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상태는 어때?"

"아주 좋아. 시뮬레이션에서 해본 것 이상이던데. xx는?"

"나쁘지 않아. 다만 역시 시뮬레이션과 실제는 느낌이 다르더라구.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겠어."

"여태까지 잘 기다려 왔잖아. 얼마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리자."

"알았어. ...칫."

"왜 그래? 또 두통이야?"

"응. 요즘 들어 하루에 한두번씩은 꼭 이러네."

"그러니까 약으로 버티지 말고 제대로 진찰 한번 받아봐."

"크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뭘."

"고집 부리지 말고. 그러다 몸 상하면 너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야. 우리 모두의 문제가 돼."

"흐응~, xxx는?"

"응?"

"xxx도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곤란해?"

"......당연하지."

"아하하, 얼굴 빨개졌네?"

"시끄러워."




모의전이 끝난 직후, 시우는 병원으로 옮겨져 정밀 검사를 받았다. 신체적으로도 그렇지만 가장 걱정되는 것은 정신적인 면이었기에 며칠동안 철저하게 검사를 받았으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적어도 시우에게는.
시 우는 리자와 사브리나, 나알리아에게 자신이 의식을 잃고 있었던 동안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전해들었고, 병문안 온 시영과 다른 연구원들에게도 확인해 보았다. 하지만 시영이나 연구원들 모두 그 때 얘기만 나오면 어두운 얼굴이 되며 화제를 돌렸고, 그 모습을 본 시우는 연구소 사람들이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하지만 그 알고 있는 무언가가 어떤 것인지를알아낼 수는 없었기에 답답했다.

"은황."

[네, 시우.]

"내가 그... 뭐라고 해야되나. 폭주 비슷한 상태가 되었을 때 말이야, 내 상태 어땠어?"

[각종 바이탈 사인이 이상하리만치 안정되어 있는 상태이긴 했습니다.]

"안정되어 있었다고?"

[네. 흥분 상태도 아니었고, 공포에 질린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나타낸다면 '담담하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도대체 어떤 상태였던 거야..."

결국 모의전에서 있었던 그 사건 때문에 이후 시우는 이틀에 한번씩 IS 연구소와 병원을 오가며 지내야만 했다. 썩 기분 좋은 귀국 기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2주가 흐른 후, 출국 날짜가 다가왔다. 리자와 나알리아는 각자 그제와 어제 영국과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출국했기 때문에 함께 일본으로 가는 것은 사브리나와 시우 뿐이었고, 두 사람을 배웅 나온 것은 시영 혼자였다.

"언니, 그 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아니야, 나야말로 조그만 집에서 지내게 해서 미안한걸. 집이 좁아서 많이 불편했지?"

"아니에요, 아늑하고 좋았는 걸요."

"어차피 집에선 저녁 먹을 때하고 잘 때밖에 없었으면서 아늑하기는 무슨..."

시우가 중얼거리는 말을 들은 사브리나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흘겨보자 시우는 다른 곳을 보며 딴청을 피웠고, 그런 둘의 모습을 본 시영은 쿡 하고 웃으며 시우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이번에 가면 또 한동안 못 보겠네. 몸조심 해."

"응, 누나도. 집에 아무도 없다고 맨날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건 좀 그만 두고. 아무리 일이 바쁘다지만 잠은 제때 자."

"걱정하지 마. 시우 너야말로 건강에 신경 써. 너 은근히 자기 몸 상태에 무관심하니까."

"난 나름대로 신경 쓴다고 생각하는데..."

시우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데 시영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이윽고 시우를 꼬옥 껴안았다. 사브리나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고, 시우도 당황해서 잡고 있던 캐리어의 손잡이를 놓쳤다.

"누, 누나?"

"누가 뭐래도 넌 내 동생이야. 힘들어도 자신을 잃지 마. 너라면 꼭..."

거기까지 말한 시영은 시우를 놓고 뒤로 물러섰고, 그 표정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눈꼬리에는 살짝 눈물이 맺혀 있었다. 시영의 얼굴을 본 시우는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작별인사를 할 뿐이었다.

"...갔다올게."

"그래, 다녀와."

시영의 배웅을 받으며 시우와 사브리나는 출국 심사대로 향했고, 게이트로 들어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번 더 뒤를 돌아본 시우는 시영과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미소를 띤 채 마주 손을 흔들었다.




시간이 흘러 9월 2일, IS 스쿨은 여름방학을 끝내고 2학기를 시작했다. 이번에도 1학기와 마찬가지로 개학 첫날부터 수업이 시작되었고, 게다가 시우의 C반은 첫번째 수업부터 D반과의 합동 수업-모의전 포함-이었다.

"그런데, 방학동안 잘들 지냈나?"

"""""네에~."""""

"좋아, 그러면 실력 점검하는 의미에서 오늘은 모의전을 실시한다. 각반 대표, 앞으로."

합동 수업의 진행을 담당하게 된 사키의 지시에 학생들은 멍하니 서 있다가 한발 늦게 """""에에에엑~~~~?""""" 하고 소리쳤다. 그도그럴 것이 방학동안 신나게 노느라 IS 조종은 뒷전이었고, 덕분에 IS 조종 능력은 대부분 1학기 초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사키는 방학 동안 1학년의 훈련기 사용 신청서가 별로 없었던 것을 보고는 따끔한 맛을 보여주려는 생각에 모의전을 실시하려고 결정했던 것이다.

"못 들었나? 한시우, 다마리스, 앞으로 나와라."

사키의 재촉에 시우는 한숨을 쉬며 앞으로 나왔고, 옆에 줄을 맞춰 서 있던 D반 뒤편에서 나알리아도 느릿하게 걸어나왔다. 두명이 반 대열에서 완전히 나와 자신의 앞에 서자 사키는 남은 학생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다른 사람들은 모두 관중석으로 올라가서 대기하도록. 각 반의 출석번호 1번, 2번들은 미리 피트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차례가 오면 장내방송으로 부를 테니 신속히 피트로 오고. 자, 움직여, 움직여."

학생들은 불만스런 얼굴로 투덜거리면서도 다들 아레나 밖으로 나갔고, 사키까지 아레나 관제실로 이동하고 나자 아레나의 필드 위에는 시우와 나알리아만이 남았다. 둘이서 어색하게 서로 마주보고 있는 동안 사키가 관제실에 도착했는지, 장내 방송으로 시합 개시를 선언했다.

- 뭣들 하고 있나? 수업은 진작에 시작됐고 시합은 아까 너희 둘만 남았을 때부터 시작이다. 시간이 부족하니 서둘러.

사키의 재촉에 시우는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은황을 장착했다.




결과를 말하자면, 시우가 이기긴 했다. 아슬아슬하게. 학생의 절반 정도가 모의전을 마친 상태에서 수업 종료가 다가오자 사키는 학생들을 다시 아레나에 집합시킨 다음 평가내용을 전달했다. 첫번째는 시우와 나알리아였다.

"둘 다 수고했다. 다마리스는 실력이 제법 늘었는데 아직 무장 전환의 속도가 늦으니 그 점 신경써라. 그리고 기체가 원거리 위주인 건 알겠지만 지나치게 원거리만 고집하는 건 상대에게 반격의 빌미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고."

"네."

"그리고 한시우. 방학동안 무슨 일 있었나?"

"네? 아니요, 그다지..."

"...방금 전 네 전투방식은 예전과는 많이 변했더군. 안 좋은 쪽으로."

사키의 지적에 시우는 몸을 움츠렸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던 점이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지적을 받자 느껴지는 게 달랐던 것이다.

"전부터 원거리 공격 중심이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상황에 맞춰 근거리 무장으로 교체하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교체 타이밍이 약간 늦는 느낌이었지만 그건 연습하면서 고칠 수 있는 문제였고. 하지만 이번에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원거리 공격 뿐이더군. 무장이 에너지계와 실탄계가 모두 있는 덕분에 바꿔가며 사용할 수 있어서 공격 수단이 바닥나는 일은 없었다만. 한번 더 묻지. 정말로 아무 일 없었나?"

"...네."

"......그래, 알았다. 그리고 다음..."

사키는 시우의 대답을 듣고는 잠시 시우를 응시했지만, 더 이상 캐물어도 대답이 신통치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다른 학생들의 평가를 말해주기 시작했다. 한사람만 계속 붙잡고 있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었다. 다른 학생들에게 평가내용을 전달하는 사키의 목소리를 들으며 시우는 방금 전 자신의 행동들을 생각해보았다. 확실히 사키의 말처럼 시우의 전법은 전에는 그럭저럭 근거리 무기도 사용했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원거리 사격무기만 사용했다. 더구나 확실하게 근거리 무기를 사용할 타이밍이 있었을 때조차도 그랬기에 시우 자신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우는 자신이 왜 근접전을 피하는지 그 이유도 잘 알고 있었다. 시영과 모의전을 했을 때 있었던 그 사건 때문이었다. 원거리 사격전이라면 상대의 공격으로 정신을 잃을만한 일이 없고, 설령 그렇게된다 해도 그 때에는 대부분 절대방어가 발동해서 IS가 아예 장착 해제되곤 했다. 하지만 근거리 교전의 경우 IS는 아직 움직일 수 있더라도 파일럿이 충격으로 의식을 잃는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다소 높았다. 시우로서는 그런 상황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리자와 나알리아도 그런 시우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기에 그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다음 날, 수업전 HR 시간에 교내 전체를 대상으로 방송이 시작되었다. 1학년들은 무슨 일인지 잘 몰랐지만 9월말에 진행되는 스쿨 축제를 대비한 스케줄 안내 방송이었고, 운동장에 모이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각자 교실에 비치된 스크린으로 내용을 전달하게 되어 있었다. 사키가 화면을 켜고 약 2분 후, 화면 조정이 끝났는지 스크린으로 보이는 연단에 2학년 여학생이 한명 올라섰다. 갈색 머리카락을 단발로 자른 그 여학생이 IS 스쿨의 학생회장, 마리야 알렉산드로브나 이바노프였다.

- 안녕하세요, 스쿨 학생 여러분. 2학년과 3학년은 오늘 왜 방송을 하는지 알고 있을 테지만 1학년들은 아직 잘 모르겠죠. 일단 간단하게 설명하겠습니다. 9월 하순에 학원 축제가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계실 텐데, 그 기간 중에 스쿨 전체 규모의 이벤트도 매번 한두개가 진행이 되고 그 이벤트 내용은 공모를 통해서 결정됩니다. 다들 반에서 진행할 이벤트와 각 동아리에서 진행할 이벤트 때문에 바쁘시겠지만, 학원 전체 이벤트에도 신경을 써주셨으면 해서 방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마리야는 잠시 말을 멈춘 다음 숨을 골랐다. 그런 후에 눈에 힘을 주면서 말을 이었다.

- 의견 접수는 오늘부터 3일간. 접수 방식은 스쿨의 학생 전용 웹 페이지, 거기에서 학생회 코너로 들어오시면 배너가 보일 겁니다. 그 배너를 클릭한 후 의견을 입력해주시면 됩니다. 공모 결과는 차후 다시 공개할 예정이에요. 기왕이면 기발하고 재미있는 의견이 많이 들어왔으면 좋겠군요. 예를 들자면... 그렇네요, 한시우군 쟁탈전이라든가?

마지막 말을 하며 마리야는 싱긋(듣는 시우 입장에서는 섬뜩하기 짝이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고, 방송을 보고 있던 여학생들은 저게 진심인가 싶은 생각 때문에 미처 반응을 못 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마리야는 할 말을 다 끝냈다.

- 자, 그럼 여러분의 재치있는 의견 기다리겠습니다. 발표는 다음 주 월요일 수업전 HR 시간에 할 예정이니 기대해주세요.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야가 말을 마치자 '이상으로 교내 방송을 마치겠습니다.'라는 안내 멘트와 함께 화면이 종료되었고, 그제야 교실 전체, 아니 스쿨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이 마리야가 말한 '한시우 쟁탈전'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와 동시에 시우는 독안에 든 쥐, 호랑이 우리에 던져진 토끼의 심정을 완전히 이해해버렸다.

"자, 자. 그럼 남은 시간 동안 간단하게 HR 진행한다."

사키가 그렇게 말하며 교단에 다시 섰지만 시우에게 꽂힌 여학생들의 시선은 쉬이 거두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HR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자 노골적으로 시우에게 시선을 보내서 시우는 수업만 아니면 교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저기, 저기. 시우는 어떤 이벤트가 됐으면 좋겠어?"

"그렇게 갑자기 물어본들..."

"시우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어?"

"정해진 것도 없는데 그런 걸 알 턱이..."

"시우가 직접 참여하는 게 좋아, 아니면 판정을 내리는 쪽이 좋아?"

"아니, 둘 다 피하고 싶은데..."

"있지, 시우는..."

이런 식으로 쉬지않고 여학생들이 의견을 물으러(라는 핑계로 붙잡고 수다 떨러) 찾아오니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시우로서는 축제 이벤트가 발표될 일주일 후가 최대한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러면 1학년 C반의 임시 학급회의를 시작합니다. 안건은 다들 알고 있겠지만 '축제 당일 C반의 행사 주제 선정'입니다. 좋은 의견 있는 분은 손을 들고 말해주세요."

그 날 방과 후, 대부분의 학급이 축제를 대비한 학급별 행사를 결정하기 위해 회의를 시작했다. 시우네 C반도 예외는 아니어서 반 대표인 시우가 사회를 보며 학급회의가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란 것이 어째 시우 입장에서는 영 찜찜한 것들밖에 없었다.

"퀴즈 대회 어때? 우승자에게는 시우가 공주님 안기를 해주는 거야!"

"책 읽어주기 코너! 물론 읽어주는 사람은 시우에 내용은 로맨스 소설!"

"연극하자! 당연히 주인공은 시우로!"

이런 식으로 하나부터 열까지 모조리 시우를 끼워넣은 아이디어만 나오니 당사자로서는 한숨을 내쉬며 방금 말한 내용들을 화면에 띄우는 식이었다. 대여섯개가 이미 이렇게 나오고 그 와중에 '시우가 메인인 호스트 클럽' 아이디어까지 나오자 시우는 그때까지 기입했던 내용들을 모조리 지우며 한마디로 잘라 말했다.

"전부 기각."

"""""에에에에~~~~?"""""

"...재미있게 하는 건 좋은데 말이지, 당하는 입장 생각도 좀 해봐. 누구 위장에 구멍나는 꼴 보고 싶은 거야, 너희들?"

반 친구들의 반발에 시우는 머리가 지끈거리려는 것을 참으며 얘기했지만, 여학생들은 그 정도로 물러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치만 모처럼 있는 남학생인데 써먹어야지."

"맞아, 있는데 활용 안 하면 그건 낭비라고."

"교내 유일의 남학생인데 그 정도는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좀 참아."

"청일점이잖아, 청일점."

"아니면 여장해볼래? 시우 여장시켜보기 코너는 어때?"

"오, 그거 괜찮다."

"그러게, 시우라면 왠지 어울릴 것도 같고."

"그러면 옷은 어디서 조달해오지?"

"우리 언니가 카페 하는데 제복 좀 부탁해볼까?"

"그것도 좋긴 한데 한벌로는 갈아입혀볼 수가 없잖아."

"차라리 치수를 잰 다음에 거기에 맞춰서 종류별로 한벌씩 구해오는 건 어때?"

"...여보쇼들, 당사자 의견은 이미 무시냐?"

어느새 시우는 뒷전에 두고 자기들끼리 모여서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한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시우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항의를 했지만 여학생들은 완벽하게 그 말을 무시하고 얘기를 계속했다. 아무래도 이것으로 결정날 듯 싶었다. 이래저래 힘들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며 교탁을 짚고 고개를 숙이는 시우를 보며 리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시간이 흘러 월요일이 되었다. 결국 C반의 주제는 '시우 옷 갈아입히기'가 되었고, 의상은 빠른 속도로 확보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옷이 확보되는 속도에 비례해서 시우의 기분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었지만 반 친구들 중에서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있기는 있었지만 흥미 위주로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안 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리자조차 이제는 상황을 즐기고 있는 쪽이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 드디어 공모를 거쳐 축제 전교 이벤트가 발표되는 시간이 돌아왔다. 이번에도 교내방송을 통해 모습을 보인 마리야는 어딘지 모르게 즐거워보이는 기색이었다.

- 다들 기다리셨나요? 약속대로 전교 이벤트의 주제를 발표하는 시간입니다.

마리야의 말에 다들 긴장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았지만, 마리야는 그렇게 쉽게 재미있는 상황을 끝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 참 여러가지...랄까, 다양하다면 다양한데 묘한 구석에서 다들 틀에 박힌 안건들이 나왔네요. 그래도 약속한 건 약속한 거니까 발표는 하겠습니다만, 그냥 발표만 툭 해버리면 좀 아쉬우니 어떤 의견들이 나왔는지도 약간만 공개하겠습니다. 일단 유사 의견 종합해서 3위가 된 의견은 이거네요.

마리야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옆을 가리켰고, 그러자 화면이 반으로 분할되며 마리야의 왼쪽에 글자가 떠올랐다. 내용은 '반편성 재고' 였다.

- 네~, 유사의견 포함 87표로 반 편성을 다시 해달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만 사실 이 의견은 나오자마자 바로 기각되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무소불위 권력의 학생회라고 해도 반 편성은 교사 고유 권한인데 그걸 손댈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여러분, 남자에 고픈 심정은 이해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걸 제시해주세요. 게다가 이건 이벤트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앞뒤 분간은 하고 내달라구요. 자, 그러면 2위 의견입니다.

마리야의 말투와 표정을 보며 시우는 학생회장에 대한 근엄함, 착실함 같은 고정관념이 산산조각나는 것을 느꼈다. 이건 완전히 어린 동생들 다루는 큰언니의 느낌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돌려 말하지도 않고 대놓고 무안하게 만드는 표현까지 서슴지않는 걸 보면 마리야도 보통은 아니었다.

- 2위는 유사의견 포함 124표, 한시우군을 남자주인공으로 하는 연극 개최였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면 꽤 많았어요. 신데렐라라든가, 잠자는 숲속의 공주라든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든가. ...그런데 대체 겐지 모노가타리와 토리카에바야 모노가타리 써넣은 사람은 누군가요? 진심이에요? 나 참...

마리야는 한숨까지 내쉬며 발표를 진행했고, 그 의견들을 들은 시우는 그 심정을 십분 이해했다. 여러모로 참 대담한 의견이었다.

- 그리고 대망의 1위네요. 여기선 효과음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뭐, 귀찮으니까 그건 넘어가고. 그냥 발표합니다. 1위는 술래잡기가 됐네요.

마리야가 1위의 항목을 말하는 순간 시우는 물론이고 C반 여학생들의 절반 이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고등학교급 축제에서 술래잡기라니, 안 어울려도 한참 안 어울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마리야의 설명을 듣고는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 내용은 이겁니다. 축제 당일, 기습적으로 교내 방송을 통해 술래잡기 개시를 알릴 거에요. 그러면 그와 동시에 한시우군이 술래가 되어 도주합니다. 제한시간은 1시간. 그 안에 한시우군을 포획하는 사람이 우승자가 되는 거죠. 발견하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반드시 붙잡아서 도망칠 수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해요. 꽁꽁 묶어놓든, 기절시키든. 그리고 원래도 그렇지만, 이 시간 동안 IS 사용은 절대 금지입니다. 전용기 소유자들, IS 사용하는 거 발각되면 그 즉시 자격 박탈이니 주의해주세요. 이건 한시우군도 마찬가지니까 기억해두시구요. 자, 그럼 발표는 이만. 축제일을 기대해주세요~.

핏 하는 소리와 스크린이 꺼지고, 그와 동시에 방송 종료를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반이 술렁거리기 시작하려던 찰나, 갑자기 교실 스피커에서 마리야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 아, 깜빡하고 우승 포상을 말 안 했네요. 우승자에게는 한시우군과 한달간 같은 방을 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합니다. 그럼 진짜로 이만~.

경직. 정적. 동요. 그리고 잠시 후...

IS 스쿨 전교는 99.999%의 환호와 0.001%의 절망으로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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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빨리 올리고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간격이 길어지니 자꾸 까먹게 돼서...

...근데 이거 전에도 했던 얘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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