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네바다의 공군기지에서 라그나뢰크가 신형 스텔스 수송기 8대를 탈취하고 약 8시간 후, 라그나뢰크는 세곳에서 동시에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의 진주만 IS 훈련소, 남아메리카의 IS 공동 연구소, 영국의 왕립 IS 연구소였다. UN 안보리에서 미국 대표가
밝힌 내용대로라면 7시간 후에는 나타났을 테지만, 라그나뢰크는 이 세곳을 동시에 공격하는 한편 수송기의 육안 탐지를 피하기
위해서 항로를 조정했다.
세곳 모두 라그나뢰크의 다음 공격목표로 예상되던 장소들이었지만 예측이 맞았다고 반드시 방어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 방면으로 분산되었다고는 해도 라그나뢰크의 병력은 세자릿수에 달했고, 가장 적은 숫자인 남미 공격대도 150기에 가까운 숫자였다. 그에 비해 습격을 받은 연구소와 훈련소에서 보유하고 있는 IS는 많아야 10기, 적은 곳은 5기 정도에 불과했으니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 여기는 네바다! 주포와 대공포가 모두 파괴됐다! 전투 속행 불능!
- 여기는 캘리포니아! 함체 바닥에 구멍이 났다! 승조원 전원 퇴함중!
- 요크타운이다! 비행갑판이 완전히 걸레가 됐다! 함재기 이륙 불능!
그나마 영국이나 남미의 IS 연구소는 군사 시설보다는 연구 시설로서의 성격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피해는 연구소 관련으로 한정되었지만 진주만은 그마저도 벗어나고 있었다. 미국 해군의 모항이다보니 상당한 전력이 집중되어 있었고, 필연적으로 IS 훈련소를 공격하는 라그나뢰크와 교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래식 전력과 US와의 전투는 이미 전투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과거 1세대 IS인 백기사조차도 5개 항모전단을 능가하는 전력을 단독으로 무력화시켰는데 250기에 달하는 2세대 US라면 더 볼것도 없었다.
- 대장님, 그런데 저 해군들 굳이 상대할 필요가 있습니까?
- 무슨 뜻이야?
- 솔직히 저 녀석들 그냥 내버려둬도 US에는 타격을 주지 못하니까요. 에너지 절약이나 탄약 절약하는 의미에서 저 녀석들은 손 안 대도...
- 무슨 뜻인지 알겠다. 약한 녀석 괴롭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이지?
- 네, 뭐...
해군 함선과 지상 시설을 파괴하던 라그나뢰크 대원 중 한명이 하는 말을 들은 소대장은 고개를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고, 그 말에 얘기를 꺼낸 대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반적인 전장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여유로운 대화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밑에서 날아드는 포화는 모두 회피되거나 US의 실드에 가로막히고 있었다. 소대장은 방금 전 자신을 공격한 대공포대를 파괴하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말이다, 네 말대로 내버려두면 귀찮아진다고. 저놈들도 명색이 군인인데 우리를 놔둘 리가 없잖냐. 어차피 결국엔 서로 적대할 수밖에 없어. 입장 차이라는 게 있으니까.
- 그건 그렇지만...
- 아니면, 너 지금이라도 US를 포기할 수 있냐? US를 버리고 이전까지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냔 말이다.
- ...아무래도 못하겠죠.
- 잘 알고 있구만. 뭐, 모두에게 좋은 건 저 빌어먹을 IS 연구소 놈들이 자료 전부 없애버리고 연구소에 코어까지 다 날려버려주는 거지만, 저치들이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안 봐도 뻔하잖아? 실제로도 이 꼴이고. 그러니까 얼른 끝내버리고 가자고.
- 알겠습니다. 어쨌든 빨리 해치우는 게 저 병사들한테도 낫겠군요.
2시간 후, 임무를 마치고 귀항한 엔터프라이즈 항모전단은 초토화된 진주만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라그나뢰크는 진주만 공습과 동시에 외부 통신시설부터 파괴했기에 이번에도 지원 요청이나 현상 보고 같은 것은 불가능했고, 그 때문에 엔터프라이즈 전단은 아무것도 모른채 일정에 맞춰 느긋하게 돌아왔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처럼 태평양에서 살아남은 미국 항모 전단이 엔터프라이즈 하나라는 사실에 전단 사령관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도쿄 기준 시각 2월 25일 오전 6시, IS 스쿨은 평소보다 1시간 이르게 학생들을 기상시켰다. 교사들은 그보다 빨라서 4시에 일어났고, 간밤에 있었던 사건 때문에 실제로 잠은 서너시간 잔 것이 고작이었다. 교사들은 일어나자마자 시우에게 사건의 경위를 물어보았고, 후지노와 스칼렛이 전용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아무 말도 없이 시우를 공격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했다. 전자는 전세계 IS 코어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뜻이고, 후자는 그 이유가 짐작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를 습격한 게 토모리 후지노, 스칼렛 노베인 이 두사람이 확실한가?"
"후지노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스칼렛은 확실합니다. 방에 들어올 때까지는 IS를 전개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다른 한명은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목소리로 봐서는 후지노 같았어요."
"분명히 사건 후에 인원 점검을 다시 해보니 그 두명만 사라져 있기는 했지. 그런데 왜 너를 습격했는지, 혹시 이유 아냐?"
"...아니요. 저한테 분노를 터뜨리기는 했지만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사실 시우는 후지노와 스칼렛이 자신을 공격한 이유를 대강은 떠올리고 있었지만 밝히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에 확인해야될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물어볼 사람은 지금 한국에 있고, 전화로 물어볼 만한 내용도 아니라서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시우에게서 들을 내용을 다 들었다고 생각한 사키는 의자에서 일어나 양호실 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래, 알겠다. 일단 잠깐 눈 좀 붙여둬라. 오늘은 6시에 기상시킬 것 같으니까 그렇게 알아두고."
"6시요? 왜 그렇게 빨라졌죠?"
"...라그나뢰크가 움직였어."
사키의 대답에 시우는 더이상 묻지 못했고, 사키가 나간 후에도 양호실 침대에 누워 뒤척거리기만 하다가 6시의 기상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 전교생에게 알린다. 7시 정각까지 간단한 짐을 챙기고 운동장에 집합할 것. 다시 알린다. 6시 30분까지 간단한 짐을 챙기고 운동장에 집합할 것. 이상.
막 일어난데다 기상시간이 갑자기 앞당겨진 사실에 어리둥절해 있던 학생들은 때마침 들려온 방송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서둘러 샤워실과 공용 목욕탕으로 향했다. 대부분은 밤에 있었던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준비를 마치고 운동장에 모였을 때 알게 된 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 앞에 대형 홀로스크린이 펼쳐지자, 그 안에서 교장이 학생들을 향해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 지금 이 시간부로 IS 스쿨은 무기한 휴교에 들어갑니다.
"엑?"
"휴교? 어제 그게 그렇게 위험한 거였어?"
"잠깐, 잠깐. 갑자기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휴교라니..."
"일본에 집이나 아는 사람 있는 애들은 그렇다 쳐도, 그런 사람들 전혀 없으면 어쩌라고?!"
예상치 못한 발표에 학생들은 단숨에 혼란에 빠졌고, 교사들은 돌아다니며 그런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잠시 후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교장은 말을 이었다.
- 간밤에 라그나뢰크가 IS 관련 시설에 대한 습격을 재개했습니다. 현재 뉴스로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진주만 IS 훈련소, 남아메리카의 IS 공동 연구소, 영국의 왕립 IS 연구소가 공격을 받았고 모두 30분 내에 괴멸당했습니다. 현재 UN에서는 전세계의 모든 IS 관련시설의 폐쇄와 설비 및 자료의 이전, 인원의 대피를 권고하고 있으며, 이 권고에 따라 IS 스쿨은 무기한 휴교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 다시 웅성거림이 퍼졌지만 아까처럼 심하지는 않았고 오래 가지도 않았다. 다시 학생들이 스크린에 집중하자 교장은 학생들의 교통수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현재 유럽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과 아프리카 보엔데 국제공항, 미국의 케네디 국제 공항, 태국의 돈 무앙 국제공항으로 가는 특별기를 준비했습니다. 동유럽 방면과 오세아니아 방면, 남아메리카 방면은 각각 독일과 태국, 미국에서 갈아탈 비행기편을 수배 중입니다.
교장은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췄다. 그 표정에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읽은 학생들은 더 이상 웅성거리지 않았다. 잠시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보던 교장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 IS 스쿨에는 학생들을 교육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이번 휴교는 바로 그 보호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지금 스쿨에는 라그나뢰크를 막을 만한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여러분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뿐입니다. 스쿨을 떠난다면 여러분은 라그나뢰크에게 공격받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제 말이 끝나는 대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이 사건이 끝나고나서 무사히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장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홀로스크린이 꺼졌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출신지역 별로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라그나뢰크가 진주만을 습격한 것은 2시간 전이었고 탈취한 수송기를 타고 이동한다면 5시간 정도 걸릴 테니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만약 수송기가 아니라 US를 직접 몰고 온다면 지금 당장 도착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는 훈련용 IS의 처리였다. 함부로 파기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공식적으로는 IS 스쿨 소속이라서 특정 국가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땅히 대피시킬 곳도 없었다. 영구 중립국인 스위스로 긴급 이송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스위스 정부에서 거부를 해버리는 바람에 그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교사들은 70기에 달하는 IS 훈련기를 모조리 동결처리하고 스쿨 지하에 있는 핵 방공호에 봉인할 수밖에 없었다.
"시우, 여기 있었구나."
"아, 선생님."
주변을 돌아다니던 사키는 동남아시아 방면으로 향하는 학생들 속에서 시우를 발견했다. 중국이나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따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이 고향인 학생들은 비교적 가까운 돈 무앙 국제공항행 비행기를 탈 생각이었고, 시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키는 시우를 붙잡아 대열에서 빼낸 다음 말했다.
"넌 IS를 기동시켜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라."
"네?"
"다른 학생들은 어차피 전용기가 없으니까 일반 항공기를 탈 수밖에 없어. 하지만 전용 IS 보유자들은 굳이 번거롭고 시간 오래 걸리는 방법을 쓸 필요가 없지. 이건 교장 선생님께서도 허락한 일이니까 괜찮다. IS를 써서 한국으로 돌아가. 다른 전용기 보유자들에게도 지금 연락이 가고 있다. 우리 반에선 네가 마지막이야."
"저, 그러면 출입국 절차가..."
"전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그 나라 정부에 연락이 가 있어. 이미 입국처리도 끝났으니 걱정하지 마라. 여러가지로 복잡할 테니 얼른 돌아가."
"...네, 알겠습니다."
사키가 떠난 후 주변을 돌아본 시우는 자기 말고도 몇몇 학생들이 대열을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했고, 자신도 학생들이 몰려있는 장소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삼삼오오 모인 전용기 보유자들은 말없이 대열을 이루는 학생들과 자신들을 바라볼뿐이었고, 잠시 후 서너명이 먼저 IS를 전개하고는 날아올랐다. 공항으로 이동할 학생들은 고향으로 날아가는 전용기 보유자들의 모습을 뒤쫓는 것도 잠시, 준비된 버스에 하나둘씩 올라타기 시작했다.
- 여기는 S팀. 보급 종료.
- 여기는 E팀. 마찬가지로 보급 종료. 보급 도중 영국군의 공격이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격퇴했습니다. 아군 피해 없음.
"A팀이다. S팀은 이제 아프리카로, E 팀은 유럽 연구소로 이동하라. 우리도 일본으로 향하겠다. 지금부터는 공격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여 공격을 개시할 것. E팀은 유럽에 IS가 다수 모여있으니 주의하라."
- S팀, 라저.
- E팀, 라저.
진주만에서 에너지와 탄약, 무장 보급을 끝마쳐가는 라그나뢰크 A팀을 지휘하던 한주는 남미 방면을 맡은 S팀과 영국 방면을 맡은 E팀의 보고를 들었다. 성공적으로 1차 임무를 완수한 것을 확인한 한주는 두 팀에게 2차 작전 개시를 지시했고, A팀의 2차 작전도 시작했다.
"A팀 멤버에게 알린다. 우리는 지금부터 수송기에 탑승, 일본의 IS 스쿨과 연구소를 공격한다. 스쿨 담당팀은 지금부터 A-1팀, 연구소 담당팀은 A-2팀으로 구분하고 A-1팀은 내가, A-2 팀은 표도르가 지휘한다. 일본에서 목표가 달성되면 A-1팀은 중국으로, A-2팀은 러시아로 향하며, 이후 작전은 해당 지휘관의 지시에 따른다. 다들 서둘러 수송기에 탑승하라. 이상."
통신을 끝낸 한주는 수송기로 향하던 도중 표도르와 만났다. 표도르는 A팀을 재차 2개 팀으류 분산한 것에 약간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한주, 굳이 여기서 두 팀으로 나눌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일본 공격 때까지는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 작전은 속전 속결이 생명이야. 우리가 IS 관련시설을 공격한 후 그곳에서 보급을 해결한다는 것을 알면 녀석들은 대피하면서 보급 설비를 모조리 없애버리겠지. 그러면 우리는 행동이 어려워질 테고, 보급에 문제가 없는 IS들이 우세해질 수도 있어. 보급이 끊긴 측과 보급이 안정적인 측이 싸우면, 그것도 병력 차가 별로 없는 수준이라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해."
"하지만 지금 IS들은 곳곳에서 각개격파 당하고 있어. 벌써 50기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다고."
"그렇기 때문에 녀석들은 이제 병력을 집중시켜서 압도적인 열세에서 벗어나려 하겠지. 그에 비해 우리는 병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어. 집중운용을 한다면 반대로 녀석들에게도 병력을 끌어모을 시간을 주게 돼. 최악의 경우 우리가 한 곳을 쓸어내는 사이 다른 곳에서 상처없는 병력을 총집결한 다음 정면 승부를 걸어올 수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옮기던 한주는 갑자기 발이 흐트러지며 비틀거렸고, 옆에서 함께 걷던 표도르가 급히 부축했다. 한주는 몸을 바로 세우며 머리에 손을 올렸다.
"...괜찮겠어?"
"괜찮아. 통증도 그렇게 길게 가지는 않고 있고, 아직 다른 문제는 없으니까."
표도르는 한주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이륙한 라그나뢰크 A팀이 일본의 IS 스쿨과 IS 연구소를 습격한 것은 도쿄 시각으로 오전 11시였다.
한국에 도착한 시우는 도착하자마자 곧장 IS 연구소를 찾아갔다. 정부 뿐만 아니라 연구소에도 시우가 돌아간다는 연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우는 별다른 제지 없이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누군가 로비로 마중나오기도 전에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큼성큼 복도를 걷던 시우는 급히 나오던 시영과 마주쳤다.
"시우야, 왔구나. 로비에서 기다리지 않고."
"미안, 누나. 소장님 계시지?"
"응, 지금 소장실에 계실 텐데. 왜?"
"좀 여쭤볼 게 있어. 누나도 같이 가자."
"어? 어?"
시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시영에게 말을 하고는 그 대답을 듣기도 전에 빠른 걸음으로 소장실로 향했고, 시영은 영문도 모른 채 시우를 뒤따라 걸었다. 시영은 뒤를 쫓으며 몇번인가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지만 시우의 분위기가 마치 날이 잘 선 칼날같은 느낌이라서 쉽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두사람은 소장실 앞에 도착했고, 시우는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방안에는 소장이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우? 어쩐 일이냐, 갑자기?"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좀 나중에 하면 안 될까? 너도 알겠지만 지금 여기도 데이터 백업하고 설비 옮기느라 정신없거든."
"지금 당장 얘기를 들어야겠는데요."
"미안하지만 나도 시간이 없다. 나중에 하자."
"네오 아담 프로젝트, 기억하시죠?"
시우의 용건을 미루고 연구소 자료 정리를 서두르려던 소장은 시우가 입에 담은 그 단어에 멈칫거렸고, 그 모습을 본 시우는 자신의 생각이 틀림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소장도 숨겨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시우를 바라보았다.
"기억이 난 거냐?"
"...기억이 났냐고요?"
시우가 반문하자 소장은 또 한번 한숨을 내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접대용 소파에 앉고는 시우와 시영도 와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시우는 찌르는 듯한 눈빛을 한 채 소파에 앉았고, 시영도 조심스레 그 옆에 앉았다. 시우의 눈빛을 본 소장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을 꺼냈다.
"네오 아담 프로젝트에 대해 기억하는 건 어떤 거냐?"
"IS 적성을 가진 남자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계획이라는 거요. 그리고... 믿기 힘든 내용도 하나 지금 제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데 말이죠."
"그게 뭐지?"
그 물음에 시우는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소장을 노려보았지만 소장은 끄떡도 앉고 시우를 마주보았고, 시우는 으르렁거리는 느낌으로 대답했다.
"제가 그 프로젝트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그게 정말이라면 제가 가진 기억들은 대체 뭡니까?"
그것이 지금 시우가 겪고 있는 가장 큰 혼란이었다. 예전 세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지노 일행에게 습격받은 이후로 네오 아담 프로젝트니 뭐니 하는 낯선 기억들이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새로운 기억들과 예전 기억들이 상호모순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소장은 시우의 물음에 답해주는 대신 또다시 시우의 대답을 요구했다.
"그럼 시우 네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란 것에 대해 한번 말해봐라."
"지금 장난하세요?! 제가 먼저 질문했습니다!"
시우는 벌떡 일어서며 당장이라도 은황을 전개할 기세였지만 소장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시우의 기억에도 소장은 원래 이렇게 냉정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시우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 네 기억이 어떤지를 알아야 설명이 된다. IS 스쿨 시험장에서 IS를 기동한 이후로 네가 뭔가 다르다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만, 네가 얘기를 안 했기 때문에 그동안 가만히 있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뭔가 알고 싶다면 네가 아는 것도 모두 털어놓아라."
"제가 다 털어놓는다고 소장님이 다 말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시간 낭비구나. 돌아가라. 난 연구소 정리 때문에 바쁘다."
그렇게 말한 소장이 소파에서 일어나 업무용 책상으로 걸어가려 하자 시우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 불리한 입장에 처한 건 시우였다.
"알았어요! 말하면 되잖아요, 말하면. ...젠장."
시우의 말에 소장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소파에 앉았고, 그 얼굴을 본 시우는 속으로 울컥 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지금 여기서 또 폭발했다간 뭐가 뭔지 영원히 밝히지 못할 수도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제 얘기 듣고 미쳤다거나 헛소리라거나 망상이라거나 하지 않깁니다."
"알았으니까 얼른 말해. 서론이 길다."
"...원래 저는 2027년에 살던 대학생이었어요."
그 말을 들은 소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옆에 있던 시영이 흠칫하는 것도 느꼈지만 시우는 애써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책과 게임을 사서 돌아오던 중에 트럭에 치였고, 눈을 떠보니 2136년인데다 사는 세계도 완전히 변해 있더군요.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IS는 소설과 만화에서나 나오는 가상의 장비였는데, 여기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물건이라는 점이 제일 황당했어요. 게다가 소설에서 나오는 설정과 이곳의 상황이 미묘하게 다르기도 했고. 소장님이 후견인이라는 사실이나 누나가 여기서도 제 누나라는 사실 덕분에 결정적인 실수는 안 하고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나 보죠? 어쨌든, 어제까지는 그렇게 알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어젯밤에 스쿨 친구 둘이 난데없이 공격해오더군요. 그러면서 네오 아담 프로젝트니, 피험체니 하는 소리를 내뱉었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듣자 무언가 조금씩 떠오른다고 할까,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고 할까. 그런 식으로 여태까지 내가 몰랐던 것들, 아니 알 리가 없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더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시우는 말하면서도 '그러고보니 이것밖에 할 이야기가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얘기를 끝냈고, 시우의 얘기를 들은 소장은 한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기다리던 시우가 조바심이 나서 재촉을 하려고 할 때즘에야 소장은 입을 열었다.
"이제야 대충 정리가 되는군. 그동안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시우 네가 얘기한 덕에 확실해졌다."
그렇게 얘기를 시작한 소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잘 들어라, 시우.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의심하고 안 하고는 네 자유다만 내가 하는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다. 시우 너는 네오 아담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그리고 네가 유일한 성공사례이지."
거기까지는 시우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말이었지만 믿는지 안 믿는지는 별개였다.
"네오 아담 프로젝트는 네가 말한대로 IS를 움직일 수 있는 남자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째서 IS가 여성에만 반응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지. 그 때문에 예상되는 모든 요소를 실험해보기로 했다. 호르몬, 신경계, 정신 상태, 심지어 알레르기 반응까지 실험해보기로 했지. 프로텍트가 수립된 것은 2118년, 그리고 실험대상인 아이들이 만들어진 것은 2121년이었다. 그때 태어난 아이들 중에 너도 들어있었고. 이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유전자 단계에서 이미 조작이 실행된 상태였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조작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실행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올리가 없지. 네 자릿수에 가까운 수정란 중에서 무사히 출생한 것은 100여명이었고 생후 100일 이전에 50여명, 생후 1년이 되기 전에 30명이 사망했다. 그 후로도 유전자 조작의 부작용과 실험 요소에 대한 부적응으로 사망자는 계속해서 나왔고, 결국 10살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건 시우 널 포함해서 단 세명이었다. 피험체 번호는 No.04, No.13, No.66이었지."
거기까지 들은 시우는 순간적으로 움찔 했다. 지난 밤에 후지노가 자신을 습격할 때 피험체 No.04라고 했던 것, 그리고 자신들을 피험체 No.13과 No.66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 것이다. 시우의 반응을 본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No.13과 No.66이 살아있었던 모양이군. 예상은 했지만 빗나가기를 바랐는데."
"'살아있었던 모양'이라구요? 뭐에요, 그럼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요?"
" 대답이 될 테니 마저 들어라. 살아남은 세명이 12세가 되었을 때 IS 적성 테스트가 실시되었고, 그 중에서 시우 너만 B랭크 판정을 받았다. 다른 두명은 F랭크가 나왔지. 일단 한명은 건졌지만, 남은 두명을 그대로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게 상부의 판단이었다. 결국 그 두사람은 얼마 후 성전환 수술을 받았지."
"IS 적성을 가지게 하겠다고 성전환 수술까지 했다구요?!"
시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상 인체 실험으로 도배가 된 프로젝트도 어이가 없었지만 IS 적성 때문에 성전환 수술까지 받게 했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프로젝트 목적이 IS를 움직이는 남자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여성화시켜서 움직이게 된다고 한들 의미가 없는데도 그렇게 밀어붙인 사실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시우가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시우의 정체성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이었던 것이었다.
"위에서는 성과를 원할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성별이 여성이 되었지만, 그 둘의 IS 적성은 여전히 F랭크에서 변하지 않았다. 결국 상부에서는 No.13과 No.66에 대한 폐기를 지시했고, 전담반이 처리를 위해 연구소에서 데려갔지."
"살인까지 한 겁니까..."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만, 이미 수백명의 아이들이 프로젝트 도중 죽었는데 그 두명에 대해서만 죄책감을 가지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어쨌든, 마지막으로 남은 너에게는 16살이 될 때까지 주기적으로 IS 적성 테스트가 실시되는 한편, 기본적인 학교 과정에 대한 교육과 각종 전투술 교육이 진행되었다. 교관들 얘기를 들어보면 너는 교육받는 내내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고, 특히 전투술 교육 때에는 한마리 맹수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16살이 되어 호적이나 모든 과거 행적이 준비된 이후에 IS 스쿨 시험장에 보내졌고, 그 뒤는 모두 예상대로였다. 단 하나 예상과 어긋났던 것은, 바로 네 기억상실과 자의적 기억 재조합이었다. 정신과 용어로 뭐라고 한다던데... 복잡해서 잊어버렸군."
"기억의 자의적... 재조합이라구요?"
소장의 말을 들은 시우는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단어가 뜻하는 바는 분명했지만 뇌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장은 시우의 마음은 개의치 않고 얘기를 계속할 뿐이었다.
"네가 스쿨 시험장에서 IS를 기동한 이후 네 표정이나 말투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챈 우리는 그 즉시 너를 연구소로 데려왔다. 그리고 이어진 테스트들은 네 정신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것들이었고, 아마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 테스트 도중 보인 네 태도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지.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 결과는 이거였다. 그동안 받아온 극심한 스트레스와 억눌린 분노, 거기에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한계까지 쌓여있었고, 하필이면 서울의 스쿨 시험장에 보내진 훈련용 IS는 갓 생산된 코어로 만들어져서 외부 접촉에 대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네가 IS를 장착하는 순간 코어는 네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대량의 정보를 단번에 전송했고, 그 정보량이 가한 부담이 그간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감정들마저 폭발시켜 네 정신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자기 방어책으로 네가 바라던 세상의 모습을 '네가 겪어온 삶'이라는 가짜 기억으로 포장해서 얌전히 저장해둔 게지."
"내가... 내 기억이... 모조리 가짜라고...? 전부 거짓말이라구요...?"
"전부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후견인이라는 거나, 시영이 네 누나라는 건 사실이니까. 네 수정란이 시영의 부모가 제공한 것이었거든. 그리고 그 둘은 내 부하 연구원들이기도 했으니까."
소장이 시우의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약간 정정해줬지만 시우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는 시우를 본 소장은 그제야 시우가 받은 충격을 약간이나마 짐작했고, 조금 더 조심스레 말할 걸 그랬다며 자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시우가 정신을 차리고 힘없이 소장실을 나갈 때까지 소장도 시영도 시우에게 말을 걸지 못했고, 방을 나갈 때에도 붙잡지 못했다. 시우의 뒤로 방 문이 힘없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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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팬픽은 IS의 세계관을 일부 변형시킨 배경입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
세곳 모두 라그나뢰크의 다음 공격목표로 예상되던 장소들이었지만 예측이 맞았다고 반드시 방어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 방면으로 분산되었다고는 해도 라그나뢰크의 병력은 세자릿수에 달했고, 가장 적은 숫자인 남미 공격대도 150기에 가까운 숫자였다. 그에 비해 습격을 받은 연구소와 훈련소에서 보유하고 있는 IS는 많아야 10기, 적은 곳은 5기 정도에 불과했으니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 여기는 네바다! 주포와 대공포가 모두 파괴됐다! 전투 속행 불능!
- 여기는 캘리포니아! 함체 바닥에 구멍이 났다! 승조원 전원 퇴함중!
- 요크타운이다! 비행갑판이 완전히 걸레가 됐다! 함재기 이륙 불능!
그나마 영국이나 남미의 IS 연구소는 군사 시설보다는 연구 시설로서의 성격이 강한 곳이기 때문에 피해는 연구소 관련으로 한정되었지만 진주만은 그마저도 벗어나고 있었다. 미국 해군의 모항이다보니 상당한 전력이 집중되어 있었고, 필연적으로 IS 훈련소를 공격하는 라그나뢰크와 교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래식 전력과 US와의 전투는 이미 전투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과거 1세대 IS인 백기사조차도 5개 항모전단을 능가하는 전력을 단독으로 무력화시켰는데 250기에 달하는 2세대 US라면 더 볼것도 없었다.
- 대장님, 그런데 저 해군들 굳이 상대할 필요가 있습니까?
- 무슨 뜻이야?
- 솔직히 저 녀석들 그냥 내버려둬도 US에는 타격을 주지 못하니까요. 에너지 절약이나 탄약 절약하는 의미에서 저 녀석들은 손 안 대도...
- 무슨 뜻인지 알겠다. 약한 녀석 괴롭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하다는 말이지?
- 네, 뭐...
해군 함선과 지상 시설을 파괴하던 라그나뢰크 대원 중 한명이 하는 말을 들은 소대장은 고개를 이해한다는 투로 말했고, 그 말에 얘기를 꺼낸 대원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일반적인 전장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여유로운 대화였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밑에서 날아드는 포화는 모두 회피되거나 US의 실드에 가로막히고 있었다. 소대장은 방금 전 자신을 공격한 대공포대를 파괴하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말이다, 네 말대로 내버려두면 귀찮아진다고. 저놈들도 명색이 군인인데 우리를 놔둘 리가 없잖냐. 어차피 결국엔 서로 적대할 수밖에 없어. 입장 차이라는 게 있으니까.
- 그건 그렇지만...
- 아니면, 너 지금이라도 US를 포기할 수 있냐? US를 버리고 이전까지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겠냔 말이다.
- ...아무래도 못하겠죠.
- 잘 알고 있구만. 뭐, 모두에게 좋은 건 저 빌어먹을 IS 연구소 놈들이 자료 전부 없애버리고 연구소에 코어까지 다 날려버려주는 거지만, 저치들이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안 봐도 뻔하잖아? 실제로도 이 꼴이고. 그러니까 얼른 끝내버리고 가자고.
- 알겠습니다. 어쨌든 빨리 해치우는 게 저 병사들한테도 낫겠군요.
2시간 후, 임무를 마치고 귀항한 엔터프라이즈 항모전단은 초토화된 진주만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라그나뢰크는 진주만 공습과 동시에 외부 통신시설부터 파괴했기에 이번에도 지원 요청이나 현상 보고 같은 것은 불가능했고, 그 때문에 엔터프라이즈 전단은 아무것도 모른채 일정에 맞춰 느긋하게 돌아왔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처럼 태평양에서 살아남은 미국 항모 전단이 엔터프라이즈 하나라는 사실에 전단 사령관은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도쿄 기준 시각 2월 25일 오전 6시, IS 스쿨은 평소보다 1시간 이르게 학생들을 기상시켰다. 교사들은 그보다 빨라서 4시에 일어났고, 간밤에 있었던 사건 때문에 실제로 잠은 서너시간 잔 것이 고작이었다. 교사들은 일어나자마자 시우에게 사건의 경위를 물어보았고, 후지노와 스칼렛이 전용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아무 말도 없이 시우를 공격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워했다. 전자는 전세계 IS 코어 관리에 구멍이 뚫렸다는 뜻이고, 후자는 그 이유가 짐작도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를 습격한 게 토모리 후지노, 스칼렛 노베인 이 두사람이 확실한가?"
"후지노는 직접 확인하지 못했지만 스칼렛은 확실합니다. 방에 들어올 때까지는 IS를 전개하지 않고 있었거든요. 다른 한명은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목소리로 봐서는 후지노 같았어요."
"분명히 사건 후에 인원 점검을 다시 해보니 그 두명만 사라져 있기는 했지. 그런데 왜 너를 습격했는지, 혹시 이유 아냐?"
"...아니요. 저한테 분노를 터뜨리기는 했지만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사실 시우는 후지노와 스칼렛이 자신을 공격한 이유를 대강은 떠올리고 있었지만 밝히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전에 확인해야될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물어볼 사람은 지금 한국에 있고, 전화로 물어볼 만한 내용도 아니라서 지금은 말할 수 없었다. 시우에게서 들을 내용을 다 들었다고 생각한 사키는 의자에서 일어나 양호실 문으로 향하며 말했다.
"그래, 알겠다. 일단 잠깐 눈 좀 붙여둬라. 오늘은 6시에 기상시킬 것 같으니까 그렇게 알아두고."
"6시요? 왜 그렇게 빨라졌죠?"
"...라그나뢰크가 움직였어."
사키의 대답에 시우는 더이상 묻지 못했고, 사키가 나간 후에도 양호실 침대에 누워 뒤척거리기만 하다가 6시의 기상 알람 소리에 일어났다.
- 전교생에게 알린다. 7시 정각까지 간단한 짐을 챙기고 운동장에 집합할 것. 다시 알린다. 6시 30분까지 간단한 짐을 챙기고 운동장에 집합할 것. 이상.
막 일어난데다 기상시간이 갑자기 앞당겨진 사실에 어리둥절해 있던 학생들은 때마침 들려온 방송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서둘러 샤워실과 공용 목욕탕으로 향했다. 대부분은 밤에 있었던 사건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준비를 마치고 운동장에 모였을 때 알게 된 것은 그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 앞에 대형 홀로스크린이 펼쳐지자, 그 안에서 교장이 학생들을 향해 폭탄선언을 한 것이다.
- 지금 이 시간부로 IS 스쿨은 무기한 휴교에 들어갑니다.
"엑?"
"휴교? 어제 그게 그렇게 위험한 거였어?"
"잠깐, 잠깐. 갑자기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휴교라니..."
"일본에 집이나 아는 사람 있는 애들은 그렇다 쳐도, 그런 사람들 전혀 없으면 어쩌라고?!"
예상치 못한 발표에 학생들은 단숨에 혼란에 빠졌고, 교사들은 돌아다니며 그런 학생들을 진정시켰다. 잠시 후 웅성거림이 잦아들자 교장은 말을 이었다.
- 간밤에 라그나뢰크가 IS 관련 시설에 대한 습격을 재개했습니다. 현재 뉴스로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진주만 IS 훈련소, 남아메리카의 IS 공동 연구소, 영국의 왕립 IS 연구소가 공격을 받았고 모두 30분 내에 괴멸당했습니다. 현재 UN에서는 전세계의 모든 IS 관련시설의 폐쇄와 설비 및 자료의 이전, 인원의 대피를 권고하고 있으며, 이 권고에 따라 IS 스쿨은 무기한 휴교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학생들 사이에 다시 웅성거림이 퍼졌지만 아까처럼 심하지는 않았고 오래 가지도 않았다. 다시 학생들이 스크린에 집중하자 교장은 학생들의 교통수단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 현재 유럽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과 아프리카 보엔데 국제공항, 미국의 케네디 국제 공항, 태국의 돈 무앙 국제공항으로 가는 특별기를 준비했습니다. 동유럽 방면과 오세아니아 방면, 남아메리카 방면은 각각 독일과 태국, 미국에서 갈아탈 비행기편을 수배 중입니다.
교장은 거기까지 말하고 말을 멈췄다. 그 표정에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읽은 학생들은 더 이상 웅성거리지 않았다. 잠시 조용히 아래를 내려다보던 교장은 고개를 들고 말했다.
- IS 스쿨에는 학생들을 교육하고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이번 휴교는 바로 그 보호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지금 스쿨에는 라그나뢰크를 막을 만한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여러분을 각자의 집으로 돌려보내는 것뿐입니다. 스쿨을 떠난다면 여러분은 라그나뢰크에게 공격받을 이유가 없어집니다. 그러니 여러분, 지금 제 말이 끝나는 대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이 사건이 끝나고나서 무사히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장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홀로스크린이 꺼졌고 교사들은 학생들을 출신지역 별로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라그나뢰크가 진주만을 습격한 것은 2시간 전이었고 탈취한 수송기를 타고 이동한다면 5시간 정도 걸릴 테니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만약 수송기가 아니라 US를 직접 몰고 온다면 지금 당장 도착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또다른 문제는 훈련용 IS의 처리였다. 함부로 파기할 수 있는 물건도 아니고, 공식적으로는 IS 스쿨 소속이라서 특정 국가의 소유가 아니었기 때문에 마땅히 대피시킬 곳도 없었다. 영구 중립국인 스위스로 긴급 이송을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스위스 정부에서 거부를 해버리는 바람에 그것도 불가능했다. 결국 교사들은 70기에 달하는 IS 훈련기를 모조리 동결처리하고 스쿨 지하에 있는 핵 방공호에 봉인할 수밖에 없었다.
"시우, 여기 있었구나."
"아, 선생님."
주변을 돌아다니던 사키는 동남아시아 방면으로 향하는 학생들 속에서 시우를 발견했다. 중국이나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는 따로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쪽이 고향인 학생들은 비교적 가까운 돈 무앙 국제공항행 비행기를 탈 생각이었고, 시우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키는 시우를 붙잡아 대열에서 빼낸 다음 말했다.
"넌 IS를 기동시켜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라."
"네?"
"다른 학생들은 어차피 전용기가 없으니까 일반 항공기를 탈 수밖에 없어. 하지만 전용 IS 보유자들은 굳이 번거롭고 시간 오래 걸리는 방법을 쓸 필요가 없지. 이건 교장 선생님께서도 허락한 일이니까 괜찮다. IS를 써서 한국으로 돌아가. 다른 전용기 보유자들에게도 지금 연락이 가고 있다. 우리 반에선 네가 마지막이야."
"저, 그러면 출입국 절차가..."
"전용기를 가진 사람들은 그 나라 정부에 연락이 가 있어. 이미 입국처리도 끝났으니 걱정하지 마라. 여러가지로 복잡할 테니 얼른 돌아가."
"...네, 알겠습니다."
사키가 떠난 후 주변을 돌아본 시우는 자기 말고도 몇몇 학생들이 대열을 빠져나오는 것을 확인했고, 자신도 학생들이 몰려있는 장소에서 빠져나와 한적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삼삼오오 모인 전용기 보유자들은 말없이 대열을 이루는 학생들과 자신들을 바라볼뿐이었고, 잠시 후 서너명이 먼저 IS를 전개하고는 날아올랐다. 공항으로 이동할 학생들은 고향으로 날아가는 전용기 보유자들의 모습을 뒤쫓는 것도 잠시, 준비된 버스에 하나둘씩 올라타기 시작했다.
- 여기는 S팀. 보급 종료.
- 여기는 E팀. 마찬가지로 보급 종료. 보급 도중 영국군의 공격이 있었지만 성공적으로 격퇴했습니다. 아군 피해 없음.
"A팀이다. S팀은 이제 아프리카로, E 팀은 유럽 연구소로 이동하라. 우리도 일본으로 향하겠다. 지금부터는 공격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 최대한 빨리 이동하여 공격을 개시할 것. E팀은 유럽에 IS가 다수 모여있으니 주의하라."
- S팀, 라저.
- E팀, 라저.
진주만에서 에너지와 탄약, 무장 보급을 끝마쳐가는 라그나뢰크 A팀을 지휘하던 한주는 남미 방면을 맡은 S팀과 영국 방면을 맡은 E팀의 보고를 들었다. 성공적으로 1차 임무를 완수한 것을 확인한 한주는 두 팀에게 2차 작전 개시를 지시했고, A팀의 2차 작전도 시작했다.
"A팀 멤버에게 알린다. 우리는 지금부터 수송기에 탑승, 일본의 IS 스쿨과 연구소를 공격한다. 스쿨 담당팀은 지금부터 A-1팀, 연구소 담당팀은 A-2팀으로 구분하고 A-1팀은 내가, A-2 팀은 표도르가 지휘한다. 일본에서 목표가 달성되면 A-1팀은 중국으로, A-2팀은 러시아로 향하며, 이후 작전은 해당 지휘관의 지시에 따른다. 다들 서둘러 수송기에 탑승하라. 이상."
통신을 끝낸 한주는 수송기로 향하던 도중 표도르와 만났다. 표도르는 A팀을 재차 2개 팀으류 분산한 것에 약간 불만이 있는 것 같았다.
"한주, 굳이 여기서 두 팀으로 나눌 필요가 있을까? 적어도 일본 공격 때까지는 함께 움직이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이 작전은 속전 속결이 생명이야. 우리가 IS 관련시설을 공격한 후 그곳에서 보급을 해결한다는 것을 알면 녀석들은 대피하면서 보급 설비를 모조리 없애버리겠지. 그러면 우리는 행동이 어려워질 테고, 보급에 문제가 없는 IS들이 우세해질 수도 있어. 보급이 끊긴 측과 보급이 안정적인 측이 싸우면, 그것도 병력 차가 별로 없는 수준이라면 결과는 안 봐도 뻔해."
"하지만 지금 IS들은 곳곳에서 각개격파 당하고 있어. 벌써 50기 가까운 손실이 발생했다고."
"그렇기 때문에 녀석들은 이제 병력을 집중시켜서 압도적인 열세에서 벗어나려 하겠지. 그에 비해 우리는 병력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어. 집중운용을 한다면 반대로 녀석들에게도 병력을 끌어모을 시간을 주게 돼. 최악의 경우 우리가 한 곳을 쓸어내는 사이 다른 곳에서 상처없는 병력을 총집결한 다음 정면 승부를 걸어올 수도 있어."
그렇게 말하며 걸음을 옮기던 한주는 갑자기 발이 흐트러지며 비틀거렸고, 옆에서 함께 걷던 표도르가 급히 부축했다. 한주는 몸을 바로 세우며 머리에 손을 올렸다.
"...괜찮겠어?"
"괜찮아. 통증도 그렇게 길게 가지는 않고 있고, 아직 다른 문제는 없으니까."
표도르는 한주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이륙한 라그나뢰크 A팀이 일본의 IS 스쿨과 IS 연구소를 습격한 것은 도쿄 시각으로 오전 11시였다.
한국에 도착한 시우는 도착하자마자 곧장 IS 연구소를 찾아갔다. 정부 뿐만 아니라 연구소에도 시우가 돌아간다는 연락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우는 별다른 제지 없이 연구소에 들어갈 수 있었고, 누군가 로비로 마중나오기도 전에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성큼성큼 복도를 걷던 시우는 급히 나오던 시영과 마주쳤다.
"시우야, 왔구나. 로비에서 기다리지 않고."
"미안, 누나. 소장님 계시지?"
"응, 지금 소장실에 계실 텐데. 왜?"
"좀 여쭤볼 게 있어. 누나도 같이 가자."
"어? 어?"
시우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시영에게 말을 하고는 그 대답을 듣기도 전에 빠른 걸음으로 소장실로 향했고, 시영은 영문도 모른 채 시우를 뒤따라 걸었다. 시영은 뒤를 쫓으며 몇번인가 이유를 물어보려고 했지만 시우의 분위기가 마치 날이 잘 선 칼날같은 느낌이라서 쉽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두사람은 소장실 앞에 도착했고, 시우는 노크도 하지 않고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방안에는 소장이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
"시우? 어쩐 일이냐, 갑자기?"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좀 나중에 하면 안 될까? 너도 알겠지만 지금 여기도 데이터 백업하고 설비 옮기느라 정신없거든."
"지금 당장 얘기를 들어야겠는데요."
"미안하지만 나도 시간이 없다. 나중에 하자."
"네오 아담 프로젝트, 기억하시죠?"
시우의 용건을 미루고 연구소 자료 정리를 서두르려던 소장은 시우가 입에 담은 그 단어에 멈칫거렸고, 그 모습을 본 시우는 자신의 생각이 틀림 없다는 것을 알았다. 소장도 숨겨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했는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려 시우를 바라보았다.
"기억이 난 거냐?"
"...기억이 났냐고요?"
시우가 반문하자 소장은 또 한번 한숨을 내쉰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접대용 소파에 앉고는 시우와 시영도 와서 앉으라고 손짓했다. 시우는 찌르는 듯한 눈빛을 한 채 소파에 앉았고, 시영도 조심스레 그 옆에 앉았다. 시우의 눈빛을 본 소장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을 꺼냈다.
"네오 아담 프로젝트에 대해 기억하는 건 어떤 거냐?"
"IS 적성을 가진 남자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계획이라는 거요. 그리고... 믿기 힘든 내용도 하나 지금 제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데 말이죠."
"그게 뭐지?"
그 물음에 시우는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소장을 노려보았지만 소장은 끄떡도 앉고 시우를 마주보았고, 시우는 으르렁거리는 느낌으로 대답했다.
"제가 그 프로젝트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그게 정말이라면 제가 가진 기억들은 대체 뭡니까?"
그것이 지금 시우가 겪고 있는 가장 큰 혼란이었다. 예전 세계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후지노 일행에게 습격받은 이후로 네오 아담 프로젝트니 뭐니 하는 낯선 기억들이 갑자기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새로운 기억들과 예전 기억들이 상호모순되는 부분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소장은 시우의 물음에 답해주는 대신 또다시 시우의 대답을 요구했다.
"그럼 시우 네가 가지고 있는 기억이란 것에 대해 한번 말해봐라."
"지금 장난하세요?! 제가 먼저 질문했습니다!"
시우는 벌떡 일어서며 당장이라도 은황을 전개할 기세였지만 소장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시우의 기억에도 소장은 원래 이렇게 냉정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시우는 더욱 혼란스러웠다.
" 네 기억이 어떤지를 알아야 설명이 된다. IS 스쿨 시험장에서 IS를 기동한 이후로 네가 뭔가 다르다는 것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만, 네가 얘기를 안 했기 때문에 그동안 가만히 있었지. 하지만 이제는 아니야. 뭔가 알고 싶다면 네가 아는 것도 모두 털어놓아라."
"제가 다 털어놓는다고 소장님이 다 말한다는 보장이 어디 있습니까."
"그렇다면 시간 낭비구나. 돌아가라. 난 연구소 정리 때문에 바쁘다."
그렇게 말한 소장이 소파에서 일어나 업무용 책상으로 걸어가려 하자 시우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금 불리한 입장에 처한 건 시우였다.
"알았어요! 말하면 되잖아요, 말하면. ...젠장."
시우의 말에 소장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소파에 앉았고, 그 얼굴을 본 시우는 속으로 울컥 했지만 꾹 눌러 참았다. 지금 여기서 또 폭발했다간 뭐가 뭔지 영원히 밝히지 못할 수도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는데, 제 얘기 듣고 미쳤다거나 헛소리라거나 망상이라거나 하지 않깁니다."
"알았으니까 얼른 말해. 서론이 길다."
"...원래 저는 2027년에 살던 대학생이었어요."
그 말을 들은 소장이 눈을 가늘게 뜨고, 옆에 있던 시영이 흠칫하는 것도 느꼈지만 시우는 애써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책과 게임을 사서 돌아오던 중에 트럭에 치였고, 눈을 떠보니 2136년인데다 사는 세계도 완전히 변해 있더군요. 원래 있던 세계에서는 IS는 소설과 만화에서나 나오는 가상의 장비였는데, 여기서는 현실에 존재하는 물건이라는 점이 제일 황당했어요. 게다가 소설에서 나오는 설정과 이곳의 상황이 미묘하게 다르기도 했고. 소장님이 후견인이라는 사실이나 누나가 여기서도 제 누나라는 사실 덕분에 결정적인 실수는 안 하고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아니었나 보죠? 어쨌든, 어제까지는 그렇게 알고 살아왔어요. 그런데 어젯밤에 스쿨 친구 둘이 난데없이 공격해오더군요. 그러면서 네오 아담 프로젝트니, 피험체니 하는 소리를 내뱉었어요. 그리고 그 말을 듣자 무언가 조금씩 떠오른다고 할까,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고 할까. 그런 식으로 여태까지 내가 몰랐던 것들, 아니 알 리가 없는 것들이 머릿속에서 돌아다니더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시우는 말하면서도 '그러고보니 이것밖에 할 이야기가 없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얘기를 끝냈고, 시우의 얘기를 들은 소장은 한동안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기다리던 시우가 조바심이 나서 재촉을 하려고 할 때즘에야 소장은 입을 열었다.
"이제야 대충 정리가 되는군. 그동안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시우 네가 얘기한 덕에 확실해졌다."
그렇게 얘기를 시작한 소장은 진지한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면서 말을 이었다.
"잘 들어라, 시우.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의심하고 안 하고는 네 자유다만 내가 하는 말에는 한치의 거짓도 없다. 시우 너는 네오 아담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그리고 네가 유일한 성공사례이지."
거기까지는 시우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말이었지만 믿는지 안 믿는지는 별개였다.
"네오 아담 프로젝트는 네가 말한대로 IS를 움직일 수 있는 남자를 인공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어째서 IS가 여성에만 반응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점이었지. 그 때문에 예상되는 모든 요소를 실험해보기로 했다. 호르몬, 신경계, 정신 상태, 심지어 알레르기 반응까지 실험해보기로 했지. 프로텍트가 수립된 것은 2118년, 그리고 실험대상인 아이들이 만들어진 것은 2121년이었다. 그때 태어난 아이들 중에 너도 들어있었고. 이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유전자 단계에서 이미 조작이 실행된 상태였다. 하지만 정확히 무엇을 조작해야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실행해봤자 좋은 결과가 나올리가 없지. 네 자릿수에 가까운 수정란 중에서 무사히 출생한 것은 100여명이었고 생후 100일 이전에 50여명, 생후 1년이 되기 전에 30명이 사망했다. 그 후로도 유전자 조작의 부작용과 실험 요소에 대한 부적응으로 사망자는 계속해서 나왔고, 결국 10살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건 시우 널 포함해서 단 세명이었다. 피험체 번호는 No.04, No.13, No.66이었지."
거기까지 들은 시우는 순간적으로 움찔 했다. 지난 밤에 후지노가 자신을 습격할 때 피험체 No.04라고 했던 것, 그리고 자신들을 피험체 No.13과 No.66이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 것이다. 시우의 반응을 본 소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No.13과 No.66이 살아있었던 모양이군. 예상은 했지만 빗나가기를 바랐는데."
"'살아있었던 모양'이라구요? 뭐에요, 그럼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단 말인가요?"
" 대답이 될 테니 마저 들어라. 살아남은 세명이 12세가 되었을 때 IS 적성 테스트가 실시되었고, 그 중에서 시우 너만 B랭크 판정을 받았다. 다른 두명은 F랭크가 나왔지. 일단 한명은 건졌지만, 남은 두명을 그대로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게 상부의 판단이었다. 결국 그 두사람은 얼마 후 성전환 수술을 받았지."
"IS 적성을 가지게 하겠다고 성전환 수술까지 했다구요?!"
시우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상 인체 실험으로 도배가 된 프로젝트도 어이가 없었지만 IS 적성 때문에 성전환 수술까지 받게 했다는 점에 이르러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애초에 프로젝트 목적이 IS를 움직이는 남자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여성화시켜서 움직이게 된다고 한들 의미가 없는데도 그렇게 밀어붙인 사실이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시우가 놀라기에는 아직 일렀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들은 시우의 정체성의 근간을 뒤흔드는 내용이었던 것이었다.
"위에서는 성과를 원할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성별이 여성이 되었지만, 그 둘의 IS 적성은 여전히 F랭크에서 변하지 않았다. 결국 상부에서는 No.13과 No.66에 대한 폐기를 지시했고, 전담반이 처리를 위해 연구소에서 데려갔지."
"살인까지 한 겁니까..."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만, 이미 수백명의 아이들이 프로젝트 도중 죽었는데 그 두명에 대해서만 죄책감을 가지는 것도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이 들더구나. 어쨌든, 마지막으로 남은 너에게는 16살이 될 때까지 주기적으로 IS 적성 테스트가 실시되는 한편, 기본적인 학교 과정에 대한 교육과 각종 전투술 교육이 진행되었다. 교관들 얘기를 들어보면 너는 교육받는 내내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고, 특히 전투술 교육 때에는 한마리 맹수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그렇게 16살이 되어 호적이나 모든 과거 행적이 준비된 이후에 IS 스쿨 시험장에 보내졌고, 그 뒤는 모두 예상대로였다. 단 하나 예상과 어긋났던 것은, 바로 네 기억상실과 자의적 기억 재조합이었다. 정신과 용어로 뭐라고 한다던데... 복잡해서 잊어버렸군."
"기억의 자의적... 재조합이라구요?"
소장의 말을 들은 시우는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단어가 뜻하는 바는 분명했지만 뇌가 의미를 이해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장은 시우의 마음은 개의치 않고 얘기를 계속할 뿐이었다.
"네가 스쿨 시험장에서 IS를 기동한 이후 네 표정이나 말투에서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챈 우리는 그 즉시 너를 연구소로 데려왔다. 그리고 이어진 테스트들은 네 정신상태를 알아보기 위한 것들이었고, 아마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 테스트 도중 보인 네 태도도 상당한 도움이 되었지. 전문가들이 내놓은 분석 결과는 이거였다. 그동안 받아온 극심한 스트레스와 억눌린 분노, 거기에 한편으로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 한계까지 쌓여있었고, 하필이면 서울의 스쿨 시험장에 보내진 훈련용 IS는 갓 생산된 코어로 만들어져서 외부 접촉에 대해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네가 IS를 장착하는 순간 코어는 네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대량의 정보를 단번에 전송했고, 그 정보량이 가한 부담이 그간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감정들마저 폭발시켜 네 정신을 한순간에 날려버렸다는 모양이다. 그리고는 자기 방어책으로 네가 바라던 세상의 모습을 '네가 겪어온 삶'이라는 가짜 기억으로 포장해서 얌전히 저장해둔 게지."
"내가... 내 기억이... 모조리 가짜라고...? 전부 거짓말이라구요...?"
"전부 거짓말은 아니다. 내가 후견인이라는 거나, 시영이 네 누나라는 건 사실이니까. 네 수정란이 시영의 부모가 제공한 것이었거든. 그리고 그 둘은 내 부하 연구원들이기도 했으니까."
소장이 시우의 중얼거리는 말을 듣고 약간 정정해줬지만 시우에게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있는 시우를 본 소장은 그제야 시우가 받은 충격을 약간이나마 짐작했고, 조금 더 조심스레 말할 걸 그랬다며 자책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시우가 정신을 차리고 힘없이 소장실을 나갈 때까지 소장도 시영도 시우에게 말을 걸지 못했고, 방을 나갈 때에도 붙잡지 못했다. 시우의 뒤로 방 문이 힘없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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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이 팬픽은 IS의 세계관을 일부 변형시킨 배경입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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