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 이 팬픽은 나노하 StS 이후 약 70년이 지난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습니다.
애니메이션의 주요 인물은 등장하지 않으니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본부로 출근한 실비아는 우선 본부장실로 향했다. 정식 배속일이 오늘이니 배속 신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업무 시간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와서 그런지 비서실 사람들은 조금 당황한 눈치였지만, 실비아는 개의치 않았다. 방에 들어서자 트론이 실비아를 맞았다.

"어서 오게. 아, 배속 신고는 어제 받았으니 생략하고."

경례를 하려던 실비아는 트론의 말에 어색하게 팔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조금 난감해하는 실비아의 표정을 본 트론은 막 생각났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러고보니 어제 자네 숙소에 테러가 있었다지. 다친 덴 없나?"

"네, 제 때 방어마법을 펼친 덕에 다친 곳은 없습니다. 지금은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고 있고요."

"친구? 아, 자네 어렸을 때 에르트에서 살았다고 했지. 그래도 용케 친구에게 연락이 되었구만."

"우연이었습니다. 마침 숙소 근처를 지나가는 도중에 폭탄이 터져서..."

편한 표정으로 실비아의 얘기를 듣던 트론은 폭탄 얘기가 나오자 얼굴을 굳혔다.

"그래, 그 폭탄에 대해서 말인데."

화제가 바뀌자 실비아도 자세를 바로 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공무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확한 것은 아직 조사중이고, 또 지금까지 있었던 비슷한 사건들과 비교해 봤을 때 확증은 나오지 않을 것 같네만, 테러 대책부에서는 ELF 소행이라고 보고 있네."

"그러면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닌가요?"

실비아의 물음에 트론은 조금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실은 그렇네. 그간 국원을 목표로 한 테러 행위가 꽤 많이 있었지. 자네도 당했던 걸 보면 앞으로도 있을 것 같아. 죽은 사람은 없지만,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에르트 배속을 꺼리는 분위기가 많아서 걱정이네. 파견 온 국원들도 어서 돌아가고들 싶어하는 눈치고."

실비아는 그제야 어째서 신참 집무관인 자신이 에르트 본부에 배속될 수 있었는지 알았다. 사실 집무관 시험에 갓 합격한 경우, 경험을 쌓기 위해 미드칠더의 지상본부에서 1~2년간 근무한 후 순항함 중 한척을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공식이고, 그런 다음에 상부의 판단 하에 각 차원에 파견을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실비아는 그 중간 단계를 모두 건너뛰고 에르트로 배속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에르트는 연락 사무소 단위인 다른 차원지역과는 달리 지상본부에 버금가는 규모의 시설을 갖추어 '에르트 본부'라고 불릴 정도였다. 근무하는 국원의 수도 다른 지역의 열배는 가뿐히 넘는 수준이니, 집무관도 실력이 검증된 사람을 보내는 것이 상식이었다.
하지만 그런 에르트에 실비아가 집무관 시험에 합격하자마자 배속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국원들이 에르트를 기피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뜻이었다. 사실 임무와 시험에만 매달리느라 실비아는 몰랐지만, 본국에서는 에르트에 대한 시공관리국의 직속관리를 철회하고 파견 규모도 축소시켜 타 차원과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지상본부에서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긴 하지만, 그 거부가 억지부리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대다수 국원들의 생각이었다.

"그랬군요..."

실비아는 더 이을 말을 찾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그런 실비아를 보며 트론이 말을 이었다.

"자네도 이제 짐작했겠지만, 여긴 아무래도 힘든 일이 많네. 기존의 임무들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ELF를 상대하는 일도 있거든. 집무관의 임무 중에 ELF 소탕도 있으니 알아두게."




본부장실에서 나온 실비아는 자신의 집무실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집무실에서는 필리아가 벌써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창 공간 키보드를 두드리던 필리아는 실비아가 방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일어서서 경례했다.

"오셨군요, 집무관님. 잘 주무셨나요?"

"네, 필리아도 잘 잤어요?"

"예, 그런데..."

거기까지 말한 필리아가 조심스럽게 실비아의 얼굴을 쳐다보았고, 실비아는 그런 시선에 조금 당황했다.

"왜, 왜 그래요?"

"다치신 데는 없는 것 같네요. 테러 대책부에 친구가 있어서 어제 소식을 들었거든요."

"아, 그랬군요."

실비아는 왠지 모르게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필리아는 다시 자리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굉장히 진지해보였기에 실비아는 자신도 모르게 공간모니터의 내용을 바라보았다.

"1월 무장대 수송 차량 폭파, 2월 PA 관련시설 공격, 3월 죄수 후송차량 기습 및 죄수 탈주, 4월 제 17파견대 사무소 급습, 5월 우주공항 테러, 6월 아지트 습격 도중 대규모 교전... 이게 다 뭐에요?"

"테러 대책부에서 정식으로 ELF 소탕에 대한 협력 요청이 와 있어요. 이건 첨부되어 온 자료들이고요. 올 한해에 있었던 ELF 관련 사건들이에요."

필리아가 대답하며 화면을 클릭하자 화면에 어젯밤 있었던 숙소 폭파 사건이 떠올랐다. 국원을 상대로 하고 민간인의 피해를 최소화한 점을 볼 때 ELF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적혀 있었다. 화면을 보던 실비아는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그런데 범행성명 같은 건 없었어요? 보통 테러가 있으면 한두군데 정도에선 성명 발표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다른 차원은 어떤지 몰라도 에르트에선 범행성명이 따로 없어요. 왜냐하면 관리국에 적대하는 집단이 ELF 뿐이거든요. 아, 요즘 들어 오히려 ELF에서 자신들이 한 게 아니라고 하는 경우는 몇번 있었네요."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잠깐만요,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말한 필리아는 모니터에 띄운 화면을 치우고는 다시 사건 아이콘 두개를 클릭해서 화면에 띄웠다. 그 중 하나는 1월에 있었던 사건 관련 보도였다.

"...한편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례적으로 ELF를 자처하는 단체에서 범행을 부인하는 공식 성명이 방송국으로 전달되었다. 성명에서 그들은 'ELF는 민간 피해를 최대한 지양하며 비마법적 수단 역시 포기한지 오래'라며 질량병기를 사용한 당 사건의 범행을 강력히 부인했다..."

다른 하나인 5월 사건 관련 보도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다. 즉, 1월과 5월의 사건에서는 민간 피해가 컸고 질량병기가 사용되었으며, ELF는 그 사건이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발표했다는 얘기였다. 실비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적대 세력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ELF에서 질량병기 포기선언을 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고 있고, 실제로 그동안에 질량병기 관련 사건이 거의 제로에 가까웠거든요.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조사 결과 다들 ELF와는 관련이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고요."

거기까지 말한 필리아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질량병기에 의한 테러도 늘고 있고, 그 중 상당수가 미결인 채 ELF 소행으로 단정되고 있어요. 게다가 제가 개인적으로 알아본 바로는 더 수사를 진행하지도 않고 있고요. 겨우 두달 전 사건까지도 말이에요."

"개인적으로 알아봤다고요?"

"아, 아까 말한 테러 대책부에 있는 친구를 통해서요. 정보 공유라는 거죠."

정보 공유라기보다는 그냥 수다 떨다가 얘기가 그쪽으로 흘렀던 게 아닐까 싶었지만, 실비아는 굳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테러 대책부에서 보낸 자료들을 찬찬히 읽어보기 시작했고, 사건 보고서에 포함된 용의자 리스트까지 읽다가 멈칫했다. 리스트에 올라온 인물들이 모두 PA 착용 상태였고, 게다가 명단 맨 위에 있는 인물은 온통 새카만 PA를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물 설명에는 'Black Witch'라는 코드네임이 붙어있었다.

"검은 마녀...? 이 사람이 ELF의 지도자에요?"

"아뇨, 지도자는 아니지만 그와 동급으로 관리국에서 주시하고 있는 인물이에요. 말하자면 행동대장이랄까. 이 자가 나타나면 그 상황은 사실상 끝났다고 봐야 돼요."

"무슨 말이에요?"

"인정사정 없거든요. 문자 그대로 마녀에요. 보는 사람이 무서워질 정도로 현장을 헤집고 다녀서, 이 자와 맞붙은 국원치고 병원 신세 안 진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요. 잠깐만요, 자료 보내드릴 테니까 보세요."

생각해보니까 필리아는 자료 정리중이었다. 중간에 실비아가 말을 거는 바람에 일이 중단되었던 것이고, 지금도 계속 실비아 상대를 해주느라 일이 늦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야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른 실비아는 미안한 마음에 살짝 목례를 했고, 필리아는 웃는 얼굴로 자료를 실비아의 공간 컴퓨터에 전송했다.

"전송 끝났어요. 그럼 전 분류 계속 할게요."

말을 마치자마자 필리아는 다시 빠른 속도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고, 실비아는 자기 책상에 앉아 공간 PC를 활성화시키고 아까 보던 자료들을 다시 띄웠다.

'통칭 'Black Witch(검은 마녀)'. 본명 및 연령 불명. 신장 약 160cm 추정, 성별 여성 추정. PA장착시 마도랭크 SS, 마력랭크 S. 확인된 마력광은 검은색이나 ELF의 PA에 마력광 변화 기능이 있는 것을 고려해볼 때 위장된 색상일 가능성이 높음. 최초 출현은 신력 144년 6월이며, 목격될 때마다 검은색 PA 완전 장착 상태. 관리국과 ELF의 교전이 벌어진 현장에만 출현하며, 기동성을 살린 공격으로 아군의 전열을 무너트려 ELF의 도주를 용이하게 만드는 전법을 취함.'

밑에는 3D로 모델링 된 전신 영상과 함께 국원의 디바이스에 촬영된 교전 영상이 있었는데, 전신 영상에서 마녀는 붉은 구슬이 박힌 황금빛 창머리의 디바이스를 들고 있었다. 실비아는 전신 영상을 한번 보고는 교전 영상을 재생했고, 그 내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우와..."

채 1분도 보지 않았는데도 마녀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순간 고속 기동으로 관리국 후위의 뒤로 돌아가 장거리 포격을 맡은 국원들과 보조 마법을 쓰는 국원들을 쓰러트리고, 이를 눈치채고 되돌아오는 전위 담당들에게는 유도 조작형을 쏘아 주의를 돌린 다음 포격으로 격추시켰다. 체포하기 위해 바인드를 쓰려 하면 미처 완성되기도 전에 그 자리를 벗어나고, 마법을 쓰기에 너무 가까운 거리일 때에는 가차없이 디바이스를 휘둘러 타격했다.
이 '디바이스를 휘둘러 상대를 공격'하는 부분에서 실비아는 자기가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몇번이나 비볐다. 마법을 쓸 때 전개되는 마법진의 형태는 분명히 미드칠더 식인데 디바이스 사용법은 무슨 베르카 식 마도사를 연상케 했기 때문이다. 그런 변칙적인 전법도 그렇지만, 속도 자체가 굉장히 빠르기 때문에 대응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정확히는 순간 가속 및 정지가 탁월해서, 속도라면 자신 있는 실비아로서도 조금 자신이 없어질 정도였다. 계속되는 영상에서 짧게 포격을 끊는 것과 동시에 고속기동으로 배리어를 친 상대의 뒤로 돌아가 디바이스로 타격하는 모습까지 나오자 실비아는 그 검은 마녀라는 별명에 완전히 동의했다.
한창 영상을 보고 있으려니 필리아가 옆에 다가와 있었다. 자료 정리를 다 끝낸 모양이었다.

"어때요, 정말 인정사정 없죠?"

"그러네요, 이건 무지막지를 넘어서 정말 맞닥뜨리면 트라우마 될 것 같아요. 베르카 식 마도사들한테는 특히나."

고대부터 기사를 자처해온 베르카 식 마도사들이 근접전에서 미드칠더 식 마도사에게, 그것도 뒤를 잡혀 패배했다면 그건 트라우마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실비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필리아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알고 계세요? 선임 집무관님 일?"

여기서 말하는 선임 집무관은 실비아가 오기 전에 에르트 본부 집무관을 지낸 사람 얘기였다. 실비아는 그 사람이 본국으로 급히 돌아가서 자신이 부임하게 되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혀 아는 바 없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그 선임 집무관님, 실은 마녀랑 싸운 것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가신 거에요."

"네?! 말도 안 돼, 얼마나 크게 다쳤길래 본국으로 후송될 정도에요?"

경악하는 실비아를 본 필리아는 손을 내저으며 말을 이었다. 실비아의 반응에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후송은 아니구요, 현장에서 중대한 판단 미스로 인한 작전 실패의 책임...이라는 거죠. 호기롭게 1:1 대결을 신청하신 것까진 좋았는데..."

얘기는 이랬다. 6월말에 있었던 ELF 아지트 급습 작전 당시, 일선 지휘중이던 집무관이 관리국원들의 후방을 교란하고 있던 검은 마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집무관은 베르카 식 마도사였고, 우연히 사용하는 디바이스도 마녀의 것과 비슷한 형태인 창 형태의 암드 디바이스였다. 어쨌든 마녀가 종횡무진 아군 진영을 누비는 모습을 보고 호승심이 생겼는지, 집무관이 마녀에게 1:1 대결을 제안했다고 한다.
마녀로서는 자신이 발이 묶이면 그만큼 불리해진다는 생각을 했는지 가타부타 말도 없이 다른 국원을 향해 돌진했고-쉽게 말해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분노한 집무관이 공격해오자 역시 후방을 잡은 다음 '비 오는 날 먼지 나도록' 디바이스로 두들겨 줬다는 얘기였다. 필리아는 관련 자료 영상까지 있다며 찾아서 재생했고, 그 내용을 본 실비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집무관으로 추정되는 국원이 PA 장착상태로 마녀의 뒤를 베어 들어가자 마녀는 소닉 무브 계열로 추측되는 고속 기동 마법으로 이탈, 다음 순간 집무관의 뒤에 나타나 미처 방어동작을 취하기도 전에 머리를 디바이스로 '후려 갈겼다'. 아무리 헬멧으로 보호받는다고 해도 머리에 풀스윙의 직접 타격을 받는다면 충격이 보통이 아니다. 당연히 집무관은 자세가 풀렸고, 마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도 조작 마법과 직접 타격을 섞어-중간중간에 발차기까지 들어갔다- 약 1분 동안 일방적인 난타를 가했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숫제 린치 수준이었다. 게다가 결정타로, PA에 온통 금이 간 채 디바이스에 기대어 겨우 서 있는 집무관의 복부에 대고 그대로 포격을 날리는 모습에 실비아는 소름이 돋았다. 재생이 종료되자 필리아가 영상을 갈무리하며 말했다.

"듣기로는 아직 치료가 끝나지 않아 사문회가 미뤄지고 있다는 것 같아요. "

"저기, 그 선임 집무관님 마도사 랭크는요?"

"AAA랭크였어요. 마력 랭크도 그 정도고, 그 때에는 PA도 장착하고 계셨으니 마력 랭크는 대충 S랭크 쯤이었을 걸요?"

실비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과 거의 같은 랭크의 마도사가 농락당했다는 얘기가 달가울 리 없었다. 직접 싸워보기도 전에 겁먹는 것만큼 바보같은 일도 없지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사실이었다.




실비아는 방을 구해야 한다는 이유로 에르트 근무 첫날에 조퇴를 기록했다. 당장 처리해야 할 급한 업무가 있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었지만 실비아는 내심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에리나와 페이의 집에서 계속 신세를 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집을 구하긴 구해야겠고, 근무 시간이 끝나면 집 구하기에도 시간이 애매해지니 어쩔 수 없었다.
집을 구하러 돌아 다니면서 실비아는 휴대전화도 구입했다. 지금 생산되는 휴대전화는 공간 모니터 출력 기능까지 포함되어 있는 최신 기종이었는데, 물론 공간 모니터 기능은 임의로 켜고 끄는 것이 가능하게 되어 있었다. 관리국과 연락을 주고 받는 것은 염화나 디바이스를 통해서 이루어지지만 에리나 같은 비국원을 상대로 디바이스 통신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또한 마도사가 아닌 사람들과는 염화는커녕 디바이스 통신도 불가능하니 휴대전화는 하나쯤 있어야 했다.
휴대전화 개통을 끝낸 실비아는 아침에 받아둔 에리나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말하자면 개통식이다. 벨소리가 두번 울리자 에리나가 휴대전화를 받았다.

- 네, 여보세요.

"에리나, 나야, 실비아."

- 어머, 실비아? 휴대전화 샀구나. 모르는 번호라서 받을까 말까 잠깐 망설였는데 다행이네.

"스팸 전화가 제법 많이 오나 보네."

- 아무래도 그렇지. 회사가 크지는 않지만 이름은 꽤 알려졌거든. 그리고 페이의 대외 공개 연락처가 내 휴대전화로 되어 있어서, 중요한 약속부터 잡다한 내용까지 다 내가 먼저 받아야 한다니까. 원래 비서 업무가 그렇다곤 하지만 하루에 수십건씩 그런 전화 받다 보면 지쳐.

에리나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실비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에리나는 특히 전화라면 진절머리가 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이어진 둘의 대화는 실비아가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다.




다행히 실비아는 세번째로 들른 사무소에서 적당한 집을 찾을 수 있었다. 임대비도 그리 비싸지 않고, 거리도 에르트 본부까지 대중교통수단으로 30분 거리였다. 계약을 끝낸 후, 열쇠를 넘겨받은 실비아는 짐을 옮기기 위해 에리나의 집으로 향했다. 마침 시간도 퇴근시간이라 에리나도 집에 있을 터였다.

"자, 그러면 송별회를 해야겠지?"

"그러니까 제발 적당히 좀 마시고 살라고요..."

실비아가 집을 구했다는 얘기를 들은 페이가 송별회를 빙자해서 또 술판을 벌인 것과, 에리나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안주거리를 찾은 것은 별로 놀라울 것 없는 이야기였다. 결국 짐 옮기기는 내일로 미뤄졌다. 그렇게 한잔씩 주거니 받거니 하는 와중에 마녀 이야기가 나왔다. 정확히는 마녀에 대해서 세간에 알려진 바를 실비아가 물어본 것이다.

"전임자 자료 정리하는 도중에 '검은 마녀'라는 사람의 자료가 있던데, 어떤 사람이에요?"

실비아의 말에 에리나는 묘한 표정을 지었고 페이는 못 들었다는 듯이 술잔을 입으로 가져다 댔다. 아무래도 페이는 전혀 얘기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실비아는 에리나에게 재차 물었고, 에리나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관리국에서 일하니까 모르고 넘어갈 리야 없었겠네. 일단 ELF 소속으로 알려져 있고, 에르트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선 영웅 비슷하게 여겨지고 있어. 아무래도 에르트는 전반적으로 관리국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깔려 있으니까. 물론 대놓고 그 사람을 옹호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거기까지 말한 에리나는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뭐, 실제로 만나거나 한 일이 없으니까 뭐라고 더 평할 내용이 없네. 으음... 굳이 덧붙이자면, 디바이스 업계로서는 좀 껄끄럽다고 할까, 얄밉다고 할까. 특별히 주문제작한 디바이스를 쓰는 국원들까지도 때려눕힌 전적이 있으니, 그 디바이스들을 만든 업체 쪽에서는 좋게 볼 수가 없거든. 아, 관리국과 ELF의 전투에 우연히 휘말린 일반인을 보호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디까지나 소문의 수준이라 확실하지는 않아."

"그래? 영상 자료에선 굉장히 무자비해보이던데..."

그 말을 들은 에리나가 순간 눈쌀을 찌푸렸지만 실비아는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에리나도 별말없이 술잔에 손을 뻗었다. 오른쪽 손목에 걸린 붉은 구슬이 술잔에 부딪치며 쨍 하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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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까지 전개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본격적인 내용 전개보다는 설명 위주입니다. ...어쩔 수가 없어요 --;;
아마도 다음편...은 무리일 것 같고, 5편쯤 되면 제대로 된 마법 전투가... 역시 무리일 것 같군요. (...)

조금 지루하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봐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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