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있잖아, 넌 무슨 소원을 빌 거야?"

"글쎄? 솔직히 아직 생각해본 적도 없는걸."

"응? 왜? 대부분 17번째 생일만 기다리면서 이런저런 생각하잖아?"

"아니 뭐, 딱히 빌고싶은 것도 없고 말이야. 게다가 소원빌고 보니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너무 아깝잖아."

"너 그러다 평생 소원 못 빈다."

"우웅, 죽기 전에는 쓰지 않을까?"

"숨 꼴딱 넘어가기 직전에?"

"...악담을 해요, 아주."

어느 날씨 좋은 날 아침,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녀 학생 한쌍이 길을 걷고 있었다. 아마도 등교시간인 듯, 주변에는 같은 디자인의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맨 아이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그 중에서 방금 이야기를 나누던 아이들은 정말 쉴새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확히는 여자아이의 끊임없는 말에 남자아이가 마지못해 대꾸하는 것에 가까웠지만, 누가 봐도 허물없는 사이라는 것은 금새 알아볼 수 있었다.

"아아~ 난 뭘 빌어볼까. 머리가 좋아지게 해달라고 할까? 아니면 운동을 잘하게 해달라고 할까? 아니면…."

"그 전에 키부터 좀 크게 해달라고 하는 건 어때?"

"너어!"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아이의 고개가 앞으로 푹 꺾였다. 풀스윙으로 휘두른 여자아이의 손바닥이 어지간히도 매웠는지, 남자아이는 한동안 뒤통수를 부여잡고 끙끙댔다.

"엄살 피우지 마! 여자애 손이 아파봤자 얼마나 아프다고 그래!"

"누나가 여자냐! 남자애들도 이 정도는 아냐!"

"너 정말 죽어볼래!"

"그러려면 그 전에 날 잡아야할걸?"

"어? 야! 너 거기 서! 안 서?! 너 잡히면 죽어!"

앞서가는 아이들을 제치고 달려가는 남자아이를 쫓아, 여자아이는 힘차게 달렸다.





조례가 막 끝난 교실에서, 남자아이는 책상에 푹 엎드려 있었다. 등교길에서 보인 모습과는 달리 어쩐지 기운이 없어보이는 모습에 옆자리의 친구가 말을 걸었다.

"뭐야, 너 또 당한 거냐? 이번엔 또 어떤 거야?"

"…허리 꺾기에 이어 땅에 메친 다음 다리 붙잡고 꺾기."

"매번 생각하는 건데 말이야, 너네 누나 참 대단하다. 나중에 프로레슬링 선수 되는 거 아냐?"

"그러면 적어도 먹고 살 걱정은 없겠지. 정말 누가 데려갈지 걱정된다. 나 같으면 절대로 안 데려가."

"호오~ 날 그런 눈으로 보고 계셨다?"

"……."

"아침에 좀 과하게 한 것 같아서 미안해서 와봤더니, 이렇게 뒷담화를 까고 계셨단 말이지? 아직 네가 자극이 좀 부족한 모양이구나."

"아, 아니 저기 누나, 이건 말이지, 그러니까……."

남자아이는 주춤 주춤 물러서면서 다급하게 옆을 둘러봤지만, 방금 그 실언(?)의 원인을 제공한 친구 녀석은 어느 샌가 교실 문을 열고 조용히 나가고 있었다. 나가기 직전 눈이 마주치자, 친구 녀석은 어색하게 씨익 웃고는 잽싸게 교실을 나가 버렸다.

"야 임마! 치사하게 너만…! 아니 잠깐 누나! 좀 기다려! 진정해 봐 좀!"

"너만 잡으면 진정할 테니까 거기 서!"

"잡은 다음에 또 고문할 거잖아!"

"누나의 애정표현을 고문이라니! 아직 교육이 덜 됐구나!"

"그게 어떻게 교육이야!"

"시끄러! 야! 늬들 평범하게 수업받고 싶으면 저녀석 잡아!"

남자아이는 누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근처에 있던 반 친구들의 손에 단단히 붙들렸다.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닌 듯, 아예 포지션까지 정하고 대기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늬들이 이러고도 친구냐!"

"미안, 하지만 오늘 하루를 또 조용히 시작하려면 이럴 수 밖에 없어."

"거스르면 어떻게 되는지 너도 잘 알잖아?"

"그냥 우리반 위해서 너 하나 희생해라."

절망에 가득차서 고개를 돌리자, 눈앞에는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누나가 있었다.





'…해서 오늘도 저승 문턱을 왔다갔다 했죠.'

'누님께서 활기찬 분이라서 사는 게 시끌벅적하겠네요. 그래도 활기찬 게 좋죠?'

'저 활기의 반만 누가 좀 가져갔으면 좋겠다니까요.'

'그래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축복이죠.'

'그건 그렇네요. 그러고보니 님께서는 아직 생일 안 지나셨죠?'

'네, 이번 생일에 소원 빌려구요. 두달 좀 더 남았네요.'

'그러면 생일 지나서 언제 만나죠. 오프모임 겸해서.'

'진짜요? 그러면 저야 좋죠. 아, 간호사가 그만 하라네요. 그럼 다음에 또 봬요.'

'네, 다음에 봐요.'

남자아이는 대화상대가 퇴장한 채팅창을 종료하고는, 곧장 컴퓨터 전원을 내렸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에 가까워 있었고, 내일도 학교를 가야하니 너무 늦게까지 깨어있는 건 금물이었다. 애초에 늦잠을 자고 싶어도 누나의 등쌀에 잘 수도 없고.

"17번째 생일과 소원이라…."

누구나 한번씩 이룰 수 있는 소원. 17번째 생일이 지나면 죽기 전까지 단 하나의 소원이 현실이 되는 마법의 세계. 하지만 단 한번의 기회이기 때문에 섣불리 정할 수도, 빌 수도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소원을 가진 사람과 아직 찾지 못한 사람들의 평범한,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삶은 계속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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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약간 설정만 구상했던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누구나 단 하나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세계'라는 설정입니다. 17번째 생일이 지나면 죽기 전까지 하나의 소원을 빌 수 있고, 한번 소원이 이루어지면 되돌리는 것은 절대 불가.

구상 도중 '누구나 가지는 게 하나의 소원이 아니라 하나의 특수 능력을 가지는 걸로 해볼까' 하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만, 모 게임의 설정과 판박이가 되는 바람에 관뒀습니다. 표절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요. 의식하고 쓴 것도 아닌데 SS 소리 듣는 것도 싫어요. (...)

아마도 나중에 또 내키면 이어지는 이야기를 쓰게 될 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초단편의 연작이 되겠죠.
등장하는 오누이의 이름은 아직 미정입니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만 밥군의 세연 세진 남매가 떠올라서 그거 떨쳐내느라 힘들었습니다. (먼산)



덧/ 그러고보니 천원돌파 그렌라간 13화에서, 육상'전함'인 다이그렌이 전력질주로 바위산을 뛰어오르더니 그 기세를 몰아 고공 점프, 적 공중전함에 뛰어차기에 이어 뒤돌려차기까지 먹이더군요. 이건 이미 전함의 기동성을 뛰어넘었습니다...
보고 나니 '제 3차 슈퍼로봇대전 알파'에서 등장한 전함 '마크로스7'이 생각나더군요. 함장부터가 천재라 불리우는 초사기성 파일럿이다 보니 어지간한 아군 기체(심지어는 MS)보다도 잘 피하고 잘 맞춘다던가. (...)

덧2/ 럭키스타 12화. 일본 코미케에 대한 내용이 전반, 설에 대한 내용이 후반이었습니다.
...코미케는 정말 지옥이었군요. (...)
중간에 쿈과 소스케의 굴욕도 필견(必見)...

덧3/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봤습니다. 괜찮더군요. 사소하다면 사소하고 크다면 큰 오류가 하나 있긴 합니다만 그거 지적했다간 애니 내용이 성립이 안 되니 PA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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