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 주의 : 이 망상 결과물은 아리아 본편의 분위기와는 완전히 다른 흐름이므로
아리아의 추억을 보존하고 싶으신 분들은 읽지 않으시는 걸 추천합니다.



[형을 집행한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아리시아가 서 있던 발판이 덜컥 하며 열렸다. 양팔과 양발에 족쇄가 채워지고, 발의 족쇄에는 무거운 철구까지 매달린 아리시아는 그대로 바다에 떨어졌다. 바다 밑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까지, 아리시아의 얼굴은 웃고 있었다.




"아리시아 씨──────────!!!!!"

아카리는 자신이 지른 소리에 잠을 깼다. 그리고는 자신이 있는 곳을 둘러보고 나서야 방금 그것이 꿈이란 것을, 하지만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인식했다.

그저 우연이었다. 운디네 업계의 1,2위를 다투는 히메야와 오렌지 플래닛의 숨은 지배자가 그랜드 마더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하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그랜드 마더는 진실을 알게 된 아카리에게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웠다. 일방적인 재판의 결과는 사형. 하지만 형이 확정되려는 순간, 아리시아가 폭탄선언을 했다.

"아카리는 죄가 없습니다. 제가 시킨 대로 했을 뿐이에요."

결국 아카리는 종신형, 아리시아는 사형을 언도받은 것이 일주일 전. 그리고 아리시아의 형이 집행된 것이 사흘 전이었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명목 아래 아리시아의 사형은 아쿠아 행성 전역에 생중계되었고, 아카리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 중계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으드득.

다시 그 장면을 떠올린 아카리는 이를 갈았다. 지금 아카리에게 남은 것은 분노와 복수심 뿐이었다. 자애로운 모습의 가면을 쓰고는 운디네 뿐 아니라 아쿠아의 모두를 농락하고 있는 그랜드 마더, 아키노. 아카리를 함정에 빠트리고 아리시아를 죽게 만든 장본인. 하지만 지금 아카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애기(愛機)인 아쿠아 마린은 아리아 컴퍼니의 격납고에 있고 아카리 자신은 성 미켈레 섬의 특수 수용소에 감금되어 있는 상태. 분노가 끓어도, 복수심에 불타도 아카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자신을 학대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갑자기 수용소 전체에 사이렌이 울려퍼졌다. 그리고 그보다 조금 더 빠르게 섬 전체가 굉음을 내며 진동했다.

"꺄아악!"

마치 운석이라도 낙하한 듯한 엄청난 폭음과 진동에, 아카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렸을 때 아카리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무너진 수용소 벽 너머로, 섬 한 가운데에 내리꽂힌 소형 전함을 본 것이다.

"뭐야 저건..."

[아카리!]

[아카리 선배!]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카리를 향해 두대의 인간형 전투 병기 '곤돌라'가 접근해왔다. 아이카와 아리스의 기체였다.

[구하러 왔어! 어서 빠져 나가자!]

[서둘러요! 곧 지원군이 몰려올 거에요!]




두 사람의 도움을 받은 아카리가 소형 전함에 올라탄 것과 거의 동시에, 전함은 최대 추력으로 섬을 이탈했다. 아이카의 로즈 퀸과 아리스의 오렌지 프린세스는 아슬아슬하게 전함의 외부 장갑에 매달려 함께 탈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카와 아리스에게 안내받아 도착한 전함의 브릿지에는 놀랄 것 투성이였다.

"뿌이뉴웃~!"

"여, 무사해보이는군. 만지작 아가씨."

"오랜만이오, 아카리 양."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는군요. 다행입니다."

"아리아 사장님, 아카츠키 씨, 우디 씨, 알 군... 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자신의 품에 달려든 아리아를 달래면서도 영문을 몰라하는 아카리의 말에 대답한 것은 아이카와 아리스였다.

"아리시아 씨가 데이터 메일을 보내 놨었어. 극비 회선으로 말이지. 거기엔 너와 아리시아 씨가 어떻게 그런 일을 당하게 됐는지, 아주 자세한 내용이 들어있더라구. 처음엔 그걸로 구명 운동이라도 해볼 생각이었지만..."

"하지만 그건 왕바보짓이었죠. 그랬다간 우리까지 엮여서 형무소에 들어갔을 테니까요. 결국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모아 이렇게 행동으로 나서게 된 거에요. 우선 아리아 사장님이 아리아 컴퍼니 지하에 봉인되어 있던 이 소형 고속함 '아리아'를 꺼내 주셨고요."

아리스의 말을 받아 아카츠키가 말했다.

"그리고 배가 생기면 승무원이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이 몸이 화기 관제관(샐러맨더), 우디가 일등항해사(실프), 알이 메카닉 치프(노움)를 맡게 된 거다. 함장은 당연히..."

"뿌이뉴웃~"




"이건..."

"네, 맞아요. 아리시아 씨의 기체인 스노우 화이트죠. 아무래도 현 최강 요정의 기체니까, 묵혀두기엔 아까워서 가져오긴 했는데... 시스템 전체에 강력한 프로텍트가 걸려 있어서 손대기가 힘드네요."

"프로텍트? 알 군, 무슨 소리야?"

"기본적으로 자폭 장치가 내장되어 있는 데다, 기체를 기동하려면 특정 코드를 입력해야 해요. 그리고 그 코드가 두번 틀리면 그대로 자폭이죠. 함부로 만질 수가 없어요."

"아리시아 씨, 철저하게도 해 놓으셨네..."




"이대로는 힘들어. 아무리 실력이 떨어지는 중소 업체의 운디네 들이라고 해도 이렇게 연속으로 습격을 당하면 쓰러지는 건 결국 우리야."

"하지만 아이카, 마땅히 방법이 없잖아. 애초에 우리에게 있는 건 곤돌라 4기에 전함 한척, 그것도 곤돌라 1기는 파일럿(운디네)도 없는 형편이라구."

"아뇨, 한가지 방법이 있어요."

아리스의 말에 아이카와 아카리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콘솔을 조작하던 아리스는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금 간신히 정보 하나를 구했어요. 며칠 후에 그랜드 마더가 운디네 협회 본부에서 진행될 협회 회의에 참석한다고."

"그랜드 마더가 참석할 정도면 상당히 대규모에, 거물급도 많겠는걸."

"...반드시 복수해주겠어, 그랜드 마더."




전함 아리아는 빗발치는 포화 속을 뚫으며 운디네 협회 본부로 돌진하고 있었다. 실드를 최대 출력으로 전개하고 있지만 포격에 맞을 때마다 발생하는 진동은 어쩔 수 없었고, 그나마 실드 출력도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아저씨! 좀 잘 해봐! 자칭 샐러맨더 일인자라면 저녀석들 포대 정도는 쓸어버리라고!"

"시끄럽다, 가챠펜! 놀고 있는 게 아니라고!"

"우디 씨, 부탁할게요! 조금만 더 가까이!"

"걱정 마시오! 나는 실프 중에서도 최고의 실프라오!"

"알 군! 기체 조정은?!"

"방금 끝났습니다! 언제든지 출격 가능해요!"

"뿌이뉴웃, 푸힛!!(곤돌라 전기, 출격!)"




"아키라 씨, 그리고 아테나 씨..."

"오랜만이구나, 아이카. 설마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될 줄이야."

"아테나 선배..."

"...아리스."

"비켜주세요, 아키라 씨, 아테나 씨! 전 꼭 그랜드 마더를...!"

"미안하지만 안 되겠어. 이게 임무거든."

"그래. 아리스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후배지만... 이건 어쩔 수 없어."

세명의 눈앞을 가로막은 2기의 곤돌라, 크림슨 로즈와 세이렌. 당대 최강의 3요정 중 두명을 상대하는 것은 지금 아카리 일행으로서는 버거운 일이었다. 아이카는 두 사람의 기체를 잠시 노려보고는 아카리에게 외쳤다.

"아카리! 여긴 우리가 맡을 테니까 넌 본부로 가!"

"뭐? 하지만...!"

"서둘러요, 아카리 선배! 우리도 곧 뒤따라 갈 테니까!"

"...미안해!"

순간 가속으로 자리를 벗어나 날아가는 아쿠아 마린. 그 뒤를 공격하려던 크림슨 로즈의 행동은 달려든 로즈 퀸의 공격에 불발로 그쳤다.

"정말로 해볼 생각이냐, 아이카?"

"로즈 퀸은 빈 말은 안 해요, 아키라 씨."

"자신만만하구나. 그럼 더 말할 것도 없겠지. 자, 어서 덤벼!"




"하아, 하아... 크윽..."

만신창이가 되어 지면에 처박힌 아쿠아 마린의 콕핏에서 아카리는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곤돌라는 너무나 강력했다.
기체 자체의 성능은 차이가 없었다. 차이가 있더라도 승패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파일럿의 실력 차가 너무 컸던 것이다.

운디네는 소모도가 높은 직업이다. 곤돌라에 탑승하는 순간부터, 1초는커녕 0.1초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것이 운디네다. 거기다 탑승하는 내내 곤돌라를 제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육체적 피로도 상상을 초월한다. 정신과 육체, 양면으로 소모되기 때문에 운디네를 지망하는 자들은 프리마가 되기도 전에, 심지어는 페어에서 싱글로 승급조차 못하고 그만두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아카리의 눈앞에 버티고 선 자는, 30년 이상 운디네 업계에서 최강으로 군림해 왔던 자.

전설의 요정. 통칭 그랜드 마더, 아키노.

"호호오, 아직도 싸울 생각이니, 아카리?"

통신으로 들려오는 여유로운 목소리에 아카리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아쿠아 마린은 이미 기동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태도를 보아하니 항복은 절대 안 할 것 같구나."

"당연하지!"

"그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아쉽지만 여기서 이별하자꾸나, 아카리. 넌 아까운 아이였단다."

자신에게 겨눠지는 곤돌라의 무장. 그 방아쇠가 당겨지려는 순간, 아카리는 분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어...?"

자신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당황한 아카리는, 곧 자신과 아키노 사이에 낯익은 기체가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순백의 기체. 전투를 위해 태어났지만 그 주인 만큼이나 아름다운 기체. 스노우 화이트.

"...아리시아 씨...?"

[아카리 씨! 스노우 화이트로 옮겨 타세요!]

"알 군? 어떻게 된 거야?"

[방금 막 스노우 화이트의 프로텍트를 풀었습니다! 더 설명할 시간 없으니 어서 옮겨 타세요!]

"아, 알았어!"

"누구 마음대로!"

아키노의 공격이 스노우 화이트에 직격하려는 순간, 두대의 곤돌라가 그 사이에 끼어들어 공격을 막아냈다.

"아이카! 아리스!"

"우리가 시간을 벌겠어!"

"오래는 못 버텨요! 서둘러요, 아카리 선배!"

만신창이가 되어 움직이는 것이 고작인 로즈 퀸과 오렌지 프린세스는 아키노의 공격에 저항조차 못하고 부서져 나갔지만, 아이카와 아리스는 끝까지 비켜서지 않았다.

"좋아, 그럼 너희들도 아카리와 함께 처리해 주마!"

아키노의 마지막 일격이 두 사람의 기체에 꽂히려는 순간.

"그렇게는 안 돼!"

마침내 기동한 스노우 화이트가 아키노의 공격을 받아냈다.




[아카리 씨, 잘 들으세요. 스노우 화이트는 시스템 관리자 권한을 가진 사람만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리자 권한은 시스템 개발자와 파일럿만 가질 수 있지요. 시스템 개발자는 개발 직후 사망했으니 현재 스노우 화이트의 시스템 관리자 권한은 오직 파일럿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노우 화이트의 파일럿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은 아리시아 씨와... 아카리 씨, 당신이었습니다. 아리시아 씨는 처음부터 스노우 화이트를 당신에게 줄 생각이셨던 거에요.]

[스노우 화이트는 학습형 컴퓨터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파일럿의 조종 방식을 학습함으로써 다음에는 보다 빠르고 보다 정확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죠. 그리고 지금 스노우 화이트에는 아카리 씨의 조종 패턴도 입력되어 있습니다. 이럴 때가 올 줄 알고 아리시아 씨가 미리 입력해두셨던 거겠죠.]

[방금 전 스노우 화이트가 당신을 구한 것은 원격조종 같은 게 아닙니다. 당신이 위험하다고 무심코 중얼거리자, 대기 모드에 있던 스노우 화이트의 시스템이 반응해서 당신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 출격한 겁니다. 지금 스노우 화이트는 단순히 아리시아 씨의 곤돌라가 아닙니다. 또 하나의 아리시아 씨입니다.]

아카리는 알의 설명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아리시아에 대한 그리움, 마지막까지 자신을 걱정해준 아리시아에 대한 고마움, 지금도 함께 하고 있을 아리시아에 대한 기쁨이 뒤섞여 뭐라 말할 수 없는 심정이었다.
완전히 멈춰버린 로즈 퀸과 오렌지 프린세스를 돌아본 스노우 화이트는 눈앞의 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잠시 후, 전설과 최강이 격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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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어떤 분이 올리신 꿈 이야기를 보고 뇌리에 전파가 꽂혀서, 거기다 살을 붙여 만든 물건입니다.

...지금 봐도 참 무슨 정신으로 만든 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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