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로부터 열흘이 지난 현재, 샌프란시스코에는 긴급 재해 대책반이 투입되어 복구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정확한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액의 집계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

20XX년 3월의 어느 날, 아침 7시.
10시 반 강의가 있는 날이라 일찍 일어난 세환은 부모님과 함께 아침을 먹으며 뉴스를 보고 있었다. TV 화면은 샌프란시스코의 복구 현장을 비추고 있었다. 전투가 있었던 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다음이라서 화재나 그에 의한 검은 연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여기저기 무너진 건물들의 모습은 을씨년스러운 느낌을 들게 했다.

『...에서도 가장 큰 충격은 역시 금문교의 붕괴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자랑이었던 저 거대한 구조물이 무너지면서,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의지도 꺾인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현재 금문교의 운송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 수송선이 정기적으로 샌프란시스코 만을 왕복하고 있습니다만...』

화면이 바뀌면서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금문교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세환은 속이 약간 쓰렸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금문교를 무너트린 것은 자신이기 때문에, 얘기를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뉴스는 곧 샌프란시스코의 모습을 치우고 다른 내용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잘 먹었습니다. 그럼 학교 다녀올게요."

"그래, 다녀오렴."

"다녀오거라. 난 조금 늦을 테니 저녁은 어머니랑 같이 먹고."

"네에."

준비를 마친 세환은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아파트 현관을 지나자, 아직은 쌀쌀한 3월의 아침 바람이 세환을 맞았다. 세환은 옷깃을 추스르며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살아간다》 - 2. 바뀔 것은 없다




"으응~~, 역시 피로가 덜 풀렸나."

강의가 끝나고 세환이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리자, 옆에 앉아있던 진석이 돌아보며 말했다.

"야, 고작 21살 먹은 녀석이 벌써부터 피로가 안 풀리면 어쩌려고 그러냐? 적어도 밤새 마신 다음에 그런 소리를 해라."

"아침 강의 있는데 밤새 퍼마시면 그 강의 포기한 거 아냐?"

"그러니까 강의 하나 정도는 포기할 각오로 마시자는 거지."

"...야 임마."

세환과 진석의 어쩐지 한심한 대화를 듣고 있던 민우가 결국 한마디를 던졌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다.

"박진석, 너 시험 기간에 내 노트 빌릴 생각은 하지마라."

"...형님!"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어. 난 성실한 동생만 둔다."

툭탁대는 둘을 웃으며 보던 세환은 필기구와 교재를 가방에 챙겨넣었다. 정리를 끝낸 세환은 그때까지도 아웅다웅하던 진석과 민우를 보고 말했다.

"슬슬 일어나라. 점심 안 먹을 거야?"

"먹어야지."

"식당은 이미 바글바글 댈 텐데, 또 얼마나 기다려야 되려나?"

방금전까지 장난친 일은 전혀 없다는 듯이 멀쩡하게 반응하는 둘을 보고 세환은 다시 살짝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 샌프란시스코에 나타났다가 도망친 로봇. 뭐였을까?"

학교 식당.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만큼은 아니지만 세명이 앉을 자리를 찾기는 조금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덕분에 한명이 식권 줄을 서는 동안 나머지 둘이 가방으로 자리를 맡아놓는 방법을 써야했다. 약간 치사해보이는 방법이긴 하지만, 학교 식당에서 제 시간에 배를 채우고 싶으면 치사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밥을 먹고 있는데, 불쑥 진석이 말을 꺼낸 것이다.

"글세, 단 한번 나타난 걸 가지고 정체가 뭐냐고 찾아보는 건 무리가 아닐까."

언제나 신중하기 그지없는 민우의 대답에 세환은 조금 묘한 기분이었다. 당연한 의견이긴 하지만, 세환은 내심 민우가 지크프리트를 아군으로 여겨주길 바랐던 것이다. 진석의 경우에는,

"하지만 그 뭐냐, 알에서 나온 녀석도 쓰러트렸고, 전투기나 마을은 공격 안 하고 사라졌잖아. 그러면 우리편 아냐?"

워낙 단순한 편이라 무슨 말을 할지 훤해서 별로 믿음이 안 간달까.

"나를 공격하는 녀석을 쓰러트렸다고 반드시 도와주는 건 아니지. 그냥 그 상대가 적대관계인 것뿐일 수도 있고, 아니면 먹잇감 하나 놓고 경쟁하는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어. 마지막에 전투기에게 반격 안 하고 사라진 걸 보면 두번째 가정은 조금 아닌 것 같지만, 뭐라고 단정짓기엔 아직 이르단 얘기지."

"으음..."

민우의 설명에 진석은 불만인 듯, 팔짱을 끼고는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뭔가 반박할 거리를 찾는 모양인데, 지금까지 세환이 보아온 바로는 진석이 민우를 말로 이길 가능성은 제로를 넘어 마이너스를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불똥은 여지없이 세환에게로 튀었다.

"그럼 세환이 넌 어때? 너도 적이라고 생각하냐?"

세환은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은 그거 내가 탄 거거든'하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자기를 인간의 적이라고 자기입으로 말하기도 기분 나쁘고. 참 묘한 상황이었다.

"글세다... 뭐, 일단은 좀더 두고 보자고. 다음에도 도와줄지 어떨지는 모르니까."

"다음? 다음이라니?"

진석이 되묻는 것과 민우의 표정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는 것을 본 세환은 앗차 싶었다. 사람들은 카라타스의 침공이 앞으로도, 적어도 모선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 되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세환은 다음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 당연하다는 투로 말을 했던 것이다. 세환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데, 민우가 표정을 풀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두번 있었던 일이 세번 있지 말라는 법은 없지. 한번 있었던 일이 두번 없으리라는 법도 없고. 하늘에서 떨어진 게 두번, 그 중 한번은 싸웠으니 앞으로 그런 일이 더 있을 수도 있겠는데."

"그게 그렇게 되나? 하지만 우연일 수도 있잖아?"

"한번은 우연이라도 두번째부터는 필연이라는 소리도 있어."

어디까지나 차분하게 분석하는 민우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진석의 모습을 보며 세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방심할 수 없는 친구들이었다. 세환은 앞으로 언행에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날 저녁, 세환은 자신의 방에서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졌던 로봇 전투에 대한 내용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사실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관련 내용을 접하는 걸 피하다보니 기껏해야 뉴스에서 다뤄주는 걸 보는 게 고작이었고, 그 덕에 세환은 당사자이면서도 정작 사람들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거의 모르고 있었다.
역시나라고 할까, 온갖 추측성 글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인터넷 뉴스의 댓글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수준이라 진작에 포기했고, 나름대로 진지한 카페나 커뮤니티를 찾아서 그곳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보았는데도 그랬다. 그럭저럭 냉정한 관점으로 분석한 듯한 글도 좀 있었지만, 예측과 음모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맨 처음 나타난 것은 지구의 대 외계인 정책에 반감을 품고 안드로메다에서 무력시위를 하고자 날아온 외계인의 로봇이고, 지크프리트는 그 무책임한 난동을 수습하기 위해 출동한 M모 단체의 제압용 로봇이라는 식이었다. 분석을 한 건지, 소설을 쓰는 건지, 세환은 글을 읽으면서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뭔가 어마어마한 상상들이 나오고 있네. 뭐, 크게 본다면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긴 하지만, M모 단체라니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인간은 본래 자신들의 상식을 벗어난 상대를 억지로 자신들의 논리로 이해하려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습니다.」

"그야 전부터 그렇다고 생각은 했지만... 거, 뭐시냐, 너랑 지크프리트 만든 별이..."

「'제르누르'입니다.」

"아, 맞다, 제르누르. 거기 사람들은 어땠어? 비슷했어?"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지구인과 제르누르인의 진화 과정은, 적어도 현재 지구인의 진화 단계까지는 매우 흡사하기에 그 사고방식도 상당히 유사합니다.」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기란 소린가..."

그렇게 중얼거리며 게시물 제목을 훑어보던 세환은 순간적으로 의자에서 미끄러져 넘어질 뻔 했다. 게시물 중에 '다음에 출현할 도시 예상 목록'이라는 것이 눈에 뜨인 것이다. 더군다나 내용은 세계의 유명 대도시, 특히 수도 중심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예외라면 뉴욕 정도랄까. 적어도 주요 국가의 경제와 정치의 중심이 되는 도시들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었다.

"우와, 뭐야 이건. 할 짓이 그렇게들 없나, 이런 거나 상상하고 있게. 게다가 이건 어쩐지 이 도시에 나타나면 재미있겠다는 느낌으로 읽히는데."

「하지만 상당히 가능성 높은 목록입니다.」

"뭐라고?"

그저 흥미성 게시물로 생각하고 넘어가려던 세환은 브룬힐데의 대답에 멈칫했다. 그러면 이게 정말로 뭔가를 분석해서 나온 결과물이란 뜻인가?

「카라타스의 침공 예정지를 파악하는데 특별한 분석 자료와 과정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제르누르에서 카라타스의 강하 지점을 확인해보면 공통적으로 인구가 집중된 도시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일단 인구가 많으면 경제를 비롯한 각종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아마도 카라타스는 대도시를 공격함으로써 사상자를 최대한 많이 발생시켜 심리적 동요를 일으키는 한편, 경제적·정치적 파급효과까지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세환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데나 내려와서 닥치는대로 때려부수는 게 아니었나... 그러면 대체 목적이 뭘까? 파괴? 식민지... 아니, 식민성(星)인가?"

「제가 탈출할 때까지 수집된 정보를 종합해보면 자원의 확보가 목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최초 착륙선에서 송출된 방송 역시 채취 선언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습니다.」

"아, 그러고보니 그 자원채취 때문에 제르누르가 황폐화됐다고 했지. ...그러면 그 채집한 자원은 어디다 쓰려는 걸까?"

「대부분 기동 병기와 착륙선의 제작에 쓰였다고 판단됩니다. 카라타스가 채굴한 자원은 채굴이 어렵고 양이 적은 만큼, 다른 금속보다 훨씬 뛰어난 강도와 경도, 내열성을 가진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채취를 위한 침략과, 침략을 위한 채취인가... 이거 완전히 무한 루프네."

세환은 한숨이 나왔다. 이래서야 도대체 무엇 때문에 카라타스가 침공하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분명히 맨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목적이 있었을 텐데, 이쪽이 알고있는 정보로는 그 최초의 목적이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어쩌면 저쪽도 침략과 자원 채취를 무수히 반복하는 와중에 본래 목적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때? 그럴 수도 있을까?"

「유기 지성체는 종종 수단과 목적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거나 추측일 뿐이었고, 그게 맞든 틀리든 맞서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세환은 쓸데없는 곳에 머리를 굴렸다고 생각했다.




약 2주 후, 영국 런던, 현지시각 새벽 3시경.

트라팔가르 광장에 낙하한 카라타스의 착륙선에서 나온 전투 병기는 양손에 방패를 장착한 인간 형태였다. 영국군에는 당장 비상이 걸렸지만 지상군의 출동은 어려웠고, 궁여지책으로 공군만 출격시키고 경찰이 피난 유도를 맡는 방법을 택했다.




약 10분전, 대한민국 서울, 현지시각 오전 11시 50분경.

「마스터, 영국 런던에 적이 나타났습니다.」

'알았어. 잠시 후에 말하면 이동시켜줘.'

「알겠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던 도중 브룬힐데에게서 연락을 받은 세환은 어떤 구실을 댈까 잠깐 고민하다가, 핸드폰 문자 메시지가 온 척을 했다. 일단 헤어지기 위해서는 가장 무난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으음... 흠, 후우, 아무래도 너희들 먼저 가서 먹고 있어야겠다."

"왜 그래? 누군데?"

"집이야. 뭔가 물어보실 게 있나 본데, 문자로 하느니 차라리 통화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길어질 것 같으니까 먼저 가서 먹고 있어. 나 기다리지 말고."

"그렇게 복잡한 얘기냐?"

민우의 물음에 세환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아니, 뭐 우리 입장에선 별로 복잡한 건 아닌데, 어른들은 컴퓨터 다루는 거 조금 어려워하시잖아. 얼마나 걸릴지 확실하지 않아서 그래."

"그냥 나중에 집에 가서 봐드린다고 하면 안 돼?"

진석의 말에 민우가 못마땅한 눈을 했고, 세환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 그동안 답답하실 거 아냐. 게다가 나도 자꾸 신경쓰이면 기분 안 좋고."

"그런가..."

"알았으면 그만 붙잡고 얼른 따라와. 더 시간 끌지 말고."

민우가 진석을 끌고 식당쪽으로 사라지자, 세환은 근처에 있는 단과대 건물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다. 이동하려면 아무래도 보는 사람이 없는 화장실이 최적이었다. ...냄새는 어쩔 수 없지만.
지크프리트의 콕핏으로 이동한 후, 가방과 외투를 발밑에 내려놓은 세환은 시트 벨트를 착용하며 브룬힐데에게 상황을 물었다.

"영국의 대응은 어때?"

「현재 전투기 편대가 출격해서 상대하고 있지만, 도시 한복판이라는 점 때문에 쉽게 공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사일이나 폭격 대신 기총 사격이 전부입니다. 지상군은 출동이 늦어지고 있고, 시민들은 경찰의 유도에 따라 피난 중입니다.」

"지구 기술로는 어쩔 수 없나... 적기의 형태는?"

「기본은 인간형, 전체 크기는 지크프리트와 비슷한 수준이며 양팔에 원형 방패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그 외의 장비는 없는 듯 합니다.」

"어쩐지 어느 애니메이션에서 나왔던 로봇이 생각나네, 양팔의 방패라니."

「신경 접속 완료, 싱크로율 98.9%. 이동합니다.」

잠시 후, 세환은 한밤중의 런던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앞에는 브룬힐데가 말한대로 양팔에 커다란 원형 방패를 달고 있는 카라타스의 거대 로봇이 보였다.

"우와, 진짜네. 이거 완전히 메○더잖아."

어이가 없어진 세환이 중얼거리고 있자니, 적 로봇이 몸을 돌려 지크프리트와 마주 섰다. 광학 공격이라면 어차피 안 통할 테고, 시간 끌어봤자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세환은 대뜸 공격 자세를 잡고 달려들었다.

"하아앗!"

적기는 비스듬히 내리쳐진 지크프리트의 검을 왼팔의 방패로 막더니, 오른팔의 방패를 휘둘러 지크프리트를 맞추려 했다. 세환은 급히 왼팔을 들어 방패끼리 맞부딪히게 했지만 충격으로 팔이 밀리면서 몸통이 노출되었고, 적기는 지체없이 다리를 들어 지크프리트의 몸통을 밀어내듯이 걷어찼다. 터엉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기체의 간격이 벌어졌다.

"칫, 방패가 두개라 방어 하나는 상당하잖아. 그래도 무기를 들 여유가 없어서 치명타는 피할 수 있을 것 같네."

「방심은 금물입니다.」

"알고 있어, 그럼 다시 간다!"

세환은 외침과 함께 돌진했다. 이번엔 스러스터를 가동시킨 전력 돌격이었다. 방패를 앞세우고 충돌과 동시에 검을 내려치려 했지만, 적기는 충돌 직전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자연히 지크프리트는 빈 공간을 가르고 지나갔고, 공중에 뜬 채였던 적기는 몸을 돌리더니 지크프리트를 향해 오른팔을 휘둘렀다.

「뒤! 위험!」

"우왓?!"

갑자기 브룬힐데가 지른 소리에 놀란 세환은 재빨리 몸을 돌리며 방패를 들어올렸고, 그 직후 무언가 방패에 강한 진동이 전해져왔다. 세환은 고개를 들어 방패에 맞고 튀어 오르는 것을 보았다.

"침...? 아니, 다트 같은 건가?"

「방패 안쪽에 사출 장치가 들어있는 듯 합니다. 충격량을 보건대, 직격당할 경우 관통당할 수도 있습니다.」

"제길, 까다로워졌군."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고슴도치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탄형 병기이니 탄수에 제한이 있겠지만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다트 크기가-어디까지나 지크프리트 기준으로-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이, 최소한 두자릿수는 될 것 같았다.

"일단 방패와 저 다트부터 처리한다!"

다시금 방패로 몸을 가리며 달렸다. 그 모습을 본 적기 역시 방패 하나를 앞세운채 마주 달려왔다. 곧이어 강한 충돌음과 함께 두 기체가 격돌했다. 방패를 맞댄 채 밀고당기는 와중에, 세환은 적기가 다른 방패를 눕혀 자신의 머리를 겨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젠장!"

황급히 고개를 숙인 세환의 머리 위로 다트 세발이 연속으로 발사되었고, 피하느라 주의가 흐트러진 지크프리트의 방패를 적기가 무릎으로 차 올렸다. 그 동작으로 방패가 위로 밀려올라가며 지크프리트의 동체가 완전히 노출되었다. 당황하는 세환의 눈에 적기의 다트 발사기가 자신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비쳤다.

"우아아앗!"

세환은 급한 마음에 스러스터를 작동시켜 뛰어 올랐지만, 적기의 움직임이 약간 빨랐다. 두개의 다트 발사기에서 쏘아진 다트 여섯 발 중 세 발이 지크프리트의 양 다리에 꽂혔고, 그 충격으로 지크프리트는 공중에서 반 바퀴 넘게 회전해 지면에 내리꽂혔다. 굉음과 함께 주변 건물에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져나갔다.

"크윽, 이런 망할!"

통증을 참으며 고개를 들자, 코앞까지 접근한 적기가 방패의 옆면으로 지크프리트를 내리찍으려 하고 있었다. 세환은 더 생각할 것도 없이 옆으로 몸을 굴렸다. 적기의 방패가 내리 꽂힌 바닥에서는 수도관이 파열됐는지 물이 솟구쳤고, 몸을 굴려 피한 지크프리트의 밑에 있던 건물들은 완전히 무너져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젠장, 이러다간 정말 끝장나겠는데."

이래저래 골치아픈 상대였다. 저쪽은 상처 하나 없고, 이쪽은 다리에 다트가 세 발이나 박혀있다. 그나마 위안거리라면 다트의 남은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었지만, 처음부터 몇 발이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의미가 없었다.

"까짓거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다!"

세환은 왼팔을 휘둘러 방패를 날렸다. 적기는 회전하며 날아든 방패를 왼팔의 방패로 막아냈고, 그 틈에 세환은 보조 스러스터를 이용해 적기의 코앞까지 접근한 다음 멈췄다. 지크프리트의 방패를 튕겨내며 버텼던 적기는 휘둘러지는 검을 막기 위해 왼팔의 방패를 머리 위로 들리는 것과 동시에 오른팔의 다트 발사기를 지크프리트의 동체에 겨누었다. 겨냥한 위치는 지크프리트의 콕핏.

"아직이야!!"

고함소리와 함께 세환은 왼손을 허리 뒤로 돌려 잡고 있던 단검을 뽑아 그어올렸다. 단검에 베어진 적기의 오른팔이 팔꿈치부터 잘려 땅에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승기를 잡은 것도 잠시, 지크프리트의 검을 막고 있던 방패의 옆면에서 톱날 같은 것이 튀어나오더니 고속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건?!"

세환이 당황하는 사이, 적기는 지크프리트의 검에 방패를 맞댄 채 미끄러트렸다. 중간에 걸린 검의 가드 부분까지 잘라낸 방패 톱날은 그대로 지크프리트의 동체로 육박해왔다. 다급해진 세환은 왼손의 단검으로 적의 팔꿈치 부분을 베었지만, 그와 거의 동시에 톱날이 지크프리트의 몸을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아아악!!"

끔찍한 고통과 함께 커다란 진동이 온몸에 전해져왔다. 세환은 머리가 하얗게 비는 느낌 속에서도 왼손의 단검을 휘둘러 적의 남은 팔을 잘라내었다. 곧 진동이 멈추고, 기이잉 하는 금속 마찰음과 함께 몸에 꽂힌 방패가 미끄러져 떨어졌다.

"허억, 허억, 허억... 크윽..."

간신히 적을 무력화시키긴 했지만, 엄청난 통증에 세환은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다. 결정타고 뭐고 일단은 정신을 추스르는 게 먼저였다. 하지만 적은 그럴 시간도 주지 않았다. 강렬한 충격과 함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적기가 지크프리트의 머리를 걷어찬 것이다.

"크헉?! 이, 이 자식이!"

머리가 뒤흔들리는 느낌을 참으며 세환은 검을 횡으로 그었다. 다시한번 발차기를 하려고 접근하던 적기는 그 동작에 동체가 두동강나더니 움직임을 멈추었다.

"제, 젠장... 별 해괴한 놈을 보내고 있어..."

적을 쓰러트린 세환은 그제야 여유를 좀 가질 수 있었다. 한숨 돌리고 지크프리트의 동체를 내려다보니, 단면 여기저기서 불꽃이 조금씩 튀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제법 크게 타격을 받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던 세환은 톱날이 파고든 깊이를 보고는 소름이 돋았다. 콕핏 해치 바로 옆까지 톱날이 파고들었던 것이다. 조금만 더 늦게 단검을 휘둘렀다면 그 전에 자신이 고깃덩어리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다.

"...뭐, 됐어. 일단 살았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린 세환은 착륙선을 향해 다가갔다. 영국 공군은 지크프리트를 공격할 생각이 없는지, 계속해서 상공을 맴돌 뿐이었다. 세환은 영국이 미국보다는 상식이 있는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다짜고짜 미사일부터 날려대는 녀석들이 어디 있어..."

착륙선까지 파괴한 다음, 세환은 튕겨나간 방패를 회수하러 움직였다. 그리고 방패가 떨어진 곳을 보고는 움찔했다.

"...망할, 하필이면 여기냐."

방패는 런던 국립 미술관을 부순 채 떨어져 있었다. 덧붙이자면, 튕겨나오면서 트라팔가르 광장의 넬슨 탑마저 부러트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 시간대에 사람이 없는 곳이라 다행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지, 아아, 이 예술품들 다 어째... 그나마 대영박물관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다만..."

세환의 한숨섞인 넋두리를 들으며 브룬힐데는 지크프리트를 격납고로 이동시켰다.




"그나저나 이번엔 부서진 데가 꽤 많은데, 다음 녀석이 오기 전까지 수리가 될까?"

「동체의 손상은 10일에서 15일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 안에 적이 온다면 수리가 불완전한 채로 출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안 오길 빌어야겠군. 수고했어, 그럼 돌려보내줘."

「알겠습니다. 그럼 쉬십시오.」

학교 화장실로 돌아온 세환은 변기의 물을 내리고 화장실을 나섰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흐르지는 않았다. 식당을 향해 걷던 세환은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변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상대는 인류의 능력으로는 대응하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대였고, 그렇다면 이러나 저러나 바뀔 것이 없었다. 상대를 할 수 있어야 변화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며, 세환은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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