈던 것을 기억해냈다.
사람을 죽일 때, 어떤 기분이 될까...
상상도 가지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꽤나 잔혹한 사람뿐일 거라 생각한다.
그럼 아인도 잔혹한 성격일까?
...모르겠다.
그, 뭔가 괴로워하는 듯한 눈빛을 본 후부터는.
그러고 보니 그녀는, 이런 말도 했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살고 있어’라고...
무슨 의미일까?
생각할수록 호기심이 생겼다.
어떤 애일까?
왜 암살자 같은 게 되었을까?
앞으로 얼마동안은,
이 폐공장에서 둘이서 살게 되는 것 같았다.
그 기간동안 그녀에게 암살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는 것.
그렇다면 더욱 더, 알아두고 싶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녀가 말한 대로 암살자가 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타인의 생명까지 빼앗는 일을,
과연 자신이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직하게 말해,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 먼저 아인과 이야기를 해보자.
그녀처럼 되라고 한다면, 먼저 그녀에 대해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서... 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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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밝는 것과 동시에, 아인이 차로 돌아왔다.
다크 슈츠의 남자가 두 사람.
아인과 함께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여러 가지 짐을 내리기 시작한다.
아마 이제부터, 이 폐공장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기재들이겠지.
아인: “...”
눈이 마주치자, 아인은 침묵한 채 대답을 재촉해 온다.
오늘부터 시작될 생활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질문해도, 될까?”
아인: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건 대단한 게 못되지만”
그녀도, 질문의 폭풍을 예측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어차피 알려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일 것이다.
“모든 것을 설명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어. 이젠...”
“하지만, 너에 대해서만은 알아두고 싶어”
아인: “...나?”
일순 아인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인 것 같았으나,
이내 평상시의 무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너도, 일본인?”
아인: “왜?”
“...그게, 우리들,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있잖아”
아인: “...아닐 거야, 아마”
아인: “일본어는, 나중에 배웠으니까”
아마...?
아인의 말이 신경 쓰였다.
“아마라니, 무슨 의미야?”
아인: “나도, 기억이 없거든”
너무나도 담담히 내뱉은 그 말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뭐라고?”
아인: “말했잖아. 당신은 나와 같다고”
아인: “나도 기억이 지워지고 암살자가 되었어”
아인: “나는 마스터가 성공한 최초의 피험체. 그래서 아인”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분명히 '아인'이란 독일어의 '1'이었지.
그리고 '2'는... '츠바이'
이 애도... 같은 경우인건가?
“...그럼, 언제부터?”
아인: “2년 전. 아직 마스터가 인페르노에 가담하기 전이야”
“괴롭지는, 않아?”
아인: “별로”
너무나 평온한 아인의 어조.
기억을 빼앗긴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2년이라는 세월이, 아픔을 잊게 한 것일까.
“나는... 괴로워”
아인: “잊게 될 거야. 조만간”
아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남는다... 그것뿐이야. 암살자는”
아인: “그래서 지나간 일도, 이후의 일도, 모두 무의미한 것들이지. 기억 같은 건 필요 없어”
아인: “괜찮아. 곧 당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될 거야.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을 테니까”
새삼 다시 생각했다.
대체, 어떤 애일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믿고, 눈에 비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저 무표정한 옆얼굴에서는, 무엇하나 이끌어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인을 바라보며... 그리고 배울 수밖에 없다.
같은 경우에 처해지고 나서, 그녀는 2 년의 시간을 보내왔다.
비록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그녀의 방식을 흉내 낼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렇게 하는 방법 이외에,
그녀와 같은 강함을 손에 넣을 수는 없겠지.
아인: “이걸로 갈아입어”
아인이 넘겨준 것은,
런닝 셔츠와, 뻣뻣한 재질의 야전복 바지였다.
아인: “오늘부터 하루 종일, 당신은 나와 함께야. 지시에는 모두 따를 것. 알겠지”
“그래...”
아인: “그럼, 시작할까”
............
여기까지만으로도 대충의 분위기는 알 수 있습니다.
사실 Nitro+의 초기작인 'Phantom : Phantom of Inferno'나 '흡혈섬귀 베도고니아 (吸血殲鬼 Vjedogonia)'는 개그라고 할만한 것이 전무한 상황이라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그 극한의 처절함이 또 매력이라... --;;
번역자 분께 양해를 구하려고 했지만, 저로서는 연락이 불가능한 관계로 이렇게 되었습니다.
PC용 게임 'Phantom : Phantom of Inferno'의 EIN 루트 번역입니다.
두 권으로 출간된 소설의 번역은 나쯔에 님의 홈페이지로 가시면 읽을 수 있습니다.
⊙ Phantom of Inferno ⊙
제작사: Nitro+
번 역: linpia
번 역: linpia
당신에게 강철의 이빨을 주겠어.
흔들림 없는 얼음의 눈을 주겠어.
공포를 넘어서기 위한,
분노와 슬픔과 희망을 주겠어.
그러니까 싸워. 죽여. 긴 꿈이 끝날 때까지...
언젠가 오게 될 속죄의 날을, 살아 맞이하게 될 때까지.
< 팬텀 오브 인페르노 DVD-Video Edition 벽지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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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는다 ...
...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
... 쫓아온다 ...
... 검고, 차가운 총구와, 더욱 차가운, 검은 눈동자가 ...
...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
... 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 ...
... 쫓아온다. 어디까지고 쫓아온다 ...
... 어떻게 하면 ... 좋지? ...
... 죽여야 해 ...
... 도망칠 수 없다면, 죽여야 해 ...
...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
... 쫓아온다 ...
... 검고, 차가운 총구와, 더욱 차가운, 검은 눈동자가 ...
... 도망치지 않으면, 죽는다 ...
... 하지만, 도망칠 수 없다 ...
... 쫓아온다. 어디까지고 쫓아온다 ...
... 어떻게 하면 ... 좋지? ...
... 죽여야 해 ...
... 도망칠 수 없다면, 죽여야 해 ...
...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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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뜨자, 그곳은 기억에 없는 방이었다.
파자마 같은 옷을 입고, 딱딱한 침대에 눕혀져 있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본다.
곰팡이와, 먼지와, 기계기름인 듯한 냄새.
너무나... 춥다.
...누군가가, 옆에 있다.
여자애였다.
아마도... 나이는 자신과 큰 차이가 없다.
검고, 깊고, 차가운 눈동자.
마치 겨울밤의 호수 같은...
소녀: “정신이 들어?”
여자애에게 질문을 받고 애매하게 끄덕였다.
여기는, 대체, 어디일까.
그리고 두 사람, 방안에 누군가가 더 있다.
외국인이었다.
은발의 남자와, 짙은 갈색머리의 여자.
남자: “Good morning boy. How are you?”
은발의 외국인이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묘하게 친근하게 구는, 어딘지 깔보고 있는 듯한 어투.
...........
여자쪽은 잠자코 있다.
마치 물건을 감정하는 듯한, 찌를듯한 눈초리.
남자: “...OK, ‘Phantom’ ”
하고, 은발의 남자가, 여자애에게 말을 건다.
남자: “Let's start his test. Don't be too hard.”
...뭐지.
소녀: “Yes, master”
여자애도 이번에는 영어였다.
남자는, 그녀를 '팬텀' 이라고...
확실히, 그렇게 들렸다. 그녀의 이름인걸까.
여자애에게 손을 잡혀 무언가가 쥐어졌다.
...나이프다
군대에서 사용할 듯한, 무겁고 두께 있는 서바이벌 나이프.
이걸로 대체, 어쩌라는 걸까?
소녀: “일어서”
여자애가 재촉했다.
어느새 그녀도, 오른손에 똑같은 나이프를 쥐고 있다.
“이봐, 대체 무슨...”
그렇게 물어보려고 했다.
-휭!-
칼날이 번개처럼 반짝였다.
-털썩!-
코끝을 그녀의 나이프가 스치고 지나갔고,
당황해서 피한 순간 침대에서 굴러 떨어졌다.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더라면...
엎드린 채로 아연실색 하고 있는 동안,
여자애는 침착한 걸음걸이로 침대를 돌아서 다가온다.
소녀: “죽고 싶지 않으면, 제대로 해”
...영문을 모르겠다.
싸우라는 건가? 이 나이프로?
그런 말도 안 되는...
대체, 여기는 어디야?
왜 이런 방에 누워있었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이프를 든 여자애가, 눈앞까지 닥쳐왔다.
..........
급히 일어나, 여자애에게 등을 돌리고 도망칠 곳을 찾았다.
출구는 없나? 문은? 창문은?
-휭!-
제대로 주변을 둘러볼 틈도 없이, 배후에서 살기(殺氣).
달리려 했던 다리가 꼬여 다시 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바로 머리 위의 공기를 나이프가 베어냈다.
-휭!-
덮어씌우듯이 여자애가 나이프를 내려쳐 왔다.
목소리로 나오지 않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굴러 피한다.
.........
그녀는 진심이다.
게다가, 무섭게 움직임이 빠르다.
무거운 나이프를 아무렇게나, 익숙한 손놀림으로 가볍게 휘둘러온다.
마치, 텔레비전에 나오는 암살자처럼.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이 녀석들은 뭐야?
무엇 하나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이 한 가지.
...........
지금, 그녀에게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다가는, 죽는다.
............
여자애의 눈을 응시하며,
넘겨받은 나이프를 앞으로 내밀고, 신중하게 일어섰다.
검고, 깊고, 차가운 눈동자.
...그런가.
이제야 알겠다.
이건 아까 꾸던 꿈의 계속이다.
아직 꿈속에 있는 거다.
쫓아오던 검은 눈동자... 그건, 이 여자애였던 거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 같은 건 없다.
이건 그냥 꿈이니까.
어쨌든, 살아남는 것만을, 도망치는 것만을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만약 도망칠 수 없다면, 그 때는...
죽여야 해.
죽기 전에, 죽여야 해.
죽기 전에, 죽여야 해.
하지만, 어떻게 해야?
그녀는 확실히 나이프를 다루는데 익숙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승산이 없다.
방의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소리죽인 웃음소리가 난다.
아까의 은발 외국인...
그녀를 ‘팬텀'이라고 불렀던, 그 남자.
아까, 그 녀석은 여자애에게 영어로 뭔가 명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틈을 노리면서, 천천히, 옆걸음으로 이동했다.
여자애는 움직이지 않는다.
유연하게 나이프를 쥔 채로 몸의 방향만을 바꿔온다.
...있다.
시계(視界)의 가장자리에, 그 은발 외국인의 모습이 들어온다.
남자는 흥분한 듯 했다.
나이프를 쥐고 서로 노려보고 있는 두 사람을, 열기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일순간이면 된다.
여자애의 주의를, 뭔가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면...
아마도, 승산은 그 이외에는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자애에게서 시선을 떼어...
그리고 은발 남자를 노려보았다.
소리를 지르고 나이프를 치켜든 후, 남자를 노려 던지려 했다.
순간, 그러나 확실히, 여자애는 동요했다.
남자를 비호하려는 듯 사이로 끼어들어온다.
기다리고 있었던, 순간의 허점.
지금밖에 없다.
-쿵!-
나이프를 던지려 했던 자세 그대로, 여자애에게 몸통박치기를 걸었다.
뒤엉킨 채 두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다.
여자애는 완전히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이쪽은 곧바로 무릎으로 일어섰다.
틈을 주지 않고 뛰어들어, 쓰러진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
어째서인지 전혀 무섭지 않았다.
아무리 꿈이라고는 해도, 사람을 죽이려 하고 있는데...
마치 자신이 아니라,
치켜든 나이프 쪽이 의지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그녀 또한 겁먹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슬픈 듯한, 가련한 듯한...
마지막에는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내밀어진 나이프 끝에, 분명히, 붉은 피가 보였다.
동시에, 꿰뚫리는 듯한 충격이, 바로 밑에서 턱을 덮쳤다.
그녀가 누운 채로 내지른, 강렬한 어퍼 펀치.
눈앞이 새하얗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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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멀리서, 그 은발 외국인이, 흥분한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
“ 'Zwei' ... You are 'Zwei' ”
...무슨 말일까?
역시 의미를 모르겠다.
“당신 이름이야”
갑자기,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그 슬픈 눈을 한 여자애의 목소리.
“당신의 이름은, 오늘부터 '츠바이' ...”
츠바이?
뭐야 그게. 무슨 의미야?
이름이, 어쨌다고?
여기는, 대체, 어디야...
“ 'Zwei' ... You are 'Zwei' ”
...무슨 말일까?
역시 의미를 모르겠다.
“당신 이름이야”
갑자기, 귓가에 목소리가 들렸다.
그 슬픈 눈을 한 여자애의 목소리.
“당신의 이름은, 오늘부터 '츠바이' ...”
츠바이?
뭐야 그게. 무슨 의미야?
이름이, 어쨌다고?
여기는, 대체, 어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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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닥에 기절해있는 동양인 소년을,
세 사람은 각각의 감정을 지니고 내려다보았다.
남자: “어떻습니까, 미즈(Ms.) 맥케넨. 대단한 인재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은발 남자의 득의양양한 미소에서 눈을 피한 여자...
클라우디아=맥케넨은,
부상을 입은 소녀를 흘낏 바라보았다.
클라우디아: “...꼴사납구나, 팬텀”
소녀: “...죄송합니다”
남자: “알겠습니까? 이 소년은 훈련을 받지 않았습니다. 전술 소양도 없죠”
남자: “단순히 갖고 태어난 본능만으로, 그와 같은 행동을 취한 겁니다”
남자: “천재입니다. 그것도 생사가 걸린 궁지에 처해야, 비로소 나타나는 재능의 소유자입니다”
남자: “이건 그야말로...”
남자: “우리 조직 '인페르노'에 가담키 위해 태어난 듯한 인간이라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클라우디아: “...그렇다 쳐도, 그가 그것을 원할까?”
남자: “원할까, 라고요?”
참으로 우습다는 듯,
은발의 남자는 고소(苦笑)했다.
남자: “세상에 깨어나는 것을 거부하는 알은 없으며, 싹트는 것을 거부하는 씨앗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의지의 문제가 아니지요”
클라우디아: “특기인 세뇌인가”
남자: “그렇습니다. 완벽하죠. 이미 최면과 약물에 의한 처치가 끝나있습니다”
남자: “지식이나 판단력은 그대로 두고, 자기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기억만을 봉인했습니다”
남자: “말도 할 수 있고, 눈에 비치는 것이 무엇인가도 인식하죠. 하지만 그는, 자신에 대한 것만은 알 수 없습니다”
남자: “이름도, 가족도, 친구도... 무엇 하나 기억해낼 수 없습니다. 교육에는 최고로 좋은 상태이죠”
남자: “완성도는, 이 '아인' 으로 증명한 바...”
소녀: “....”
남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미즈 맥케넨. 이것은 자비인 것입니다”
남자: “그는, 너무나 불운한 현장에 있었죠. 본래대로라면 말살해야 할 목격자입니다”
남자: “하지만 저로서는, 그에게 다시 한번 보람 있는 인생을 걸어갈 찬스를 주고 싶군요”
남자: “당신께서도, 같은 생각이 아니십니까?”
클라우디아: “.......”
클라우디아: “...단독 여행자에, 미성년. 게다가 일본인이라. 귀찮은데, 그 나라의 매스컴은”
남자: “이미 입출국 기록도 말소하도록 수배해 두었습니다”
남자: “더 이상 그의 행적은 아무도 쫓을 수 없습니다. 기밀은 만전입니다”
클라우디아: “......”
클라우디아: “...좋아. 사이스=마스터. 이 소년은 너에게 맡긴다”
클라우디아: “아인에, 츠바이라. 제자의 이름정도는 좀 더 생각해 보는 게 어때”
그런 말을 내던지고, 클라우디아는 방을 뒤로했다.
그 뒷모습을, 사이스 마스터라 불린 남자는 냉소로 전송한다.
사이스: “과연 언제까지, 그런 식으로 나에게 명령할 수 있을까? 아가씨.....”
사이스: “이제 됐다, 아인. 물러가 상처를 치료해라”
아인: “...예, 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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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꺼풀을 들면,
제발 꿈에서 깨어있기를...
그렇게 기원하면서, 눈을 떴다.
제발 꿈에서 깨어있기를...
그렇게 기원하면서, 눈을 떴다.
...허무한 바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아까와 똑같은 방.
똑같은 침대.
똑같은 냄새의 공기.
하지만 이번에는, 주변에 사람의 기척은 없다.
두통이 있다.
몸의 마디마디가 쑤신다.
틀림없이 얻어맞고 정신을 잃은 것 같다.
...그렇지, 죽음을 당할 것 같은 상황이었었는데.
몸을 일으켜 양손을 바라보고,
이렇다할 지장 없이 움직이는 것을 확인했다.
아직, 살아있다.
엄청나게 춥다.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변함없이 병원에서 검사받을 때 입는 하얀 파자마 같은 옷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아마도 병원같은 게 아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본다.
휑한 창고 같은, 살풍경한 방이었다.
벽도 바닥도 드러난 콘크리트.
천정가까이에 작은 창문이 있지만 위치가 너무 높아 들여다 볼 수 없다.
출입구는... 녹슨 철문이 하나.
조악하게 매달린 백열전구가,
이따금 경련하듯 빛을 발한다.
전압이 안정되지 않은 듯 하다.
이건, 역시... 아직 꿈속인걸까?
멍하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맨발로 바닥에 내려왔다.
마비될 정도로 차가운 콘크리트의 감촉이, 발 안쪽을 찌른다.
이 선명한 감각은... 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잠겨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철문은 미는 것만으로 간단히 열렸다.
-끼익-
여기는... 폐공장 같은 곳인가.
단순히 넓은 공간이, 창문에서 들어오는 달빛에 드러나 있었다.
창유리는 깨어져 없어졌기에 밤의 냉기가 거침없이 신체에 들이닥쳐 온다.
어둠에 눈을 찌푸리면서, 차가운 바닥을 발끝을 들고 목적 없이 걸었다.
벽에 무슨 주의 팻말이 있다.
하지만 완전히 풀 알파벳이라 잘 모르겠다.
문득 위를 올려다보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경고판이 눈에 들어왔다.
‘MAX HEADROOM 15 FEET’
...‘높이 제한’ 경고문인가?
단위가 피트라면... 여기는, 미국인걸까.
건물 밖으로 나왔다.
-휘이이이잉-
끝없는 황무지를, 바람의 신음소리만이 지나간다.
...이런 경치, 텔레비전에서 밖에 본 적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여기는 일본이 아니다.
아인: “정신이 들었어?”
배후에서, 들은 적이 있는 목소리가 났다.
...........
...무심결에 한 발, 뒤로 물러서 버렸다.
아인: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제 공격하지 않을 테니까”
변함없이 조용한, 전혀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
손에는, 지금은 흉흉하게 빛나는 나이프가 아닌,
목도리가 붙어있는 방한복을 안고 있다.
이 애는 대체, 뭘까?
“너는...”
아인: “이름이라면, 없어”
이쪽에서 묻는 것보다 먼저,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아인: “부르기 곤란하면 아인 이라고 불러. 언제나 그렇게 불리고 있으니까”
아인...
별명 같은 걸까.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무엇부터 물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까는 왜, 그런 짓을?”
최초로 입에 담은 질문은, 그것이었다.
단순한 농담이나 장난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 때, 그녀... 아인은 확실히 살의를 담은 나이프를 휘둘렀었다.
아인: “당신의 재능을 증명하기 위해서야”
“...재능?”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인: “당신에게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
아인: “...사람을 죽이는 재능. 살아남는 재능. 암살자로서의 재능이”
“그런...”
황당한 소리였다.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가 했더니.
“말도 안되는 소리는 하지 말아줘. 대체 무슨 근거를 가지고...”
아인: “나를 죽이려고 했잖아”
“그건...”
하지만 곧바로 받아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아까의 싸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때,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 행동했던 걸까?
단순히 앞뒤 생각 않고 부딪혔다... 그 정도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자기에 대한 일인데, 마치 타인에 대한 기억 같다.
그렇지만 확실히, 그녀를 죽이려 했던 것은 진짜다.
증오라든지, 이기고 싶다든지,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다.
그랬는데도...
...........
최후에는 아인이 이겼다.
하지만 만약, 그녀에게 얻어맞은 것이 일순이라도 늦었다면...
정말로, 그녀를 찔렀을까?
이제와서지만, 공포가 가슴을 물들여온다.
아인: “보통 사람이라면, 그 상황에서는 먼저 틀림없이 패닉을 일으켜”
아인: “자신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려 했을 테고, 혼란스러워 하면서 살해당했을 거야”
아인: “하지만 당신은 달랐어. 상황을 파악하는 것보다 먼저, 상황에 대처했지. 그것이, 당신의 재능이야”
“....”
그런... 말도 안 되는.
아인: “틀림없이 지금까지는, 그런 자신을 알아채지 못했겠지”
아인: “평온한 생활을 하고 있는 한은 알 수 없어. 몸에 위기가 닥쳤을 때만 나타나는 능력이니까”
그러고 보니, 아인은 오른팔에 붕대를 감고 있다.
설마, 상처를...?
“그래서, 나에게 나이프를 쥐어줬다는 거야?”
그런 엉터리 같은 소리를 증명하기 위해서?
아인: “그래”
...바보 같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애는?
“말도 안돼! 자칫 잘못했으면 죽었을 거라고!”
아인: “그렇겠지”
아인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분노보다 오히려 당혹감이 앞섰다.
이 애에게는, 감정이라는 게 없는 걸까.
“...아무렇지 않은 거야? 너도 생명이 걸린 일인데?”
아인: “나는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살고 있어”
아인: “죽일 수 없을 때는, 죽을 때야”
가라앉은 어투로, 아인은 그렇게 말했다.
살인을 위해, 살고 있어...?
문득, 아까 있었던 은발 외국인을 떠올렸다.
그녀에게 무언가를 명령하던 남자.
“너... 암살자 같은 뭐 그런 거야?”
아인: “그래. 암살자야”
열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그야말로, 그런 기분이었다.
아인의 나이는 몇 살일까?
확실히 어른스러운 인상은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직 어린애다.
이런, 소녀라 해도 좋을 나이의 여자애가 암살자라고?
농담이겠지?
그렇게 웃어넘기고 싶었다.
...그렇게 웃어넘기지 못했던 것은,
나이프를 손에 들고 덮쳐오는 아인의 모습이,
지금도 눈꺼풀 안쪽에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잊을 수 없다. 그 때의 공포는.
“...그래서, 나를 시험해서 어쩔 셈이었는데?”
아인: “당신도 암살자가 되는 거야, 츠바이”
너무나 분노한 나머지, 눈앞이 어두워졌다.
“헛소리 하지 마... 왜 내가, 그런 걸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아인: “살기 위해서”
아인의 대답은 짧았다.
더구나 당연하다는 듯이.
아인: “당신은 츠바이. 두 사람 째의 나”
아인: “그러니까 당신도, 사람을 죽이는 일로밖에 존재를 허가받지 못해”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지 마!”
더 이상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그렇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나에게는, 제대로 이름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말이 막혔다.
왜지? 왜 안나오지?
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못하는 거야?
“...내 ...이름은...”
.............
아인: “없어. 이젠”
아인: “생각해도 소용없어. 당신의 기억은 전부 지워졌으니까”
그런...
그런 말도 안 되는...
그래, 그러고 보니... 확실히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여기는 대체 어디인지?
여기에 오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는지?
그 딱딱한 침대에서 눈을 뜨기 전의 일은, 무엇하나 기억나지 않아...
말은 할 수 있다.
눈에 비치는 것이 무엇인가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지식을 어디서, 어떻게 손에 넣었는지?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나?
대체, 이 나는, 어디의 누구인거지....?
“...네가, 그런 거야?”
아까, 아인이 말했다.
기억은 ‘지워졌다'라고.
사고 같은 게 아니다.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머릿속을 조작당한 거다.
아인: “내가 아냐. 사이스=마스터야”
아인: “...내 주인이고, 조직 ‘인페르노' 의 일원. 그가 당신의 기억을 처리했어”
사이스=마스터...
그, 은발 외국인말인가?
아인: “당신은 봐서는 안 될 것을 봤어. 그래서 죽었어야 했지”
아인: “하지만 마스터는, 당신의 재능을 알고 죽이기는 아깝다고 생각했어”
아인: “그래서 당신의 기억을 빼앗고, 또 하나의 인생을 준비한거야”
아인: “인페르노의 일원, 암살자로서의 인생을”
아인: “...당신은, 다시 태어난 것과 같아”
차가운 바람이 지나쳐간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와, 아무것도 없어진 마음속을.
...........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머리를 지면에 짓눌렀다.
바람이, 이렇게 차가웠다니.
“어째서지... 어째서 내가, 이런 꼴을...”
“대체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아인: “...거부해도, 좋아”
황무지를 지나치는 바람보다도, 아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
아인: “그러면, 최초의 예정대로 당신은 죽어야해. 지금 여기에서”
아인: “나의 역할은, 당신을 죽이는 일이었어”
아인: “하지만, 지금은 아냐. 당신은 내일부터 여기서, 나에게 모든 걸 배워야해. 암살자로서의 모든 것을”
아인: “ 리고 당신은, 진정한 츠바이 로서... 나의 분신이 되는 거야”
마른 모래에 떨어진 눈물방울이, 검고 작은 얼룩을 만들었다.
.......
무엇을 잃었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가.
그것마저도, 알 수 없다.
단지, 무서웠다.
외로웠다.
자신의 마음에 뚫려버린, 휑하게 커다란 구멍의...
그 깊이와 어두움에 떨며, 눈물이 쉴 새 없이 솟아올랐다.
아인: “울 수 있을 때 울어둬”
아인: “그건, 아주 사치스러운 일이니까”
“...꿈이야. 틀림없이, 그냥 꿈이야...”
“...이런 건 거짓말이야. 전부, 모든 게, 나쁜 꿈이야...”
아인: “그렇게 생각하는 게 위로가 된다면, 상관없어. 꿈이라고 생각해”
아인: “...하지만, 긴 꿈이 될 거야”
..........
날이 밝을 때까지,
아인은 시간을 주었다.
아인은 시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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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부터는, 예(例)의 ‘훈련' 을 시작한다고 한다.
그때까지 몸을 쉬어두도록, 그렇게 말한 그녀는 마중 나온 차에 올라 사라져갔다.
지금은, 이 폐공장에 혼자.
도망칠까...
문득, 그런 생각도 했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제대로 말도 구사하지 못하는 나라에서, 게다가 이런 황무지 한 가운데서,
혼자서 뭘 어쩐다는 것인가.
그야말로 자살행위다.
모포와 방한복을 넘겨받았기에,
더 이상 추위로 잠을 깨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밤은 잠들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다.
날이 밝을 때까지 시간은 있다.
그때까지, 조금 생각을 정리하자...
...........
아인이라 이름 밝힌, 그 여자애...
암살자라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나이프를 들었을 때의 그 기백. 빈틈없는 몸놀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해진다.
틀림없이 익숙하게 보이는 분위기였다.
아마 그런 식으로 몇 명이나 사람을 죽인 적이 있겠지.
차갑고, 깊숙이 젖은 검은 눈동자를 떠올린다.
그래.
왠지 그 때 '슬픈 눈이다'라고...
그렇게 느꼈던 것을 기억해냈다.
사람을 죽일 때, 어떤 기분이 될까...
상상도 가지 않고, 상상하고 싶지도 않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 것은, 꽤나 잔혹한 사람뿐일 거라 생각한다.
그럼 아인도 잔혹한 성격일까?
...모르겠다.
그, 뭔가 괴로워하는 듯한 눈빛을 본 후부터는.
그러고 보니 그녀는, 이런 말도 했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해 살고 있어’라고...
무슨 의미일까?
생각할수록 호기심이 생겼다.
어떤 애일까?
왜 암살자 같은 게 되었을까?
앞으로 얼마동안은,
이 폐공장에서 둘이서 살게 되는 것 같았다.
그 기간동안 그녀에게 암살자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다는 것.
그렇다면 더욱 더, 알아두고 싶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녀가 말한 대로 암살자가 될 수밖에 없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타인의 생명까지 빼앗는 일을,
과연 자신이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직하게 말해, 모르겠다.
그러니까 내일 아침, 먼저 아인과 이야기를 해보자.
그녀처럼 되라고 한다면, 먼저 그녀에 대해 알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나서... 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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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밝는 것과 동시에, 아인이 차로 돌아왔다.
다크 슈츠의 남자가 두 사람.
아인과 함께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서 여러 가지 짐을 내리기 시작한다.
아마 이제부터, 이 폐공장에서 생활하기 위해 필요한 기재들이겠지.
아인: “...”
눈이 마주치자, 아인은 침묵한 채 대답을 재촉해 온다.
오늘부터 시작될 생활을,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대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질문해도, 될까?”
아인: “내가 대답할 수 있는 건 대단한 게 못되지만”
그녀도, 질문의 폭풍을 예측했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어차피 알려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일 것이다.
“모든 것을 설명해 달라고는 하지 않겠어. 이젠...”
“하지만, 너에 대해서만은 알아두고 싶어”
아인: “...나?”
일순 아인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보인 것 같았으나,
이내 평상시의 무표정으로 돌아가 있었다.
“너도, 일본인?”
아인: “왜?”
“...그게, 우리들,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있잖아”
아인: “...아닐 거야, 아마”
아인: “일본어는, 나중에 배웠으니까”
아마...?
아인의 말이 신경 쓰였다.
“아마라니, 무슨 의미야?”
아인: “나도, 기억이 없거든”
너무나도 담담히 내뱉은 그 말을,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렸다.
“...뭐라고?”
아인: “말했잖아. 당신은 나와 같다고”
아인: “나도 기억이 지워지고 암살자가 되었어”
아인: “나는 마스터가 성공한 최초의 피험체. 그래서 아인”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있다.
분명히 '아인'이란 독일어의 '1'이었지.
그리고 '2'는... '츠바이'
이 애도... 같은 경우인건가?
“...그럼, 언제부터?”
아인: “2년 전. 아직 마스터가 인페르노에 가담하기 전이야”
“괴롭지는, 않아?”
아인: “별로”
너무나 평온한 아인의 어조.
기억을 빼앗긴 사실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2년이라는 세월이, 아픔을 잊게 한 것일까.
“나는... 괴로워”
아인: “잊게 될 거야. 조만간”
아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남는다... 그것뿐이야. 암살자는”
아인: “그래서 지나간 일도, 이후의 일도, 모두 무의미한 것들이지. 기억 같은 건 필요 없어”
아인: “괜찮아. 곧 당신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될 거야.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을 테니까”
새삼 다시 생각했다.
대체, 어떤 애일까.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믿고, 눈에 비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 걸까...
저 무표정한 옆얼굴에서는, 무엇하나 이끌어낼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아인을 바라보며... 그리고 배울 수밖에 없다.
같은 경우에 처해지고 나서, 그녀는 2 년의 시간을 보내왔다.
비록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그녀의 방식을 흉내 낼 수밖에 없다.
지금은 그렇게 하는 방법 이외에,
그녀와 같은 강함을 손에 넣을 수는 없겠지.
아인: “이걸로 갈아입어”
아인이 넘겨준 것은,
런닝 셔츠와, 뻣뻣한 재질의 야전복 바지였다.
아인: “오늘부터 하루 종일, 당신은 나와 함께야. 지시에는 모두 따를 것. 알겠지”
“그래...”
아인: “그럼, 시작할까”
............
여기까지만으로도 대충의 분위기는 알 수 있습니다.
사실 Nitro+의 초기작인 'Phantom : Phantom of Inferno'나 '흡혈섬귀 베도고니아 (吸血殲鬼 Vjedogonia)'는 개그라고 할만한 것이 전무한 상황이라 좀 지루할 수도 있겠지만, 그 극한의 처절함이 또 매력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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