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otic Blue Hole

어제, 미소녀 그림이 많이 올라와서 자주 들르는 사이트에 갔다가,
그곳의 한 분이 참 지저분한 경험을 당한 일이 올라와 있었다.

위에서 말한 곳과는 다른 모 사이트에 성우 비교를 위해서 치요와 '체포하겠어' 그림을 올렸는데, 어떤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싫다)가 바로 첫 리플에 '이런 일빠 초딩들은 사라졌으면 좋겠다'라고 적은 것.

그 덕에 그 밑으로는 그 @#$%&에 대한 집단 비판과, 그 @#$%&의 다른사람들에 대한 '싸잡아 욕하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싸잡아 욕하기'의 내용 중 하나가, '난 다른 건 몰라도 일본 껀 좀 가려 쓴다.'라는 글.

......왜?

왜 일본 것을 가려 써야 하는 걸까?

솔직히 난 게으르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이런 저런 글을 봐도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 그냥 혼자서 속으로 '저런 축생...'하면서 다른 페이지로 넘어가버린다. 덕분에 토론이나 비방으로 복잡한 곳에서도 그냥 방관자로 남아서 구경만 하곤 한다.

그런 습관 때문인지, 저런 글을 보고서도 같이 뛰어들 생각은 안 들고, '그럼 왜 일본 걸 가려 써야 하는 건데?'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왜?

왜 가려 써야 하는 걸까?

일본이 35년간 우리나라를 식민통치했기 때문에? 그 때문에 일본 것은 가려 써야 한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 꼭 '저녀석은 어렸을 때 날 항상 때렸으니까 지금도 절대로 어울리면 안 돼'하는 것과 똑같잖아.

그리고, 일본 것을 가려 쓴다면 우리나라의 전 기능은 당장에 All Stop. 컴퓨터와 각종 가전제품 내부의 주요 부품, 자동차와 전철 등의 내부에 알게모르게 많이 들어가 있는 여러 전자 부품 같은, 소형 정밀 부품의 경우 대부분 일본제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일본산을 전부 빼낸다면 우리나라는 당장에 모든 산업이 멈춰버리겠지.

얘기가 너무 엇나간 것 같은데, 그럼 얘기를 애니메이션 쪽으로만 한정지어보자.

일본 애니메이션은 가려봐야할까? 일단 가려보기는 해야한다고 본다.
일본이 바로 옆의 섬나라이니만큼, 풍습이나 감성이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 하지만 사이에 바다가 있는 덕분에,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모든 일본 애니메이션을 무조건 다 괜찮다고 할 수는 없겠지.
(10살짜리 애한테 켄신 추억편을 무삭제로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막을 건가? 아니, 막는다고 쳐도, 그럼 뭘 볼 건데? 정서에도 제대로 안 맞는 미국이나 유럽 애니메이션? 설마, 작은 생쥐 한마리가 커다란 고양이를 죽도록 괴롭히고 난처한 지경에 빠트리는 'Tom과 Jerry'같은 것만 틀라는 생각은 아니겠지.

흔히들 일본 애니메이션의 폐해로, 잔인한 장면과 선정적인 묘사가 아이들 정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하는데, 애들 습성을 생각해보자. 애들은 일단 tv에서 재밌는 장면이 나오면 따라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잔인하고 선정적이라고 말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묘사는 사실적 표현에 중점을 둔 작품들이다.(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따라서 총에 맞거나 칼에 베이면서 피가 나고, 고통스러워하다 쓰러진다. 그렇다면, 일단 이런 장면을 애들이 보면 안 되겠지만, 보게 된다면 '저렇게 하면 굉장히 아프겠구나'하는 생각 정도는 한다.(그렇다고 따라하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위에서 예를 든 'Tom과 Jerry'같은 경우, 수시로 몇백kg에 달하는 모루에 깔리고, 절벽에서 떨어지고, 열차에 치이고, 총알에 관통당하고, 자동차에 깔린다. 하지만 절대 안 죽는다. 납작하게 오징어포가 되고, 혹 좀 나고, 반창고가 여기저기 붙어있고, 몸에 총알구멍이 나서 물을 마시면 줄줄 새지만, 안 죽는다. ...이쪽이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안 드나? 등장인물이 안 죽으니까 더 해보고 싶어질 거란 생각은 안 드냐고.

그리고 만약 일본 애니메이션을 편성표에서 뺀다고 했을 때, ...볼 거나 있나.

솔직히 한국 애니메이션에서 봐줄만한 물건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빈약한 스토리, 이상한 색감. 아니, 제대로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게 기적이라고 말해도 좋겠지.

일본 애니메이션 좋아한다고 뭐라고 하기 전에, 국내 애니메이션 활성화를 위해서 정부와 방송국에 E-메일이나 좀 날려주는 게 어떨까. 판권분쟁 한번 일어났다가 지금은 사람들 기억속에서도 거의 사라져버린, '태권V 부활 프로젝트'나 빨리 해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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