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해가 바뀐 2137년 1월 첫번째 주, 미국에 US 1차 인도분이 전달되었다. 갓 인도받은 병기를 그대로 일선 배치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아직 파일럿들의 기종 전환 훈련도 제대로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1차 인도분 20기는 전부 미군의 IS 파일럿 양성기관으로 운반되었다. 기관에는 갓 입교한 훈련생들은 물론 국방부의 결정에 따라 재입교한 기존 IS 파일럿들도 있었고, 훈련생들을 위한 IS도 5기 있었기 때문에 기종 전환 훈련을 받거나 두 기체의 성능을 비교 경험해보기에는 최적의 환경이기도 했다. 그렇게 US 에인헤야르에 대한 훈련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자, 오늘은 기본 무장 전개와 취급 방법에 대해서 실습해보겠다. 좌측부터 두 열씩 차례로 나와 IS와 US를 번갈아 사용한다. 좌측 1, 2열 앞으로."

교관의 지시에 따라 4오 횡대로 앉아있던 생도들 중 맨 왼쪽의 여덟 명이 나와 네명씩 IS와 US쪽에 나누어 섰다. 이윽고 첫번째 생도들이 장착을 끝내자 교관은 다시 지시를 내렸다.

"지금 두 기체의 무장은 모두 동일하게 준비되어 있다. 어설트 라이플과 총검, 피스톨이 하나씩 확장영역에 들어있으니 우선 어설트 라이플부터 전개해보도록."

교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생도는 정신을 집중했고, 약 2초가 지난 후 거의 동시에 어설트 라이플을 전개하는데 성공했다. 처음 시도하는 것치고는 괜찮은 성과였지만 교관의 평가는 냉정했다.

"느리다. 전장에서 그랬다간 자세 잡는 순간 저격당하거나 목이 떨어질 거다. 무장 전개는 아무리 늦어도 0.5초 내에 끝낼 것. 자, 그러면 정면에 준비된 표적을 봐라. 하이퍼 센서로 확인되나?"

""Yes. sir.""

"좋다. IS든 US든, 하이퍼 센서가 감각을 보조하고 사격무기 전개시 건 레티클이 자동으로 활성화되기는 하지만 결국 그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파일럿 자신이다. 따라서 연습은 언제나 필요하지. 그럼 지금부터 전개한 무장으로 표적을 쏴라. 초탄에 쓰러트리지 못하는 녀석은 슈트 차림으로 연병장 20바퀴다. 자, 시작!"

그러자 IS를 장착한 생도는 잠시 표적을 노려보는가 싶더니 재빨리 라이플을 들고 단발 사격을 가했고, 연습탄을 맞은 표적은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교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잠시 후 US를 장착한 생도가 여전히 사격 준비중인 모습을 보고는 얼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뭐하는 건가! 적이 알아서 쓰러져주기라도 바라는 건가?! 당장 쏴!"

"그, 그게, 교관님. 이게 이상합니다."

"뭐가 이상하다는 건가? 허튼 소리라면 연병장 50바퀴다."

교관은 그렇게 말하며 생도에게 다가갔지만, 생도의 표정은 정말로 당황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핑계를 대는 게 아니라는 걸 눈치챈 교관은 생도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무엇이 문제인가?"

"조준점이 표적판으로 이동되질 않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라이플의 총구와 연동되지 않는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니었다. US의 화기 관제 AI에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US의 전투력이나 신뢰성에 의문이 생긴다는 뜻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도의 말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공격대상이 임의로 고정되어서... 변경되지 않습니다. 해제도 안 됩니다."

"라이플을 수납하고 다른 무기를 꺼내봐라."

생도는 라이플을 확장영역으로 되돌린 다음 피스톨을 꺼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여전히 조준점을 이동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군. 잠깐 내려보도록."

듣다 못한 교관은 직접 상태를 확인하기로 했고, 생도를 내리게 한 다음 직접 US를 장착했다. 기체를 기동할 때에는 무기를 완전히 수납한 비전투 모드였기 때문에 기체 상세 정보만 출력되고 있었고, 그것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타나고 있었다. 교관은 속으로 물음표를 띄우며 어설트 라이플을 전개했고, 그와 동시에 나타난 건 레티클이 어디에 맞추어져 있는지를 알고는 경악했다. 파일럿에게 끊임없이 [적 사정거리 이내. 격파 요망.] 메시지를 띄우며 붉은 색으로 점멸하는 건 레티클은 바로 옆에 서 있는 IS를 향해 있었다.




짧은 겨울방학이 끝나고 IS 스쿨은 3학기에 들어섰고, 분위기는 US 공개 이전으로 거의 돌아와 있었다. 반 친구들의 예전과 다름 없는 모습을 보며 시우는 인간은 역시 적응하는 동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긴, 그 점에서는 나도 다를 바 없구나.'

시우는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처음 이쪽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게 되었을 때에만 해도 완전히 패닉에 빠져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하나도 모른 채 이리저리 끌려만 다녔던 것이다. 지금도 주변에 끌려다니기만 한다는 것은 별로 다를 것이 없었지만, 적어도 이제 자기를 둘러싼 일들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고 있었다. 적어도 시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우, 혹시 미국의 US 얘기 들었어?"

"어? 무슨 얘기?"

자리에 앉아서 생각에 빠져있던 시우는 리자가 말을 걸자 모르겠다는 얼굴로 반문했고, 리자와 함께 다가온 스칼렛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지노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고, 리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이번에 미국에 납품된 US 말이야,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하던걸."

"문제라고? 그야 뭐, 이제 막 테스트 끝내고 실전 배치... 어? 그런데 2세대까지 온 데다가 군산연에서 자체 테스트도 상당히 오래 해 왔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이제 와서?"

시우는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말했다. 정식 공개는 얼마 전에야 했지만 그 전에 이미 상당히 긴 시간동안, 그것도 수백명의 테스트 파일럿을 통해서 여러가지 테스트를 거친 물건이 이제야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은 이상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훈련 때에는 멀쩡하던 물건들이 현장에 투입되자마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나, 최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장비가 어처구니 없이 단순한 이유로 고장이 나는 경우는 22세기인 지금도 심심찮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우의 생각에 대답을 한 것은 후지노였다.

"그게, IS와 관련된 문제라서 발견이 늦었다는 모양이더라."

"IS와 관련된 문제라니... 설마 IS를 적으로 보도록 설정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에이, 설마. 그 정도로 군산연의 프로그래머들이 막 가지는 않겠지?"

"아하하, 역시 그렇겠지?"

예전에 본 어느 살충 로봇 만화(...)에서 본 설정을 떠올린 시우는 그런 의문을 입에 담았지만 금방 농담으로 웃어 넘겼다. IS에 대한 대항의식을 가지고 있기는 하겠지만 설마 무조건 적대하도록 하는 설정을 넣을 정도로 제정신이 아닌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후지노와 스칼렛의 표정은 어쩐지 굳어 있었고, 시우 역시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동안 읽거나 보아온 소설이나 만화들에서 나왔던 인물들-패○레○버 극장판의 호○ 에○지라든가, 사○버 포○러 ○가의 나○모라든가-이 떠올라서 상당히 찜찜했다.




"한주, 소식은 들었어?"

"응, 들었어. 빌어먹을, 이제와서 그런 게 들어있다고 한들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전부 대체할 거잖아."

라그나뢰크의 주둔 시설에서 복도를 걷다 한주와 마주친 표도르는 앞뒤 다 잘라먹고 물어보았지만, 라그나뢰크 대원들 중에 그것이 무엇을 묻는 것인지 모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주 역시 단번에 알아듣고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실전 운용을 고려하는 녀석들에게는 보통 문제가 아닐 거야. 한주 너도 이해는 하고 있잖아?"

"그래, 이해는 하지. 이해는.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그걸 받아들이는 건 완전히 별개라고! 제기랄!"

한주는 분을 못 이겨 복도 벽을 주먹으로 두들겼다. 손에 상당한 통증이 느껴졌을 테지만 한주는 아랑곳 않고 몇번을 더 주먹을 휘둘렀고, 보다 못한 표도르가 손목을 잡아 멈췄다.

"그만 해. 심정은 알겠지만 몸까지 더 상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

"...큭!"

그 말을 들은 한주는 팔을 거칠게 휘둘러 표도르의 손을 뿌리쳤지만 더이상 벽을 때리지는 않았다. 다만 있는 힘껏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릴 뿐이었다. 잠시 뒤 진정이 되었는지 한주는 긴 한숨을 토하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 가서 얘기 듣고 온 거지?"

"미국에서 AI의 오류를 확인하고 수정하라는 요구 사항이 전달되었다더군. 한달 안에 고쳐지지 않을 경우 차후의 계약을 무효화하고 이미 납품받은 분량도 전부 환불을 요구하겠다고 했다던데."

"한달?! AI를 기초부터 다시 설계해야될지도 모르는 문제를 한달 안에 해결하라고 했다고?! 그 자식들 제정신이야?!"

"미국 뿐만이 아니야. 영국이나 독일 쪽에서도 비슷한 문제들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서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 모양이야. 이대로라면 US 보급에 큰 차질이 생길 수도 있어."

"젠장... 어째서, 어째서! 이제야 겨우 때가 됐는데... 이제 겨우 꿈이 이루어졌는데! 왜 자꾸 이렇게 되는 거야! 왜!!"

격앙되어 소리를 지르던 한주는 갑자기 머리를 감싸쥐며 비틀거렸고, 표도르가 다급히 한주를 부축하며 표정을 살폈다. 한주는 아픈 것을 눌러 참고 있는 얼굴이었고, 그 모습을 본 표도르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진정해. 진부한 말이지만, 흥분은 몸에 안 좋아. 특히 지금 한주 네 몸 상태에서는 더더욱."

표도르의 품에서 잠시 거친 숨을 몰아쉬던 한주는 안정이 되자 몸을 빼며 말했다. 그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표도르, '그 일'을 준비해줘."

"결국 하는 건가?"

"그래. 당신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기다릴 시간도 없고."

"알았어. 시작하지. 하지만 대신 앞으로는 건강에 신경 써. 애들 장난도 아니고, 시작하자마자 리더가 자리에 눕는다면 농담거리도 못 돼."

"알았어, 신경쓸게. 마침 지금도 검진 받으러 가던 참이니까. 그럼 나중에 다시 봐."

"그래. 그럼 다녀오라고."

한주와 헤어진 표도르는 자기 방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꽤나 바빠질 것 같았다.




2137년 2월 초, 군산연 소속의 연구소 중 한 곳.

"...확실한가?"

- 확실합니다. 몇번이고 다시 확인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여기가 문제입니다.

소장은 AI 연구팀에서 보내온 자료를 보며 신음소리를 흘렸다. 미국에서 정한 시한이 거의 끝나가는 마당에 간신히 문제가 되는 부분을 찾았는데, 하루이틀 안에 손을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AI의 근간이 되는 부분에 기본 명령으로 IS를 적으로 인식하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을 고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처음부터 재설계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짧을 판국이었다. 하지만 수정 마감 시한은 앞으로 길어야 일주일이었고, 그 안에 재설계를 마치고 테스트까지 진행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 그 자체였다. 결국 소장은 담당자를 문책하고 직접 해결하도록 (떠)맡기기로 했다.

"젠장, 이거 담당한 게 누구지? 당장 찾아내게."

- 그게... 두달 전에 퇴직했습니다.

"담당 작업물은? 자료는 남아있겠지?"

- 남아는 있는데, 전부 정상적인 내용들 뿐입니다. 이것과 관련된 코드는 하나도 없었어요.

"...미치겠군. 그 인간 이름하고 사번 보내게. 직접 찾아가 봐야겠어."

소장은 사번과 이름을 통해 담당자의 주소를 확인한 후 서둘러 연락을 취했지만 더 큰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그 사람은 퇴직 직후에 자살했던 것이다. 망연자실하게 앉아있던 소장은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다잡은 뒤 다시 전화를 들었다. 본사 직통 전화였다.




어느 유명 군수 산업체의 화상 회의실. 군산연은 일단 단일 기업이 아니라 여러 회사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최고 경영자도 여러명이고, 그 사람들이 동시에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각각의 회사에 화상 회의실을 마련하고 필요할 때마다 이용하고 있었다. 이런 거대 산업체의 CEO들이 만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사거리였기 때문에 더더욱 직접 만나는 것은 피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몇달간은 화상회의를 끝낼 때마다 다들 나름대로 미소를 지으며 끝냈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될 것 같지가 않았다. US의 AI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 그래서, 그 연구원이 남긴 것 중에서 뭔가 나온 건 없답니까?

- 지금 같은 부서에서 일했던 팀원들이 전부 매달려서 확인중이긴 한데, 아직까지는 나온 게 없는 것 같습니다. 가능성도 별로 높지는 않고 말이죠.

"후우... 이거 큰일이군요. 앞으로 4일밖에 안 남았는데 아직도 이 상황이니..."

- 이대로라면 리콜해야 할 건 불을 보듯 뻔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리콜로 되돌려줄 물건이 없다는 점이에요. 모든 US의 AI가 저 모양인데 도대체 뭘 준단 말입니까?

- 들리는 말로는 라그나뢰크에서도 슬슬 불만이 나오고 있는 모양입니다. US의 보급에 차질이 생겨서 그런 것 같더군요.

그 말에 회의중이던 모든 CEO가 표정을 굳혔다. 라그나뢰크는 분명히 군산연이 고용한 테스트 파일럿 집단이었지만, 명령체계는 사실상 독립되어 있어서 군산연의 요청이 전해지면 라그나뢰크에서 받아들여 실행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거기다 개개인의 전투능력도 출중하기 때문에 만약 다른 마음이라도 품는다면 군산연으로서는 수습할 재간이 없었다.

"일단 현재 생산된 US 중 100기 정도를 넘겨주기로 했습니다. 그걸로 무마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만..."

- 하지만 저들은 US도 US지만 IS에 대한 반감으로 모인 면도 있으니까요. IS가 완전히 퇴출되는 걸 보기 전까지는 그 불만이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

- 골치 아프군요. AI 문제 하나만 해도 복잡한데 라그나뢰크까지...

- 그런데 만약 라그나뢰크가 US를 넘겨 받은 상태에서 우리와 결별하면 어떻게 합니까? US 보급이 원활해진 다음이라면 프레임이나 무장의 수급도 밀수를 통해서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 안 그래도 그 점 때문에 우리쪽 연구원들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CPR 긴급 정지 코드를 개발하고 있거든요. 완성만 되면 언제 어디서든 원격 송신으로 US를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호오, 그거 괜찮군요. 그런데 US에서 해당 명령어를 차단해버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 송신 주파수는 전세계 공용 주파수로 설정해뒀습니다. 기본적인 정보 수집 수단까지 차단할 수는 없으니 막을 방법은 없지요.

- 라그나뢰크를 견제하는 용도로는 좋습니다만, 군에 납품하는 물건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만약 그런 코드가 있다는 걸 알면 또 무슨 요구를 할지 몰라요.

- 현재 사용중인 AI에서만 정지 코드가 먹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미 납품된 물건들도 나중에 AI를 교체해야할 테니 그때 변경해두면 문제 없으니 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들은 다른 CEO들은 불안감이 가시지 않은 표정이었지만 별 말은 하지 않았다.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무력 집단과 손을 잡고 있다는 것은 몇개의 보험을 들어둬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었다.

- 어쨌든 가장 큰 문제는 AI 개량입니다. 지금도 연구원들을 닦달하고는 있지만, 글쎄요. 시간 안에 만드는 건 기대하지 않는 게 좋겠죠.

"후우... 그렇겠죠. 좋아요, 혹시 더 할 말 남은 분 계십니까? 없으시면 다들 바쁘실 테니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요. 다음 회의 때에는 부디 좋은 소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 그렇군요. 다들 다음에 봅시다.

- 좋은 소식이 있기를.

"다음에들 뵙겠습니다."

회의실의 스크린이 차례로 꺼진 다음에도 CEO는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개인 단말기를 열어 주식 현황을 확인했다. 회사 주식의 추세는 회의 전과 다르지 않았다. 회사의 명운을 걸고 선개발, 선생산을 감행했는데 지금까지 투입된 비용은커녕 기본 설비 투자비용조차 건지기도 전에 이런 어마어마한 사고가 터지는 바람에 회사의 주가는 지금도 수직낙하하고 있었다. 골치가 아파진 CEO는 비서가 찾으러 올 때까지 자리에 앉아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고 있었다.




"준비는 끝났어?"

"그래, 다들 대기하고 있어."

"좋아, 그러면 우리도 가자. 이쪽 방면의 주력은 우리가 될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걸어가는 한주의 등을 보며 표도르는 조용히 뒤를 따랐다. 여기까지 온 이상 한주에게 괜찮겠냐거나 정말 할 거냐는 식의 말은 안 하느니만 못했다. 만약 했다간 한주는 혼자서라도 뛰쳐나갈 성격이었고, 표도르는 한주를 혼자서 위험에 빠트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온 한주와 표도르의 앞에는 단독군장 차림에 개인화기와 방탄복까지 갖춘 용병들이 달빛을 받으며 정렬해 있었다.

"그동안 기다리느라 수고 많았다. 특히 요 몇주일은 정말 조바심 났겠지. 하지만 이제 그 기다림도 끝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우리들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을 것이다. 모두 탑승!"

용병들은 한주의 지시에 따라 망설임없이 준비된 차량에 올라탔고, 전원이 탑승을 끝낸 것을 확인한 한주는 표도르와 함께 맨 앞 차량으로 향하며 중얼거렸다.

"오늘밤, 역사가 시작된다."

2월 17일, 기어이 독일에서 US의 발주를 취소하고 기존 납품 분량에 대한 리콜과 AI 재설계를 요구했다. IFF 코드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아군 오사의 위험까지 있는 결함병기를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뒤이어 미국에서도 비슷한 이유를 들어 리콜을 요구했고, 이쪽은 아예 한술 더떠 기존 납품 분량에 대해서는 문제점 수정 후 무상 공여까지 요구했다. 군산연 측으로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명백히 자신들의 잘못이기 때문에 뭐라고 반박하기도 힘들었기에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지만 각국의 국방부는 요지부동이었다. 거액의 비용도 비용이지만 당장 전력에 누수가 발생하게 생겼으니 물러설 이유도 여유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난 24일 화요일, 세계는 제3차 세계대전의 공포에 휩싸였다. 군산연의 US 테스트 파일럿을 전담하던, 하지만 실제로는 PMC에 가까운 집단인 라그나뢰크가 무력 봉기를 일으킨 것이다. 군산연에서는 어느 정도 예측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에 앉은 자리에서 당했다는 느낌이 컸다. 라그나뢰크는 리더인 채한주의 지휘 아래 세계 각지에 분산되어 있던 US 생산시설을 습격, 1세대 US 바이킹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생산된 US 중 납품이 중지되어 보관중이던 600여기를 탈취했다. 라그나뢰크의 US 시설 습격 보도가 있고 나서 1시간 후, 채한주의 성명이 담긴 영상이 공개되었다.

능력이 아닌 선천적인 이유로 차별받던 시대에 종말을 고하며, 지금부터 IS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실시한다.
IS 관련자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둘 중 하나. IS를 완전 파기하고 항복하거나, 아니면 사라지는 것이다.

전 세계를 향한 선전포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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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클라이막스, 엔딩을 향해 일직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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