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命 - 첫 번째 이야기 : 무엇을 찾는가 (5) ver 1.02

첫번째 이야기 : 무엇을 찾는가 (5)

 

 탑 지하에 있는 수련실은 지상에 보이는 탑의 평면적보다 더 넓은 공간을 가지고 있고, 천장과 벽면에는 영력을 흩뜨리는 마법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물론 이 마법진은 어디까지나 시설 보호를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마법 발동 자체를 막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접촉한 마법에만 효과를 발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지면에서 공격수단이 올라오는 마법도 있기 때문에 바닥은 맨바닥이었고, 덕분에 만약 대련이라도 한번 벌어지면 바닥이 완전히 박살이 나 버린다. 그래도 불평하는 사람은 없는데, 탑 밖에서 인부들을 고용해서 복원하기 때문이다. 인부들은 돈 벌어서 좋고, 마법사들은 애초에 신경 안 쓰니 서로 충돌할 것도 없다.

 “도구는 필요 없어?”

 품 안에서 장갑을 꺼내 손에 끼우던 시그리드가 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장갑의 손등과 손바닥에는 마법진과 마법 문자가 그려져 있었다.

 “나야 뭐 항상 하고 다니니까.”

 대답하며 손을 들어 보였다. 내 손목을, 정확히는 양 손목에 채워져 있는 팔찌를 본 시그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리저리 여행하는 마법사라면 언제 무슨 일을 겪을지 모르니 빼둘 수 없겠구나.”

 그러는 사이 시그리드는 양손에 장갑을 다 끼웠고, 손을 몇 번 쥐었다 폈다 하고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거 대련 시작은 어떻게 하지? 둘이 동시에 발동하는 걸로 시작해야 하나?

 “미안하지만 내가 선공할게.”

 “뭐?”

 말문이 막혀서 잠시 당황하고 있자니, 시그리드는 그새 캐스팅에 들어가 있었다. 이렇게 나오기냐!

 “파이어 볼(Fire Ball)!”

 “Mabup Bangumak!”

 방어막이 완성되는 것과 거의 동시에 쾅 하는 폭음과 함께 파이어 볼이 부딪혀 왔다. 폭발은 막아도 불덩어리에서 내뿜어지는 열기는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었고, 그래서 재빨리 뒤로 물러서야 했다. 조금만 더 그 자리에 있었다면 통구이는 면했더라도 훈제구이는 피할 수 없었겠지.

 “매직 미사일(Magic Missile)!”

 한숨 돌리나 싶었더니 이번엔 매직 미사일이냐!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인지, 시그리드는 마법을 완성시키는 순간 바로 다음 마법을 캐스팅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건 비상식적으로 캐스팅 속도가 빠르다. 속도 증가 마법(Haste)을 외우지는 않았는데, 그렇다면 장갑에 주문을 그려 넣었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몸을 옆으로 날려 공격을 피하고, 곧바로 땅을 짚으며 외쳤다.

 “Heundeullyura!”

 외침과 동시에 바닥이 쿠르르 소리를 내며 진동했다. 발밑이 흔들리자 시그리드는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찧었고, 그 틈을 타 재빨리 시그리드에게 달려들었다.

 “거스트(Gust)!”

 시그리드의 코앞까지 다다른 순간, 시그리드가 나를 향해 손을 뻗는 것을 보고 몸을 날렸다. 거의 동시에 방금 전까지 달려오던 방향으로 세찬 바람이 휘몰아쳤다. 아마도 내 체중으로는 저 바람에 휩쓸려 날려가 버렸을 거다.

 “제법이잖아! 여러모로 생각 좀 했나 보네!”

 “그러는 너는 실력이 많이 줄어든 모양인데!”

 큰 소리로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에도 자잘한 마법들이 계속 날아드는 통에 가만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몰리다 보면 주문을 외울 틈이 없고, 결국은 나가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인 결과지만…….

 “아이스 스톰(Ice Storm)!”

 도대체 몇 개나 되는 주문을 장갑에 써놓은 거야! 이번에도 캐스팅 타임 없이 즉각 발동이냐!

 “BooluraYulpoong!”

 뜨거운 바람으로 아이스 스톰을 중화시키는 사이, 시그리드는 다시 한 번 캐스팅에 들어가 있었다. 아까부터 장갑을 이용한 즉각 발동과 캐스팅을 통한 발동을 번갈아 쓰고 있었는데, 연습을 꽤나 했는지 틈이 거의 없었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전쟁을 대비한 종군 예비 순위에서 최소한 상위 5위 내에는 들어가겠지.

 “그리스(Grease)!”

 순간 발이 미끄러졌다. 캐스팅을 하는 걸 보고 고랭크의 공격 마법일 거라고 짐작했는데, 속아버렸다. 많이 노련해졌는데? 넘어지기 직전에 반사적으로 손을 짚으려고 했지만 그 손마저도 미끄러지는 통에 완전히 바닥에 드러눕는 꼴이 되고 말았다. 무효화 주문(Dispel)을 걸면 간단하게 해제되겠지만 마법 대련에서 무효화 주문과 영력 동결 주문(Anti-magic shell)은 반칙이니 사용 불가. 그러니 다른 마법으로 빠져 나가야겠지.

 “Dduollara!”

 “프리즈 애로우(Freeze Arrow)!”

 몸을 허공에 띄운 순간, 밑으로 얼음 화살 세 개가 지나쳐갔다. 보통은 체온 저하를 일으켜 일시적인 행동 둔화와 감각 마비의 효과가 따라붙는데, 근처를 지나갔을 뿐인데도 냉기가 상당한 걸 보니 맞았다간 그대로 얼어붙겠다.

 “그동안 영력 제어도 많이 발전했나 보네?”

 “당연하잖아!”

 시그리드의 말투는 어느새 신경질적으로 변해 있었다. 일방적으로 공격의 주도권을 잡고 있지만 정작 효과를 본 것은 하나도 없고, 잠깐 잠깐 발을 묶는 수준이 고작이니 애가 탈만도 하겠지. 게다가 큰 마법은 효과를 못 보지만 자잘한 것들은 그런대로 효과를 보고 있으니 더 속이 탈 것이다. 그럼 오늘은 일단 이쯤에서 끝내볼까. 그런 생각에 회피 동작을 멈추고 주문을 발동시켰다.

 “Mabup Boonsoæ.”

 발동과 동시에 양손에 희뿌연 빛이 맺혔다. 그대로 손을 휘둘러 날아오는 매직 미사일을 쳐내자, 매직 미사일은 부서지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이 광경을 본 시그리드는 차례차례 공격마법을 날려댔지만, 나는 천천히 걸어 나가면서 양손을 움직여 그 마법들을 모두 분쇄했다. 시그리드와 나와의 거리는 10m에서 5m, 다시 2m로 줄어들었지만 시그리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이젠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매직 미사일 연사로 공격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날아드는 5개의 매직 미사일을 모두 분쇄한 후, 시그리드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오늘은 여기서 끝. 하지만 실력이 많이 는 건 사실이니까, 저녁은 내가 만들게.”

 “전에도 느낀 거지만 말이야, 넌 마법사라기보다는 격투가가 아닌가 싶어.”

 시그리드의 한숨 섞인 말에 난 그저 어깨를 으쓱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내가 생각하기에도 마법은 보조로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니 마법사라고 불리기에는 어폐가 있고, 사람을 상대로 공격마법을 쓸 수도 없어서 결국 상대를 무사히 제압할 수 있는 격투 쪽으로 결론을 내는 편이니, 굳이 엄밀하게 따지자면 격투가가 맞겠지. 실제로 ‘넌 마법사가 아니야!’ 라는 소리도 들은 적 있고.

 “상관없잖아. 어쨌든 저녁 준비는 피했으니 된 것 아니야?”

 “그렇긴 하다만… 역시 사람 기분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납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7년 전에 어이없이 당했던 기억 때문에 꽤 준비했는데도 이렇다니, 널 따라잡으려면 대체 얼마나 걸려야 하는 걸까.”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는 되지 않을까?”

 생각보다 심하게 낙담하는 시그리드에게, 난 형식적인 위로의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내 수준에 도달하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까.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저녁은 기분도 풀어줄 겸, 시그리드가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봐서 스파게티로 만들었다. 모처럼 생각해서 만들어주는데 너무 평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사자가 좋다고 하니 별로 상관없겠지. 실제로 굉장히 맛있게 먹기도 했고. 저녁을 먹으려는데 로비에서 ‘대련 중에 생긴 진동 때문에 항의가 빗발친다’는 투정 섞인 항의가 올라왔지만, 살짝 무시했다. 다친 사람만 없으면 됐지,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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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연(韓世淵, Han Seyun)
女. 신장 166cm. 체중과 연령은 불명. (누가 물어봐도 절대로 대답 안 한다) 단, 외모상으로는 20대 중반으로 보인다.
어깨를 살짝 넘는 짙은 갈색 머리와 푸른 눈동자. 외모는 전형적인 로페안(Ropean).
한눈에 들어오는 미인은 아니지만, '수수한 미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외모.
일단은 마법사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마법은 보조로 사용하고 직접 몸을 움직여 상대를 제압하는 타입. 이 때문에 정통파 마법사를 자처하는 부류들에게는 '마법사도 아니다'라는 표현을 듣기도 하지만, 압도적인 영력과 결합된 뛰어난 체술은 마법사와 전사 양쪽 모두 상대하기 어려워한다.
기본적으로, 매우 친한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무관심하여 스스로 접촉하는 일은 전혀 없다고 봐도 좋다. 친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먼저 상대에게 조언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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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 분류
로페안(Ropean) : 백인
시아난(Sianan) : 황인
프리안(Frian)　 : 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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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 도구
마법 발달이 미약하던 초기에는 마법 도구로 지팡이나 서클릿이 애용되었으나, 세공기술과 주문 축약법이 발전하자 마법 도구도 점차 소형화되어 현재에는 장갑이나 반지, 팔찌가 주로 이용되고 있다.
장갑은 주로 마법진이나 마법 주문을 축약하여 장갑 표면에 그려넣는 식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축약된 마법 주문을 이용해서는 해당 마법의 즉각 발동이, 마법진을 이용해서는 축약 주문을 그려넣지 않은 마법의 고속 발동이 가능하다.
반지는 반지에 박힌 보석을 통해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용도로 주로 이용되는데, 대체로 하나의 보석은 한 속성의 마법만을 증폭시킬 수 있다. 하지만 그 증폭력이 장갑이나 팔찌에 비해 2배 이상 강력하기 때문에, 특정 속성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들이 많이 사용한다. 일부 마법사의 경우, 2개 이상의 반지를 끼기도 한다.
팔찌는 장갑과 반지의 중간 정도의 특성을 지니는데, 팔찌의 표면에는 축약 주문을 몇개 새겨넣고 증폭을 위한 보석을 한개 박는 식이다. 다만 축약주문과 반지의 증폭력이 상호 반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장갑과 반지를 따로 사용할 때만큼의 뛰어난 효과는 기대할 수 없다.
장갑과 반지를 동시에 착용한 경우는 더 심각해서 상호 반발 작용 때문에 둘 중 하나, 혹은 둘 다 손상된다. 이유는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나, 고속 발동을 위해 빠르게 순환하는 영력이 증폭을 위해 속도가 더욱 가속되면서 그 순환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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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한 대로 대련 장면과 세연의 설정, 거기에 더해서 인종 분류와 마법 도구에 대한 설정입니다.
원래는 내일 올릴 생각이었습니다만, 동생이 내일 하루 종일 컴퓨터를 붙잡고 앉아있어야 한다고 해서 부랴부랴 오늘 올립니다. --;

세연의 이름은 한국식이면서 외모는 어째서 백인이냐고 물으신다면, '일단 계속 보시면 압니다'라는 답변을 드리... (끌려간다)
세연의 외모는 게임 '에베루즈 스페셜'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마리엔'의 외모를 많이 참고했습니다.
혹시라도 궁금하신 분은 검색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

오늘도 쓰다보니 마법 도구에 대한 설정이 바뀌어버렸습니다.
어째 초기 설정을 유지하는 게 단 하나도 없군요. 세연에 대한 설정도 약간이지만 1편 올릴 때와는 조금 달라졌고, 마법 도구에 대한 설정도 바뀌었고.
이러다 완결될 때 쯤이면 초기 설정을 유지하고 있는 건 세계관 정도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나마 세계관이라도 유지되면 다행이려나요? (...)

덧/ 후반부 약간 수정했습니다.
덧2/ 세연의 설정과 외모에 대한 설명 약간 추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