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서울 및 도쿄 시각 낮 12시 경, 중국 시각 오전 11시경.

"...보인다."

칭하이 성 시닝 인근의 중국 IS 연구소에 집결한 아시아 방면의 IS들은 하이퍼 센서에 나타난 수많은 광점을 확인했다. 잠시 Unknown으로 표시되던 광점들은 이윽고 'US, Ragnarök'라는 표시로 변경되었다.

"수는... 100기 정도인가. 나머지는 어디로 간 거지?"

정보에 의하면 진주만과 일본을 습격한 라그나뢰크 부대는 대략 250기 정도라고 했지만 지금 시닝에 나타난 부대는 그 절반도 안 되는 100기 가량의 A-1팀 뿐이었다. 나머지 150기는 A-2팀으로 갈라져나와 러시아로 향하고 있는 중이었지만 IS 파일럿들이 알 턱이 없었고, 모처럼 적에 비해 숫적우위를 지니게 되었는데 물러설 리는 더더욱 없었다. IS들의 하이퍼 센서가 조준 경고를 발한 것과 파일럿들이 US 집단을 향해 공격을 개시한 것, 그리고 상대편에서 공격이 날아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얼마 안 있어 시닝의 하늘은 포화로 물들었다.




"하아앗!"

바로 앞에서 휘둘러진 후지노의 기체인 타케미카즈치의 블레이드를 피해 시우는 몸을 뒤로 젖히며 지면으로 낙하했고, 그 틈을 노려 스칼렛의 덴드로븀이 사격을 가했지만 낙하와 동시에 롤링을 걸어 피해냈다. 그리고 은황이 제어하는 비익 6기가 다시금 스칼렛을 조준선에 잡고 연속 사격을 가하자 스칼렛은 혀를 차며 라이플을 거두고 자리를 피했다. 세명의 싸움은 시우와 후지노의 육박전, 거기에 스칼렛이 빈틈을 볼 때마다 사격을 가하고 그것을 다시 은황이 움직이는 비익이 견제하는 양상이 되어 있었다.

"...큭!"

후지노의 블레이드와 스피어 모드의 구미호를 맞부딛힌 시우는 그 반동으로 거리를 벌리고는 왼팔을 내밀어 플라즈마 암 머신건을 발사했지만, 후지노는 재빨리 자리를 피해서 탄환을 전부 피해냈다. 목표를 잃은 탄환은 뒤편의 아파트에 직격했고, 아직 미처 대피하지 못한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자 시우는 당황해서 사격을 멈췄다.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후지노가 날아들었다.

"실험대상이었던 주제에 남에게 신경써줄 생각이 드나!"

"닥쳐! 으익!"

후지노의 검격을 구미호로 받아낸 시우는 후지노의 옆구리에 발차기를 꽂아넣으려고 했지만 그 순간 날아든 탄환에 정강이를 맞고 동작이 봉쇄되었다. 실드와 장갑 덕에 신체에 가해진 대미지는 없었지만 행동이 멎은 것은 어쩔 수 없었고 후지노가 시우의 목을 노리고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시우는 아예 몸을 시계바늘처럼 회전시키며 칼날을 피해냈고, 그와 함께 물구나무 서기가 되는 순간 후지노의 측두부를 걷어찼다.

"윽!"

머리를 뒤흔드는 충격에 후지노는 잠시 공격을 멈추게 되었고 그 사이 시우는 몸을 뺄 수 있었다. 거리를 벌린 후 스칼렛이 있는 쪽을 본 시우는 스칼렛이 자신을 포위한 비익과 사격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보았다. 양쪽의 공격은 대부분 명중하지 않고 빗나갔지만, 비익의 공격은 수평 방향이나 위쪽으로 발사되는 반면 스칼렛의 공격은 비익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다 싶으면 고도와 방위를 가리지 않고 가해졌다. 그 크기와 운동성 때문에 비익이 스칼렛의 공격을 피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피해낸 공격들이 지면에 떨어지며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는 점이었다.

"우와악!"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엄마, 엄마 어디 있어? 엄마아!"

"누구 없어요? 여기 사람이 깔려 있어요!"

"세준아! 세준아, 어디 있니! 세준아아아!"

문자 그대로 아비규환이었다. 지면을 강타하는 탄환과 무너지는 아파트 파편에 놀란 비명 소리,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 부모를 잃은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통곡,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시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파트 단지는 사실상 완전 붕괴 상태였고, 단지 밖에는 119 구조대가 이미 도착해 있었지만 상공에서 전투가 벌어지면서 수시로 지상에 탄환이 쏘아지는 통에 제때 진입을 못하고 있었다. 구조대가 사람들을 구하도록 돕기 위해서 시우는 후진 비행하며 아파트 단지 밖으로 움직였지만, 스칼렛과 후지노는 단지 상공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후지노는 오히려 IS용 피스톨을 전개하더니 지상을 향해 조준사격을 가했고, 그 공격을 맞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람을 본 시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눈에 뒤틀린 웃음을 짓는 후지노의 표정이 들어왔다.




그 시각, 군산연에 참가한 어떤 군수 산업체 산하의 연구소.

"아직 멀었나?"

"거의 다 되어 갑니다."

"거의 다 되어간다고 한 게 언제부터인가? 그제부터일세, 그제. 이제 슬슬 결과물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냔 말이야."

상관으로 보이는 한 연구원이 자리에 앉아 쉴새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며 작업중인 연구원들을 독려하고-있다기보다는 갈구고- 있었다. 이 연구소에서는 US의 화기관제 AI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 후 AI 개량과 CPR 긴급정지 코드 개발에 매달려 벌써 2주일째 야근에 야근을 거듭하고 있었고, 특히나 CPR 긴급정지 코드 개발을 맡은 팀은 며칠 전에 라그나뢰크 봉기까지 일어나는 바람에 긴장감과 사명감, 초조함이 모두 극에 달한 상태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밖에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1분 1초라도 빨리 결과물을 내지 않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러니까..."

"아 글쎄, 이제 그만 좀 하십쇼! 우리가 무슨 프로그램 짜는 기계입니까!"

자신도 답답하고 조급해서 그러는 것일 테지만, 쉬지않고 연구원들을 볶아대는 팀장의 말에 결국 연구원 하나가 참다 참다 폭발해버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의자가 넘어져 우당탕 소리가 났지만 모두들 거기보다는 일어선 연구원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이게 무슨 1+1 덧셈인 줄 아십니까? 1x1 곱셈인 줄 아세요? 하나라도 삐끗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작업이란 말입니다! 시간, 예산, 노력, 이 세가지가 모두 주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요! 게다가 원거리에서 명령코드 한줄로 노출된 모든 CPR을 정지시키는 게 말처럼 쉽게 되는 줄 아십니까?! 이건 TV 리모콘이 아니라고요! 정 그렇게 답답하면 직접 만드시든가요! 우리도 당장이라도 완성할 수만 있다면 해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걸 우리보고 어쩌라고요! 자리에만 앉으면 프로그램 코드가 튀어나옵니까? 키보드만 만지면 튀어나와요? 모니터만 보면 튀어나오냐고요! 아니잖아요! 우리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좀 냅두시라고요!"

앞뒤도 없고 논리도 없는데다 온통 울분투성이였지만 설득력 하나만큼은 충분한 말이었다. 잠시 후 팀장은 조용히 연구실을 나섰고, 기관총처럼 쏘아붙였던 연구원은 거칠게 의자를 바로 세우고는 털썩 앉아 작업을 재개했다.




2137년 2월 25일, 중국 시각 오전 11시 30분경.

"제법이군. 반격을 위해 준비한 병력들이다, 이건가?"

시닝 부근의 IS 연구소 상공에서 전투를 벌이며 한주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처음에는 숫적으로는 다소 밀리더라도 이쪽이 사기가 높기 때문에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집결한 IS들은 반수 이상이 세컨드 시프트를 완료한 기체에 파일럿도 베테랑이었기에 상당한 성능과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고, 라그나뢰크의 US는 세컨드 폼은 없어도 세팅에 따라 동등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생산시설에서 탈취하는 것과 동시에 작전을 개시했기 때문에 세팅을 마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이 때문에 현재 라그나뢰크의 US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2세대 초반 IS 수준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고, IS와 1:1로 전투를 벌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 여기는 A-1팀, A-2팀 들리나?

- A-2팀, 잘 들린다. 10분 전에 몽골 에르데네트를 통과했다. 1시간 후면 도착할 것 같다.

- 1시간은 너무 길어. 파악당해도 상관없으니 속도를 올려라.

- 라저. 40분만 기다려라.

- 라저. ...기왕이면 더 서둘러줘, 표도르.

- 알았어, 최대한 빨리 도착하지.

한주는 중국의 IS 연구소에 IS가 다수, 그것도 세자릿수에 달하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A-2팀의 목적지를 변경하여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으로 와서 합류하도록 지시했다. 그때 이미 A-2팀은 목적지인 러시아 브라츠크를 눈앞에 두고 있었지만, 그곳을 제압하고나서 시닝으로 향한다면 도착하기 전에 A-1팀이 궤멸될 위험이 있었기 때문에 표도르 역시 미련없이 브라츠크의 러시아 국립 IS 연구소를 포기하고 시닝으로 향했다.

"그건 그렇고, 정말 끈질기군. 적당히 포기하면 서로에게 좋을 텐데 말이야!"

한 주는 통신 중이던 자신을 노리고 공격해온 IS의 공격을 대검 플랑베르주로 받아내고는 가볍게 휘둘러 상대의 무기를 허공에 날리며 외쳤다. 당황한 IS 파일럿은 서둘러 다른 무기를 전개하려고 했지만 한주가 플랑베르주로 베어내리는 것이 더 빨랐다.

"아아악!"

날 길이 3m에 달하는 거대한 에너지 소드인 플랑베르주는 IS의 실드와 IS, 그리고 그 파일럿을 한꺼번에 갈라버렸고, IS 파일럿은 갈라진 IS의 장갑 사이로 선혈과 또다른 무언가를 흩뿌리며 추락했다. 누가 보아도 치명상이었다. 방금 달려든 파일럿을 처리하고 주변을 둘러본 한주는 여전히 불리한 상황에 놓인 라그나뢰크의 US들과 자신을 둘러싼 두대의 IS를 볼 수 있었다.

"흐음, 세계 최고의 병기인 IS들은 US 하나 상대로 둘이 모이지 않으면 실력 발휘가 안 되는 모양이지? 이것 참 황송해서 어쩔 줄을 모르겠군."

한주는 자신을 상대로 자세만 잡을 뿐 좀처럼 공격해오지 않는 두명을 한껏 비꼬았지만 두 사람은 얼굴을 약간 찌푸릴 뿐 여전히 견제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 뒤편으로 US가 하나둘씩 떨어지는 것을 본 한주는 자신 쪽에서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막 행동에 나서려던 순간이었다.

[경고! 바로 아래 지면에서 조준파 탐지!]

"큭?!"

갑자기 들려온 자신의 US 수르트의 경고에 급히 뒤로 물러선 한주는 발 밑에서 날아오른 레일건 탄환을 보며 순간 식은 땀을 흘렸다. 반사적으로 내려다본 지상에는 붉은 색의 IS가 어깨 위로 레일건을 전개한 채 자신을 재차 조준하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한주는 사나워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과연, 이런 식으로 날 잡으려고 했단 말이군? 거물로 봐줘서 영광이라고 해야하나? 핫!"

두 번째 레일건 사격 역시 아슬아슬하게 피해낸 한주는 그대로 고속낙하하며 플랑베르주의 날을 채찍 형태로 변형시켜 휘둘렀다. 붉은 IS-홍천-을 움직이던 시영은 눈앞으로 날아드는 빛의 채찍을 보고는 급히 자리를 피했지만 레일건의 포신이 잘려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칫!"

시영은 혀를 차며 레일건을 분리하고는 날아오르며 전개한 어설트 라이플의 탄환을 한주에게 쏟아부었다. 한주는 실드로 받아내며 돌격할 생각이었지만 자신을 쫓아 내려온 두 IS의 공격에 돌진을 포기하고 물러나야만 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도 한주는 또다른 하나의 IS를 격추시켰다.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입술을 깨문 렌화의 곁으로 시영이 다가왔다.

"역시 보통이 아닌데. 일개 파일럿은 아닌 것 같지?"

"기체 디자인부터가 튀잖아. 에이스 아니면 리더급일 거라고."

"그러면 잡으면 우리쪽이 더 유리해진다는 얘기겠지. 에이스든 리더든 말이야."

"뭘 그렇게 중얼중얼 거리시나들? 나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쓰러트리는 게 좋지 않겠어?"

한주는 그렇게 시영과 렌화를 도발했지만 두 사람은 거기에 넘어가지 않았다. 실력은 엇비슷할지 몰라도 기체 성능의 차이가 꽤 크다는 것을 방금 전투로 알아본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사용 가능한 모든 추가 패키지를 끌어오고 인원도 대여섯명 정도 더 모아서 한바탕 레이드 뛰는 식으로 싸우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일은 꿈도 꿀 수 없었다. IS 측이 라그나뢰크에 비해유리하다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지 아예 피해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IS의 피해도 늘어가고 있었다. 시영과 렌화는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자 더 망설이지 않았다. 두대의 IS와 한대의 US가 서로를 향해 돌격했다.




"이런 쓰레기 놈들이...!"

그 후로도 시우가 몇번이나 전장을 옮기려고 했지만, 그 때마다 스칼렛과 후지노가 일부러 구조대나 부상자 근처에 사격을 가했기 때문에 그걸 막느라 단지 상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전투 도중 시우가 스칼렛의 어설트 라이플을 두번이나 파괴하고 후지노의 피스톨마저 박살냈지만 스칼렛은 매번 또다른 어설트 라이플을 전개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고, 오히려 그런 시도를 비웃듯이 스칼렛이 민간인을 노리는 횟수는 늘어만 갔다.
처 음에는 그저 답답하게 느껴지고 자신들만 피해자인양 구는 것이 짜증났을 뿐이어서 때려눕히겠다는 생각이었지만, 몇번이나 관련없는 사람들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게 되자 시우의 생각은 바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라그나뢰크 전체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시우는 후지노와 거리를 벌린 채 구미호를 들지 않은 왼손을 내밀었고, 시우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고 생각해서 붙잡아둘 요량으로 지상을 겨누던 스칼렛은 그 모습을 보고 동작을 멈췄다.

"할 얘기가 있다."

"얘기 따위 필요없다. 넌 그냥 여기서 죽으면 돼."

"1초라도 더 오래 살고 싶은 모양인데 난 1초라도 더 빨리 널 죽이고 싶을 뿐이다."

"...네놈들의 썩어빠진 정신머리는 아주 자~알 알았어. 목적을 위해서라면 제3자가 죽어도 상관없고, 때에 따라서는 오히려 그걸 이용한다는 그 더러운 사상을 말이야. 그러니 말해두지. 너희들을 철저하게 박살내놓겠다. 두번 다시 그런 짓 못하도록. 그 과정에서 다치든 죽든 내 알바 아니지. 각오해두는 게 좋을 거다. 이건 너희들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다."

"하, 무슨 헛소리를... 윽?!"

[PCS 발동, 임계점까지 26.47초.]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으로 시우를 비웃던 후지노는 갑자기 시우가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른 속도로 돌격해오자 당황했고, 시우는 후지노가 반응하기도 전에 구미호를 휘둘러 그 옆구리에 창대를 적중시켰다.

"크악!"

IS의 완력에 스피드까지 더해진 충격으로 후지노는 멀찌감치 날려졌고, 시우의 움직임이 멈춘 사이 사격을 넣으려던 스칼렛은 눈앞에서 시우가 사라지자 위험을 느끼고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스칼렛 주위에서 움직임을 제약하던 비익은 이번에도 회피 행동을 차단했고, 그 사이에 뒤쪽에서 나타난 시우가 삭풍도를 휘둘러 스러스터와 플로팅 유닛을 동시에 베어냈다.

"이 자식이!"

스칼렛은 부양력을 잃어서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PIC를 이용해 자세를 바로잡고는 반격하려 했지만 은황이 비익을 움직이는 것이 더 빨랐다. 스칼렛을 포위하고 있던 6대의 비익은 일제히 레이저를 발사했고, 스칼렛은 들고 있던 라이플을 파괴당하고는 직격당하지 않게 회피하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실드는 착실하게 깎여나가고 있었고, 시우는 이번에는 다시금 자신에게 돌격해오는 후지노에게 고개를 돌렸다. 스칼렛에게 관심이 쏠린 사이 헛점을 노리려 날아오던 후지노는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긴 했지만 오히려 속도를 더 올린 채 날아들었고, 시우는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날았다. 공중에서 교차해 지나간 직후, 타케미카즈치의 오른쪽 스러스터 윙이 뜯어져 나갔다. 시우가 휘두른 구미호 대검 모드에 의해 파괴된 것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후지노의 예상범위 안이었다.

[시우!]

은황의 경고에 뒤를 돌아본 시우는 갑자기 하얗게 빛나는 무언가가 날아드는 것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구미호를 들어 막았고, 끈처럼 보이던 그것은 구미호의 칼날을 휘감더니 강한 힘으로 구미호를 잡아당겼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시우는 구미호를 놓치고 말았고, 시우의 손을 떠난 구미호는 그대로 끌려가더니 하얀 끈 같은 것에서 풀려 지면으로 낙하했다. 구미호를 잡아챈 그것은 후지노가 손에 든 에너지 블레이드로, 상황에 따라 채찍처럼 사용할 수도 있는 타입이었지만 시우는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알 필요도 없었다. 후지노는 시우에게서 구미호를 빼앗았다는 사실에 잠시나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다. 시우는 팔등에 내장된 실체형 암 블레이드를 전개하고 후지노에게 돌진했다.

"칫, 무장이 더 있었나?!"

"애초에 무장이 그거 하나라고 생각한 게 바보 아냐?!"

사실 구미호 하나에 워낙 많은 기능이 들어가 있어서 그것만 없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었고, 실제로 후지노는 그런 착각을 했던 것이다. 시우는 PCS의 스피드와 PIC의 관성제어 성능을 최대로 살려 몇번이나 후지노의 사각에서 공격해 들어갔고, 결국 후지노는 곳곳의 장갑이 파괴된 채 양손에 들고 있던 블레이드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하압!"

후지노가 빈손이 된 것을 확인한 시우는 암 블레이드를 수납하는 것과 동시에 후지노의 복부에 있는 힘껏 주먹을 꽂아 넣었다. 돌격해오는 속도에 상체 회전까지 잔뜩 들어간 펀치를 넣고도 시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날아갔고, 그 뒤에는 고기동 상태의 비익을 상대하느라 여념이 없는 스칼렛이 보였다. 장거리에서 자리를 잡고 사격전을 벌이는 타입인 스칼렛의 덴드로븀으로서는 재빠르게 움직이며 사방팔방에서 공격해오고 PCS에 의해 공격력까지 강화된 비익은 성가신 것을 넘어서 상성이 최악인 상대였다. 그래서 스칼렛이 후지노와 시우를 발견한 것은 두명이 바로 코앞까지 접근해서 비익이 자리를 피할 때가 되어서였다.

"커헉!"

"큿!"

스칼렛까지 후지노와 충돌시킨 시우는 그대로 오른팔의 암 머신 건을 전개해서 플라즈마 탄환을 있는대로 쏟아부었고, 두명은 탄환을 뒤집어쓴 채 지상으로 추락했다. 하지만 시우는 확실히 전투력을 빼앗을 생각이었고, 자신이 공언한대로 그 과정에서 두명이 어떤 상황이 되든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두 사람이 지면에 떨어지기 직전, 미리 원거리에서 데이터 영역으로 수납시킨 구미호를 다시 전개한 시우는 구미호를 대구경 에너지 캐논 모드로 전환했다. 전투 중 구미호를 사격형으로 쓴 적이 없었기 때문에 에너지는 충분했다.

"이걸로 이제 좀 잠잠해져라!"

에너지 캐논에까지 전달된 PCS의 공격력 강화 효과에 의해 캐논의 파괴력은 통상의 3배 이상으로 올라가 있었고, 시우가 발사한 캐논은 단지 전체를 뒤흔들어서 균열은 갔지만 간신히 버티고 있던 아파트들까지 하나둘씩 쓰러지게 만들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붕괴하는 건물들 근처는 다른 단지의 아파트들이어서 미리 대피가 끝난 곳이라는 점이었다.

[임계점 도달. PCS 해제. 실드 에너지 잔량 20%, 구동 에너지 잔량 25%.]

은황의 보고와 함께 관절부에서 흩뿌려지던 빛의 입자가 사라졌고, 주위에 떠 있던 비익도 에너지를 충전하기 위해 플렉시블 암과 도킹해서 은황은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시우는 지상에 쓰러져있는 후지노와 스칼렛에게 다가갔다. 절대방어가 발동하지 않은 것인지 두 사람의 기체는 아직 유지되고 있었지만 대신 기체나 파일럿이나 처참한 모습이었다.

"큭... 이, 이 자식...!"

스칼렛은 의식을 잃고 있었지만 후지노는 아직 깨어 있었고, 다가오는 시우를 보고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부상과 기력 소모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그런 후지노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시우는 더더욱 다가갔고, 바로 옆에 선 다음 두 사람의 기체에 동시에 손을 댔다.

"뭘 하려는..."

후지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타케미카즈치와 덴드로븀이 경고 메시지를 출력했다.

[[실드 에너지 및 구동 에너지 급속 감소. 현재 잔량 25%, 20%, 15%, 10%, 5%, 3%, 1%...]]

1%까지 표시한 직후, 두 사람의 기체는 모든 에너지를 잃고 그대로 기능을 정지했다. 은황이 원오프 어빌리티 진조를 이용해 두 기체의 에너지를 대기 상태로 돌아갈 만큼도 남기지 않고 모두 흡수해버린 것이다.

[실드 에너지 잔량 87%, 구동 에너지 잔량 100%입니다. 실탄 소모와 실체 대미지는 없으므로 언제든 전투 속행 가능합니다.]

"너... 너 이 놈...!"

시우에게 보고하는 은황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사태를 파악한 후지노는 당장이라도 일어서려고 했지만, 구동 에너지를 잃은 IS는 무겁기만 한 고철덩어리만도 못했다. 기본적으로 IS나 US나 파일럿의 뇌파를 감지해서 사지를 감싸는 장갑과 구동계로 동작신호를 전달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뇌파감지나 신호전달, 관절계 구동에 필요한 에너지가 없으면 오히려 파일럿의 자유를 빼앗는 구속구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으르렁거리며 달려들 것같은 후지노를 잠시 내려다보던 시우는 고개를 돌리고는 날아올랐다. 비행 방향은 서쪽, 중국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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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까지 포함해서 앞으로 세편 남았습니다. 이제 업로드도 끝이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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