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끄으응~"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프레이야는 한껏 기지개를 켜며 신음 소리를 냈다. 오늘 수업 중에서 가장 지겨워 하는 수학 강의가 끝난 것이다. 진이 완전히 빠져서 책상 위에 엎어져 있는 프레이야에게 옆자리에 앉아있던 붉은 색 단발머리의 소녀가 말을 걸었다. 프레이야의 기숙사 룸메이트이기도 한 레나였다.

"프레이야, 음료수 사러 매점 갈 건데, 같이 가지 않을래?"

"응? 그래, 좋아. 같이 가자."

레나의 제안에 프레이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쉬는 시간은 방금 시작되었으니 매점까지 갔다 올 시간은 충분했다. 둘이 2-D 교실을 나서려는 것을 본 검은 머리의 남학생 한명이 뒤에서 소리쳤다. 같은 조원인 시훈이었다.

"아, 레나. 가는 김에 우리들 것도 좀 사와."

"마시고 싶으면 직접 사러 가시지?"

"여럿이 갈 필요 없잖아. 좀 부탁할게."

"...늬들 말야, 남자가 되어 갖고 여자한테 음료수 심부름이나 시키는 거니?"

"알았다, 알았어. 그냥 같이 가자. 야, 너희들은 뭐 마시고 싶은 거 없어? 기왕 가는 김에 사 올 테니까."

시훈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옆에 있던 남학생 둘-역시 같은 조원들-에게서 얘기를 들은 다음 레나와 프레이를 따라 나섰다.

"나 참, 그것 좀 부탁한다고 구박이냐, 구박이. 같은 조끼리 도와주면 안 되냐?"

"조 편성은 그럴 때 쓰라고 한 거 아니거든?"

"그만 해, 둘 다."

매점으로 향하는 와중에도 레나와 시훈의 말다툼은 끊이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심한 수준까지 발전하지는 않았다. 이 두 사람에게 가벼운 말싸움은 일과나 마찬가지였다. 전에 한번 프레이야가 레나와 시훈을 따로 만나서 왜 항상 말다툼을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대답이 참 가관이었다.

"글쎄? 딱히 이유를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냥 왠지 그렇게 맞받아쳐야 할 것 같은 기분? 아무튼 그래."

"뭐라고 할까, 어쩐지 긁어주고 긁히지 않으면 뭔가가 빠진 듯한 느낌? 허전하다고 해야 되나? 아무튼 그런 기분이 들더라구."




중앙기사단에 입단해서 기사교육을 받기 시작한지 벌써 5개월이 지나, 달력은 벌써 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동안 프레이야의 검술에 얼마나 진전이 있었느냐 하면...

애석하게도, 전혀 진전이 없었다.

어쩌면 이 경우에는 오히려 퇴보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할 지도 모른다. 중앙기사단에 파동기와 관련된 교과목은 당연히 있었지만 청적파는 사상병기와 정면대결이 가능한 수준의, 말하자면 '파동기를 뛰어넘은 파동기'였다. 그렇다 보니 중앙에서 가르치는 파동기 교육은 청적파에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상당부분 있어서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프레이야는 지금 파동기와 관련된 부분은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배우고 있는 실정이었고, 덕분에 지금 프레이야의 실력은 동기들인 교육생 1년차보다 조금 더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응?"

매점에서 산 음료수를 마시며 교실로 향하던 프레이야 일행의 눈에, 복도 한켠에 잔뜩 인파가 몰려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위치로 봐서는 교무실 앞의 게시판이었는데, 아마도 뭔가 공고 비슷한 것이 내걸린 모양이었다.

"저거 뭐지?"

"글쎄? 한번 보고 갈까?"

"아서라. 매점에서 음료수 산다고 시간 잡아먹은 걸 생각해. 저렇게나 사람이 몰려있는데 저거까지 보고 갔다간 틀림없이 강의 지각이다."

시훈의 말에 레나와 프레이야는 교무실 복도에 걸려있는 시계로 시선을 돌렸다. 다음 강의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2분 정도였다.

"그렇겠네. 뭐, 정말 중요한 거면 나중에 종례할 때 교관이 알려주겠지. 얼른 가자."

"응."




예전에는 중앙기사단의 교육생 입단도 시기를 정해서 전반기에 한번, 후반기에 한번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E-34의 아린 침식으로 입은 막대한 인원 피해, 거기에 기존 교육생 전멸이라는 전대미문의 결과 때문에 오는 사람을 막을 처지여서 희망자가 있으면 시기를 가리지 않고 입단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실제로 프레이야가 입단한 뒤에도 대여섯명이 테스트를 통과하고 교육생으로 입단했다.
사실 중도 입단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 중 하나는 최근 들어 높아진 교육생의 전사율 때문이기도 했다. 중앙기사단이 괴멸당하며 실력있는 교육생들과 교관들이 몰살당했기 때문에 신생 중앙기사단에 입단한 교육생들의 실력은 기존 교육생들에 비하면 잘 봐줘도 70% 이하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사 인력 부족을 이유로 교육생들의 실전투입 횟수까지 증가했으니 전사율이 높아지면 높아졌지, 낮아질리는 없는 것이다. 실제로 프레이야가 입단했을 때에도 D반의 교육생 1개조 6명이 실전에 투입되었다가 전멸한 직후였다. 결국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서라도 중도 입단자는 계속 받을 필요가 있었다.
한편, 기사 교육생들도 일단 신분은 학생인 만큼 중앙의 교육과정에는 반기별 이벤트도 준비되어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체육대회나 수학여행, 축제 같은 것을 진행하지만, 중앙의 기사 교육부는...

"공고를 아직 못 본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서 말하는데, 한달 후에 전반기 무투회가 개최된다. 참가 접수는 앞으로 일주일, 접수처는 교무실이다."

종례시간, D반의 담임인 레이지 교관의 말에 교실이 술렁거렸다. 벌써 그런 시기가 됐나 하는 반응, 공고에서 봤다는 반응, 그게 뭐냐는 반응 등 다들 반응은 제각각이었고, 프레이야는 '그게 뭐냐'는 쪽이었다. 레나에게 물어볼까 하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레이지 교관의 말이 이어졌다.

"자, 자. 조용히들 해라. 일단 작년 후반기 무투회 이후에 입단한 녀석들도 있으니까 설명을 좀 하마. 기사 교육부에서는 매년 2차례 무투회를 개최하는데, 이건 보통 학교의 축제와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우리는 특성상 학교 축제 같은 걸 하기는 좀 어려우니까 말이야. 무기는 연습용의 날 없는 장비들만 가능하고, 전투 시간은 무제한으로 승부가 날 때까지 계속된다. 참가 자격도 제한은 없지만, 실력에 자신없는 녀석은 되도록 참가 안 했으면 좋겠다. 전투 장면 완전 공개에 무투회장이 꽉 차서 못 들어간 사람들을 위해 강의실에도 영상이 투영되니, 참가해서 깨지면 쪽팔려."

거기까지 말한 레이지는 교실을 한번 슥 둘러보고는 폭탄 선언을 했다.

"그리고, 우리 반은 참가자의 경우 종합점수에 가산점을 주겠다."

""""""오오오?!?!?!""""""

놀랍다는 반응이 이구동성으로 터져나온 것도 잠시, 이어진 레이지의 말은 교육생들을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대신 4강에 못 올라갈 경우, 가산점의 두배 감점이다."

""""""""""""""""""""""""""""""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그러니 참가하고 싶은 사람은 심사숙고해서 결정하도록. 참가 접수는 교무실에서 받는다. 그럼 이상, 종례 끝."

교육생들이 뭐라고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레이지는 할 말만 딱 끝내고는 순식간에 교실을 나가버렸다. 멍하니 굳어버린 교육생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건 10여초가 지난 다음이었다.

"나, 이번 무투회는 포기할래..."

"3, 4년차 선배들도 참가하는데 4강이라니, 가능한 걸 주문해라, 레이지..."

"그냥 참가하지 말라고 못을 박든가, 약 올리나?"

"...그냥 속 편하게 구경이나 하자, 우리."

반 친구들 대다수는 완전히 관전 모드로 들어가 있었다. 하긴, 교육생 전체에서 상위 4위 내에 들지 못하면 감점처리 된다는데 그걸 감수하고 참가할 정도로 배짱좋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참가하는 사람은 물론 그보다 훨씬 적을 테지만 그래도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결과적으로 무투회에 나갈 만한 사람은 성적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는 얘기가 된다.

"정말이지... 레이지 교관은 사기를 올려주려는 거야, 꺾으려는 거야?"

"냅둬, 종잡을 수 없는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이냐."

"어쩔까... 일단 감점폭이 얼마나 되는지만 알면 해볼만도 할 것 같은데..."

프레이야와 같은 조인 길리엄과 프리드리히는 성적이 낙제점에서 간당간당한 수준이었기 때문에 일찌감치 포기한 채 불평하고 있었고, 약간 여유가 있는 시훈은 조심스레 참가할지 어떨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할까 하고 책상에 앉아있는 프레이야에게 다가온 레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참가할 거지? 같이 잘 해보자."

"어? 응? 레나는 참가하려고?"

"응, 무투회에 나가서 나쁠 건 없잖아? 모처럼 선배들이랑 공식 대련도 되는 거고."

프레이야는 태연하게 말하는 레나에게 살짝 질렸지만, 레나의 성적을 생각해보고는 이내 납득했다. D반에서는 수석, 2년차에서는 상위 1%안에 들어가는 인재였고, 검술 실력으로는 3년차 선배들과 동등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사실 프레이야도 웬만큼 감점되지 않는 이상 낙제할 걱정은 없는 수준이긴 했다.

"우웅... 어쩔까, 한번 나가볼까...?"

"오, 나가려고? 나간다면 응원은 우리가 책임질께."

"아니, 너네들 응원은 됐어. 오히려 그 응원 때문에 민망해져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닐 것 같으니까."

"이럴 땐 좀 믿어보지?"

"작년 후반기 무투회 때 해킹해서 관람석 실드를 응원 전광판 만든 사람을 믿으라고?"

변함없이 벌어지는 레나와 시훈의 말다툼에 프레이야는 빙긋 미소를 지었다. 어쩐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프레이야는 문득 궁금한 게 떠올라 2층 침대 아래쪽에 누워있는 레나를 불렀다.

"저기, 레나. 지금 자?"

"아니, 아직 안 자고 있어. 그런데 왜?"

레나의 대답을 들은 프레이야는 침대 옆면을 잡고는 아래쪽으로 고개를 휙 내밀었다. 레나 입장에서는 난데없이 허공에 매달린 머리가 출현한 상황, 거기다 머리가 길다보니 아래로 축 늘어져 한층 더 으스스한 광경이었다.

"사, 사람 놀래키지 마! 그냥 말로 해도 다 들린다구!"

"있잖아, 참가자가 많으면 경기 수도 늘어날 텐데 그럼 무투회 일정은 어떻게 짜는 거야? 참가 인원에도 제한이 있어?"

"아니, 뭐 기본적으로는 인원수 제한도 없어. 그 대신 예선이 있어서 말이지, 예선전은 집단전이야."

"집단전?"

"응. 그것도 편 갈라서 진행하는 단체전이 아니라, 말하자면 난전(亂戰)이지. 전원이 전원과 싸우는 거니까."

"흐응, 그러면 운 나쁘면 여러 명한테 한꺼번에 공격받아서 탈락하는 경우도 생기겠네?"

"그렇지. 다만 역시 난전이다 보니까 그렇게 한명한테 집중하다가 뒷치기 당하는 경우도 생겨. 아무튼, 그렇게 난전으로 진행해서 서 있는 사람이 일정 숫자 이하로 줄어들면 예선이 종료돼. 그리고 예선 종료가 선언되고 나서 5초 내에 자기 힘으로 일어서는 사람만 본선에 나갈 수 있어."

일반적인 무투회라면 예선부터 결승까지 모두 1:1 대결로 진행될 테지만, 괴수와 싸워야 하는 기사들은 거의 항상 다수 대 다수의 전투가 벌어지기 때문에 집단전도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물론 집단전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연계도 중요하고, 구성원의 개별 전투력도 높아야 하기 때문에 개인전을 소홀히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무투회는 그 집단전과 개인전을 동시에 평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던 것이다.

"왜, 무투회 나가 보게?"

프레이야가 침대 가장자리에 매달린 채 생각에 잠기자 레나는 살짝 웃으며 물어보았고, 프레이야는 고개를 갸웃 하며 대답했다.

"글쎄, 아직 생각중이야. 나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아니, 점수가 불안하다는 건 아니지만."

"예선전이 걱정이라면 나랑 같이 편 먹으면 되잖아. 어차피 예선에선 다들 그러던걸. 교관들도 그 점에는 별로 신경 안 쓰니까 괜찮아. 어때, 같이 나가보지 않을래?"

"응... 조금만 더 생각해볼게. 아직 참가 접수 끝나려면 시간 많이 남았으니까. 자려는데 방해해서 미안."

"아니, 괜찮아. 그럼 잘 자."

"응, 레나도 좋은 꿈 꿔."

얘기를 끝낸 프레이야는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고, 레나는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프레이야가 함께 나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일주일 후, 교무실 앞 게시판에 또다른 공고가 붙었다. 참가 접수가 종료되어 예선전 일정이 확정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게시판 앞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했기에, 프레이야와 친구들은 종례시간에 레이지의 전달을 듣고서 알 수 있었다.

"예선전은 이번 토요일 오후 2시부터, 야외 공용 실험장에서 실시된다. 무장은 허용되지만 연습용만 쓸 수 있으니 진검 갖고 나오는 녀석 없도록 해라. 진검 썼다간 그 자리에서 실격이니까. 본선에서는 허용되지만 예선에선 초상능력도 금지니까 조심하고."

"교관님~ 이번 참가자는 대충 몇명이나 되나요?"

"어디 보자... 전체 참가자는 대략 200명 조금 넘는군. 참고로 본선은 32강이나 16강부터 시작될 거다. 참가자들은 예선에서 잘들 살아남아 보도록."

교육생들의 인원은 1년차가 약 1천명이고, 2년차부터 실전에 참가하면서 줄어들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갈수록 약 200명 정도씩 줄어든다. 의외로 1년차의 인원이 많아 보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5개 기사단-동서남북과 중앙-의 관할지역에서 모였기 때문에 인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교육 자체는 5개 지역동으로 나뉘어 따로 진행된다. 하지만 3, 4년차 쯤 되면 전체 교육생 인원이 절반 정도로 줄어들기 때문에 이 시점부터 중앙동에 모여서 교육을 받게 된다.
어쨌든, 교육생 총 인원은 5년차까지 모두 3천명 가량 되지만 이 중에서 1년차 1천여명은 관전은 가능하지만 참가는 불가능하고, 나머지 2천명 중 700~800명 정도는 실전에 나가 있기 때문에 실제 무투회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대략 1200명 정도. 참가율 1/6 이면 예전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리고 레이지가 맡은 반의 참가율이 평균 참가율보다 낮은 것도 예전과 같았다. 학년과 반별로 정렬된 참가자 리스트를 흝어 내려가던 레이지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우리 반에서 무투회에 나가는 사람은 레나와 프레이야 뿐인가. 어째 너희들은 다들 이렇게 소심하냐?"

"그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맞아요, 맞아! 가산점은 그렇다 쳐도 감점은 또 뭔데!"

"가산점 같은 거 안 줘도 되니까 감점도 없애요! 그럼 나간다고!"

"뭐, 이왕 나가는 거니까 잘 해봐라. 레나, 프레이야. 그럼 오늘 종례는 이걸로 끝."

레이지의 말에 반 아이들이 발끈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레이지는 안 들린다는 듯이 자기 할 말만 하고는 교실을 나가버렸다. 그리고 교실에 감도는 것은 늘 그렇듯이 허탈감이었다.

"저 인간에게 씨알이라도 먹힐 거라고 생각한 게 잘못이었어..."

"혹시라도 감점 없애주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포기하면 편해. 하지 마."




기사 교육부의 전반기 무투회 예선일정이 발표된 날은 전반기 토크 데이이기도 했다. 게이트의 워프 기능을 정지시키고 통신 기능만을 최대한 활성화시켜, 인류가 진출한 전 성계의 실시간 통신이 가능해지는 토크 데이는 원래 1년에 한 차례였지만, E-34 사건 이후 AE 측에서 1년에 두 차례로 늘렸다. 이전부터 토크 데이와 상관없이 실시간 통신이 가능했던 기사단과 AE는 상관이 없었지만, 통신에 제약이 많았던 민간 측에서는 환영할만한 일이었다.

[프레이야는 요즘 좀 어때요?]

"글쎄다, 내가 직접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정확한 건 아니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꽤 재능이 있어 보인다고 하더군."

전반기 토크 데이를 맞은 마일로는 앤과 통신중이었다. 기사단 소속이라도 토크 데이 외의 기간에 실시간 통신이 가능한 것은 상대가 기사단이나 AE 소속인 경우로 한정되었기 때문에, 현재 민간인 신분인 앤과 통신을 하려면 토크 데이를 기다려야만 했다.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반년 정도 지났는데 어떤가 싶어서요.]

"성적이나 교우관계도 괜찮은 것 같아. 꼭 닮은 누구씨하곤 다르게 말이지."

[아하하, 뭐...]

"그런데, 괜찮은 거냐?"

[뭐가요?]

"보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여러가지로."

마일로의 말에 앤은 말을 멈추고 슬픈 미소를 지었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나고, 앤은 다시 고개를 들고 말했다.

[어쩔 수 없잖아요. 그리고 그 아이는 프레이하고는 다르게 자립심이 강하니까.]

"그건 네 생각이겠다만... 뭐, 상관없겠지. 그건 그렇고, 물어볼 게 있다."

[잡담하려고 하신 거 아니었어요?]

"내가 그렇게 한가해 보이냐? 이래 봬도 나 기사 교육부를 총괄하는 총장이라고?"

[아, 죄송해요. 워낙 옛날 이미지가 강해서 깜빡 잊고 있었네요.]

장난스레 대답하는 앤의 말에 마일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예전보다 많이 밝아진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앤에게 통신을 건 이유는 다른 쪽에 있었기에, 마일로는 곧 진지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혹시 레니핀 쪽에서 접촉해오거나 하진 않았냐?"

[정말 단도직입적으로 물어 보시네요... 레니핀 행성 정부 말씀이세요?]

"그래. 요즘 상황이 좀 묘해서 말이야."

마일로의 말에 앤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뇨, 정부는커녕 경찰이나 군에서도 온 적 없는데요. 그런데 그건 왜요?]

"...뭐, 너라면 말해줘도 별로 상관없겠지. 실은 레니핀 정부가 자체 전력을 증강시키고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어."

[그거라면 이상할 것도 없잖아요. 전력 증강은 어느 정부든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니까.]

"하지만 그 전력이 전부 인형, 그것도 노심 탑재형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네?]

마일로가 한 말이 너무 의외였기 때문에 앤은 그 이상의 반응을 보일 수가 없었다. 인형은 전투용 장비로 환장하여 전투에 투입할 경우, 전투 전용이 아닌 일반적인 다목적 타입이라고 해도 인간 이상의 효과를 보이기 때문에 상당히 유효한 전력이다. 다만 인간 1명을 무장시키는 비용과 인형 1기를 생산, 정비하는 비용을 비교하면 전자가 훨씬 값싸게 먹히기 때문에 후자를 선택하는 경우는 드문 편이다. 그런 면에서 자금이 풍족한 편인 레니핀 정부가 인형 전력을 증강시키는 것은 이상한 점이 없다. 문제는 그것이 노심 탑재형이라는 점이었다.

[잠깐만요, 노심 탑재형 인형이라면 A-10이 유일하다구요. 게다가 토르 공방에선 그 이후로 생산한... 설마...?]

"그래. 레니핀에서 아마도 토르 공방에 주문을 넣은 모양이야. 다만 단가가 말도 안 되게 비싼 것도 있고 노심 확보가 어려운 점도 있어서 오리지널 노심이 아닌 유사 노심이 탑재된 타입을 생산한다는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잖아요. 대 괴수전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대 괴수용 전력을 갖춘다는 거죠?]

앤의 의문도 당연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출력을 내는 병기는 대 괴수용으로만 보유가 허용되고 있었고, 그 기준은 오리지널 노심 탑재기이든 유사 노심 탑재기이든 모두 충족시키고 남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이 제약은 연합의 기본 규약 중 하나이기 때문에 연합에 가입하고 있는 정부는 반드시 따라야 했고, 레니핀도 연합의 일원이었다. 하지만 레니핀은 AB 소자의 원료인 피어시나이트를 채굴,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내세워 대 괴수전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그게 지금 아리송하다는 거야. 그래서 혹시나 네가 알고 있는 게 없나 싶어서 연락해봤다만... 아무래도 레니핀은 기사단과는 전혀 엮이고 싶지 않은가 보군."

[아무래도 그렇겠죠. 퇴역했다곤 해도 전 일단 기사였던 데다가 AE 장교이기도 했으니까.]

"그래. 하지만 만약 레니핀이 연합 탈퇴라도 할 생각이라면 너처럼 대 괴수전 경험이 풍부한 인재를 그냥 두진 않을 거야. 만에 하나라도 접촉해 오면 연락 부탁하마."

[저쪽에서 손을 뻗어온다면 말이죠. 그럼 통신 끊을게요. 아까부터 프레이야가 계속 통신 요청중이에요.]

"그래, 알았다. 내가 너무 오래 붙잡아뒀군. 꼬맹이랑 즐거운 시간 보내라. 몸조심하고."

[교관님도요.]

핏 하는 소리와 함께 통신이 종료되며 스크린이 검게 물들었다. 마일로는 의자에 몸을 깊숙히 묻으며 중얼거렸다.

"녀석, 현직에서 물러난 게 언젠데 아직도 교관 소리냐..."

얼핏 들으면 불만으로 들릴 법도 한 그 말을 하는 마일로의 입가는 살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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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도 쉬어가는 느낌입니다만, 다음편부터는 무투회가 진행될 테니 액션이 좀 나올 예정입니다. ...액션신 자신없지만 (...)

7년이란 세월이 지났지만 앤과 그 지인들은 아직까지 프레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앤 만큼은 아니겠지만, 다들 프레이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프겠죠. 그래도 마일로 같은 경우엔 그런 걸 내색할 것 같지 않습니다. 어쩐지 이 사람은 이미지가 '일부러 가벼운 모습을 가장하는 타입' 같아서요.

그럼 다음 편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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