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 2004년 11월에 작성한 글을 약간 다듬고 수정했습니다.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다.

세수를 하고 머리를 빗고 냉장고를 대충 뒤져서 아침을 먹고는 교복을 입는다.

등교길에서 만나는 친구들과 미소를 담아 인사를 주고받고는 함께 수업을 듣는다.

그야말로 평범하기 짝이 없는 생활.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나이프가 심장을 꿰뚫으면 어떻게 되는지, 납탄이 미간에 박히면 어떻게 되는지를.

인생이란 것이 너무나도 어이없도록 간단히 끝나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무기는 그 모든 공포를 능가하는 슬픔과 분노와 희망.

그것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그리고 살아남아야 한다.

언젠가 찾아올 속죄의 그 날을 살아서 맞이하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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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텀 오브 인페르노'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약 12년 전, 게임 잡지에서였습니다. 당시 PS2 제작에 들어간 게임 리스트에 있었는데, 사실 그 때에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죠. 그저 '또 미소녀가 나오는 총기 관련 게임인가'하고 넘어갔을 뿐.

하지만, 군대에서 인트라넷에 있는 한 동호회(...사실 찾아보면 별의별 동호회가 다 있습니다)에서, 'NOIR의 키리카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팬텀 오브 인페르노의 아인도 좋아하실 겁니다.'라는 말에 자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군 인트라넷에서 구한 팬텀 오브 인페르노 - 아인 루트 번역본.(...)
주간 업무와 야간 작업 틈틈이 시간을 내서 다 읽어본 느낌은....

"대박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어떤 게임과도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애초에 이런 분위기의 게임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지만요.



처음부터, 조금의 희망도, 일상도 없이 시작되는 주인공의 생활.

봉인당한 기억과 이름,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암살 교육.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회가 포착되자 방아쇠를 당겨버리는 육체.

여권을 통해 이름을 되살리고, 기억을 되살렸을 때. 이미 피를 묻혀버린 자신과,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자신 사이에서의 절규.

믿었던 간부에게 배신당하고, 지켜주리라 결심했던 소녀가 있던 방이 폭파되는 것을 보고 느끼는 절망.

신분을 감추고 일상에 녹아들어가 생활하면서 조금이나마 느끼게 된 자그마한 행복.

그리고 눈앞에 나타난, 폭발 속에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지금은 자신을 죽이기 위해 나타난, 자신과 동등한 수준의 암살자가 되어버린 소녀.
(참고로 그림에 나오는 소녀와는 다른 소녀임.)




...개그 요소 같은 것은 거의 없습니다. 특히, 총 3부로 나뉘어진 내용 중에서 1부에서는 개그 요소를 눈 씻고 찾아봐도 없...지는 않은데 있으나 마나한 수준. 그나마 2부와 3부에서는 간간이 나오지만,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

그만큼 진지 일변도인 게임이지만, 그렇다고 지루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강한 흡인력을 가지고 있어, 플레이하기 시작하면 중간에 집어치우는 일은 거의 없을 겁니다. 아, 물론 이쪽 장르에 관심 있는 분들 얘기.

게다가, 텍스트에서 느껴지는 심리 묘사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위에서 말한 내용중, 기억을 되찾고 절규하는 부분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을 계속 되뇌이는 부분이나, 반복된 훈련에 의해 단련된 육체가 기회를 포착하자 자신도 모르게 총을 쏴서 상대를 죽이고는 그 사실에 절망하는 부분이 특히.




꽤 오래 전에 3부작 OVA로도 만들어졌고 몇년 전에도 TV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졌습니다만... OVA는 그냥 아예 없는 셈 치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고(...), TVA도 최종화-특히 마지막 5분- 때문에 순식간에 못 볼 물건이 되어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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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강철의 이빨을 주겠어.

흔들림 없는 얼음의 눈을 주겠어.

공포를 넘어서기 위한, 분노와 슬픔과 희망을 주겠어.

그러니까 싸워. 죽여. 긴 꿈이 끝날 때까지...

언젠가 오게 될 속죄의 그 날을, 살아서 맞이하게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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